벌써 13년 전이다. 가을 어느 날, 밤새 진통으로 소리조차 내기 힘든 순간이었다. 나와의 탯줄을 끊고 세상으로 나온 아이는 우렁찬 울음으로 신고식을 하였다. 이제 갓 태어난 아이가 눈을 뜨기도 전에 젖을 물어 자신을 지켜내는 법을 어찌 알았을까? 나는 그때 그 경이로움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실컷 배불리 먹고 잠든 아기의 미소며 잠에서 깨어 엄마를 보며 ‘까르르’ 웃는 모습이 모두 천사의 것이었으며 그런 아이를 담고 있던 나의 눈은 천국 그 자체였다. ‘어쩜 이리 예쁠까?’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거울이 되어 속삭였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은 나를 설레게 한다.
나의 꿈과 희망과 휴식이었던 그 녀석이 어느새 열세 살이 되었다. 중년의 문턱을 넘고 있는 나와 사춘기 중심에 와 있는 아들 녀석은 더는 13년 전 그때의 엄마와 자식이 아니다. 자주 부딪친다. 아이의 어질러진 방, 잠겨진 방문, 불규칙한 식사 시간, 그리고 논리를 내세운 말대답은 나의 불안을 자극하고 화를 부추긴다. 어제도 숙제를 미리 해놓지 않아 늦게까지 잠을 못 자는 아들의 모습이 나를 자극하였다. 나는 ‘늦게 자면 키가 안 클텐데…’, ‘내일 학교 수업에 지장이 있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이 스치면서 불안이 올라왔다. 불안을 통제하지 못한 나는 흥분하여 과도하게 야단을 치고 말았다. 그 후 밀려오는 후회감에 말을 건넸다.
“내가 좀 흥분을 하긴 했어.” 하고 말을 하니
“많이 했지” 아들이 짧게 받는다.
“그래 좀 많이. 그래도 엄마가 너를 생각해서……” 나는 자존심에 반만 인정했다.
“나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엄마만 생각하는 거지…” 아들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모양이다.
“그렇게 콕콕 짚어야겠어?” 나는 비겁하게 방향을 바꾸어 공격해보았다.
“엄마를 생각해서……” 그는 어느새 나의 거울이 되어 있었다.
“내 문제는 내가 생각할게. 근데 네가 가끔 엄마를 미치게 만들어” 이 말은 안 해야 했다. 궁색한 변명에 남 탓까지.
“엄마가 자신을 미치게 하는 거야. 내탓하지마……” 아이는 어느새 나의 불안을 담아 낼만큼 커버렸다. 살벌하다. 살벌하게 지적하는 나를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도 살벌하다. 아이는 어느새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나의 불안, 미숙함, 불합리한 면도 함께 보여준다. 그 모습을 안 보려고 고집부리지만, 거울은 여지없이 비춰준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라고 묻는 말에 “왕비님이 가장 예뻐요.”라고 말했던 거울은 “이제 공주님이 제일 예뻐요.”라고 답한다. 변해버린 거울이 왕비를 화나게 하지만 사실 변해버린 건 왕비다.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아도 왕비는 화난다. 엄마가 최고라고 생각하며 간절한 애정의 눈빛을 보이던 아이의 눈빛은 이제 매의 눈이 되어 엄마의 모순을 직면시킨다.
아이는 어려서 엄마에게 사랑을 속삭였지만 이젠 좀 컸다고 투쟁을 한다. 어려서 먹은 사랑이 과해서 혹은 부족하여 때론 적당하여 투쟁의 거름이 되었나 보다. 아이는 나의 심연에 묶어두었던 괴물까지 등장시키며 선과 악을 경험하게 한다. 독 사과를 꺼내든 나의 그림자를 비추며 아이는 자신의 허물을 벗고 생각을 키운다. 나는 부족함으로 제물이 되고 순종으로 애벌레를 키운다. 같이 싸우면서 서툴면 서툰 대로 그렇게 아이의 양분이 된다.
아이가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추니 부족함을 대면하는 겸손함으로 나도 커가려나? 아이의 생각과 행동을 보여주려는 나의 거울이 어느새 그의 커버린 눈과 생각을 통해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춘다. 이 얼마나 신비로운 가르침인지… 나의 부족함이 자식의 그릇에 담기니 부끄러움도 잠시. 두 번째 탯줄을 끊어내려는 아이의 성장에 아프지만, 몹시 떨리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