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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회원작품

서윤석

Author
mimi
Date
2012-02-29 08:44
Views
10605
                                                                      seo.jpg 

                                              * 서울대 의대 졸업

                                              * 월간 "시문학" 신인우수작품상으로 등단                                         
                                              * 제 19회 "워싱턴문학 " 신인 문학상  소설 부문 장려상 수상 <불꽃>           

                                              * 수필집 :  '헬로닥터씨오'

                                              * 시집 :  '고마운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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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인 듯 보였구나

돌이 되었구나

무색의 피를 어내

든든한 심장이 있어

모진 풍랑을 견디었구나

 

모래를 품어

소금을 씻고 씻어

진주를 만들어낸

하얀 근육에서는

갈매기가 춤추는

바다 냄새가 난다

 

눈도 귀도 없이

만 년을 살아

돌부처가 된 

입은 이끼옷이

함께 돌이 되었구나

 

침묵과 믿음으로

깊은 어둠 속에서도

향기만 모아온 

돌인 듯 보였구나

살아 있는 돌이 되었구나



Oyster             

      


you look like a stone

you are a real stone

you endured all those heavy storms

with your strong heart

that pumps pure blood

 

you embraced a piece of sand

and washed away its salt

creating a shiny pearl

your muscle smells the ocean

where seagulls dance

 

without any eye or any ear

you have survived hundred thousand years

to transform into a stone

you became a Buddha of stone

 

with your silence and belief

deep inside the dark ocean

you collected only fragrance,

became a stone, the living 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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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운 마리아       

                                                       -너는 이 땅위에서 천년을 산다                                                                                                      


                 

진료실 책장 위에 놓인

소녀의 머리를 본다

멕시코

산골 어디에 살던

곤잘레스마리아를 본다

그녀의 보드랍던 고운 얼굴을 만지면

열두개의 신경줄이 나오는

붉은 동맥이 박동하고

푸른 정맥이 달리던 구멍을 본다

 

검정 볼펜으로 측두에 선을 그으면

골절을 수긍하던 배심원의 눈빛도 보이고

아파하는 환자의 고통도 보인다

의학을 배우는 자나 의문이 있는 모든 사람들

다같이 마리아를 본다

 

우리 그녀를  때면

맑은 시냇물 흐르는 소리 들리고

오색 찬란한 무지개가 뜬다

맛있는 음식도 먹는다

손을 움직이며 생각하는

호모 사피엔스

글을 쓰고 남을 가르치고 창조도 하는

하하 웃음도 짓는

우리들의 머리를 본다

 

마리아를  때면

독한 포르말린 냄새가 눈물을 흘리게 한다

연구실의 카데이바가 누워 있다

피부가 해부되어 장색 근육이하얀 신경줄이 노출되던

시신을 본다       

뼈가 톱에 잘리고 장기가 드러난 영혼들의 시신을 본다

 

열여섯살 처녀 마리아

너는  어린 나이에

책장 위에서 조용히 살다가

우리가 부르면 선뜻 내려와

모두에게 등불이 된다

고마운 마리아

너는   위에서 천년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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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피부                                     


 

피부가 벗겨지려면

옷을 벗고

옷을 벗었으면

피부를 벗긴다

 

진흙을 온몸에 바르면

옷도 벗겨 지고

피부도 벗긴다

 

옷을 벗은 피부에서

노란 베타다인이

물로 씻겨 지고

피부가 층층이 열리면

조직에는 모두

같은 피가 흐르고

우리는 색갈을 외면해도 된다

아니 그래야만 환자가 산다

 

대머리인지   머리인지

검은 머리인지 노랑 머리인지

무슨 머리인지는 몰라도

 동맥엔

항상 사람의 피가 흘러야 산다

 

목숨을 맡은 의사는

피부를 열고

마음을 열고

빈혈로 쓰러져 가는 환자의 혈관에

무색의 피를 수혈하면 산다

 

옷을 벗고

피부를 벗고

머리를 깍고

모자를 벗고

아픈 마음을 크게 열고

닫힌 생각을 넓게 열고

서로 나누면

                                                        사람들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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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는 우편물이다 

뿌연 하늘이 내리는  많은 편지다 

 

 비가 오는 날이면 

편지를 열어 보는 얼굴들이 춥다 

 

 비가 끝나면 

하얀 옷을 입은 겨울이 오고 

나그네들 낯 선 길을 다시 떠난다 

 

촉촉히 젖은 산과 나무들도 

머리를 끄덕이며 나이테를 받고 

발자국이 찍히는 길에는 기다림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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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병실                                                  

*호스피스 

 


호스피스 병실로 

검붉은 가시밭 복도를 디디며 온 환자 

마지막 병상에 오른다 

 

불개미 떼처럼 모여든 아픔이 

예고도 없이 나타난 절망 더불어 

두려움 앞세우고 같이 눕는다 

 

이제 오직 바라는 것은 

간혹 거울에 비추어 보이는 편안함 그것이다 

자연의 모습으로 

너그러움으로 

그만 손을 놓아주기를 기다린다 

눈물을 씻기우고 하늘을 받고자 한다 

 

태어나고 떠나가는 순리의 되풀이 속에서 

무거운 옷을 벗고 되돌아가는 날 

주위에서 맴돌던 영혼도 떠나가고 

아픔도 멈추고 

수렁에서 헤매던 육신에 평화가 내린다 

 

안락병실에서 

같이 아파서 땀흘리던 남은 사람들 

아픔을 나누던 마음으로 그 평화를 나눈다 

 손을 높이 들고 정중히 하늘을 받는다 

 




*호스피스(Hospice);  

 말기의 암이나 회복가능성이 전혀 없는 질병으로  

시달리는 환자에게 의미있게남은 생존기간의 통증조절

       존엄사까지도 도와주는 합법적인 의료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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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온 아이들                      

                  

 

선생님 엄마한테서 편지 왔어요

사진하고요

두살 짜리를  미국으로 입양 보내고 25 만에

근래에 연락이 닿은 한국 엄마가 딸에게 처음 보낸 

지다

서투를 글씨로  편지에는

처음부터 “미안하다 은정아  에미를 용서해다오

끝에도 “미안하다용서해다오

영어밖엔 모르는 은정양에게 우리말을 번역해 주는데

가슴 아픈 사연에 목이 메이여 멈추고  멈추고

우리 모두 눈물이 끊임 없이 흘러 내려 함께 옷을 적신다

 

가난하였기에

흑인피가 섞인 아이니까 여기선  살어

처녀가 애를 뱄으니까

찢어지게 가난해서 같이는  살어

 먹을  많은 곳에 가서 고생 덜하고 살아야지

모두가 딱한 사정이 있었으리라

 

지난 수십년 동안 KAL비행기를 타고

우윳병 빨면서 울며 떠나온 아이들

결국은  뿌리를 찾는다

불쌍한 우리 아이들이

                                결국 뿌리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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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나라                                                 

 


여보게……나 

말로만 듣던 하늘나라로 올라왔네 

고운 무지개를 타고 의연히 올라왔네 

 기지개를 키고 올라왔네 

 

여기엔 푸른 하늘 아래 

아름다운 동산동산넘어 끝없는 산맥이 

보드라운 하얀 산맥이 달리고 있네 

힘들어 하는 파도소리도 

비명 같은 바람소리도 없는 

조용한 푸른 하늘이 있을 뿐일세 

 

아침이 오면 밝은 햇살이 눈부시고 

낮에는 맑은 얼굴들이 인사를 하고 

저녁에는 붉은 석양에 묵례를 드리는 행렬이 

밤이 깊어가면 침묵이 

모든 것을 잊는 조용한 휴식도 있네 

 

보드라운 구름이 땅을 이루고 

모든 생명들이 사이좋게 모여 사는 

다같이 정을 나누는 평화의 나라 

사랑이 풍요한 보슬비가 잠시 내리는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야자수 그림자가 우리를 가려주는 

아주 좋은 나라일세 

 

여보게….. 

말로만 듣던 하늘나라로 왔네 

 털어버리고 올라왔네 

보남파초노주빨 빨주노초파남보 

쌍무지개를 타고 올라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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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동                                                        

 


먼동은 왜 트는가 

동면冬眠하는 풀잎도 다시 일으키고 

 길을 가야하는 아이들도 깨우려 함인가 

 

여물을 기다리는 어미소도 먹이고 

빙판氷板으로 덮힌 적막한 호수가로 가 

하얗게 모자를 쓴 나무들을 보라 함인가 

 

먼동이 트면 

새벽열차의 기적소리에 일어나  

천지天地 가득한 눈꽃으로 얼굴을 씻으라 함인가 

 

은빛 들판을 훨훨 날아가는 겨울새들도 

추수秋收 끝난 빈 콩밭도 다시 보라 함인가 

 

먼동은 왜 트는가 

황혼黃昏 빠져든 긴 잠에서 깨어나 

보석처럼 빛나는 겨울의 얼굴이 되라 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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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우리 모두 

시간의 물줄기를 

 강물 따라 흘러가는 물길을 보라 

한없이 많은 순간들이 이어져가는 

흐르는 시간을 타는 우리를 보라 

 

한순간 섞이기도 

떠나기도 하는 우리 

 

공평하고 영원하다는 시간의 흐름을 보라 

도도한 물살에 밀려 

만나기도 흩어지기도 하는 우리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오늘도 서로 소매를 스치고 가는 우리 

설레이는 물결의 소용돌이 속에서 

웃고 우는 우리 

 

바람에 물려가는 구름 따라 

언젠가는 가버릴 인연들이 

길던 짧던 모든 순간들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작은 그림자로 남겨지는 

우리들이 타고 가는 

시간의 물줄기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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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1.jpg

백담사와 속초행


 

  아침나절에 번잡한 출근 시간을 피하여 용인 수지마을을 떠났다서울 변두리를 돌아서 강동 천호동에서 한사람 더 합류하여 두패로 나뉘었다우린 동북쪽 방향을 잡아 팔당호를 오른쪽으로 끼고 44번 길로 들어 섰다. 길눈은 서투르지만 한국에 오기 전에 여행사를 통해 국제면허증을 준비했고한국내 보험회사에 3(3000)을 내고 추가운전자로 등록해 3일간 줄곳 내가 차를 몰았다모두들 우리 부부보다 연장자들이고 젊은(?) 사람이 운전을 하기로 한 것이다.

 

  요즈음 서울은 갈수록 기온이 올라가는 것 같다윤달이 끼어서인지 아니면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10월 중순인데도 예상했던 것보다 기온이 높아  미국에서 준비해 온 가을 옷들은 하나도 못 입고 지냈는데  이제 산중으로 떠나니 잠바와 스웨터를 입을 기회가 있으리라 기대한다. 양평을 지나 강원도 홍천땅에 들어서니 산세가 높아지고 공기가 맑다인제가 되기전 길가 휴게소에 잠시 들르니 소박한 우동 한그릇이 구미를 돋운다마시는 물이라던지 사용하는 수저나 그릇이 깨끗할지 걱정스러워 잠시 망설여졌으나 곧 '이제 우리나라도 위생이 많이 좋아졌지.....'하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어디를 가나 공중화장실도 수세식 시설에 깨끗이 정리가 되어있었고 손 씻는 곳 옆에는 바람으로 손을 말리는 기계가 붙어 있다.

  인제를 거처  덕산,  원통을 지나니 46번도로가 나오고 만해 마을로 가는 조그마한 갈림길이 나온다계곡을 끼고 달리면서 보니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만발해 있고 단풍이 한창이다.

 

  드디어 목적지인 만해마을에 다다랐다스피카를 통해 저음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흘러나온다한용운시인의 <님의 침묵>이다. '님은 갔습니다.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 '

  공기는 맑고 하늘은 높다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밤새도록 정답게 들리고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의 재잘대는 목소리에 우리마저 들뜬다만해마을은 백담사로가는 방문객들이 묵어가기 좋은 곳이다규모는 꽤 크지만 조용하고설악의 울창한 삼림으로 둘러싸여 있는 가운데 있는 숙박 시설인데 이곳에는 백담사와 만해 기념관을 안내하는 책자가 있다스님들이 운영하는 이곳의 안내자들은 친절하고 품위가 있다.

 한용운 시인은 애국을 노래하고 끝까지 지조를 지키다가 해방되기 1년전에 작고한 33인중에 한사람이다.의지가 굳었던 한국인으로 인도의 간디와 같은 느낌을 주는 분이다..

 

  짐을 풀고 백담사 방문에 나섰다주차장에서 버스에 올랐다좁은 비탈길을 먼지를 내며 구불구불 달리는데바깥을 내다보니 발아래 낭떠러지가 오금을 저리게 한다차가 지나가면 도보로 길을 가는 사람들은 몸을 바윗벽에 붙이고 한구석에 비켜서야한다가고오는 두 대가 마주치면 한 대는 낭떠러지 가까이 서서 기다리는데 한치의 여유도 없다.위험하고 아슬아슬하다 굽이굽이  올라온 백담사는 큰 계곡에 자리잡은 수백년된 사찰이다한때는 한용운 스님이 기거하던 곳 이곳 만해 박물관에는 그의 필체그의 글들한 시우리말 시그리고 그의 많은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우리 민족의 존경을 받는 한용운 시인과는 달리  별당 한구석에는 대통령직이 만료된 후한 때 군사정권 실권자였던 사람이 은신하던 초라한 방이 전시되어 있다아직도 그를 저주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지나가고  한편 그를 용서하자는 자비로운 사람도 다녀간다.

  백담사에 온 사람들 중에는 내설악쪽 등산로로 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고 대부분은 우리처럼  버스를 타고 다시 만해 마을로 내려간다우린 마을로 내려와 황태 요리를 곁들인 식사를 하고 조용한 숙소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근처 시냇가를 거닐었다공해로 뒤덮인 도시에서 빠져나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천을 벗 삼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다음날 새벽이되었다차가운 공기가 빰을 스친다 한 무리의 학생들은 어디론가 모두 떠나가니 만해마을은 조용해 젔다짐을 트렁크에 싣고 산길을 잠시 돌아드니 새로 개통한 미시령 터널이 나온다옛길은 너무도 위험한데이 터널로 가니  고속도로나 다름없다양 옆으로 인도가 나 있고 환기장치도 너무나 잘되어 있는 길이다개통한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인지 아직 차가 많지 않다터널을  삼분쯤 달렸을 때 갑자기 경치가 탁 트이며 동해바다가 눈앞에 다가온다.

  오른쪽으로는 울창한 소나무숲 속에 자리잡은 울산바위가 눈앞에 펼쳐진다전설이 담긴 바위다.  동쪽으로 10분쯤 달리니 길은 속초 시내로 이어지고  바닷가에는 어시장이 나온다새벽 어시장에는  가자미오징어도루묵명태대구겨울철 진눈개비에 말린 황태전복연어 그리고 살아있는 낙지가 싱싱한 자태로 누워있다.

'이 광어를 회를 떠 주시요.' 하니까 나무방맹이로 살아있는 물고기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려친다 고기는 경련을 일으키고 죽는다. '이거 너무 잔인한 것 아닌가.?' 어시장에 마련된 간이식당에서는 산 오징어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뜨거운 석쇠에서 아픈몸짓으로 살을 태우며 죽어가고 있다나무관세음보살......

   이곳에는 거친 바닷바람에 얼굴을 닦기위며 반세기 넘게 피난 생활을 이어가는 함경도 아바이 아마이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북으로 북으로 동해바다를 따라 고향을 그리는 그들의 한이 맺힌 기다림이 있다이 작은 반도의 나라백육십마일 허리가 잘리고 지금도 북쪽에는 굶주림 속에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동남아 각 나라들이 고도의 성장을 이룩해 가는 이 마당에 이제 한반도에도 완전한 평화가 정착되면 얼마나 좋을가 !

우리 모두 하나가 아닌가땅도 하늘도 별도 모든 만물도  하나가 아닌가너도나도 모두 우주의 신비속에서 생성되고 종식되는 잠시 살다가는 작은 형체인 것을 바닷가의 바윗틈에 매달린 파란 한 가닥의 해초처럼...이제 쓸데 없는 욕망을 버리고 세계평화를 위하여 우리 모두 기도하자.

 

  우리는 이주일만에 지구 이 편으로 왔다구름위를 둥둥 떠서 바다를 넘고 밤과 낮을 지나 아침이 되어 되돌아 왔다.  둥근 달과 수많은 별들의 노래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얕은 타원을 그리고 있었다그 곡선이 멈추는 순간,  문풍지를 요란히 흔드는 소리를 내면서 점보캐리어는 활주로에 육중한 바퀴를 대었다 한순간에 지나간 인천수원용인여주,홍천,인제원통백담사속초.. 그 동해바다의 은은한 짭조름한 냄새가 아직도 내후각에는 한 조각의 기억으로 새겨져 있다 새벽 고기잡이 배들의 고동소리가 내 가슴속에 깊이 남아 울린다.

  '오늘 새벽에 들어온거래요.. 싱싱한 거래요이리와 보시래요.. 세 마리에 만원이래요명란젖이 방금 나온 거래요....'

 소주 한 모금에 황태찜 한 토막,  그 정과 맛이 촉촉히 젖은 내 혀 속에 아직도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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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incarnation

                                      Seo, Youn Seok (서윤석)

     Autumn was passing by. The shy cosmos bloomed along the cold creek water.  It was the season when the falling leaves were rolling on the ground. Here, in  October, nature started to show the signs of departure. People gathered together in front of Kang Kyungsik's burial place and sang the farewell hymn.  Each mourner placed a white rose on his coffin. The funeral service men lowered the coffin and filled the space with soil, a piece silver tag was placed for later identification.  Our lives originated from soil and we return to soil after death.  People left in a hurry because of the cold wind.  His wandering soul also left like a floating cloud in the sky. The golden sunset gradually faded away and the darkness was approaching the world.  When he looked back, the planet Earth with its blue seas and white clouds were visible like a small ball in the remote distance.  The mysterious mighty power put wings on his shoulders, and the wings moved up and down strongly and rapidly. He flew far away and passed the burning Sun. He flew through the vast space without stopping, passing numerous stars.  Occasional starbursts were seen initially, but not anymore. The distance from one star to its neighbor star was quite far.  A few solar systems like ours were passed along the way. There were many galaxies and even a black hole.
     The soul of Kyungsik arrived at Centuri proxima-b. That is the closest planet to the Earth, 4.3 light years away. There was some evidence that they were recovering from a recent fight.  It was a wild, flat and remote land. An oval spaceship was turning its engine on for the next journey. Spacemen who wore the triangle hats and scale covered clothes were inside of the ship.  
 Kyungsik was very delighted to see them and shouted at them.
            "Hello, I am a person from a planet of  Earth, dear gentlemen.  I am looking for my wife. Have you ever met a woman named  Jang Kayoung?  She has long hair and a sad face...."
There was a response from the ship through the speaker.
            "We are going to leave for Gallion Star which is located ten light years away. According to our information service,  your wife is not present on our planet.  But there is another planet, Alpha-Ara,  located several hundred thousand light years away from here.  And our information service says that several people from Earth reside there. You'd  better check that place."
              "Oh, is that right? Thank you for the information kindly," he responded.
     After that spaceship left,  he flew out from that planet and headed toward Alpha-Ara.  He had to travel through the darkness and loneliness.   Only a few twinkling stars occasionally appeared and disappeared, nothing else.  After several days,  he arrived at the Village Disney of planet Alpha-Ara.  It was a desert town. A few small trees were visible.  The village was filled with bungalow houses.  The residents, whose dark faces all appeared to be middle-aged.  There were no children or elderly people.  Everybody wore uniforms with buttons.  Walking toward the center of the village,  he met the chief of the town.  The chief was short and wore his armor with a knife case on the right side of his belt. Their language sounded very nasal. The chief approached Kyungsik slowly and asked,
            "Who are you? What brought you here, this far?"
            "I am Kang Kyungsik from Earth. I am looking for my wife."
            "Oh, how did you lose your wife?  You should take care of her well.  Was she intelligent?  If she controlled her mind well and she kept her purity,  we should be able to locate her at the place  where she desired."
            "Then where can that be, sir?"
            "Oh, that is the place where the vicious cycle of birth, labor, death does not exist but only real peace does.   If you loved her truthfully, you may able to find where that place is."
 Villagers gathered gradually into the center, responding to his arrival. He started talking to them loudly.  He cried hot tears and was spitting saliva from his mouth.
            "Dear gentlemen, I am looking for Jang Kayoung, mother of Mary. She is my wife.  Do you know her or have you ever seen her?  She left  Ohio six years ago."
Nobody responded. The chief was moved and called the magician, Moliyaho.  Moliyaho wore a long hat and was a very tall man. His voice was loud.  He lifted his hand up and prayed to the sky.
            "Ahbobsasa Mababsasa!" he screamed.
Short after his prayer,  the sky turned green and a surprisingly colorful double rainbow appeared.  His powers must have been extraordinary since he made the two rainbows appear without any rain in the sky. He stopped praying and came to the chief and talked to him quietly. The chief stepped forward to Kyungsik and told him with a smile.
            "We have a good information about your wife. She is on the planet Alpha-Orion. You'd better go there. This is  all we can do for you."
            "Oh, is that right?  Thank you, sir.  Thank you, gentlemen!
 
      After thanking them Kyungsik left for the planet Alpha-Orion.  Strong winds blocked his ascent, but he made it.  He ignored the cold and hunger. His mind was filled with the desire to his wife. On the way, he passed another black hole. And several stars exploded and disappeared.  It was a very long journey.  But he was able to endure all kinds of physical suffering because he knew it would be over eventually. He did not mind the cold wind blowing on his face. Although his soul was alone, he continued to travel, passing many hundreds of thousands of stars in that vast space.
He found comfort in singing,
            " Oh, look at the lightning. Listen to the universe festival.  Oh, my dear angel.  To where are you leading me?  I am listening to the whispering stars.  Oh, my angel[G1] , your sweet song makes me keep going."
Gradually, the small dot grew larger until it appeared as another planet, almost exactly like the planet Earth. He was very surprised to find out that there could be a twin brother of  Earth.  When he looked around, he saw that everything was very similar to Earth.  The only difference was that on this planet, there was more ocean, as eighty percent surface was covered with water.  Also, the color of the water was green. There were green fields and many trees. There were no ferocious beasts, only dogs, and cat[G2] s who lived together with people. Compared with the Earth, their culture was two thousand years behind in development.  The roads were very primitive, and there were no automobiles or bicycles.  Instead, s[G3] ailboats were the main tool of transportation.  There were children living in the village.  Smoke was coming out from the chimneys, signs of heating and cooking.  The climate was mild and comfortable.
 
     Kyungsik started walking up a hill and was very surprised when he found people he had known on Earth along the way.  First, he saw Dr. David Kahn, who was now working hard to prepare the seeding of the crops. Dr. Kahn was a physician who worked hard for all of his life and had been able to enjoy only one-week retirement before his sudden death.  He also saw Mr. and Mrs. Bell. They were the first generation of immigrants who came from Scotland to Ohio as teenagers.  They had happy lives together until the age of ninety-nine. But the most surprising person he saw was Dr. McBride.  He was so happy to see him and shouted,
            "Aren't you Dr. Mc Bride?"
 "Oh, my friend Dr. Kang. Long time!  I am very glad to see you again!" said Mc Bride.
            "McBride... wait a minute, why are you here?  This is not heaven here, and you are the most respectable Christian I have ever known.  I remember that you treated all your patients well and kindly as a surgeon, and you were very truthful..  Why you are not in heaven yet?"  Kyungsik asked. 
 Dr. McBride had been a very well known person in their Ohio town. He was very generous to his neighbor, and always showed his good heart to underprivileged people.  He raised and educated many poor children in their community. One of those children later became the vice governor of Wisconsin and had come to McBride's funeral, saying that Dr. McBride was like a father to him. Mrs. McBride had been a leader of the international Ministry of Presbyterian Christian organization.  Both Dr. MrBride and his wife had been among the most respected Christians.
               " Yes, I have been here on this planet for 30 years.  Kyungsik dear, I am not good enough to be accepted into heaven yet.  I have a lot more work to do here.  God asked me to stay here.  I only follow his order.  Aren't we glad to each other here today?  By the way, why did  you come here?"    Kyungsik explained the reason why he came.
            "Yes,  you may know my wife Kayoung.  I have been  looking for Kayoung for last five years."
            " Oh yes,  your beautiful wife.  It is a very unfortunate thing that you lost your wife already.  I have not seen her, but that question can be answered at the village across the river. There are many people from Ohio living there now.  I believe you may find good information there. "
His advice was well taken and he said goodbye to Dr. McBride.
            "Thank you. I hope that you and your wife go to heaven soon. "
But still, Kyungsik could not understand why the McBrides were not in heaven yet.
Kyungsik crossed the river and arrived at a fishing town.  The smell of seaweed was everywhere. Many kinds of fish were gathering in their groups within the river. There was a  fish market, filled with busy merchants and buyers.  Kyungsik noticed a woman carrying a basket of fish on top of her head.   She was very familiar to him.  Then he shouted  loudly,
            "Hey, how are you? Are you my dear Kayoung?"
Yes, she looked very similar to Kayoung, but it was not her.  It was actually Kayoung's elder sister who had passed away 10 years earlier in Seoul.  Like Kayoung, she had died of pancreatic cancer.
            "Oh, you are the husband of Kayoung.  I am Soonyoung, her  sister, can you see me?"
            "Ah!  Yes, you are Kayoung's elder sister!  I am Kyungsik, the father of
Mary.  I am  your brother in law."
            "Yes indeed you are."
            " Then, have you lived here with Kayoung together?" he asked.
            "No, I did not."
She said she had been in that village since her death ten years earlier.  After she listened to Kyungsik's explanation of why he had come there,  she went to the village office to get more information.  After a while, she came back with the official documents to show him, which included an old picture of Kayoung.
            "This is the official document about her, and the picture is hers. This shows everything we want to know.  But I do not understand why I have not seen her even once!  What does this mean, by the way?  The records indicate that she was a very unhappy woman, and her husband did not care for her well.  Hey, Kyungsik, did you give her a  hard life?  After her immigration to  America, I thought that the two of you had a good life together.  Wait a minute, they said that  she was a poet?"
            "Yes, she was a poet.  She wrote poems about sorrow and tragedy.  She was interested in creating the art of lamentation."
            "Now  I understand why she wrote about sadness."
            "Yes, she was a wellknown poet. Yes, this picture is hers.  Like you, she died of pancreatic cancer."
            "Oh, I could find her if I had known that she was here."
            "You must not have known then..."
            "This document says that you were not a good husband at all. You were [G4]  an alcoholic!"
            "I am sorry to hear that, but that is not true.  I loved her, I love her and our lovely daughter  Mary too.  I will love them both, always."          
            "But Kyungsik, these records say that you liked drinking alcohol and could not control your behavior and that you have a narcissistic personality.  Very selfish, so most friends leave you.  That is too bad. I think you need to change," she advised.
Kyungsik's  face turned red, and he asked her,
            "By the way, does it say where is she now?"
            She replied,
            " Oh, she had been here on this planet until recently, but she left yesterday. She went to Oakland, California where Mary resides.  Oh, just yesterday,  just yesterday, you know..."
            "My God,  I missed  her  by one day..." Kyungsik muttered in disappointment.
 
     The cycle of birth and death comes as a natural rule of the universe.  All animal and human lives follow the same rules.  Some belief in reincarnation. Kyungsik was also filled with the hope of meeting Kayoung again.  He realized that he had to go to Oakland as soon as possible.
Soonyoung then explained to him kindly,
            "Dear Kyungsik !  Look at those two dogs there. One is Tiger, the other is Annika.  Both had received tender care of Dr. Chung and his family in their previous life. They are now waiting for the next life. We do not know whether they will be born again as an animal or humanbeing or something else.  All shall be decided by God. Nobody knows. "
            "Then who will go to heaven?" he asked.
            "Heaven?  The most difficult gate to go through. I just know of Heaven as a word, not a place."
            "Soonyoung, on my way here I met Dr. and Mrs. Mc Bride. I was very surprised to see them on Orion, because they are not in heaven  yet. Everybody in our Ohio town believed the McBrides would be in heaven because they were such good Christians throughout their lives. They lived as the Bible teaches us to," Kyungsik said.
            "Dear, Kyungsik, that will be decided only by God.  Nobody knows the future.  Dr. McBride is one example you see. Nobody can promise what will happen after our death," she continued to explain like a philosopher.
            "This land, those numerous stars, all things in this universe face their birth and death. What did you do for your neighbors?  Did you forgive any of your enemies?  You came to this far distance..."
            "Then what is God?  Heaven?  Hell?  Purgatory?  Is this planet  Orion a purgatory? Is this really the twin planet of Earth?"  he asked himself.
Kyungsik could not understand whether people could go directly to heaven or if they had to come to this planet Orion first.  But the most important thing that Kyungsik realized was the fact that he met many people who had come from Earth.  It became very clear to him that there was the possibility of meeting Kayoung again, on Earth.  So he decided to leave Orion in a hurry. His soul began to fly toward the Earth. He wanted to return to beautiful mother Earth, where birds sang, rivers flowed and all kinds of human lives appeared including the sadness and happiness combined.  His heart fluttered with that hope and his wings on both shoulders started to wave fast. He ascended rapidly and his returning journey toward Earth began at last.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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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꽃




 



1                                                



 



영식은 지난
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던 탓인지 열 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 집 안이 썰렁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거의 매일매일을 그는 술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작년부터는 걸려오는
전화도 없었다
. 무슨 잘못을 하는 것도 아닌데 주위의 사람들이 차츰 그를 상대하지 않으려고 했다.
밤이면 혼자 있기도 조금 무서웠다. 그는 모두들 그를 무시 하려고들 한다고 생각했다.
섭섭한 일이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영식은 아침 밥을 간단히 요기하고 머리맡에
두었던 아내의 유해 주머니를 허리에 동여매고 뒷문을 나섰다
.



그는 오래 전부터 메니어스(Meniere)증후로 몸의 균형이 늘 불안정했다.
오른쪽 청력도 그때문에 거의 다 잃었지만 그래도 지팡이라도 짚고 걸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낮에는 그런대로 문제가 없지만 어두어지거나 술이라도 한 잔 마시면 몸의 균형 잡기가 어려웠다. 항상 머리 속에서 울리는 매미 소리는 요즈음 차츰 적응이 되서 견딜만 하게 되었다. 그는 신문이나
텔레비전도 안 보는 사람이고 물론 인터넷도 사용을 못하는 컴맹이었다
. 그래도 외출시에는 위치안내기(GPS)를 사용하고 스마트폰은 아니래도 안테나가 있는 구식 핸드폰만은 사용했다. 젊은 시절부터 그는
항상 자신을 잘 생긴 교양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 이것을 보고 가까운 친구들은 그가 나르시스시즘(Narcissism)에 빠져있는 인물이라고 웃었다. 그러나 누가 무어라해도 그가 당당한 미남형인 것은 자타가 다
인정하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 그래서 지금 나이에도 여성들한테 누구보다도 더 어필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 한가지 단점이라 한다면 학창시절에는 물론 오래 전부터 과음으로 사고를 자주 치는 일이었다. 마음의 고통이나 외로움이 있을 때면 술로서 위안을 받으려 했다. 즉 술에 의지하려는 중독현상이었다.
특히 아내가 떠난 후 밤이면 찾아오는 지독한 외로움을 술로 달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더욱 그의 생활에 문제가 생겼다
. 가끔 취중에 자신은 기억도 안 나는 일이 자주 벌어지는 것이었다.



     이 자식들아
너 나한테 그래서는 안 되는데
,
하면서 얼마 전에도 위로차 찾아온 친구들에게 소리를 쳤다는데 그 후 여러 친구들이 발길을 끊었다.



     영식이 그
친구 요즈음 찾아가면 우리에게 이유도 안되는 일로 야단을 치니 우리가 무슨 죄인인가
. 왜 그를 찾아가겠어. 그 친구 또 술주정을 하는 것일거야,
하면서 차츰 그를 멀리했다.



그가 문앞에 나서려는데 지나가는 이웃집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었다. 주인의 말에는 그 개가 혈액암에 걸렸다던데 아직도 사람을 잘 알아보는 것이었다. 남은 시간동안
잘 먹이다가 너무 숨 쉬기가가 힘들어 하면 잠 재워주려고 한다고 주인이 말했다
. 아침이면 밖의 공기가 서늘하다.
두터운 잠바와 모자를 쓰고 이날도 호숫가를 거닐기 시작했다. 출렁이는 물결이 물가에
부딪치고 가끔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이 보였다
. 수 많이 퍼져있는 클로바에는 하얀 꽃이 피어있고 작은 벌들이
날아 다녔다
. 행운을 가져다 준다면서 아내와 같이 네 잎 클로바를 따다가 책갈피에 꽂아놓던 생각을 했다.



작년 콩밭이 있었던 바른편 언덕 넓은 땅에는 새로 심은 옥수수가 돋아나고 있었다. 저 작은 싹이 한 여름에 높이 자라서 맺은 열매를 가을에 추수하면 또 한 해가 지나가는 것이었다. 나이 탓일까? 한 해가 빨리 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아내가 떠난지가 벌써 삼 년도 더 지났다니 멀리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주말도
아닌 아침 이 시간에는 은퇴한 사람들이거나  나이 든 아주머니들이었다
.



     오늘 좀
바람이 부니까 추울거야 여보
. 이제 아프지 않겠지, 당신과 이렇게
같이 산보를 하니까 나는 더 바랄 것이 없구만
,
그는 이렇게 혼자서 중얼거렸다.



대학에서 해부학을 가르치는 큰 딸 미쉘, 근처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는 둘째 딸 조앤 그리고
센프란시스코에 사는 막내인 아들 데이비드
, 이 삼 남매는 모두들 차츰 아버지를 걱정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요즈음 아버지가 엄마가 눈에 보이고 엄마의 목소리도 들리는 사람처럼 가끔 이상한 행동을 하기 때문이었다.
가정의사의 말로는 배우자의 사별 후 한 일 년간은 흔히들 우울증으로 그럴 수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삼 년이나 지난 지금도 그리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비정상적인 것이 틀림이 없었다. 아이들은
의논 끝에 아버지를 여행이라도 시켜드리기로 했다
.



 



영식는 보스턴 로간 공항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마련해준 여행이었다.



짐 하나를 체크인 데스크에서 부치고 여권을 돌려 받았다. 세큐리트 지점을 통과한 뒤 탑승게이트로 걸어갔다. 절름거리는 다리는 그런대로 별 지장이 없었다. 파리로 떠나는 스웨디시 여객기는 정시에 승객을
태웠다
.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이 파리 는 평소에 늘 아내와 같이 그가 한번은 가 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비행기 속에서는 프랑스 말과 영어로 안내방송을 하는데 의자들의 배열이 좀 특이했다. 미국 내 비행기보다는 전혀 다른 기분을 느끼게 했다. 프랑스 말 방송은 멋이 있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들리는 악센트와 음정들이 엔진 소리와 어울려 자장가처럼 흘러나왔다. 여덟 시간 반이나 되는 비행 중 두 번 주는 식사를 먹고 식사 때면 권하는 레드와인도 몇 잔 마셨다. 그는 창밖을 내다 보았다.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내며 여객기는 날아가고 있었다.
하얗게 떠 있는 구름들은 아주 부드럽고 따뜻하게 깔려있었다. 마치 솜이불이 덮힌
운동장 같았다
. 구름동산은 비명소리도 울음소리도 없는 천국처럼 보였다. 식사 후 밤이 와서 잠을 자고나니 먼동이 서서히 밝아 왔다. 얼마 후 비행기는 파리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에서 짐을 찾고 쉽게 입국수속을 마치고 택시를 잡았다. 운전기사는 필립핀 사람 같았다. 여행사에서 지정한
호텔은 센
(Seine)강가에서 그리 멀지않은 에펠탑이 한 블록만 걸으면 보이는 삼층 건물인 작은 호텔이었다.
달라를 유로로 바꿔왔더니 택시요금이 미화로 계산하면 육십 불이었다. 그래도 택시가
머세이데스 벤즈인데 이 만 마일은 더 달린 차였다
. 거리에는 승용차의 앞부분만 있는 것 같은 작은 차들이
주로 보이고 어디를 가나 많은 모터사이클들이 요란하게 달렸다
. 호텔은 조용한 개인 집 같았다.
영어를 알아듣는 데스크의 사무원이 무척 친절했다. 정해준 방으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는
작고 아담했다
. 혼자서 가방 한 개를 싣고 타도 빈 여백이 없을 정도로 좁았다. 방에 들어가서 영식은 여장을 풀었다. 샤워하는 방 천장은 비스듬이 기울어져 있었다.
아주 좁았지만 작은 냉장고, 설합장등 필요한 것은 다 있다. 프랑스 말로 텔레비전도 나왔다. 짐을 정리하고 거리에 나와서 걷기 시작했다. 개선문이 있는 거리를 걸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니 동양사람들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쇼핑하는
사람들이 상점을 드나들고 멀리 박물관 건물들이 보였다
.‘역시 파리는 와 볼만한 곳이구나!’영식은 중얼거렸다.



센강가에는 행려인 같은 헌 옷을 입은 사람들이 긴 나무의자에
누워서 잠을 자고있었다
. 두 불록쯤 나와서 에펠탑이
올려다 보이는 거리에 의자가 가지런히 놓인 식당이 있어서 들어가서 입구의 의자에 앉았다
. 잠시 기다리니 웨이터가
나와서 자리를 옮겨 속으로 들어가 달라고 했다
. 그 자리는 예약이 된 것이고 해가 서쪽으로 질 때면 너무
눈이 부셔서 안쪽이 더 좋겠다고 친절히 말했기 때문이었다
. 혼자서 와인을 마시면서 담배를 물고 있는 동양여인이
눈에 띄었다
.



거리에는 개를 끌고다니는 사람들도 많고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 저녁식사 후 그는 숙소로 돌아왔다. 방에 도착하니 씨엔엔(CNN)이 영어로 방송되었고 남은 채널들은 프랑스 말이었지만 그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 집에서도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으니 이런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저녁 아홉 시가 되어서 여행사의 담당자가 전화를 했다. 내일 아침 아홉 시에 밴이 호텔 앞에
도착하여 구룹 투어를 시작한다는 전갈이었다
, 영식은 저녁 식사와 같이 마음껏 마신 와인에 차츰 취기를 느끼며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 피곤했던지 그는 깊은 잠에 들었다. 그는
꿈 속에서 멀리 가는 기차소리를 듣었다
. 아내와 같이 대륙을 달리는 기차를 타고 있었다. 온 천지에 눈이 하얗게 덮였다. 추운 평야를 빠른 엔진 소리를 내며 기차는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창 밖에는 빈 하얀 밭이 보이고 낮은 언덕에는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내가 옆에서 웃고 있었다. 무척 행복해 보이는 고운 얼굴이었다. 둥둥소리를 내며 기차는 긴 다리를 건너갔다. 해가 저물고 하늘에는 별이 떠오르고 있었다.
하늘의 별들도 빙빙 돌면서 움직이고 그 별빛은 맑고 깨끗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곤한 잠을 깨우는 전화소리에 그는 눈을 떴다.



현지 시간으로 일곱 시었다. 세수를 하고 간단히 필요한 물건을 챙겼다. 서둘러
아랫층 아침식사를 주는 식당으로 내려왔다
. 잘 차려진 컨틴넨탈 아침식단이 구미를 돋구었다. 가지런히 차려놓은 부페형의 음식 중에 오랜즈쥬스나 과일들이 참 신선하고 맛이 있었다. 프랑스
빵이나 무화과나무 열매를 말린 것 그리고 치즈들이 특이했다
. 커피를 잔이 비면 계속해서 와서 따라주었다.
웨이터 할아버지가 참 친절했다. 그는 영어와 프랑스 말을 다 잘 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약속대로 정문 앞에 어제 전화했던 여행사 안내원이 큰 밴(Van)을 끌고 나타났다.
알고 보니 다른 몇 군데 호텔에 숙박하고 있는 관강객들을 하나둘씩 태우고 파리관광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저는 미스터 백입니다.



     “ 네 한영식 입니다. , 벌써 여러분이 타셨군요”



그가 탑승하고 나니 차는 떠났다. 차 속에는 네 명의 손님들이 타고 있었다.



    “다음 숙소에서 세 분을 더 태우고 출발합니다.
오늘은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으로 가는 날입니다.



두 불록을 돌아가니 왼편에 에펠탑(Tour Eiffel )이 보이고 큰 호텔이 나오는데 그 호텔 앞에서도 세 사람의 승객이
더 기다리고 있었다
. 늙은 부부와 중년 여인이 올라탔다. 모두들 한국계
사람들이고 한국말로 다 통하는 사람들이었다
. 총 여덟인데 안내하는 미스터 백까지 합해서 아홉 사람이었다.
화가들이 지난 수 백 년 동안 많이들 살고 있었다는 이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가는 길은 복잡했다. 출근 시간은 지났는데도 많은 차량들이 줄을 섰고 어디를 가나 초록신호등이 켜지면 모터사이클들이 줄을 지어 달려갔다.
그 소리가 요란했다. 차 속에 같이 탄 여행객들은 조그마한 마이크로 자기 소개를
하기로 했다
. 세 쌍의 부부가 자기소개를 마친 후 그의 차례가 되었다.



   “저는 삼 년 전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사는데….
이곳이 아내와 같이 평소에 한번 보고 싶었던 곳이라 찾아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말을 하고 창 밖만 계속 내다보고 있었다.



남은 한 중년 여성이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메릴랜드
(Maryland)에서 왔습니다. 늘 파리가 보고 싶어서…
어린이 병원일을 맡은 사람인데 휴가를 내서 이렇게 오게 됬습니다
. 즐거운 여행이 되시기 바랍니다.



키가 작달막하지만 눈망울이 동그랗고 왼쪽 빰에 보조개가
들어간다
. 브라운 색갈의 긴 머리에 반짝이는 핀을 꽂았는데 지성미가
넘치는 얼굴이다
. 동양사람에게는 드문 오똑한 코가 무척 매력적인 얼굴이었다. 무엇보담도 웃을 때 살짝 보이는 하얀 가지런한 치아가 깨끗하다. 왼쪽 가운데 손가락에 까만
진주 반지를 끼고 있다
. 어려서 이민왔거나 1.5세쯤 되는지 목소리는
맑지만 우리나라 말이 조금 서투렀다
. 영식은 그녀가 마음에 들었만 딸같은 나이의 여자라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듯 밖의 경치만 쳐다보고 있었다
.



몽마르트르 언덕 아래 여러 상가를 지나자 일행은 밴에서
내렸다
. 노란 삼각 깃발을 든 미스터 백을 따라 언덕 위로 높이
올려다 보이는 계단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 언덕 위까지 오르락거리는 기동차가 있었지만 그룹 사람들은 운동 삼아
걷기로 했다
.



계단 수십 개가 있고 가끔 쉬는 공간이 있었다. 그는 늘 하던 정도의 운동인 것 같아서 지팡이를 집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늘은 맑고 푸르고 간혹 흰 구름이 떠 있었다. 바람이 약하게 불어서 조금 쌀쌀했지만 얇은
덧옷 차림이면 아주 적당했다
. 계단을 오르면서 조금씩 숨이 찼지만 그래도 견딜만했다. 함께 온 사람들이 모두들 60대 초 늙은 분인데도 잘 올라갔다. 계단들을 반쯤 올라 왔을 때 한순간 영식은 깜박 오른편 발을 잘 못 밟고 앞으로 넘어졌다.



   “아이구나…”



다행히 별로 다친 곳은 없었지만 민망해 하면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누가 옆에 와서 그를 일으켜준다



   “괜 찮으세요?



   “ 아!  이런, 내가 앞을 안
봤어요
, 이제 조 심 해야겠네..



그를 일으켜 준 사람은 바로 밴에 같이 탔었던 메릴랜드에서
온 중년 여인이었다
.



   “이제 더 내려가실 수도 없고 제가 저 위까지 도와드리겠어요.
제 어깨를 잡으세요.



   “ 아, 초면에 그래도
되겠어요
? 미세스 아니 미스?



   “그냥 정 고은 이라고 불러주세요. 



이 날 우연인지 필연인지 두 사람은 이렇게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그것을 마음 속으로 두 사람 다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여행 중에 내내 음료수도 서로 나누어 먹었다.



   “여기 물 드세요.



   “제가 입을 댔습니다.



   “괜찮아요,”이렇게
하면서 하루 이틀 가까워졌다
. 다른 사람들이 모두 쌍으로 왔으니 그들도 같이 온 사람처럼 보였다.



몽마르트르 언덕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그들도 성당 안으로 줄을 서 들어가 내부를 천천히 같이 둘러보고 한참 후에 밖으로 빠져
나왔다
.



미스터 백이 제일 늦게 문을 나오는 이 두 사람을 보더니



   “ 아니 저희는 두 분이 안 보여서 걱정했습니다.



   “ 한 선생님을 도와드려야 해서 조금 늦었습니다,”하며 그녀가 변명했다.



모두들 언덕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바른쪽으로 내려가는 길가에는 옛날부터 화가들이 많이 산다고 했다.



한 카페 앞에서는 자신이 타고온 스쿠터를 옆에 세워놓고
검은 모자를 쓴
200년전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자작시를 낭송하는 것이 보였다
. 프랑스 말은 부드럽고도 콧소리가 나는 아름다운 율동적인 언어로 들렸다.
한 편을 읽고 나면 청중들이 박수를 쳤다. 그의 얼굴 표정과 청중들의 반응으로 보아서
그 시들은 애절한 사랑의 노래처럼 들렸다
. 그는 요즈음 세상에는 흔하지 않은 시를 쓰는 사람,
이곳 몽마르트르 언덕의 가난한 시인이었다.



 



2



 



그는 한 시간가량 70번 고속도로를 달려서 컬럼버스 공항에 도착하는 그녀를 맞았다. 지난 파리 여행 후 그녀가 처음
찾아온 것이었다
. 이처럼 그녀가 막상 찾아오니 쓸쓸했던 그의 가슴에 불꽃이 일어난다. 영식은 입구에서 나오는 그녀를 가슴이 으스러지도록 껴안았다. 남들 보기에는 부녀지간 같은 포옹이었다.
공항에 가까운 가야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아직 해가 있을 때 영식의 집에 도착했다. 그의 집에는 아내가 떠난지 벌써 삼 년 반이 넘었지만 아직도 가구며 실내 장식이 그대로 있었다. 가족사진들도 전처럼 걸려있었다. 옷장에도 아내의 옷이 모두 남아있었다. 사람들이 재활용으로 기부하라고 했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하루 이틀 넘기고 있었다.



아내의 흔적을 지우고 싶지 않은 그를 이해하는 듯 고은이
속삭였다



   “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군요. 돌아가신 분의 모든 것이…”



   “미안 합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서. 용서하시요.



그녀는 살며시 웃으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영식은 그녀의 작은 손을 잡고 밖으로 같이 나왔다. 뜰에는 잘 가꾸어 놓은 정원에 모란이 한창 피어있었다. 한 철 꽃을 피우고 시들어버리는 이
모란은 세상을 떠난 아내가 가장 아끼던 화초였다
.  



   “정원을 잘 가꾸고 계시는군요”



   “원래 나 꽃나무를 좋아하거든요. 뭐 이 일이 유일한 낙이지요,”그가 대답했다.



뒤뜰 정원은 산책길로 이어진다. 하늘이 흐려 오더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작은 우산 하나를 펴서 들고 두 사람은 이어지는 산책길을
걸었다
.



   “보고 싶었어요. 어떻게 지내시는지도 궁굼하고요.



   “나도 보고싶었오.



그녀가 그의 팔장을 살짝 꼈다. 따뜻한 체온이 두 사람 사이를 흘렀다.



이들에겐 지금 더 이상 아무런 말이 필요 없었다. 이것은 오랜만에 이루어진 좋은 느낌이었다. 부녀지간
같은 나이지만 그리고 처음에는 여행 중에 연민에서 시작된 일이었지만 지금은 서로가 마력처럼 점점 깊이 끌려가고 있었다
.



산책길에는 다람쥐가 뛰어다니는데 암놈을 숫놈이 따라가는
것인지 소리를 짹짹거렸다
. 갈색 산토끼 새끼들도 깡충깡충
숲 속으로 대여섯 마리가 들락거렸다
. 호숫가를 떠나 집으로 되돌아왔을 때 하늘에는 구름이 옅어지고 구름 속으로
무지개 하나가 떠올라 석양에 곱게 빛났다
.



현관으로 서둘러 들어온 후 둘은 서로 껴안았다. 뜨거운 입맛춤이 그들을 침실로 이끌었다. 파리에서
처음 나누었던 그 첫날처럼 모든 것을 영식이 맡았다
.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는 마음껏 그녀를 안았다. 육체적인 만남에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약제가 도왔는지 영식은 젊음을 되찾았다. 그들은 만족했다. 의사가 심장수술을 받아서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영식은 개의치 않았다. 덤으로 사는
하루하루가 무의미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면서 떼를 써서 의사의 처방을 받고 그녀를 안아볼 생각에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 



이들이 눈을 떴을 때 시계에 비치는 시간이 새벽 네
시다
. 희미한 윤각으로 서로를 보았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는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인연이지요?.”그녀가 속삭인다.



    “운명적으로 만난 것 같소.”영식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이 침대에  미스정과 이렇게 누워 있다니….”하면서   



나이도 잊어버린 남녀의 뜨거운 밤이 또 계속되고 밖에서는
천둥이 울리기 시작했다
. 번개가 번쩍거리며 어둠을
밝히더니 억수같은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



 



3 



 



걸려오는 고은의 전화가 하루하루의 그의 생활에 생기를 북돋아 주었다. 세 주일마다 한번씩 그녀가 있는 곳을 비행기로 다녀오고 집에 돌아오면 영식은 이제 더는
외롭지 않게 되었다
. 그리고 이렇게 마음의 안정을 회복한 영식이지만 색다른 문제가 발생하게되었다..



지난 달 방문시 “당신은 나이 칠십에 이십 세 년하의
내 딸을 을 어떻게 하자는 것이오
?“ 하던 고은의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말이 자꾸 생각난다
.“사랑은 서로 할 수 있지만 결혼은 좀…”하며 그때 영식이 대답했었다.
비록 영식도 아들 데이비드가 아빠가 원하면 자신은 둘이 결혼을 해도 좋다고 말했지만 두 딸들의 눈초리는 매섭다.
아빠의 외로움을 이해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생각을 더 했다. 엄마의 자리에 남이 끼어드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였다
. 전에 의사이면서도 엄마의 병을 미리 방지 못하고 발병 후에도 과음으로 아내를 괴롭혔던
영식을 원망하는 말들도 했다
. 그래도 영식은 아이들이 너무 아빠의 외로움은 몰라준다고 섭섭해 했다.
아이들에게 재산도 정리하고 양해를 구해보라는 말도 있었지만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앗다. 이 새 여인과 결혼하는 것 자체를 아이들은 분명히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그냥 친구로서만 사귀라는
말 같았다
. 특히 삼십 대 중반인 결혼을 안 한 둘째 딸이 제일 눈치를 보였다. 그래서 그는 요즈음 다시 술과 친하고 있었다. 그래야 전처럼 잠이 왔다. 다음날 아침에도 해장술을 한 잔 하면 편안했다. 수십 년 다니던 교회를 아내가 떠난 후 한번도
안 나간다니까 고은양이 성경의 구절을 설명하면서 모든 것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던 생각도 해보았다
.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머리 속이 꽉 차서 터질 것만 같았다.



그는 밤낮으로 혼자서 또 술을 마시기를 시작했다. 와인을 한 병을 다  비우고나서 또 새 시바스리갈 양주병 마개를 땄다.
그리고 계속 마시면서 희미한 등불 밑에서 톨스토이의 소설‘애나카레니나’를 들추기 시작했다. 며칠 째 읽어 보지만 “무슨 이름이 이리도 복잡하지”하며 책장을 덮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술을 자주 많이 마셨다. 그래도 꺼떡없이 버티어서‘야 술이 쎄구나’하는 사람들에게 그를 돋보이게 했다.
그러나 이런 일로 인해서 자신도 모르게 오랜 세월 서서히 알코올 중독이 된 것이었다. 음주 후 다음 날에도 아침에 독한 술을 한 잔 하지 않으면 손이 떨리고 머리가 아프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런 것이 바로 위험한 금단현상이었다. 젊어서는 그럭 저럭 넘겼지만 나이가 들면서 차츰 심해져서
병원의 의사임원자격증에도 문제가 발생한 일도 있었다
. 환자를 다룰 때 술냄새를 피우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또 그런 날이면 크리닉에 정해진 시간에 규정대로 나오지도 못해서 징계위원회에 회부당했다. 여러 번 환자진료에 실수가 발견되어 면허증 갱신에도 말썽이 났다. 차츰 육체적으로도 하는 일이
힘들어졌다
. 보통 일과는 달라서 환자를 다루는 일이었다. 그래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주위의 권고로 정년도 못 되어 은퇴했던 것이었다
.



영식은 오래 전부터“그래도 이만하면 나 잘 살았지,”하면서 남 몰래 혼자 술을 마셨다. 젊은 시절 술자리를
같이 하던 친구들이 그동안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났다
. 간염, 혹은 간암이나
간 경화로 치료를 받다가 떠났다
. 아직 몇 명은 살아 있으나 이미 고인이 된 친구들이 더 많았다.
담배까지 태운 친구들은 더 빨리 떠나갔다.



    “뭐 언젠가 나도 곧 가야할 거야, 젠장.”하면서 그냥 술을 마셨다.



남에게 말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십 세 연하의 여자를
상대하려니 육체적으로 힘이 너무 들었다
. 머리회전도 빨라야 하고
생활 템포도 고쳐야만 따라 갈 수 있었다
. 무엇보담도 그녀가 영식이 좋아하는 술도 못 마시게 했다.
살던 집을 팔고 삼십 년간의 추억이 있는 이 집을 떠날 것도 생각했지만 엄두가 나지를 않았고 겁도 나는 것이었다.
고은 양이 살고 있는 동부 도시로 이사를 할 생각도 해보았지만 영식에게는 생소한 느낌을 줬다. 그녀가 출근 한 후 좁은 아파트에 남아서 지난 번에도 혼자 여러 날 집이나 지키도 했었다.



영식은 취중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낮 부터 좋아하는
프랑스 와인을 한잔씩 기울리다 보니 밤이 깊어졌다
. 더구나 요즈음 며칠간 자주
걸려오던 고은의 전화도 울리지 않았다
. 지난번 떠나기 전에 핏대를 올리며 몹시 싸웠는데 왜 그랬는지 기억을
못했다
. 무슨 큰 잘못을 했었는지 영식이 잘 모르는 일이 생긴 것이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영식은 독한 양주 한 병도 결국
다 마셨다
. 머리가 어지러운 듯 시야가 흐려진 듯 그는 소파를 더듬었다.
비틀거리며 언제부터인가 잘 모르겠지만 창가에 하얀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아내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설거질을 하면서 해가 저물어가는 호숫가를 내다보던 아내가 또 보이는 것이었다. 분명히 하늘에서
내려온 고운 선녀의 모습이었다
. 달빛이 은빛 싱크에 비치고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아내 뒤로 비틀거리며 다가 섰다. 같이 밖을 보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잘 보이지 않는 그런 밤이었다.



  “여보 당신 무엇을 보고 있어?  나를 돌아다 봐요. 어디 아픈 데는 없소?



  “나 바나나가 먹고 싶은데요, 왜 나 옛날 미국에 오기 전에 서울 떠나기 전에 먹고 싶었던 바나나, 그 바나나가 아직도 먹고
싶어요
.



영식은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그의 손은 떨고 있었다. 한없이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4



 



일주일 전
그의 집에 불이 나서 모든 것이 다 타버렸다
. 아직도 그 화재의 원인에 대하여 당국과 보험회사에서 조사를 하는 중이지만
호숫가 외딴 오래된 집이라 지하실에서 냄새가 없는 가스가 누출되어 위로 올라오면서 불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고 했다
. 혼자서 그가 잠이 들었을 때 발생 했으면 그런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했다. 갑자기 솟아오르는
폭팔적인 불꽃은 멀리 밤하늘을 찔렀다
. 차고에 있었던 그의 자동차에서 불이 시작되었을 수도 있었다.
몇 년 전에도 병원 주차장에서 엔진의 이상으로 그의 유럽제 BMW차에서 저절로 불이
난 일이 있었던 것처럼
. 불은 집 주위를 지나가는 송전선에도 인화가 되어 서북쪽 타운의 정전사태를 만들었다.
수리하는데 이틀이나 걸린다고 했다. 혹은 그가 혼자서 밤새도록 마셨을 알코올의 영향으로
불조심을 잘 못해서 화재가 일어났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 그러나 그가 자살을 했으리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거의 숫덩어리처럼 참혹하게 타버린 그의 시신을 소방대원이 발견하여 응급실을 거쳐 장의사로 옮겼다. 부검의사들의 시체 확인이 끝난 후 화장을 완료 했다.



영식의 사망 일 주일 후



바이오 자루에 담긴 그의 유해를 수목장으로 묻어주는 날이 되었다.



영결식에는 올 수 있는 친구부부 이십여명과 세자매가 모였다.



젊었을 때  영식
부부가
  다니던 교회 호숫가 부지에 수목장을
하기로 된 나무가 있어서 이곳에 안치하는 것이었다
.



가까운 친구 김성수가 추모사를 낭송했다.



 



 한영식 동문이
우리 곁을 떠난 것이 벌써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



오늘은 그의 귀한 육신의 흔적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날입니다.



그를 기리기 위하여 이 자리에 우리는 모였습니다.



그는 특이한 인생철학과 많은 재능과 준수한 용모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사랑하던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내고 외로움을 달래며



슬픈 나날을 보냈던 그를 여러분들은 잘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뛰어난 두뇌와 활달한 성격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명문 교육과정을 끝마치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사십년 전 미국땅으로 건너와서
이곳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 전문의사과정을 끝내고 이 도시에서 의사로서 살고 있었습니다
.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



대부분의 여러분들처럼 저도 반 세기전 어린 학창시절에 처음 그를 만났습니다.



술과 음악을 늘 좋아 하였던 그의 주변에는 많은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그를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들! 오늘 우리는 그의 희망대로 그의 육신의 흔적을
호숫가 이 숲속에 잠 재우려 합니다
. 밤에는 별들과 동무하고 아침이면 이슬에 반짝이는 바위들처럼 그의 영혼은
이제 여기에 무거운 육신을 내려 놓을 것입니다
. 모든 육신은 결국 분해되어 자연으로 되돌아 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영혼은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자유로운 영혼은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



그가 오랫동안 사랑하던 여러분들!



그의 영혼은 그가 발자국을 남긴 땅 위에,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전쟁터에, 어마마마한 눈이 쌓였던 살을 에이는 차가운 바람이 불던 전방 고지에, 그를 기다리던 가난한
환자들이 살던 전기도 수도도 없었던 무의촌에  그리고 그가 돌보아주던 아픈
환자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



그의 영혼은 사랑하는 아드님과 따님들의 가슴속에도 그리고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벗이여, 당신의 무거운 육신이여, 이제 이곳
오하이오 호숫가 숲속에서 편안히 잠드소서
.



벗이여, 당신의 아름다운 귀한 영혼이여,



이제는 이생과 저생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영원히 자유로워지소서.



친구 김성수



 



수목장의 예식이 끝났다. 높은 나무에 136 YS Han 이라는 작은 금빛 명찰이 붙여졌다.



그가 묻힌 땅 위에 보드라운 흙이 덮여지고 사람들은 붉고 노란 화려한 꽃송이들을 하나 둘씩 얹었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하늘은 맑았다.



흙은 우리 모두가 태어나고 돌아가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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