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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회원작품

박앤

Author
수안
Date
2010-03-15 18:34
Views
9597
박앤.JPG

 
    • 서울 출생
    •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매릴랜드대학 컴퓨터공학 전공
    • 1997년 <워싱턴 문학> 신인상 시 당선
    • 2002년 <문예운동>으로 등단
    • 시집 <못다 지은 집> [도서출판 선]
    • 2010년 <가산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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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선

 

 

 

 

 

 

 

고국에서 세 남매가 기다린다는

동네식당 종업원 에스카리나

한 쪽에서 왁자하게 생일파티를 하는

한 떼의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돌아서서 눈물을 닦고 있다

한참 신나게 놀던 아이들이

알록달록한 풍선을 일제히 공중에 띄워 올렸다

, 아이들이 외쳤다

둥둥 뜬 풍선들이 창문을 빠져나가자

구석 테이블에 앉은 나도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때 보았다

에스카리나의 간절한 몸에서

슬몃 한 여인이 빠져 나오는 것을!

굼뜨던 에스카리나와는 달리

민첩하고 생동감 있어 보이는 그 여인

재빨리 풍선 몇 개 붙잡아 손목에 걸더니

아이들처럼 두 팔을 활짝 위로 치켜들었다

멕시코 어디쯤, 혹은 과테말라, 아니 엘살바도르

풍선에 실려 공중그네 하듯

그녀는 훨훨 날아갔다


Total 8

  • 2010-08-14 19:35

     

                    

    못다 지은 집

    지푸라기 몇 올, 나뭇가지 몇 개
    걸쳐놓았을 뿐

    차고 서까레에
    집을 짓던 새 한 쌍
    어느 날 큰 소리로 토닥거리다
    홀연히 버리고 떠났네
    못다 지은 집

    알을 까고 새끼를 품어
    일가의 보금자리 될
    우주의 중심
    그 집에 바람만 들다 간다

    버려진 집은
    쓸쓸하고 적막해
    언제쯤 느껴볼 것인가
    들었던 주인의 체온 한 줌


  • 2010-08-14 19:47

        

        

    봉헌

    옥수수 밭을 지나다가
    가지런히 줄지어 선 모습이 좋아서
    그 옆에 서 보았다

    바람이 슬쩍 머리칼을 건드리면
    녹색 옷자락 속에서 알갱이는쪼르륵 달리고
    막 빠져나온 수염은 따뜻한 햇살에
    붉은 물이 들었다

    내 두 발이 흙 속에 묻혔다
    몸도 차츰 푸른 빛을 띄더니
    정수리에서 바람이 일어
    옆구리에서 등에서 툭툭 옥수수가 불거져 나왔다

    한여름 뙤약볕 거친 비바람에
    서걱서걱 울기도 했지만
    내 몸뚱이가 누렇게 패었을 때
    나는 마침내 하늘을 향해 외쳤다

    - 제가 다 여물었습니다 -


  • 2010-08-14 20:00

     

     빗소리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
     어머니의 다듬이질 소리
     도두락 도두락 똑 딱 똑 딱
     그 리듬에 실려 잠이 든다

     외독자 집안에 시집 와서
     내리 딸 셋을 낳은 어머니
     그 설움 차분히 다듬는 소리를
     나는 꿈 속에서 아득히 듣곤 했는데

     물살을 거슬러 노를 젓듯
     늦도록 뒤척이는 나를 위해
     저승에서 어머니가
     다듬이질 하신다
     방망이도 다듬잇돌도 없이
     그림자 같은 자욱한 손으로
     음률 만드신다

     지붕에 빗방울 듣는다



  • 2010-08-24 07:34

     

     그날 밤 마지막으로

     그날 밤 마지막으로 보았네
     친정집에 와 누워 지내던
     폐를 앓던 고모
     모래알처럼 바스러지며
     눈동자만 깊어지던 그녀는
     한 폭 흰 치마에 싸여
     찬 윗목에 놓여졌네

     밭은기침으로 자지러지던
     참 곱던 스물여덟의 여인
     그 여인이 두고 간
     가쁜 숨소리, 흐느끼는 소리
     어지러운 꿈속을 흐르는
     가락이 되네

     때로 내 안이 조용해지면
     들리네
     뒤란에 흐르는
     여린 노래



  • 2010-08-24 07:38

     

     딸의 임신.2

     -그리운 집



     만삭이 된 딸의 배에

     가만히 귀를 대면

     들리네!

     엄지를 빠는 소리

     물에서 첨벙이는 소리


     태아에게는

     이 조그맣고 둥근 배가

     엄마와 먹고 자는 완전한 집이어서

     우주이어서

     최초로 새겨지는 기억이어서


     훗날 지치고 외로울 때

     돌아가 쉬고픈 엄마의 몸이어서


     잊지 못하네
     그리운 집


  • 2011-08-07 10:02
     

     

    혼자 잠들기



    두 살배기 아이가

    할미 방문을 콩콩 두드린다

    같이 자자고

     

    혼자 자는 버릇을 길러야

    독립심이 강해진다고

    아이를 타일러 데려가는 엄마

    차마 발걸음 돌리지 못하고

    아이 방 앞에서 서성이고

    문고리 잡은 채 귀 기울이는

    할미의 가슴도 미어지는 밤

     

    칭얼거리다 아이는

    혼자 잠이든지 오래인데

    누구도 쉬이 잠들지 못한다

     

    지금은 모두 견디는 시간

    어둠도 아이를 품에 안고

    지그시 밤을 건너가고 있다



     

  • 2013-09-06 08:52

           

     

     

     

    볕살 한 조각 

     
     
     
    담 모퉁이에서 서성이는                                                                               
    햇살 한 줌 쥐어 보려고
    일찌감치 쪽문을 열어 젖히고
    유리로 된 덧문 앞에 선다
    이월 찬 공기를 뚫고
    문 앞까지 오기는 아직은 이른 시각
    집 벽에 부딪혀 꺾어지고 갈라진 채 너는
    문 앞에 서서 안을 드려다 본다
    문 틈새를 비집고 비스듬히 고개를 들이미는
    너, 환한 볕 살 한 조각
    눈부시게 퍼져갈수록 문앞에 가지런히 모은
    내 두 발이 따뜻하다
    어느새 너는 조금씩 비껴가는구나
    잠시 후면 또 어느 집 창가에서
    무심히 안을 기웃거릴 테지
    어느 일생이나 그러하듯
    언제 우리 삶이 아쉽지 않은 적 있던가
    그래도 너 때문에 나의 아침은 늘

    기대 반, 설렘 반    



  • 2013-10-06 12:26

     

     

     

    벌주

     

     

    풍에는 흰 거위 한
    마리면 거뜬하다더라

    중풍으로 쓰러졌다 일어나신
    아버지의 편지

     

     

    두 번째는 언어장애까지
    와서

    웅얼웅얼 알아들을 수
    없는 아버지의 전화

    나는 그만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마침내 태평양을 건너가
    차려드린 밥상에서

    양주 한 잔 몹시 고대하셨던

    자꾸만 나에게 손을
    내미는 아버지

    나중엔 술 마시는 시늉까지
    하시더니

    실망과 노기가 범벅된
    참담한 낯빛으로

    밥 한술도 뜨지 않고
    상을 물리셨다

     

     

    무엇이 그분을 위하는
    길이었을까

    아물지 않은 상처처럼

    그날의 기억이 고개를
    들면

    머리 희끗한 내가 때늦은
    술상을 차린다

    푹 고아 김이 무럭무럭
    나는 흰 거위 찜

    벌서듯 세워놓은 양주
    한 병

     

     

    오늘은 벌주로 내가
    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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