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
1. 어머니
하르르 꽃 이파리 떨어 지며는
가슴속에 그리움 하나가
삐죽이 일어 납니다.
달 밝은 날
잠자리가 서운해서 나가 보며는
달 보며 울고 계셨던 울 어머니
어머니 처럼 살지 않겠다고
내가 우는 대신, 아희들을
울리며 살고보니, 역시 어머니가 옳으셨어요.
눈물,눈물 많이도 뿌리시고 사셔도,
오며가는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만 보면 먹이시더니,
지금은 어디서 밥 짓고 계신지요
어머니
세상에 좋은 것. 별별것 다 많아도
어머니 눈물 만한 약이 없습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이제서야, 어머니께 드리고 싶은 것이
참 많아졌는데요
어디로 보내 드릴까요
어디로 보내면 어머니 웃는 모습을
뵐까요.
2. 아버지
잘 나가던 직장을
하루아침에 때려 치우고
잘 나가던 월남경기가
사그러 들때 쯤
월남 바람 든 아버지가
세번의 사기를 당하고
그여이 월남으로 떠나셨다.
합창연습 갔다가, 돌아온
둘째언니는 벌써 가셨냐고
울었고,
여섯 살 어린 나는, 작은 점이 찍힌
하얀 깔까리 원피스를 입고
공항에 나가서 손은 흔들었다.
일주일에 한번
큰 언니가 지우개 들고 고쳐 주는대로
편지를 쓰고,
일년에 한번은
허바허바 사장에 가서
가족 사진을 찍어 보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편지 쓰기가 싫어진 나는,
천일야화 얘기를 써 보내면서 견뎠다
아버지가 천일야화는
이제 됐다고 하실 때까지
아버지는
오래오래 집에 돌아 오실 수 없었다.
어머니가 병 들고,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 하던해에 돌아 오셨다.
십 수년 만에,
이민가방 가득, 미국물건을 가져 오셔도
팔고 가셨던 집을 살 수는 없었다.
서른여섯 꽃 같던 어머니는
시름시름 시들었고
십 수년 만에 아버지가 있는
가족 사진을 찍었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3. 울이모
울 이모는 일편단심 민들레
동서기를 사랑해서
그가 동네를 도는 아침이면
유똥 저고리 차려 입고
앞 가리마 곱게 타서
머리 종종 따 내리고
울타리 옆에 서서
웃고 있었다던데
평생 생활력 없고
외도까지 심했던 이모부와
그만 살라했더니
천 서방 백 서방 해가야
좋겠냐고, 울고 불고
결국은 서방님 임종을
지켰네.
마실가면 그 인사는 저만 안다
흉보다가도, 전화만 오면
“네,네, 지금가요”
살짝 웃고, 쏜살같이 집으로
달아 가시더니,
이모부 병 들어 누우니,
살아 만 있어주면 좋겠다고
노상, 노래하다
돌아 가시면 어쩔까, 했더니
이젠, 생전에 찍은 비디오 테잎
보면서, 울고 웃는게 일과.
아직도 같이 살고 계시네.
늙는게 무신 상관 이냐며
“자기야” 하고 부르는게
참 좋다더니, 이제 민들레는
“자기야” 하고 못 부르니
어쩔까. 정말 어쩔까.
4. 남편 I
인상을 구기고 잠든 그대에게서
어쩌자고 나는, 작아져 만 가는
내가 보이는 것 일까
도대체, 언제부터
천년도, 마다하고 하루라도
당신과 살고 싶다던
애창곡을 잃어 버리고,
사랑의 당신을 잃어 버리고
나와, 또 한명의 나만
동거 하게 된 걸까
Most wanted
미치게 사랑해서, 마음껏 만질 수도
없었던 내 사랑을 찾습니다.
찾아 주시는 분께는
푸른 잎사귀로, 바람으로
꽃잎같은 기쁨으로 후사 하겠습니다.
남편 II
장인 얼굴 한번 못 본 남편이
아버지를 꼭 닮았다고 느낀 순간,
부성부재로 살아 온 내가,
왜 남편을 선택 했는지
쪽집게 정답이 나오지.
이거야 원.
정답 찾았다고 달라지는 거 있나
장자 연 해서 좋아진 남편이
중년 들어 조조연 하는 이유나 연구해 볼까
아님, 장자취향을 조조취향으로
바꿔 보는 게 나을까
아님, 앓느니 죽는게 나을까.
5. 아들
우울하고, 불안하고
불행하다는 아들에게
힘들다는 아들에게
살아 주어서 고맙다고 썼다.
나도, 그 곳에 있어 봤다고 썼다.
하나님께 널 지켜 달라고
울고 매달리고 싶어도,
하나님과 친하지 못해서
부탁하지 못했다고 쓰지는 못했다.
사랑 한다고, 보고 싶다고 썼지만
그러니,
날 생각해서라도 힘 내라고,
행복해 달라고는 쓸 수 없었다.
아들아 아들아
이제서야,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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