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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로
* 부산 동아대학 기계공학과
* 육군3사관학교(중령예편)
* 미 탄약학교 수료
* 미 해군대학원 무기체계공학석사
* 미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 목회학 석사
* 경희사이버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 화백문학 미주지부 부회장
* 헤리슨버그 한인장로교회 목사
* 제27회 미주 한국일보 문예공모전 소설부분 입상
* <천강문학상> 소설부문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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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엄마
"자녀를 아내와 함께 유학 보내 놓고 홀로 지내던 '기러기 아빠'가 숨진 지 5일만에 발견됐다. 유학비용을 대는 경제적 어려움과 외로움을 술과 담배로 달래다 지병인 고혈압이 악화해 숨진 것으로 보인다. 6년 동안 좁은 원룸에서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고독을 삼켜야 했던 부정(父情)이 안타깝다."
신문 기사 하나가 며칠이 지나도 머리에 맴돌며 떠나지를 않는다. 창 밖이 훤한 것으로 보아 보름이 얼마 남지 않았나 보다. 엷은 커튼을 통과한 달빛은 방 분위기를 평온하게 감싸주고, 달빛에도 떨어지는 낙엽들이 침대 위에 떨어져 쌓이는 것 같다. 일주일 동안 한미국방부장관회의 때문에 피곤한데도 잠이 쉽게 들지 않는다. 이불을 머리에 써 보았지만 숨소리만 더 크게 들릴 뿐이다. 초저녁잠이 없는 아내는 부엌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 아내는 예고 없이 밀어닥치는 손님이 빈번한 이곳 생활에서 밑반찬이나 찌개 거리를 미리 준비하는 지혜를 터득하고 있었다. 아내의 내조가 항상 감사하면서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잠이 쉽게 들지 않을 때 하는 습관대로 눈을 감고 아무도 없는 깊은 산 속을 생각해 본다. 새들이 모여 지저귀기다가 서로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다람쥐가 보이고 산토끼도 뛰어 다닌다. 작은 물고기들이 계곡에서 물줄기를 타며 숨바꼭질을 한다. 개구리 한 마리가 물 속으로 뛰어들자 물고기들이 정신 없이 숨는다. 사슴들이 물을 먹으러 계곡으로 내려오고, 멀리서 사랑을 위해 싸우는 사슴들에 뿔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딩동 댕댕... 딩동 댕댕... 딩동 댕댕...”
“통신보안, 김 소령입니다.”
“야! 이 사람아, 여기가 어딘데 통신보안이야, 나 한 대령이요.”
“아...... 죄송합니다. 무관님. 무슨 일이십니까?”
“저녁에 집으로 전화해서 미안한데, 내일 전에 모시던 사령관님 딸이 워싱톤을 방문한다고 좀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연락을 하셨어. 김 소령도 알다시피 내일 스케줄이 너무 복잡해서 내가 공항을 갈 수가 없을 것 같아, 또 개인적인 일이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기도 그렇고...... ......”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김 소령도 내일은 바쁘게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회의에, 안내에 밀린 업무가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대가 개인 사정을 봐주며 일을 맡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비행기는 대한항공이야, 잘 부탁해, 그리고 내가 바빠서 공항에 못 나왔다고 얘기 좀 잘 해주고, 적당한 시간에 식사나 같이 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게.”
대답을 하려는데 벌써 전화를 끊어 버렸다. 기분이 별로다. 아무리 상관이지만 자기 말이 끝났다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릴 때마다 욕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한 대령이 상관에게 전화를 받는 모습은 더욱 가관이다. 목소리에 절도며, 예라고 할 때마다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며, 우리를 한번씩 힐끔힐끔 쳐다보며 어색해 하는 표정들이 스쳤다. 때로는 공과 사도 없고 어느 때는 공보다 사가 더 중요한 업무가 가끔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미국에서 근무한지 벌써 이년이 다 되는데, “통신보안”이라고 전화를 받자마자 외친 자신이 우습게 여겨졌다. 아마 잠들려는 순간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하지는 안 했을 것이라고 자신을 위로해 보지만, 개운한 기분이 들지를 않았다. 몸에 베인 습관은 급하면 불쑥 튀어나오는 것인가 보다. 사투리처럼 말이다.
한 장군 대령은 국방부에서 파견한 육군무관이다. 아버지는 6.25 전쟁에 참여한 상사였다. 지금은 원사라고 부르는 계급이다. 첫째 딸에 이어 아들이 태어나자 그의 아버지는 서슴없이 이름을 ‘장군’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아들이 장차 커서 장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을 것이다. 한 대령은 태어나면서부터 한 장군이 된 것이다. 한 대령이 군인이 되어서는 이름에 얽힌 사연이 많다고 술자리에서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높은 사람이 한 장군이라고 부르면 부담스럽지만 싫지 않을 때가 더 많다고 했다. 모두가 한 장군 이라고 부르니 언젠가는 장군이 될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며 빼 놓지 않고 덧붙이는 말은 ‘그러니 자기에게 잘 보이라고’ 말했다. 이런 말을 할 때마다 그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그는 특히 부하들 앞에서 자기 이름을 즐기는 듯 했다. 한 대령은 장군이 되기 위해 모든 면에서 열심히 일했다. 공적으로도 그러했지만, 사적으로도 자기에게 도움이 될만한 높은 사람들에게 더욱 신경을 썼다. 내일도 웬만하면 틀림없이 공항에 나갈 사람이었다. 아내가 누구 전화냐고 큰 소리로 물었다. 부대에서 온 전화라고 했다. 피곤할 테니 어서 자라고 한다. 전화가 오면 자기가 대신 받겠다고 하면서.
다음날 김 소령은 일찍 출근하여 급한 일들을 처리했다. 공항에 가는 길에 펜타곤(미국방부)에 잠시 들려 국방관계 기사만 종합한 기사철인 얼리버드(Early Birds)을 몇 부 가지고 공항으로 향했다. 신호등에 멈출 때마다 오늘 미국 신문과 잡지에 실린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김 소령에게는 이러한 기사 철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시간도 없는데 모든 신문 잡지를 볼 수도 없고 미국 현지에 근무하면서 국방에 관련된 기사도 못 챙기다가는 고문관 소리를 듣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다행이 미 국방부에는 국방관계 기사의 홍수 속에서 의사 결정권자들이 신속히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하도록 아침 7시만 되면 그 날의 모든 국방관련 기사를 종합하여 필요한 부서에 배포하고 있었다.
공항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에 여객기가 여러 대 보였다. 구름도 이곳 저곳에 듬성듬성 떠 있다. 가을의 푸른 하늘과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날을 수 있는 것만이 하늘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스치더니, 비행기가 발명되지 안 했으면 지금은 어떤 세상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로 기러기들이 V자 모양으로 무슨 말인가를 하며 날아가는 것이 보인다. 앞에서 날아가던 기러기가 뒤로 처지고 다른 한 마리가 앞으로 나가 대형을 유지하며 날아가고 있다. 미국에 근무하러 도착하는 날도 이와 비슷한 날씨였다. 그 때도 기러기가 무리 지어 날아가는 것을 인상 깊게 보았던 기억이 났다.
김 소령은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싫어했다. 기다린 다는 것도 싫은 일이지만 시간당 7불이나 하는 주차비가 아까웠다. 프랑스 항공기 347편이 도착하여 세관 검사 중이라는 영어 안내문이 느리게 깜빡이고 있었다. 저곳에 대한항공 008편 도착이라는 사인이 나올 때까지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갑자기 커피 생각이 났다. 빈속에 커피는 몸에 좋지 않다는 아내의 말을 듣지 않고 이런 데서 마시는 커피는 지루함을 달래 주기에 너무 어울린다는 생각이 매번 들었다. 때로는 아내가 하지 말라는 일을 하면서 잔잔한 쾌감까지 느끼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설탕은 넣지 않고 크림만 조금 넣었다. 뜨거운 것을 잘 못 마시는 탓에 커피가 식을 때까지 기다리며 커피 향을 즐겼다. 그렇게 기다렸다가 마시는 첫 한 모금의 맛 때문에 거피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늘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식은 커피를 어떻게 마시느냐고 물으면, 식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이 진짜 거피를 좋아하는 거라고 말하곤 했었다. “KA 008 Landing"이라는 사인이 깜박이기 시작했다. 대한항공 008편이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조금 있으면 ”KA 008 Customs"이라고 깜박이며 세관 검사 중이라는 것을 알려 주겠지. 아직도 길게는 한 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갑자기 화장실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볼 일을 보지 않으면 여자 손님을 안내하면서 곤란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손을 씻으면서 거울에 비친 얼굴을 습관적으로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머리가 더 흰 것 같기도 하고 얼굴도 배도 옛날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사령관 딸은 몇 살이나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내가 안내할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 하지 않은 것이 신기했다.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밀 것에 무거운 이민 가방들을 잔뜩 싣고 두리번거리며 마중 나온 사람을 찾는 행렬이 계속되었다. 더러는 껴안고 울기도 하고, 더러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에게 다가갔다. 유럽 쪽에서 오는 비행기가 도착할 때와는 전혀 상반되는 분위기를 볼 수 있었다. 문화적인 차이란 만나고 헤어지는 모습의 차이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을 영접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인상이나 복장을 한 대령에게 물어 보았지만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늦게까지 기다리든지 아니면 두리번거리는 여자에게 다가가 물어보는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다시 자동문이 열렸다. 누군가 자기를 알아 봐주기를 바라는 표정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김 소령의 시선이 갑자기 한 여인에게 멈추었다. ‘아니, 영주가’ 혼자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내가 안내할 손님이 문 길남 장군의 딸 영주란 말이야’ 김 소령은 누군가 자기에게 접근하기를 바라며 걸어 나오는 영주의 얼굴을 보면서도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잠시 머뭇거렸지만, 김 소령은 더 이상 두리번거리며 불안해하는 영주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다가가자 영주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그 자리에 서서 김 소령을 빤히 바라보았다.
“영주 씨,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어......”
“김 중위님이 이곳엔 어쩐 일이세요”
영주는 김 소령과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는 것 같았다. 김 소령은 영주가 자기를 아직도 그 옛날 김 중위로 불러 주는 것에 야릇한 감정이 솟구쳤다.
“워싱톤에 머무는 동안 내가 영주 안내를 맡았어.”
김 소령은 그 말을 지나가는 말처럼 빨리 했다. 영주의 짐은 여행용 가방 하나에 핸드백뿐이었다. 김 소령은 가방을 받아 끌면서 공항 밖으로 서서히 걸어 나갔다. 영주가 그를 따라 걸었지만 한 동안 대화가 없었다. 분위기가 어색한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한번 우연히 만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 같았다. 무슨 말인가를 해야 된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김 소령은 차라리 말없이 이대로 한참을 더 걷고 싶었다. 거의 차에 다 와서야 김 소령은 피곤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영주는 말없이 고개만 약간 흔들었다. 차 문을 열어 주자 그녀는 싱긋 웃으며 차에 탔다. 김 소령은 그녀가 자기를 만난 것에 잠시 당황하고 있을 뿐 싫은 것이 아니라는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김 소령은 영주를 안내할 것이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지나가는 말처럼 그녀를 슬쩍 바라보며 말했지만, 그녀는 아직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김 소령은 백미러를 보는 척 하면서 아무 말이 없는 영주를 몇 번이고 쳐다보았다. 그녀도 약간 나이가 들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하얀 피부에 창 밖을 바라보는 얼굴은 옛날 영주의 모습 그대로였다.
김 소령은 중위 때 영주 아버지 문 장군의 전속부관으로 근무했다. 하루는 육군본부에 서류를 제출하면서 영주 학교에 들려 등록금을 납부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임관하고 전방으로 간지 거의 이년이 되어 처음 나오는 출장이었다. 그 때 영주는 H 대학교 무용학과 2학년 이었다. 그 때까지 영주를 만난 적이 없었지만 아버지에게 전화를 할 때마다 먼저 받아서 바꾸어 주는 바람에 목소리만은 익숙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에 간 김 중위는 대학 캠퍼스를 처음 걷는 순간이었다. 항상 군복만 입다가 검정색 긴 통바지에 빨간색 계통의 남방을 입었다. 군인이 사복을 입으면 왜 그리 안 어울리는지 모를 일이다. 특히 김 중위에게는 더 그런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려 학교 정문을 지나 교무처가 있는 본관 건물까지는 이십 분 정도 걸어야 했다. 학생들은 활기 찾고, 여기저기 모여 이야기하는 모습들이 평화롭고 자유스러워 보였다. 어제 있었던 전방의 분위기와는 너무나 대조를 이루는 풍경이었다. 동기생들로부터 계엄령이 선포되었을 때 캠퍼스에 주둔했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리 즐겁지는 않았었다. 일부 정치 군인들 때문에 우리 모두가 어울릴 수 없는 시대에 태어난 것처럼 살아야 했다. 친구나 동생들의 등교 길을 막았던 군인들, 친구나 형들의 의무를 비난했던 학생들, 서로에게 옳은 것이 있으면서 둘 다 틀린 방법으로 서 있었던 시간이 생각할수록 허전했다. 빨리 일을 마치고 교정을 벗어나고 싶어졌다. 등록금을 납부하고 나오는데, 누가 뒤에서 혹시 김 중위님 아니시냐고 물었다.
“어떻게 저를 알아 보셨어요?”
“아침에 아버지하고 통화했는데, 오늘 부관님이 학교에 와서 등록금을 납부한다고 하셨어요.”
“그래도, 저를 만난 적이 없었는데......”
“그냥 머리와 걷는 모습을 보고 짐작해서 물어 보았어요”
김 소령은 영주를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그녀는 무용을 전공하는 학생답게 날씬한 몸매에 패기가 넘쳤다. 처음 만난 김 소령을 아주 편하게 대해 주었었다. 이미 군인 가족으로서 아버지 부하 군인에게 어떻게 행동하고 말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어디로 가세요?”
영주의 목소리가 무엇을 강요하려는 것 같은 강압적인 목소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예, 심부름을 마쳤으니 종로에 가서 서점이나 들렸다가 형님 댁에 갈까 합니다.”
“아니, 예가 뭐예요. 동생처럼 대하세요. 그리고 오후에 제가 시간이 있는데 저와 같이 시간을 보내요. 저 때문에 여기까지 오셨는데 그냥 가시면 되겠어요.”
김 중위에게는 동생처럼 대하라는 말이 쉬운 말이 아니었다. 막내로 자란 그가 다 큰 여동생이 갑자기 생긴다 해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실 서점에 간다는 말도, 형님 댁을 가야겠다는 말도 즉흥적인 것이었다. 서울에 근무하는 동기생들에게 연락을 한 뒤 가능하면 동기생들과 모처럼의 서울 출장을 즐기고 싶었었다. 김 중위는 괜찮다고 했지만 영주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군인들이 휴가나 외출 나와 혼자 다니는 것을 보면 처량하게 보인다고 하면서, 오늘은 그녀만 따라 오라고 했다. 돈은 없으니 출장비 받은 돈을 같이 쓰자고 웃으며 말했다. 그녀가 깜찍하고 예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모습과 행동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 중위는 훈련을 받으며 어려울 때는 가끔 이런 말을 떠올리곤 했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지금 상황이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피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모처럼 나왔으면 먼저 어머니한테 전화도 하고 형님을 찾아 뵙는 게 순서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 순간만은 그런 의무에서 다 벗어나고 싶었다.
그 날 김 소령은 영주를 따라 명동에 갔다.
“점심은 드셨어요.”
“아니오”
“그냥, 말 좀 편안하게 하세요. 존대 말을 하니 너무 이상해요.”
일방적인 유도가 전혀 싫지가 않았다. 어차피 서울 지리도 익숙한 형편이 아닌데 못이기는 척, 모든 것을 영주에게 맡길 수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휴가를 나가면 이런 분위기로 서울 거리를 걷고 싶기도 했었다. 왠지 자기의 복장과 영주의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만약 나무처럼 정해진 위치에서 태어나 살게 되었다면 영주는 이곳이 어울리는 곳이고, 김 중위는 전방에서 총을 들고 사는 것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무슨 음식을 좋아하느냐는 영주의 질문도 아무거나 잘 먹는다고 대답했고, 어딜 가고 싶으냐고 묻는 질문도 아무데나 좋다고 대답했다. 아무거나, 아무데나 하는 대답이 주관이 없어 보이는 것 같아도 한편으로는 모든 것에 잘 적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영주는 모든 결정권이 자기에게 있음을 즐기는 것 같았다. 식당, 다방, 극장으로 이어지는 같이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분위기가 자연스러워져 갔다. 가끔 손을 잡아 끌어당기며 걷는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를 같이 걸으려고 팔짱을 끼고 걷기도 했다. 장교가 되어 부대장 따님 등록금이나 내는 심부름을 하게 됐다는 찝찔했던 마음이 영주의 행동으로 다 사라져 버렸다. 이러한 분위기로 여자와 걸어본 경험이 없는 김 중위에게는 순간 순간이 행복하기까지 했다. 영주는 숙달된 조교처럼 모든 상황을 이끌고 있었다. 어쩌면 부대로 위문공연 나온 연예인처럼 아버지 부하를 위문공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말이 없이 창 밖을 응시하고 있는 영주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김 소령은 핸들을 꼭 쥐면서 담담하게 말을 건넸다.
“놀랐지, 나도 놀랐어. 영주를 보는 순간 옛날 일이 너무 생생하게 재연되어 머리를 스치네. 처음 만난 날 영주가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듯이 워싱톤에 머무는 동안 내가 편하게 해줄게, 부담 같지 말고 대해 줘.”
“부담이 되어서 이러는 것이 아니 예요. 미국까지 와서 김 중위님을 만나니 혼란스러워요. 저도 옛날 일이 어제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김 중위라니, 나 벌써 고참 소령이야”
“그래도 저는 그냥 김 중위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우선 호텔을 정해야겠어”
“조용하고 비싸지 않은 곳으로 갈래요”
“대사관에 근무하려면 그 분야에는 도가 터야 돼, 걱정말고 나한테 맡겨. 그런데 몇 일이나 이곳에 머물 건가? 호텔에서 책인(check in) 할 때 물어볼 텐데.”
“한 닷새 정도 있을까 해요.”
영주는 어색하고 주저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슨 이유로 워싱톤을 오게 되었는지 묻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김 소령은 처음 영주를 만났을 때와는 달리 모든 일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호텔은 포토맥 강이 내려다보이는 메리어트호텔로 정했다. 이 호텔이 영주가 찾는 싸고 조용한 곳은 아니었지만, 경치도 좋고 사무실에서 오고 가기가 아주 편한 곳이었다. 손님을 안내할 때마다 항상 하는 일이지만 김 소령은 더 여유를 부리며 책인을 했다. 열쇠를 몇 개나 줄 것이냐는 상냥한 백인 여자의 목소리에 일부러 약간 큰 목소리로 두 개를 달라고 했다. 카드 열쇠를 두 장 받아 10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작은 공간에 둘 만이 있게 되었다. 잠시 서로의 눈을 마주칠 때마다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주워진 상황에 서로가 적응하기 시작했다. 방은 깨끗하고 전망이 좋았다. 창 밖으로 죠지타운대학 캠퍼스가 보이고, 아래로는 강이 흐르고 도청사건으로 결국 닉슨 대통령을 하야시키면서 유명해진 워터게이트 호텔이 보였다. 옆으로는 케네디 센터가 보이고 조금 멀리는 워싱톤 기념탑 상단부가 보였다.
“아래로 흐르는 강이 포토맥 강이야, 건너편이 워싱톤이고, 우리는 버지니아주에 있어.”
김 소령은 지금 있는 위치를 설명해 주었다. 아직도 그녀는 별 말이 없다. 분위기를 바꾸고 싶은 마음에 김 소령은 영주를 보며 말했다.
“피곤하지 않아? 한국은 지금이 새벽인데.”
“아니, 괜찮아요.”
“그러면, 비행기 음식이 느끼했을 텐데, 가까운 한국식당에 가서 이른 저녁을 먹고 쉬면 어떨까?”
저녁 생각이 별로 없다는 그녀를 데리고 가까운 ‘우래옥’으로 갔다. 이른 시간이어서 인지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영주에게는 김치찌개를 시키게 하고, 김 소령은 곰탕을 시켰다. 영주가 미소를 지으며 김 소령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몸이 좀 나신 것 외에는 그대로 내요. 저 많이 변했죠?”
“응, 조금은...... 하지만 변하지 않은 모습이 훨씬 많아. 조금의 변화 속에 영주의 옛 모습이 그대로 있는 걸. 나는 벌써 배가 나오고, 흰머리 좀 봐? 알아 봐 준 것만도 고마운데......”
영주에게서 서서히 어색함이 사라지고 옛날 모습과 행동이 나타났다. 음식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영주는 한국보다 양이 많다고 하면서 빈 그릇을 달라고 하더니 밥과 김치찌개를 덜어서 김 소령에게 주었다. 영주는 처음 만났을 때도 음식을 많이 먹지 않았고, 음식을 덜어서 김 소령에게 주었었다.
김 중위는 영주를 처음 만난 다음날 부대에 복귀해야 했다. 명동에서 10시가 넘어 헤어지려는데, 영주가 갑자기 다음날 수업이 휴강인데 내일 오전에 만나 같이 서점에 들리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 중위는 대답대신 영주 어머니께 인사 드리고 귀대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혹시 사단장님께 보낼 것이라도 있을지 몰라서였다. 김 중위 속마음은 모처럼 서울에 나와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안 했지만, 부대에 돌아가서 사단장님이 뭐라고 하실 지 걱정이 되어서였다. 영주는 차라리 어머니에게 전화를 한 번 해 보고 결정하라고 했다. 공중전화에 가서 전화하려는데 그녀는 어머니한테 같이 있다고 말하지 말고 등록금을 납부했다는 이야기만 하라고 했다. 사모님은 고맙다고 하면서 저녁에 집에 와서 자고 가도 된다고 했다. 김 중위는 모처럼 나왔으니 어머니한테 가서 자고, 내일 바로 부대로 귀대하겠다고 말했다. 사모님은 김 중위와 영주가 같이 지금까지 지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영주는 내일 몇 시에 만나겠느냐고 다시 물었다. 할 수 없이 오전 10시에 ‘종로서적’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어머니를 만나러 형님 댁에 가면서 여러 생각들이 밀려왔다. 영주가 왜 내일 다시 만나려 하는 것일까? 위문공연이라면 오늘 만남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김 중위는 그녀를 종로서적에서 다시 만났다. ‘지휘관과 참모’라는 책 외에 시집과 월간지도 샀다. 영주에게 책을 선물하려 했지만 그녀는 극구 사양했다. 서점에서 나오자마자 영주가 갑자기 팔짱을 끼며 나직하게 말했다.
“나 기차 타고 싶은데, 춘천까지 김 중위님과 같이 갔다가 돌아올래요.”
김 중위는 무척 당황했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혼자 기차를 타고 돌아올 영주를 걱정하고 있었다. 거부해야 할 순간을 놓치게 되면 더 이상 거부하기가 힘든 때가 많은 것을 김 중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거부를 포기하고 있었다. 청량리를 떠난 기차는 도심을 빠르게 벗어났다. 군인이어서 인지 산 능선에 위장이 잘 된 참호들이 눈에 들어왔다. 간혹 대전차 장애물들도 스쳐 지나갔다. 여기저기 군인들이 휴가를 마치고 귀대하는 모습들이 지쳐 보이기도 하고, 할 수 있으면 귀대하지 않고 싶은 표정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중위와 영주는 아주 오래 사귄 연인들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김 중위는 일찍 군에 갔기 때문에 누구와 데이트를 해 본적이 없었다. 영주처럼 예쁜 여자와 같이 기차여행을 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유야 어찌됐든 다른 사람은 우리 사이를 연인으로 볼 것이라는 생각에 김 중위는 즐거울 뿐이었다. 저 사람들은 영주가 나를 부대근처까지 데려다 주려고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면 이미 결혼한 젊은 부부가 휴가를 마치고 전방부대로 같이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야. 김 중위는 어제보다 훨씬 말을 많이 했다. 고향이야기도 했고, 훈련 받을 때 힘들었던 이야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바로 군대를 가는 바람에 연애도 한 번 못했다는 말도 넌지시 했다. 모든 말들이 사실보다는 부풀려 있음을 느끼면서도 서슴없이 말을 했다. 김 중위는 자신에게 그런 면도 있다는 사실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기차는 어느 사이에 춘천 역에 도착했다. 대합실을 나오기 전에 돌아가는 기차표를 샀다. 약 3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역 앞 광장에는 헌병들이 병사들을 검문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김 중위와 영주는 춘천 호숫가로 택시를 타고 갔다. 영주는 어제에 비해 말이 거의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호숫집’이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갔다. 매운탕과 닭갈비를 시키고 맥주를 시켰다. 이제 부대에 가면 맥주 한 잔 편하게 못 마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맥주 맛이 더 좋은 것 같았다. 영주도 자기도 반 컵만 마셔보겠다고 했다. 영주는 한 모금 마시더니, 자기는 술이 맛이 없다고 하면서도 맥주를 조금씩 계속 마시고 있었다.
“부관님은 참 순진하세요. 어떤 여자가 와서 부탁을 해도 다 이렇게 들어주고 자기 얘기를 할 것 같아요.”
김 중위는 그 순간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하루 만에 열린 편안한 마음이 부끄럽기도 하고, 일방적으로 연인처럼 행동했던 것 갔다는 생각이 치 밀었다. 갑자기 영주가 김 중위님 대신 부관님이라고 직책을 부르는 것도 싫고 이상하기까지 했다.
“저, 사실은 고민이 많은 차에 부관님을 만나 기분 좀 풀어보려고 했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오늘은 제 자신이 너무 싫어지네요.”
김 중위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빠가 군 선배 친척 아들을 소개하셔서 어쩔 수 없이 한 번 만나보았는데, 그 쪽에서 결혼하자고 한다고, 저 보고 사람도 좋고 곧 의사가 될 사람이니 결혼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라고 하세요. 사람은 괜찮은 것 같지만, 나는 아직 학생이고 싫다고 했어요. 그런데, 엄마 아빠는 막무가내로 서둘러요. 그런 사람 다시 만나기 어렵다나요...... ...”
김 중위는 허탈한 심정으로 호수를 쳐다보았다. 새 떼들이 호수에 떠 있기도 하고 떼를 지어 날아와 앉기도 했다. 기러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저는 그 사람과 있을 때는 김 중위님처럼 편안하지도 않고요, 동네 아저씨와 앉아 있는 것 같아서 싫어요.”
이 말에 김 중위는 괜히 화가 치밀었다.
“그러면, 지금은 결혼 못하겠다고 하든지, 싫다고 하세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요. 저의 부모님을 잘 아시지 않아요. 아버지 사단장 마치고 육군본부에서 근무하시고 싶으신데 그 선배 영향이 큰 가봐요...... ......”
김 중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처음 데이트라는 기분이 싸늘하게 식었다. 사랑이 결코 감정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빨리 귀대해서 총이라도 실컷 쏘고 싶어졌다. 총성과 화약냄새는 이런 기분을 없애는데 도움을 줄 것 같았다.
“김 중위님, 이번에는 죄송했어요. 다음에 나오시면 우리 다시 만나요. 다음에는 더 솔직하게 대하고 싶어요. 기차에서부터 사실대로 말할까 망설였는데, 더 이상 말하지 않고는 안되겠어요. 처음 만난 사람과도 이렇게 편안하고 솔직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제는 제 감정에 정직하게 살아볼래요”
음식을 서로 많이 남기고 일어나야 했다. 식당 아주머니가 음식이 맛이 없느냐고 물었다. 아침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라고 둘러 부쳤다. 춘천 역까지 데려다 주는 동안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 김 중위는 어릴 때 손에 쥐기도 힘든 붕어를 잡았다가 놓친 적이 있었다. 이 순간에 그 생각이 왜 나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열흘쯤 지난 주말 오후에 보안부대장이 사단장을 찾아 왔다. 약속 없이도 가끔 그는 사단장을 장시간 면담하곤 했었다. 계급은 소령이었지만 사단장은 그를 장군이상으로 대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늘 들었다. 그 날 사단장 실에 들어가면서 보안부대장이 김 중위를 보는 눈빛이 평소와는 달랐다. 면담을 마치고 나간 후 사단장이 김 중위를 대하는 태도 역시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김 중위는 부대에 진급에 관계되는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9시 저녁 뉴스가 끝나자 사단장이 김 중위를 불렀다.
“김 중위, 너 후방에 가서 근무하지 않을래.”
너무나 갑작스런 말이었다. 부관으로 근무한지 일 년도 안되었고, 무슨 실수를 한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저는 전방이 좋습니다. 사단장님 끝까지 모시겠습니다.”
“야, 임마! 너 영주를 어떻게 춘천에서 만났어? 말해봐. 대답을 들을 것도 없어. 이번에 특과로 전과하는 모집이 있는데, 너 다른 병과로 전과해. 그렇지 않으면 보직도 못 채우고 직책에서 쫓겨 난 것으로 되면, 너 앞으로 군대생활도 못해. 이게 내가 너에게 베푸는 마지막 호의야, 알았어.”
이 일로 김 중위는 보병에서 병기 병과로 전과를 하게 되었다. 영주 아버지는 사단장을 마치고 육군본부 참모로 갔고, 나중에 군단장이 되었다. 영주는 대학 3학년 때 아버지가 소개한 그 남자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한 대령이 영주 아버지를 만난 것은 군단장 시절이었다고 했다.
호텔로 돌아와 옥상에 있는 카페로 가서 차를 한 잔 하기로 했다. 김 소령은 영주를 다시 만나게 된 것에 이상한 감정이 일기 시작했다. 영주를 그때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보병장교로 전방에 있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 후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면 우린 어떤 사이가 되었을까?
“벌써 15년도 넘는 지난 이야기지만, 사과할 게요. 김 중위님이 저 때문에 부산으로 교육받으러 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부산으로 바로 찾아갈까 하다가 아버지가 아시면 김 중위님에게 더 피해가 갈 것 같아서 그만 두었어요. 어머니가 아시고 우리가 오래 사귄 것처럼 말씀하시면서, 절대 군인은 안 된다고 하셨어요. 죄송했어요.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때 기분은 오래 간직하고 있었어요.”
“무슨 소릴 해, 다 지난 일이고 서로가 죄송할 만한 일은 아니지. 그런데, 영주를 만나고 이런 생각은 많이 했지. 사람이 스치는 인연에도 상처가 될 수 있기도 하고, 사는 방향을 바꾸게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 말야. 아버지가 만약에 병기 병과로 전과를 안 시켰으면 내가 오늘 대사관에 근무할 수 있었겠어. 그러니 옛날 이야기는 그만하고, 워싱톤은 왜 왔어?” 물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질문이 불쑥 튀어나왔다. 영주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내 눈을 피하려 했다. 어색해진 김 소령은 분위기를 바꾸려고 옛날 기차에서처럼 대사관 근무를 나오게 된 이야기부터 이곳에 근무하며 있었던 일들을 두서 없이 이야기했다.
“저 열 세 살짜리 딸이 하나 있어요. 얘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어해서...... ......”
갑자기 신문사설이 김 소령 머리를 스쳤다. 김 소령은 어렴풋이 짐작을 하면서도 그러한 문제로 미국을 방문한 것이 아니었으면 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아내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다. 멀지 않은 이웃에 사는 분은 남편이 바람이 나서 이혼하려는데 아들 때문에 이혼도 못하고, 남편이 미국에 가서 아들을 교육하고 있으면 생활비는 넉넉히 보내 주겠다고 약속해서 그냥 화 김에 나와 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갈수록 돈이 적게 오고, 아이는 아이대로 문제가 있어 자살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소령은 남편과의 관계는 묻고 싶지가 않았다.
“혹시 유학을 하게 되도 교포들이 많이 살지 않는 지역이 좋은 점이 많다고들 하던데...... ......”
“걱정 마세요. 워싱톤으로는 안 올게요. 그리고 김 중위님 있으면 더욱 안 오고요.”
웃으면서 말하는 영주가 지금 진심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어색하게 흘러갔다. 김 소령은 결혼 후에 처음으로 다른 여자와 부담 없이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다가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집에는 몇 시까지 들어 가셔야 되요? 사모님 기다리실 텐데.”
지금 영주가 시간을 묻는 것이 아니라는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김 소령은 결혼이 좀 늦어서 이제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둘이라는 것과 아내가 자기를 잘 아껴 준다는 말을 했다. 김 소령은 자기가 늦게 결혼한 이유가 영주와 관련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오늘은 가능한 가정이야기는 해서는 안 된다고 마음먹었다. 김 소령은 이곳은 근무시간이 따로 없고 오늘 같은 날은 안내를 마쳐야 끝이라고 영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면, 어디 구경시켜 주세요. 지금부터 방에 들어가 혼자 있을 수도 없을 것 같아요. 오늘은 가능한 다른 사람 눈에 안 띄는 곳으로 가시죠.” 김 소령은 웃음이 나왔다.
“오늘은 다른 사람이 보는 곳이 안전한 곳이야, 만약 사람이 없는 곳에 있다가 한 대령이 보면 또 어떤 일이 있게 될지, 안 그래?”
김 소령은 영주를 워싱톤 광장으로 데리고 갔다. 백악관을 차에서 보여주고, 링컨 기념관을 보여주었다. 링컨 기념관 오른 편에 있는 한국전쟁기념공원도 보여 주었다. 분대로 정찰대형을 이루고 서 있는 동상들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자유는 공짜가 없다”는 영문 글귀가 선명하다. 김 소령은 군인이 된 뒤에는 무명용사 무덤 앞에서나 태극기가 펄럭이는 순간에는 항상 가슴이 뭉클해지곤 했었다. 포토맥 강변을 잠시 걷다가 강을 바라보며 잔디밭에 앉았다. 저녁이 되면서 날씨가 조금 차가워지고 있었다. 해가 강 저편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철새들은 물 위에 무리를 지어 밤을 기다리고 있고, 어디를 다녀오는지 기러기 떼가 대형을 이루고 날아와 수면에 파장을 일으키며 앉는다. 다들 이 밤을 맞을 준비가 끝났듯 했다. 피곤했던지 어깨를 잠시만 빌려달라며 고개를 김 소령 어깨에 기대던 영주가 잠이 들려고 했다. 김 소령은 무릎을 베고 잠시 눈을 붙여보라고 했다. 영주는 아무 거부반응 없이 무릎을 베고 잠이 드는 듯했다. 강 건너 공항에 이 착륙하는 비행기 소리가 요란한데도 영주는 꼼짝하지 않았다. 얼굴을 바라보다가 볼을 한번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손을 가볍게 볼에 대 보았다. 하얀 얼굴이 피곤해 보이지만 부드러웠다. 김 소령은 영주를 다시 만난 것이 무슨 운명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부담스러웠다. 영주의 얼굴을 다시 내려다보려는데 잠자고 있는 줄 알았던 영주가 갑자기 어깨를 들먹이며 울고 있었다.
“영주,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면 나쁜 꿈꿨어?”
“호텔로 갈래요. 데려다 주세요.”
“영주, 미안해 그냥 자는 모습이 편안해서 얼굴을 한 번 만져본 것 뿐이야...... ......”
“누가 만졌다고 그래요, 어서 호텔로 가요. 그리고 오늘은 일찍 들어가세요. 지난 일 주일 내내 손님들 안내하셨다면서요.”
너무 완강한 태도에 김 소령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호텔로 돌아가는데 전화가 울렸다. 한 대령이었다. 어느 호텔에 묵게 했느냐고 물었다. 메리어트 호텔이라고 했더니 잘했다고 칭찬했다. 지금 호텔로 갈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자기가 집으로 데리고 가서 저녁을 대접하고, 만약 원한다면 자기 집에 머물게 하겠다고 했다. 영주에게 전화 내용을 설명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호텔에 도착해서 한 대령이 곧 올 것 같으니 씻고 옷을 갈아입으려면 그렇게 하라고 하고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지나서 한 대령이 도착했다. 지금처럼 손님이 자주오면 너무 힘들어서 빨리 귀국 하든가 해야지 못 견디겠다고 한마디 했다. 김 소령이 수고했다는 말을 간접적으로 하는 표현이었다. 방으로 전화를 해서 영주에게 한 대령이 도착했음을 알려 주었다. 영주가 옅은 밤색에 빨간색 줄무늬가 돋보이는 드레스를 입고 내려왔다. 한 대령이 김 소령에게 오늘 수고했으니 그만 일찍 집에 가서 점수 좀 따라고 하면서 혹시 내일 필요하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김 소령은 한 대령에게 수고하시라고 인사를 하고 영주를 잠시 바라보고 편히 쉬라고 했다. 영주도 오늘 수고하셨다고 인사를 하며 김 소령을 바라보는데, 영주가 뭔가를 숨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집으로 향하는 김 소령은 결혼 후 처음 느끼는 묘한 기분에 마음이 무거웠다. 아내는 누구를 안내하는데 오늘은 일찍 들어온다고 반기면서 다음에 누군지 만나면 상 줘야겠다고 농담을 했다. 아무 대답이 없이 이 층 방으로 향하는 김 소령에게 아내는 어떤 손님이냐고 물어보았다. 김 소령은 회의 때 오신 분 중에 아직 출발 안 하신 분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자기 전에 뉴스를 점검하려고 인터넷을 켰다. 맥아더 장군 동상을 두고 갈등이 고조되는 듯 하다. 촛불 시위가 있었을 때, 한 한국전 참전용사가 자기 전우가 부산 유엔묘지에 묻혀 있는데 누가 꽃이라도 꽂아 주느냐는 질문에 시원한 답을 못했던 생각이 스쳤다. 사람들은 살면서 같이한 마음은 말하지 못하고 서로 다른 말만하고 사는 지도 모른다. 눈물을 보이던 영주의 모습이 영 지워지지 않았다. 수면에 미끄러지듯 앉는 새들이 생각나면서 갑자기 기러기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고 싶어졌다. 검색 난에 기러기를 치고, 클릭했다. 탐 왓슨이 말한 ‘기러기가 주는 다섯 가지 교훈’ 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기러기는 날개를 퍼득거릴 때, 뒤따라오는 기러기에게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V'자 모양의 대열을 형성하여 날 때 전체 무리는 혼자 날아 갈 때보다 비행할 수 있는 거리가 71%나 늘어난다. 기러기는 대열에서 뒤쳐질 때마다 혼자 나는 것에 싫증과 반발을 느낀 나머지 곧 앞선 새의 활력을 이용하려고 재 빨리 대열에 합류한다. 앞 선 기러기가 지치게 되면 그 기러기는 대열의 뒤로 빠지고 대신 다른 기러기가 앞으로 나가 길잡이 역할을 하게 한다. 대열의 뒤를 따르는 기러기들은 선두가 속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해 울음소리를 낸다. 기러기 한 마리가 아프거나 부상을 당하거나 총에 맞아 떨어지면 다른 기러기들이 대열을 떠나 그 기러기를 보호하거나 호위한다. 기러기들은 부상당한 기러기가 다시 날 수 있거나 혹은 죽을 때까지 그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런 후에야 기러기들은 또 다른 대열을 형성하거나 원래 무리를 쫓아 계속 이동한다.
영주한테 보여주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마우스를 이동하여 프린트를 했다. 내일 만나게 되면 직접 주는 것보다 간접적으로 전달하여 혼자 있을 때 읽어보도록 하고 싶어졌다. 집에 있는 안도현의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집에 프린트 된 종이를 접어서 넣었다.
새벽까지도 잠이 들지 않았다. 차라리 일찍 일어나 출근하고 싶어졌다. 아내는 피곤하다면서 더 자지 그러느냐고 말했다. 아내에게 그냥 더 자라고 이마에 키스를 해 주고 일어났다. 출근길에 맥도널드에 들려 간단한 에그머핀과 커피를 시켜 운전하면서 아침을 해결하는 것이 가끔은 즐거웠다. 한 대령은 점심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출근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숙소로 전화를 해 보았더니, 사모님이 영주를 안내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소령은 역시 한 대령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소령은 일이 밀려 있는데도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오후 네 시쯤 한 대령이 부대로 혼자 돌아 왔다. 김 소령은 영주씨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영주, 오늘 오후에 뉴욕으로 간다고 해서 내가 점심사주고 비행장에 데려다 주고 왔지. 참, 영주가 김 소령한테 고맙다고 하면서 이거 주던데, 어제 수고했어.”
김 소령은 한 대령으로부터 영주가 준 선물을 받았다. 사무실에서 풀어 보려다가 어제 영주와 같이 앉아 있었던 포도맥 강가로 가고 싶어졌다. 강물은 여전히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새들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강 저쪽 구석에 오리 한 마리가 떠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선물을 뜯어보았다. 목도리였다. 작은 쪽지가 있었다.
“더 기대고 싶기 전에 갈래요. 때로는 다 그만두고 싶고 버리고 싶지만, 그런다고 마음 편할 수 있겠어요. 이것저것 묻지 않아 고마웠어요.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아 기뻤고요.”
김 소령은 쪽지를 여러 번 읽어보았다. 처음 만남은 이틀이었고, 이번에는 단 하루도 아닌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오랫동안 사귀다 이별한 것 같은 심한 고독함이 엄습했다. 시집에서 기러기에 대한 글을 꺼내 종이배를 접었다. 종이배 위에 영주가 남긴 쪽지를 접어서 올려놓고, 배를 강물에 띄워 보냈다. 기러기가 떼를 지어 날아오고 있었다. 뒤쳐진 기러기 한 마리가 본 대열에 합류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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