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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현실의 경계를 산 명동백작 박인환

Author
mimi
Date
2012-07-02 07:43
Views
17066

 



신화와 현실의 경계를 산 명동백작 박인환


                                              - 김백겸(시인, 웹진 시인광장 主幹)

 

 




 

1.천재인가 피에로인가


 

  박인환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1949년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고 ‘후반기’동인을 발족하는 주역으로 한국모더니즘의 기수였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박인환의 동료였던 김수영은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나는 인환을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 그처럼 재주가 없고 그 처럼 시인으로서의

소양이 없고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인환을 회고하는 다음사람들의 진술은 좀 다르다. 박인환이 31살(1956년)에 과음

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타계한 후 조병화는 ‘나를 부르는 소리’의 산문에서 다음과 같이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마지막 인환을 본건 그가 갑자기 숨을 거둔 다음날 아침이었다. 전날 밤까지도 이진섭군과

술을 마 셨던 그 얼굴이 그렇게도 창백한
얼굴로 변해 석고상처럼 누워있을 줄이야! 아, 아깝다,

그 재주, 그 기질, 그의 생동하는 시 세계.

 

  김규동은 ‘한 줄기 눈물도 없이’라는 추모 글에서 역시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박인환은 오장환을 통해서 시를 쓰는 기법과 리듬의 화려한 섬광을 발견해 낸 듯 보이며,

그래서 정신의 귀족주의적 일면도 서로
흡사한 데가 있어 보인다. 허무와 통하는 정신적

귀족주의- 그 것은 보들레르의 댄디 정신이나 악마적 낭만주의와도 서로 맥이 통하는
정신적

요소들이 아닌가 싶다.

 

  박인환보다 8살 연상이며 모더니즘운동을 같이 했던 김경환은 ‘인환과 나와 그리고 현대시

운동’에서 박인환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문단의 선배들은 한결같이 인환을 ‘버릇없는 친구’라고 통칭하였던 일이다. 그것은 그가 문단의

연조나 연령의 고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姓밑에 ‘형’을 붙여 부르며, 예의를 차리지 않는데서 오는

것이었다. 어떤 선배는 나에게 인환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충고조차 하였지만, 나는 인환의

타고난 재능과 놀라울이만큼 모더니즘에 대한 강력한 집념과 정열을 높이 샀기 때문에 항상

인환을
뒤에서 옹호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
환 작야음주昨夜飮酒로 急死. 봉래奉來.’ 이봉래의 메시지를 나는 너무나 뜻밖의 일이어서

믿지 않았다. ‘너는 왜 그렇게도 좋아하던
모더니즘과 조니워커Jonnie Walker와

럭키스트라이크Lucky Strike를 어디에 버리고 말없이 누워있는가’ 창백해버린
그의 얼굴 앞에서

그의 가족들의 울부짖음이 작열하는 가운데 나도 또 울고 또 울었다. 그를 망우리에 버리다 시피

하고 돌아오던 날
우리는 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러나 인환은 우리의 가슴속에서 언제까지나

살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으며, 또 그의 작품 몇 편은
훗날에 꼭 빛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차영은 ‘박인환의 높은 시미학의 위치’라는 글에서 모더니즘시인으로 이상과 박인환을

비교하고 있다.

 

 
간적인 측면으로 대비할 때 우선 둘의 생애가 다 같이 요절로 마쳤다는 점이다. 이상은

1910년에 나서 1937년에 죽었다.
우리나이로 28세, 만으론 26세7개월, 박인환보다는 3년을 덜

살았다. 또 둘은 희유稀有의 천재성을 발휘했거나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상은 병적 천재성,

박인환은 남다른 노력의 끈기, 이런 걸 보였다.

 

  김차영은 또한 이상의 친구 조용만과 박인환의 후견인 이봉구의 회고를 통해 이상과 박인환의

포로필을 다음과 같이 비교하고 있다.

 

  이상은 평생 빗질을 해본 일이 없는 덥수룩한 머리와 洋人같이 창백한 얼굴에 숱한 수염이

창槍대같이 뻗치었고 ‘보헤미안 넥타이
겨울에도 흰 구두를 신고, 세수는 며칠에 한 번씩

하나마나 하고. 오정午正전에 일어나 본 일이 거의 없고, 토목 기술로의 정상한
직업을 내버리고

다방을 경영하고, 金海卿이란 본 이름을 李相이라고 고쳐버리는 괴짜였으며 활동사진 변사 같은

말투로 말하는 것이
곡마단의 요술쟁이 같았다.

 
초조와 흥분 때문에 인환의 성격은 칼날처럼 푸르렀다. 멋과 기분이 없이는 한시도 살수

없었던 인환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두발頭髮의 형까지도 ‘상고머리’로 깎아 태연자약 명동거리를

돌아다니었다. 험프리 보가드Humphrey bogart를 본 뜬
머리라고 기분을 내면서, ‘머리가 길어야

예술가답다는 견해는 이미 낡은 세대의 유물이야, 구역질나서 볼 수가 없어-’큰 소리로
남의

머리까지 시비하려들었다.

 

 

2. 음악신동 모차르트와의 비교

 

 
‘아마데우스’에서 묘사된 모차르트는 박인환처럼 기분파이며 경박하기 짝이 없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자신의 작품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궁정의 실력자 ‘살리에르’를 무시하고 조롱하는

행동으로 적을 만든 후 그의 복수를 초래한 신중하지 못한 처세를 보여주고
있다. 방탕하고 거만

한데다 놀기 좋아하는 천성, 돈에 대한 절제가 없어 언제나 빚에 전전긍긍하는 생활. 현실인간으로

보면 그리
후한 점수를 줄 수가 없다. 그러나 일상인이 아닌 꿈의 인간으로 보면 그의 음악이

이십사 시간 지구전파를 타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초래한 신동이었다. 박인환을 모차르트의 큰

업적과 감히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같이 요절한 예술가라는 점. 둘 다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한

나르시스트였다는 점. 예술병리적인 조증躁症의 전형적인 행동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모차르트의

생애를 통해 박인환을
비유적으로 드러내보고자 한다.

 

  백과사전에서는 조증躁症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상쾌감이 주를
이루고, 낙천적·해학적인 경향이 높아지며 자아감정이 고조되면서 때로는

피자극성·거만·무례 등을 노골적으로 나타내는 일이 많다.
사고의 주체를 정확하게 포착하기가

곤란해지고 관념의 난조를 보일 때가 많으며, 욕동항진(欲動亢進)도 볼 수 있고,
다동적(多動的)·

무궤도적(無軌道的)으로 빠지기 쉽다. 신체적으로는 건강감에 넘쳐 있고 수면시간이 짧은 데도

피로감을 크게 느끼지
않으며, 그 때문에 체력소모가 많다.

 

 
‘체력소모가 많다’라는 구절에 나는 주목한다. 의사들의 유머로 ‘의사 한명이 평생 보는 환자수가

정해져 있다는 말이 있다.’
젊어서 하루에 환자 백 명씩 보는 의사는 무리해서 병사하거나 말년이

신통치 않을 확률이 많다는 얘기다. 양생가들은 인간이 태어날 때
평생호흡수와 심장박동수가

정해져있다고 믿고 한 호흡의 시간을 늘이는 복식호흡을 해서 수명을 연장하고자 한다. 이런

개연성에
비추어 볼 때 젊어서 천재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경우는 에너지가 일반인보다 활성화 된

경우가 많고 조증躁症의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잠을 3시간만 자고 일에 몰두하며 목표

지향적인 행동을 한다. 나폴레옹의 경우와 같이 모차르트도 젊어서 과도한 에너지를
소모한

케이스다.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는 밤을 새운 작곡으로 체력을 소모하는 장면이 나온다.

모자란 칼로리는 술로 채워가면서
精神을 소모하는데 천재의 사업은 이루나 유한한 몸의 精과

머리의 神은 고갈되어 단명했다.

  주위 사람들의
증언으로 볼 때 나는 박인환의 경우도 이 케이스로 보고 싶다. 박인환은 약관

21살에 문단에 데뷔하고 서점 ‘마리서사’를
경영하다가 파산 후 자유신문사 문화부기자를 하며

22세에 양병식, 김차영, 김규동, 김수영 김경희 김병욱 김경린과 동인지
〈신시론〉제 1집을

준비한다. 24세에는 김경린,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과 함께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한다.
경향신문사로 직장을 바꾼 후에는 이한직, 조향, 이상로등이 새롭게 가담한 ‘후반기’

동인을 결성하는 모더니즘 문학사의 주요사건들을 약
3년에 걸쳐 박인환이 주도했다.

  윤석산은
『박인환 평전』에서 “박인환은 체질적으로 선두의식이 강한 사람이었다. ...젊은이

특유의 의욕...새로움을 추구해야한다는 시대적
필연성은 젊은 문학도 박인환을 더욱 강하게

부채질 했을 것이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동인을 결성하기 위해 일면식도 없는 김경린을
찾아간

박인환의 느닷없는 방문에 놀란 김경린의 회고도 박인환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회색 싱글에 노타이의 경쾌한 모습인 그는 아주 핸섬한 청년이어서 마치 영화배우와 같은

인상마저 풍기고 있었다...나는 이
이색적이고 당돌하기까지 한 미지의 방문객에 다소의 경계심을

가지고 맞이 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이를 눈치챘던지, “김형은 나를 잘
모르실 테지만, 나는 김형이

일본에서 모더니즘 운동단체인 ’바우(VOU)'그룹에 참가하였던 사실과 그 당시의 김형의 작품을

읽고
있어서 김형을 잘 알고 있소.” 이렇게 그는 십년지기를 찾아온 사람과도 같이 청순하고 악의

없는 웃음으로 악수를 청해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때의 인환의 그 웃는 얼굴을 아직도 버리지

못할 만큼 그의 웃음에 매료되고 말았다.‘

 


  조증躁症으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향은 사고의 비약과 다변, 팽창된 자존심,

사회에서의 목표지향적인 활동의 증가로 나타난다.
통제 가능한 정신 상태에서의 조증躁症은

카리스마의 성향을 지니며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재주가 있다. 히틀러나 처칠 같은 성공한
정치가

나 사업가들이 명연설과 포부로 사람들을 감복시키는 장면을 다큐에서 보듯 천재들의 정신과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을 매혹한다.

  지인들의
증언으로 볼 때 박인환도 이러 매력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박인환은 감격을 잘하고

‘눈을 부리부리하게 굴리면’ 작품 한편이 써지는
재주를 가졌다고 한다. 비유하자면 시를 단숨에

쓰는 李白 스타일을 구사했다. 유명한 「세월이 가면」이 이렇게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다시

윤석산의 『박인환 평전』을 인용하면 이 작품이 탄생한 배경이 생생하게 그려져있다.

 

 
1956년 이른 봄, 박인환은 〈경상도집〉에 홀로 앉아 대폿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한다...그 때

그곳을 지나가던 극작가이며
언론인인 이진섭이 박인환의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술집으로

들어와 합석을 한다. 이 때 박인환이 모습은 왠지 쓸쓸했고 또
우울해 보였다고 한다. ..박인환이

문득 종이와 펜을 꺼내더니 무엇을 끄적이며 써 내려갔다... 이진섭은 매우 간결하며 호소력이

있는 시 〈세월이 가면〉을 읽고 또 읽다가 문득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곡을 붙였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노래〈세월이 가면〉을
이 두사람이 서로 시창始唱을 해 보는데 , 마침 이곳을

들른 테너 임만석이 합석을 하고 , 임만석이 그 청아하고 고혹적인
목소리로 이 〈세월이 가면〉을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문학의 기쁨과 창작의 희열을 제일 가치로 쳤던 박인환의 성격은 모차르트가 자신의 창작과정을

적은 모차르트의 정신과 별로 다르지 않다. 다시 모차르트의 노트를 인용해보자.

 

  마차를 타고 여행을 할 때 , 맛있는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할 때, 잠을 이룰 수 없는 밤, 말 그대로

완전히 홀로 있으면서
기분이 좋을 때가 바로 아이디어가 제일 잘 떠오르고 가장 풍부할 때이다.

언제 어떻게 악상이 떠오르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억지로
떠 올릴 수도 없다. 나를 기쁘게 해주는

바로 그것을 기억해 둔다.....이 모든 것이 나의 영혼에 불을 지핀다. 그리고
방해받지 않으면 내

주제는 저절로 확장되고 형식을 갖추고 모습을 드러낸다....이 때의 기쁨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
모든 일들이 생생한 꿈처럼 벌어진다. ....나는 정말이지 공부를 해 본적이 없으며

독창적이려고 애쓰는 법도 없다.
(낸시.C.안드리아센의 『천재들의 뇌를 열다』)

 

 
천재들의 창조성을 연구한 낸시.C.안드리아센에 의하면 흥미로운 결과가 있다. 창조성은

일반적으로 지능이 높을 수록 좋을 것
같지만 실제로 창조적인 위업을 달성한 인물들의 아이큐는 120-130정도가 많았다 한다. 어느 수준에 이르면 지능과는 상관이
없으며 창조적인 사람의

특징적인 성격에는 ‘어떤 경험이든지 수용하려는 자세, 모험을 감수하는 성격, 저항적인 성격,

개인주의,
감수성, 장난기, 꾸준함 , 호기심 그리고 단순함등이 포함된다. 창조적인 사람은

선입관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 신선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다.’

라고 말한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모차르트의 성격과 창조성이 금방 눈에 들어온다. 내가
판단하

기에는 박인환도 이런 성격의 유형에 든다. 박인환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영화등 서구의 신사조에

호기심이 많고 아메리카로
충동적인 여행을 떠나는 등 관습에 억매이는 삶을 뒤로 했다. 경기공립

중학교를 자퇴하고 한성학교 야학을 다닌 점,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단하고

〈마리서사〉서점을 경영한 일. 시창작이 인생의 제일가치였던 점은 그의 성격과 인생관에

기인한다.

 

 

3. 「마술피리」와 「목마와 숙녀」


  최
근에 서울 시인의 초청으로 시골시인인 내가 눈과 귀를 호강한 적이 있다. LG아트홀에서

국립오페라단의 「마술피리」를 독어공연에
한글자막으로 감상했는데 음반과 dvd로만 듣던

작품을 서울 시립교향악단의 생음악으로 듣노라니 음장의 생생함이 꿈 같았다.
오디오매니아

들은 작품의 음악성보다 소리의 음악성에 더 매료된다. 오디오기기에서는 짤리던 바이올린의

초고역과 콘트라베이스의 초저음이
피부에까지 다가와서 음악으로 목욕을 하는 기분이었다.

모차르트음악을 기분 좋은 칵테일
럼 폄하하는 사람도 있는데 「돈조반니」와 더불어

「마술피리」는 음악의 경쾌함과 무거움, 동화적이며 신화적인 주제가 조화를 이룬
상징과

알레고리가 뛰어난 작품이다. 22년산 스카치정도의 매력은 있는 작품이라 배우들의 기량과

편차가 좀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음악에 취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었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가 인간정신의 비밀한 내면을 찾아 떠나는 자아완성의 알레고리라면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는 육이오에 피폐한 한반도의 처지와 당대 지식인의 비애 상실 허무한 현실인식으로부터

초월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모차르트는「마술피리」의 상징을 빌어서

내면의 어두운 고난과 시련으로부터 지혜와 빛의 세계로 가는
‘타미노’왕자와 시종 ‘파파게노’의

아니마(Anima)찾기 여행을 그려냈다. 박인환은  버지니아.울프의 생애에 자신의 생애를
투사하고

자살함으로서 현실을 초월한 천재작가의 삶을 빌어 자신의 아니마 를 표상하고자 했다. 그 도구는

시에서 다소는 고의적으로
설정한  「목마와 숙녀」이다. 목마는 현실의 말(馬)이 아니라는 점에서

관념 속의 말이다. 그 관념의 말에 탄 숙녀 역시
‘버지니아.울프’이면서 ‘내가 사랑하는 소녀’인

박인환의 이상적인 여인상이다. 내가 보기에「마술피리」가 모차르트 최고의 작품이라면

「목마와 숙녀」는 박인환의 최고작품이다. 예술가의 평가는 작품의 생산량도 중요하지만

예술정신의 깊이와 높이로 흔히 평가한다.
작품 하나만 남긴 작가가 예술정신의 깊이로 시대와

문화에 깊은 인상을 남긴 예도 있다(「가까운 예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떠오른다).

모차르트는 아니마를 통해서 지혜의 완성에 이르는 인간의 통합이라는 큰 스토리를 그려냈으나

박인환은 현실과 이상의
통합이라는 큰 주제에 이르지 못하고  아니마의 위안과 유혹으로 현실

도피하는 지식인의 우울과 상심을 드려냈다. 큰 천재의 시야와
작은 천재의 시야차이는

명확하다.「목마와 숙녀」를 읽어보자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生涯)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少女)는

  정원(庭園)의 초목(草木) 옆에서 자라고

  문학(文學)이 죽고 인생(人生)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孤立)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作別)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未來)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木馬) 소리를 기억(記憶)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意識)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靑春)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雜誌)의 표지(表紙)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木馬)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ㅡ



 
박인환의 현실초월 의지가 가장 잘 드러난 행이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靑春)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이다. 가상세계에서 박인환이 현실허물을 벗고 새로운 이상향을

찾아가는 내면의 수단은 「목마와 숙녀」이나 현실에서는
결국 “술”이다. 술은 마약의 일종이며 정신의

非常을 매개한다. 음악도 내면의 정신을 취하게 하는 마약(「마술피리」에서는 피리와
종의 은유) 이며

초월의 상태를 만들어낸다. 둘 다 인간생활에 중요하지만 “술”은 정신의 고양이라는 고매한 목적에는

격이
떨어진다. 세계관이 차이 즉 세계인식의 깊이와 공부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반인에게는

「마술피리」의 주제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므로 박인환식의 초월이 더 낭만적(감상적이라는

의미로)이며 현실적인 대안인 “술”로 일반인에 어필한다. 이 작품은
독자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버지니아.울프라는 천재작가 있는데 현실의 불우로 고매한 정신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죽었다.

나 박인환도 천재의 시혼을 가졌으나
현실이 이 시혼을 펼치는데 적합하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술과

함께 버지니아.울프이자 내가 사랑하는 소녀가 목마를 타고 떠나는
방울소리를 들으며 슬퍼한다(방울

소리는 「마술피리」에서 파파게노의 ‘종소리’에 대비된다). 가을 바람소리 같은 슬픔은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울고 결국 나도 울고 있다.


  통속적이되 적당한 지적인식이 들어가 있고 「목마와 숙녀」라는 상징이 상상의 폭과 여운을 남겨준다.

“방울소리”와 “가을 바람 소리”가
접 들리지는 않지만 “목마”의 말발굽소리가 어울려진 소리가

회화적인 풍경에 녹아들아 관객의 가슴에 어필한다. (고백하자면 고등학교
때 이 시를 읽었을 때는

주제가 무엇인지 혼돈스러웠다. 정서는 강하게 통일되어서 느낌은 알겠는데 이야기의 삽화는

산만스러웠다.
시를 좀 공부하고 나서야 이 정도라도 주관적인 해석이 가능해졌다)

 

 
「마술피리」의 백미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이다.  연속되는 고성부의 음표 때문에 웬만한

소프라노들이 도전하기 어려운 아리아인데
조수미가 이 곡을 무난히 소화해서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었다. 곡도 훌륭하지만 이 곡의 가사도 만만치 않다. 대본은 엠마누엘
쉬카네더가 썼는데 모차르트가

작곡을 하면서 평범한 대본을 작품성이 있는 대본으로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차르트의 사인이

불분명한 탓에 모짜르트가 프리메이슨 단원이었고 이 작품에 프리메이슨의 비밀이 지나치게 노출되어서

프리메이슨에 의한 문책 독살설마저
있다고 전한다.  프리메이슨은 기하학Geometry,직관Gnosis,

신God의 3G를 추구한 단체인데  「마술피리」에서는 세
개의 문, 세 명의 승려, 세 명의 노예, 삼각형의

피라미드, 세가지 시련, 세 번씩 반복되는 同型진행들의 상징에 이 비밀을
담았다는 분석이 있다.

(김주현, 마술피리,모찌르트, 프리메이슨 해설 참조)


  사랑에 눈뜬 남자여, 두려워마라

  그대가 본 것은 나의 순결한 딸

  순수한 열망의 젊은이여

  자식을 잃은 어미의 탄식도 들으시오

  고통은 내 운명의 그림자

  신이 점지하고 가슴으로 안은 내 딸을

  악마에게 빼앗긴 그날.

  모든 환희가 고통으로 바뀌었다오

  나는 눈을 감으면 딸의 눈이 보인다오

  무서워서 커진 아이의 동공 속에는

  작은 몸이 또 하나 웅크린 채 떨고 있소

  그 아이도 나를 보면서 말이오



  나는 딸의 목소리가 항상 들린다오

  끌려가면서 이 아이는 내게 손을 뻗으며

  “구해줘 엄마!”라고 소리치오

  그 때마다 어미의 가슴은 찢어진다오



  젊은이여, 순수한 그대가 희망이오

  구원자여, 기구한 여자를 구하시오

  승리자여, 예언된 운명을 따르시오

  그리하여 영원히 내 딸을 가지시오


  
융의 아니마 이론에 의하면 아니마의 최고의 형태가 남자에게는 여신, 여자에게는 영웅 아니무스로

나타난다. 주인공인 타미노와
파미나의 내면 영혼을 향해 「밤의 여왕」이 서로의 결합을 호소하는 이

노래는 높은 고성부의 에너지로 인간의 마음을 뒤 흔든다.
「마술피리」의 아니마는 어두운 신과 영웅

이미지로 표상되고「목마와 숙녀」아니마는 시인의 이상형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로 나타난다.
아니마가

남자예술가의 일생을 지혜와 능력의 길로 안내하는가 Femme fatal로서 채울 수 없는 환상과 욕망에

탈진하도록
몰아가는가의 여부는 예술가의 무의식구조와 운명이 좌우한다. ( Femme fatal 때문에

남자의 일생이 파멸하는 케이스로서
사이렌과 로렐라이 설화가 있다. 영화에서도 매력적인 毒婦에

남자가 파멸하는 스토리가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현실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천재와 한국의 천재차이가 있지만 예술이 아니마의 승화라는 이론으로 두 작품을

설명해보자. 「마술피리」는 주인공인
타미노가 ‘밤의 여왕’의 부정적인 힘을 극복하고 높은 정신의

차원에 통합되는 반면 「목마와 숙녀」에서는 자살한 버지니아 울프에게
자신의 아니마를 투사함

으로써 슬프고 고독한 일생을 살아야하는 박인환의 일생을 암시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에 착종錯綜을

일으키는
무의식의 은밀한 의도는 통상적인 수준에서의 인간 이해를 벗어난다. 무의식의 세계에 있는

아니마는 내부세계와 자기(self)를
연결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한 예술가가 위대한 작품을 생산

하는가 범속한 작품을 생산하는가는 아니마로 표상되는 예술혼(시혼)에
달려있다. 아니마의 형태는

성장하면서 겪는 어머니의 사랑과 영향아래서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 이상의 시간에

걸친
인간존재원형과 관련된다. 우리는 보통 이를 運命이라는 단어로 예술가의 불가해한 삶을  단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4.리얼리스트로서의 박인환


  앞
에서도 언급했지만 박인환에 시세계에 대한 평가가 다양하다. 김기림 정지용에 이어서 ‘후반기’

동인들과 더불어 한국의 모더니즘을
새롭게 개척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인 주류해석이다. 조금 더

분석해서 이상이 프랑스의 다다이즘과 쉬르레알리즘의 영향을 받았다면 
박인환은 에즈라 파운드의

영미 이미지즘의 영향을 받아 모더니즘 운동을 시작했다는 평가가 있다.(김차영, 「박인환의 높은

시미학의
위치」)

  지
식인으로서 박인환이 사회참여의식으로 모더니티를 추구했으나 ‘시형식상 모더니즘 시를 쓴 것은

아니다’라는 분석도 있다.  박인환이
「선시집 」후기에 ‘시를 쓴다는 것은 내가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것이었다. 나는 지도자도 아니며
정치가도 아닌 것을 잘 알면서

사회와 싸웠다.’고 썼다. 이를 들어 박인환이 개인적인 시를 통해 시대적인 아픔과 고통을
드러냈다는

해석이 있다.(맹문재, 「폐허의 시대를 품은 지식인 시인」)

  박
인환이 대한해운공사에 잠시 적을 두는 사이 「남해호」를 타고 미국여행을 하면서 쓴

「아메리카 詩抄」들은 미국의 자본문명을 비판하고
있다. 이 시편은 우리문단이 구분하는

리얼리즘계열에 든다. 타고르가 한국을 위해 쓴 「동방의 등불」의 박인환버전인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를 들어 현실인식과 리얼리즘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공광규,

「전후 현실인식과 사실주의 창작방법
구현」)

 「인도네시아에게 인민에게 주는 시」는 내가보기에 박인환의 가장 정치적이고 선동적인 시 이다.

이 계열로는 시가 빼어나기에 전문을 소개한다.

 

 

인도네시아 人民에게 주는 시



  동양의 오케스트라/가믈란의 반주악이 들려온다/오 약소민족/우리와 같은 식민지의 인도네시아



  삼백 년 동안 너의 자원은/구미 자본주의 국가에 빼앗기고/반면 비참한 희생을 받지 않으면/구라파의

반이나 되는 넓은 땅에서/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가믈란은 미칠 듯이 울었다



  홀랜드의 오십 팔배나 되는 면적에/홀랜드인은 조금도 갖지 않은 슬픔을/밀림처럼 지니고/

칠천칠십삼만인 중 한 사람도/빛나는 남십자성은 쳐다보지도 못하며 살아 왔다



 
수도 족자카르타/상업항 스라바야 /고원분지의 중심지 반돈의 시민이여/너희들의 습성이 용서하지

않는/남을 때리지 못하는
것은/회교정신에서 온 것만이 아니라/동인도 회사가 붕괴한 다음/홀랜드의

식민 정책 밑에 /모든 힘까지도 빼앗긴 것이다



  사나이는 일할 곳이 없었다 그러므로 /약한 여자들은 백인 아래 눈물 흘렸다/수만의 혼혈아는/

살 길을 잃어 애비를 찾았으나/스라바야를 떠나는 상선은/벌써 기적을 울렸다



 
홀랜드인은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처럼/사원을 만들지 않았다/영국인처럼 은행도 세우지 않았다/토인은

저축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저축할
여유란 도무지 없었다/홀랜드인은 옛말처럼 도로를 닦고/아세아의

창고에서 임자 없는 사이/보물은 본국으로 끌고만 갔다.



  주거와 의식은/노예적 지위는 더욱 심하고/옛과 같은 창조적 혈액은 완전히 부패하였으나

인도네시아 인민이여/생의 광영은 홀랜드의 소유만이 아니다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인민의 해방/세워야 할 늬들의 나라/인도네시아 공화국은 성립하였다

그런데/연립임시정부란 또다시
박해다/지배권을 회복하려는 모략을 부숴라/이제는 식민지의

고아가 되면 못쓴다/전 인민은 일치 단결하여 스콜처럼 부서져라



  국가 방위와 인민 전선을 위해 피를 뿌려라/삼백 년 동안 받아온 /눈물겨운 박해의 반응으로 /

너의 조상이 남겨 놓은 /야자나무의 노래를 부르며/홀랜드군의 기관총 진지에 뛰어들어라



 
제국주의의 야만적 제재는/너희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욕/힘있는 대로 영웅 되어 싸워라/자유와 자기

보존을 위해서만이 아니고/야욕과
폭압과 비민주적인  식민정책을 /지구에서 부숴내기 위해/반항하는

인도네시아 인민이여/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워라



 
참혹한 몇 달이 지나면/피흘린 자바 섬에는/붉은 칸나꽃이 피려니/죽음의 보람이 남해의 태양처럼/

조선에 사는 우리에게도
빛이려니/해류가 부딪치는 모든 육지에선/거룩한 인도네시아 인민의/내일을

축복하리라/사랑하는 인도네시아 인민이여/고대문화의 대유적
보로부드르의 밤/평화를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가믈란에 맞추어 스림피로/새로운 나라를 맞이하여라


  1947
년에 썼다는 이 시는 서사와 주제의 깊이가 훌륭한데 마치 80년대의 빼어난 민중시나 저항시를

읽는 듯하다. 이 작품이 창작된
배경이 궁굼해서 자료를 찾아 보았다. 인도네시아를 소재로 썼지만

사실은 해방정국에 미국과 소련이 개입해 있는 한국의 정황을
인도네시아의 상황을 통해 환기해내고

있다. 창작자는 내심으로 진정한 한반도의 해방은 인도네시아의 해방처럼 진정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과, 진정한 해방을 위해서는 반제국 인민무력투쟁도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공광규,「전후 현실인식과 사실주의
창작방법 구현」)

   박
인환의 격정이 서구모더니즘이나 낭만주의 시가 아닌 현실인식의 시에 미치면 시의 선동성이나

정치성이 예사롭지가 않다. 박인환이
단순히 애환의 시인이 아니라는 증거를 이 시가 말하고 있다.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과 비교해보자.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당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주요한 옮김. 1929.4.2).


 
시성이라는 타고르의 유연한 문체와 상징이 돋보이지만 작품자체로만 본다면 박인환의 정치성과

선동성이 더 실감이 있다. 박인환이
그러면 과연 리얼리즘 시인인가 하는 문제가 야기된다. 박인환

시인 탄생 80주년기념과 타계 50주년 기념으로 발간된 『박인환 깊이
읽기』(서정시학, 맹문재 편)에서는

박인환의 현실인식과 리얼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리
얼리즘이란 무엇인가. 예술사조에서 사실주의는 19세기 후반에 과학존중 사상과 실증주의영향아래

고전주의의 추상을 비판한다.
미술에서는 쿠르베가 소설에서는 쿠르베의 친구인 샹플뢰리가 시작해서

발자크와 스탕딸이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우리나라의
리얼리즘문학은 일제시대나 분단상황이

반영된 지역적 특수상황을 전제로 정치 사회 경제의 모순에 대항하는 현실비판문학을 리얼리즘이라

통칭하는 것 같다. 상상의 표현보다는 현실의 재현에 무게를 두고 일상이나 역사의 문제를 다룬다.

위에서 언급한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를 비롯해서 6.25의 상처를 소재로 쓴 「어린 딸에게」

「한줄기 눈물도 없이」「서부전선에서-윤을수
신부에게」「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같은 작품은

한국적 리얼리즘정의에 잘 들어맞는 작품들이다. 「목마와 숙녀」「세월이 가면」이
대중에게 유명하기

때문에 박인환은 서구지향의 낭만적 모더니스트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리얼리즘계열의 작품도

꽤 되는 것이
사실이다. 박인환이 산 시대가 해방 후와 육이오의 정치사회기의 격변기였기 때문에

다혈질인 박인환의 대 사회의식이 작품들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
실이란 무엇인가. 철학적인 질문이지만 요즈음은 뇌 과학자들이 이 방면에 대해 부단히 연구를

하고 있느니 만큼 이들의 견해를
빌려보자. 과학에서 현실이란 의식에 들어온 경험이되 우리의 오감중

하나이상의 감각으로 확인되는 경험을 뜻한다.(어떤 대상이
보였는데 만져보니 촉각이 느껴지지 않으면

현실물체가 아니다. 유령이나 홀로그램영상이 해당된다. 텔레비전은 현실이지만 수상기 안의
영상은

현실이 아니다. 눈에 보이나 역시 촉각으로 만져지지 않는다. 앞으로는 후각 촉각을 만족하는 프로그램이

도입된다 하니 이
정의도 수정될 수 있다.)

  현
실이든 가상이든 뇌의 신경망의 활동이며 하나로 이어지는 스펙트럼이므로 고정돤 경계란 없다고

본다. 인간은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외부세계와 상호작용을 한다. 뇌는 신경세포의 관계망에 의지하여

뇌 속에 활성화시킨 가상의 숫자만큼 현실을 풍요롭게 파악한다.
언어와 수는 대표적인 인간이 개발한

가상의 세계다. 왜 현실과 가상을 동시에 인식하도록 인간의식이 진화했을까. 그  대답은 언어와
수의

현실모델을 지도地圖처럼 사용하는 인간생활의 유용성을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인간은 수리적

가상모델을 사용해서
자동차를 디자인하고 로켓으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다. 쇠라는 현실과 수의

가상을 배합해서 현실을 인간의 구미에 맞게 풍요롭게
변형한다. 언어도 금방 답이 나온다. ‘사과’라는

현실물체에 인간이 배운 지식(가상)을 적용해서 단순히 과일이 아닌 ‘사랑’
‘원죄’ ‘뉴턴의 중력’등의

지식(가상)을 작용시킨다. 사물을 새롭게 보고 창의하고자 하는 호기심(가상)에 뇌의 쾌락을 부여한


이유는 이 작용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본 까닭이다. 그러나 이 가상은 가상자체로는 진화심리학에서는

의미가 없다고 본다. 현실을
기반으로 해서 현실과 연계되는 가상이어야 생존에 의미가 있다.(모기

겐이치로, 「뇌와 가상」참조)

   다
시 박인환으로 돌아가 보자. 박인환이 겪은 육이오라는 현실에서 박인환의 의식은 총칼이 있고

기아와 상처의 고통이 있는 객관현실을
주관적인 감정(슬픔과 고통)을 병합해서 상황인식을 입체적으로

한다.(적극적인 해석모델로 행동판단을 위한 정보가 증가한다. 단순히
위험하다는 신호보다는 감정

배합으로 인해 위험이 생생해진다.) 언어로 작가의 경험을 읽는 독자도 감정공명으로인해 더 생생하게

현실을
추체험한다. 작가는 작가의 경험인식과 감정이 배합된 에센스를 전달함으로서 현실상황을

독자에게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전문가이다. 
시와 소설이 가상이지만 현실을 해석하는 작가의 주관적

통찰로 인해 가상정보의 효과는 증가한다(작가의 천재성이 주관적 통찰의 내용을
결정한다). 박인환의

작품이 해방 후 자본주의 열강에 편입되는 후진국의 현실과 육이오를 주관적인 통찰로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은유란 천재의 특질이다’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원용해서 시인인 박인환을 변호하기로
한다.


  다음 작품은 현실과 서정과 상징이 잘 조화된 작품으로 리얼리스트이자 서정시인인 박인환의 면모가

동시에 드러난다.

 

 

검은 신이여





  저 묘지 위에서 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저 파괴된 건물에서 나오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검은 바다에서 연기처럼 꺼진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내부에서 사멸된 것은 무엇입니까.



  1년이 끝나고 그 다음에 시작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전쟁이 빼앗아간 나의 친우는 어데서 만날 수 있습니까.



  슬픔 대신에 나에게 죽음을 주시오.



  인간을 대신하여 세상을 풍설로 뒤덮어 주시오.

 

  건물과 창백한 묘지 있던 자리에



  꽃이 피지 않도록.



  하루의 1년의 전쟁의 처참한 추억은

  검은 신이여

  그것은 당신의 주제일 것입니다.

 

 


5 李相을 숭배한 박인환


 

  박인환이 이상을 사모하고 정신의 황제라고 극찬한 시가 있다. 본명이 김해경이고 27세에 죽은 李相

죽음을 듣고 쓴 시 「죽은 아포롱」은 이상에 대한 박인환의 경도를 보여준다.


인환은 항시 일본의 요절한 천재문인 아쿠타카와〔芥川〕이야기를 하며 , 자신을 아쿠타카와에게

견주었다한다. 그것은 이상에게도
마찬가지였다.....자신을 자살이라는 극한의 상황에까지 몰고 갈 수

있는 이상의 천재 의식이야말로 박인환이 이상을 가장 좋아한
가장 두드러진 이유이다. 이와 함께 이상이

지닌 정신의 초월성, 또는 예술가로서의 지대한 오만 등은 박인환을 충분히 매료시킬 수
있는 또 다른

요소가 된다.(윤석산, 『박인환 평전』참조)

 
박인환과 이상이 모더니즘문학을 한국문단에 개척하고 도입한 사실은 평가되어야 한다. 한 세대의

차이가 나는 연령이지만 둘의 생애가
비슷하다. 애초의 전공과는 다르게 문학에 경도한 점이나 요절로

끝난 인생, 스스로 천재로 자부한 문학적인 오만, 이런 성향들이
동병상린의 정을 이상에게 느꼈을 법

하다. 모더니즘을 지향했으나 둘의 패턴은 다르다. 이상이 프랑스의 다다이즘dadaism과

쉬르레알리즘surréalisme의 영향을 받았다면, 박인환은 영.미가 중심이던 이미지즘imagism의 영향을

받았다. 다다이즘이
모든 기성관념, 기성예술을 철저히 부정하는 과격한 예술운동이었다면 이미지즘은

사물의 표상을 중요시하는 회화적기법과  새로운 리듬을
주장했다. 이미지즘은 시의 음악적 어법에

따르는 등 기존 상징주의 시와도 연계할 수 있는 다소 온건한 시작태도이다. 이상의 시가
기존어법으로는

잘 해석이 안되는 파괴형식이라면 박인환의 시는 상대적으로 문맥이 정리되어있다. 그러나 둘 다

서정일색의
기존한국시단으로부터 배척과 질시를 받았다는 점은 같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한다. 인간의 뇌가 정지한 사물보다 움직이는 사물에 고개가

돌아가도록 진화한 것은 사냥감을 발견하고 추적하도록 하는 생존전략과 관계가 있다.

 
어머니의 배속에서 나온 아기는 근본적으로 탐구자이며 시인이다. 새롭게 들어오는 사물의 감각에

반응하여 세계인식의 모델을 형성하는
아기는 나날이 시인이며 과학자이다. ‘인간의 정신은 나비로

태어나서 굼벵이로 죽는다’라는 격언이 있다. 창조자란 현실을 끝없이
새롭게 해석하는 사람이고 그들의

해석이 인간의 문명생활을 바꾸고 정신의 풍요로움을 가져온다. 그러나 보통의 일상인은 사회가

요구하는 규칙과 제도에 길들여져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회이데올로기에 갇힌채 굼벵이로 죽는다.

죽어서 새로운 나비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굼벵이로 죽어야함이 자연과 사회의 질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천재들의 정신과 불꽃은 영원히 나비로 살고자 한다. 자연과
사회의 질서를 거부하는 대가로

사회는 냉대하며 자연은 요절시킨다. 자연과 사회의 질서를 받아들인 후  法古蒼新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천재들도 있다. 아마도 문명사회에서는 이들이 모범답안이리라. 그러나 모든 천재들의

운명이 같지는 않다. 모차르트나
이상같은 천재는 짦은 시간에 불꽃같은 정신에너지로 그들의 불을

밝혔다. 박인환이 스스로를 천재로 생각한 것 같으나 내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혁신적으로 새롭게

예술형식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닌 것 같다. 영미 모더니즘을 한국시단에 접목한 공이 있을 뿐이다. 다만

그가 요절하지 않고 오래 살았더라면 기존질서의 한국예술에 새로움을 보탠 역량의 작품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상을 추모한 다음 시로 신화가 된 박인환의 삶과 그의 시적 동경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글을 마친다.

 


죽은 아포롱

-  李相 그가 떠난 날에

 


  오늘은 3월 열 이렛날

  그래서 나는 망각의 술을 마셔야 한다

  여급 ‘마유미’가 없어도

  오후 세시 이십 오분에는

  벗들과 ‘제비’의 이야기를 하여야한다.


  그날 당신은

  동경 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천당과 지옥의 접경으로 여행을 하고

  허망한 서울의 하늘에는 비가 내렸다.


  운명이여

  얼마나 애태운 일이냐

  권태와 인간의 날개

  당신은 싸늘한 지하에 있으면서도

  성좌를 간직하고 있다.


  정신의 수렵을 위해 죽은

  ‘랭보’와도 같이

  당신은 나에게

  환상과 흥분과

  열병과 착각을 알려주고

  그 빈사의 구렁텅이에서

  우리 문학에

  따뜻한 손을 빌려준

  정신의 황제


  무한한 수면

  반역과 영광

  임종의 눈물을 흘리며 결코

  당신은 하나의 증명을 갖고 있었다

  ‘李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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