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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를 견뎌내는 우리 시단의 엠마들

Author
mimi
Date
2012-03-07 09:22
Views
15540

 


트라우마를 견뎌내는 우리 시단의 엠마들

   

  -박남희(시인)

 

 

 

   1.현대시와 트라우마

 

  
시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자기만의 상처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다. 그것이 개인적인 것이든 가족적인 것이든 시대적인 것이든 쉽게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남게 될 때 우리는 이것을

트라우마(trauma)라고 부른다. 현대시사를 더듬어보면 무수한 트라우마의
흔적들이 발견된다. 현대시에 나타나 있는 트라우마의 흔적들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아주 오래 전에 엠마를 만났던 프로이트를
방문해볼 필요가 있다. 엠마는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상담사로 활동하던 초기에 만났던, 광장공포증(agoraphobia)을 앓고 있던
부인의 이름이다. 프로이트는 그녀가 광장공포증을 앓게 된 동기로 열두 살 때 상점에 들어갔다가 점원이 웃는 바람에 아무런 이유
없이 그곳을 도망쳐 나온 사건을 예로 들고 있다. 프로이트는 그녀의 공포가 일시적이고 우연한 것이 아니라 여덟 살 때 어떤 상점에
들어갔다가 상점 주인에게 성추행을 당한, 잠재된 트라우마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처럼 오래 전에 경험했던 트라우마의
흔적이 뒤늦게 어떤 사건을 계기로 나타나는 것을 프로이트는 사후성(事後性, nachträglichkeit)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유사한 사건이 최근에 되풀이됨으로써 잊혀있던 기억의 흔적이 환기된다고 말하고 있다. 즉
개개의 사건들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며, 어떤 사건들이 서로 결합되어야만 비로소 트라우마로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일 중에서 아주 충격적이고 특별한 사건을 통해서만 트라우마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아주 사소한 일을 통해서도 트라우마가 생긴다. 이것은 물론 개인의 성향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을 세우기는
어렵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실연이나 이별, 전쟁, 죽음, 질병, 개인적 또는 집단적이며 시대적인 폭력, 놀림,
무관심, 따돌림, 성추행, 각종 사고 등은 모두 트라우마의 동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보면 트라우마는 무기력과
무감각의 증상을 보이거나 그것이 더 심해지면 자기부정은 물론, 현실감을 잃어버리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해리 장애에까지 이르게
된다. 시인들은 이러한 트라우마를 시 쓰기를 통해서 해소하려고 한다는 점이 일반인과 다르다. 혹자는 이것을 시치료 개념으로까지
연결시키려고 하지만, 트라우마의 발현으로 씌어진 이 땅의 시들 대부분이 의학적인 범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것을 ‘예술적 승화’나 ‘문학의 내적 동인’ 정도로 간주하는 것이 더 온당할 것이다.

  
‘문학이 구원이 될 수 있는가’라는 명제는 우리 문학사에서 해묵은 명제이지만 이러한 명제를 이해하는 관점은 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문학이 구원의 도구가 되든 치료제가 되든 단순한 위안이 되든, 문학에는 효용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 존재의 비의와 내통하는 절대적인 문학적 가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현대시에 나타나 있는 트라우마의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서 우선 다음의 시부터 읽어보자.

 

   하늘은 별을 출산해 놓고 천, 천, 히 잠드네 

 

  둥근 시간을 돌아 나에게 손님이 찾아왔어 동구나무처럼 서 있다가 숨 찾아 우주를 떠돌던 시선은 나를 더듬기 시작하네 씽끗, 웃다 달아나 종이 인형과 가볍게 탭댄스를 추지

 

 
그들은 의자며 침대 매트리스를 옮기고 가끔, 열쇠를 집어삼켜 버리지 그럴 때마다 나는 침대 밑에서 울곤 해 스스로 문이 열리거나
노크 소리가 들릴 때 화장실 문은 물큰물큰 삐걱대며 겁을 주기도 해 과대망상은 공중으로 나를 번쩍 들어 올리지 끊임없이 눈앞에서
주변이 사라졌다 나타나고 조였다 풀어져

 

  골치 아픈 그들의 소행에 시달리다 못해 어느 날, 광대를 찾아갔지 광대는 자신이 두꺼운 화장에 사육당하고 있다며 웃어야 할 시간에 울고 있었어

 

   천장을 훑어 오르기 위해 어둠 속에서 그들은 그림자를 흔들고 있어

 

  자연스럽게 때론 엉성하게  그러다 접시가 입을 쩌억 벌렸어

 

  누워있던 골목들 일제히 제 넋을 출렁였지

 

  붙어있던 그들은 홀가분하게 나를 떠났어

 

  온갖 소동 부리고 떠난 자리,

 

  무성한 음모만 시끄럽게 남아있네

 

                         ―성은주,「폴터가이스트」전문

 

  
시인은 폴터가이스트를 각주에서 ‘불안정하게 소란을 피우는 영(靈)’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본래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는 독일어 poltern(노크하다) 와 geist(영혼)이라는 말의 합성어로 장난치기 좋아하는
영혼이 종종 어린아이들을 놀래주기 위해 물건을 움직이거나, 소음을 내거나 소동을 나타내는 말로, 현재는 이유 없이 이상한 소리나
비명이 들리거나 물체가 스스로 움직이거나 파괴되는 현상을 말한다. 성은주의 시에 나타나 있는 ‘손님’은 폴터가이스트로 지상에
내려와 나를 더듬기도 하고 종이인형과 탭댄스를 추기도 하고 의자와 침대의 매트리스를 옮기기도 하면서 소란을 피우다 떠난다. 하지만
이것은 폴터가이스트의 행위라고만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동시에 시적 화자의 과대망상증과 연결되어 있어서 “끊임없이 눈앞에서
주변이 사라졌다 나타나고 조였다 풀어”지는 현상이 반복된다. 골치 아픈 영들의 소행에 시달리다 못해 어느 날, 화자는 광대를
찾아가게 되는데 광대는 자신이 두꺼운 화장에 사육당하고 있다며 웃어야 할 시간에 울고 있다. 여기서 광대는 일종의 무당과도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고, 넓게 보면 시인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광대가 두꺼운 화장을 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탈을 쓰고 있는
것으로 존재의 은폐를 위한 포즈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이 시에 나타나 있는 폴터가이스트나 시적 화자나 광대는 모두 정상적인
존재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폴터가이스트가 화자를 떠남으로 해결되지만 “온갖 소동 부리고 떠난 자리”에는
“무성한 음모만 시끄럽게 남아있”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무성한 음모’는 ‘陰謀’와 ‘陰毛’라는 이중적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사회적이며 성적인 혼란상태를 암시해준다.

  
이 시는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인데, 성은주 시인은 당선소감에서 “이 세상 만물과 연애하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
싶습니다. 무엇에 접근하기 위해서가 아닌,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입니다. 문학은 나를 발견해주는 치료제였고, 소외된
사유를 관계의 중심으로 옮겨 놓아 주었습니다. 시는 제 파토스에 하나하나 리본을 달아주며 질서 있게 나를 복원시키려 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 소감과 시를 연결시켜보면 시인은 시를 쓰기 전에 상당한 정신적 혼란을 경험했으며 그녀에게 시 쓰기는 일종의
치료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녀가 겪은 정신적 혼란은 그녀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사회적이며 성적인 트라우마와
무관하지 않다.

  
여기서 성적 트라우마는 여성이 남성과 사랑을 하면서 겪게 되는 좌절과 고통에 기인한다. 남성에 비해 여성이 사랑을 통해 상처를
많이 받게 되는 것은 남성 중심주의라는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유교적 가치관 때문이다. 문정희가 그의 시「농담」에서 “시 속에는
언제나 상처뿐이었고/사랑에도 독이 있어 한철 후면 어김없이/까맣게 시든 꽃만 거기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나,
김혜순이「지평선」에서 “상처와 상처가 맞닿아/하염없이 붉은 물이 흐르고/당신이란 이름의 비상구도 깜깜하게 닫히네”라고 노래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젊은 여성시인에 속하는 김선우는 “그대여 내 상처는 아무래도 덧나야겠네 덧나서 물큰하게
흐르는 향기,/아직 그리워할 것이 남아 있음을 증거해야겠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죄를 무릅써야겠네 아주 오래도록 그대와,
살고 싶은 뜻밖의 봄날 흡혈하듯 그대의 색을 탐해야겠네”(「도화 아래 잠들다」)라고 당당하게 자신의 상처와 대면하고 싶은 속내를
드러낸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트라우마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이 땅에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트라우마는
부조리한 시대 속에서 하나의 생명이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검은 피’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2.시대적 외상으로서의 트라우마-고은, 이성복, 황지우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근대사는 7.80년대에 이르러 중대한 분수령을 이루게 되는데, 이러한 질곡의 역사 속에서 시대적 트라우마를
자신의 시에 밀접하게 연관시켜 시적으로 승화시킨 시인을 꼽으라면 고은, 김춘수, 신대철, 이성복, 황지우, 최승자, 김지하,
한하운 등 무수히 많다. 고은이나 김춘수, 신대철, 황지우, 김지하 시인은 역사나 시대적 트라우마와 관계가 깊고, 최승자는 시대적
사랑과 여성성, 한하운은 병과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개략적인 이러한 분류법이 모두 타당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시인이 복합적인 성격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고은의 경우 초기 시가 기행과 자살미수 등 개인적 트라우마와
연계되어 있다면, 그는 네 번째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1974) 이후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을 계기로 개인을 떠나 민중에
다가가게 되고, 종국에는 열린 정신의 세계인 화엄에 도달하게 된다. 당시의 전태일의 분신사건은 고은에게 있어서는 역사적
시대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안겨준 트라우마였던 것이다.

 

뼈저리거든 저문 강물을 보아라.

내가 은연중 불러도 가까운 산들은 밝은 귀로 내려와서

더 가까운 산으로

강물 위에 진하게 떠오르지만

또한 저 老姑壇 마루가 꽃처럼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강물은 저물수록 저 혼자 진간장으로 흐르는구나.

 

뼈저리게 서럽거든 저문 강물을 보아라.

나는 그냥 여기 서

서산이 강물과 함께 저무는 큰 일과

그보다는 강물 가장자리 서러운 은어떼 헤매는 일과

華嚴寺 覺皇殿 한 채를 싣고 흐르는 일들을 볼 따름이구나.

 

                        ―고은, 「섬진강에서」부분

 

  
시인은 섬진강변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며 인생과 역사를 생각하고 있다. 이 시에서 섬진강은 고은이 살아온 인생과 역사의 흐름과도
같은 것이다. 시인은 “뼈저리게 서럽거든 강물을 보라”고 말한다. 이러한 충고는 자신을 포함한, 시대적 트라우마를 견디며 살아온
중생들에게 건네는 종교적 화두라고 말할 수 있다. 시인은 섬진강가에 서서 지리산이 섬진강과 더불어 저무는 모습을 관조하고 있다.
시인이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게 된 것은 젊은 시절의 방황과 시대적 질곡 속에서 만나게 되는 트라우마와 무관하지 않다. 시인이
존재론적 대자로 설정한 산은 시인이 추구하는 종교적 선(禪)의 세계이며, 나아가 궁극적 진리로서의 '님'에 닿아있다. 시인은 산이
강물과 함께 저무는 일을 '큰일'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불교적 진리로서의 존재인 산을 현실적 삶의 시간적 형식인 강물과
일체화시켜 보여줌으로써 진리와 삶이 하나가 되는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강물은 누구 하나 없이도 돌면서
흐른다"(「竹寺에서」)는 것과 "나 혼자는 내가 아니다"(「貞陵에서」)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지면서 궁극적으로 화엄적 통일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고은은 1980년대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옥고를 치르게 되는데, 이때부터 시인은 정치이데올로기의 교조적
구호보다는 몸소 민중적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민중의 삶을 자신의 몸으로 껴안음으로써 민중의 삶이 즉 자신의 삶이라는 '화엄적
존재관'을 그의 문학의 주요 모티브로 삼게 된다.

 

누이가 듣는 音樂 속으로 늦게 들어오는

男子가 보였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내 音樂은

죽음 이상으로 침침해서 발이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雜草 돋아나는데, 그 男子는

누구일까 누이의 戀愛는 아름다워도 될까

의심하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牧丹이 시드는 가운데 地下의 잠, 韓半島

가소심한 물살에 시달리다가 흘러들었다 伐木

당한 女子의 반복되는 臨終, 病을 돌보던

靑春이 그때마다 나를 흔들어 깨워도 가난한

몸은 고결하였고 그래서 죽은 체했다

 

잠자는 동안 내 祖國의 신체를 지키는 者는 누구인가

日本인가, 日蝕인가 나의 헤픈 입에서

욕이 나왔다 누이의 戀愛는 아름다워도 될까

파리가 잉잉거리는 하숙집의 아침에

 

               ㅡ이성복,「정든 유곽에서」부분

 

  
1980년대는 제3공화국이 비극적으로 막을 내리고 이른바 신군부 정권이 폭압적 정치를 이어가던 시기로 우리 문학사에서도 변혁기에
해당된다. 이성복은 이러한 정치적 격변기에 그의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들고 홀연히 시단에 나타난다. 그의 첫
시집은 현실과 이상,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던 80년대적 소용돌이 속에서, 그 이전의 시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었던,
당시의 시대상황과 존재에 대한 독특한 언어적 질문법을 보여준다. 이 시대를 가늠해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 중의 하나인「정든
유곽에서」는 누이와 낯선 남자와의 사랑이라는 표층적 화법의 이면에, ‘벌목당한 여자’로 상징되는 한반도와 낯선 남자로 나타나있는
일본 등 열강들과의 관계를 ‘누이의 연애는 아름다워도 될까’라는 독특한 화법으로 풍자하고 있다. 시인의 이러한 부정적 어법은
당시의 혼란스러운 시대가 가져다준 시대적 트라우마에 기인한다. 이 시를 자세히 읽어보면 벌목 당한 여자인 한반도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도 ‘병을 돌보던 청춘’인 시대의 올바른 목소리를 따르지 못하고 ‘죽은 체’할 수밖에 없었던 시인 자신의 자괴감이 나타나
있다. ‘누이의 연애는 아름다워도 될까’라는 시인의 질문은 '유곽'으로 비유된 당시의 부정적 시대 상황 속에서 연애는 결코
아름다울 수 없으며, '연애'라는 행위도 당위성을 얻기 힘들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이성복은 그의 시의 출발점을 '가족'에게 두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가족은 조국이고 세계이고 우주이다. 그의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는 온통 개인사적인 이야기로
가득 차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 트라우마를 견뎌내려는 시인의 비유적 몸짓에 불과하다.

 
이성복과 더불어 80년대적 트라우마를 시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승화시킨 시인은 황지우이다. 황지우의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는 시대적 환멸에 대한 풍자이며 일종의 자기반성적 해체의 몸짓이다. 정치적 풍자와 자기모멸이 뒤섞여있는 그의 시집들은『게눈
속의 연꽃』에 이르러 5.18 등 질곡의 현대사를 지나면서 그가 겪게 된 현실과 초월 사이의 갈등을 뛰어넘어 화엄에 이르는
정신세계를 보여주게 된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계기로 ‘5월 광주’는 그의 문학에서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망월 가는 이맘때쯤이면

아카시아 꽃봉지 들고 다가오는 산 전체에서

막 양치질한 딸아이

입내 같은 것이 났지

꼭 죽음이 아니어도

이렇듯 신성이 찰나에 임하는,

잎새로 噴射되는 햇살 샤워;

낯뜨거워라

치약처럼 환한 꽃 한움쿰 입에 털어넣고

멀찍이서 묘역을 대하는데

죽어서 받은 거룩함도 살아있는 날의 우연성, 덧없음,

어처구니없음에 잠깐 일어난 정전기 같다 할까

사실 벌거지만도 못한 삶이었는데

커다란 거품인 무덤들 둘레를

명함 돌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둘러싼다

聖 오월; 아카시아꽃은 갑자기 재채기하고 싶은

흰 손수건을 흔들고

 

                 ㅡ황지우,「聖 오월」전문

 

  
황지우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의 앞부분에 나오는 이 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역사적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한 후 매년 오월이면 찾게 되는 망월동 묘지에서 느끼게 되는 감회를 반성적으로 술회하고 있다. 죽음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던 당시의 5월 광주의 비극은 세월과 함께 잊혀지고 ‘명함돌리기를 좋아하는’ 사이비 참배객들이 묘역을 둘러싸게 된
현실을 노래하고 있는 이 시는 비판적이라기보다는 반성적인 색채가 강하다. 이는 시인 자신이 망월동 묘역을 들어서면서 느끼는 변화된
감정과 무관하지 않다. 이 시에서 아카시아꽃은 5월에 피는 꽃이면서도 ‘막 양치질한 딸아이의 입내’와 ‘재채기하고 싶은 흰
손수건’이 교차되는 상반된 이미지로 다가오는 꽃이다. 여기서 ‘막 양치질한 딸아이의 입내’는 5.18의 아픔을 양치질해버린 망각의
현실에 대응되고, ‘재채기하고 싶은 흰 손수건’은 최루탄이 터지던 당시의 비극적 상황을 환기시켜주는 이미지이다. 이처럼 ‘5월
광주’라는 트라우마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시인의 양심을 찌르는 비수가 되어 망각의 시간 속을 거슬러 오게 되는 것이다.

 

   3. 페미니즘의 역사성과 트라우마-최승자

 

  
이성복, 황지우와 더불어 권위주의로 상징되는 80년대를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살아온 시인 중에는 최승자가 있다. 그는 질곡의
7.80년대를 거쳐 오면서 시대적 권위의 폭압적 힘에 대항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죽음과 불안과 슬픔을 느낀다. 그의 젊음은 개인과
시대를 오가며 끔찍한 사랑의 열병을 앓지만, 소통이 부재한 대답 없는 사랑은 그에게 상처와 불면과 슬픔을 가져다준다. 최승자의 첫
시집 『이 시대의 사랑』은 독재정권으로 정의되던 폭압적 정치상황과 맞물려있는 개인적 사랑과 좌절의 기록으로 점철되어있다.
최승자의 시에 나타나는 사랑의 좌절은 개인적 차원의 슬픔과 그리움이라는 탈을 쓰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시대를 껴안는 역사성과
만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하지가 않다. 그의 첫 시집 제목이 ‘이 시대의 사랑’인 것은 그의 사랑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당시의
시대정신에 잇닿아있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최승자의 사랑의 뿌리는 아담과 이브가 사랑을 나누던 태초의 근원적 사랑에까지 뿌리가
닿아있다.

 

나는 아무의 제자도 아니며

누구의 친구도 못 된다.

잡초나 늪 속에서 나쁜 꿈을 꾸는

어둠의 자손, 암시에 걸린 육신.

 

어머니 나는 어둠이에요.

그 옛날 아담과 이브가

풀섶에서 일어난 어느 아침부터

긴 몸뚱어리의 슬픔이에요.

 

밝은 거리에서 아이들은

새처럼 지저귀며

꽃처럼 피어나며

햇빛 속에 저 눈부신 天性의 사람들

저이들이 마시는 순순한 술은

갈라진 이 혀끝에는 맞지 않는구나.

잡초나 늪 속에 온 몸을 사려감고

내 슬픔의 독이 전신에 발효하길 기다릴 뿐

 

뱃속의 아이가 어머니의 사랑을 구하듯

하늘 향해 몰래몰래 울면서

나는 태양에의 사악한 꿈을 꾸고 있다.

 

                 ㅡ최승자,「자화상」전문

 

  
이 시는 자신의 사랑과 슬픔의 근원을 찾으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흡사 서정주의 「자화상」을 연상시켜준다. 이 시에는
서정주의「자화상」과 마찬가지로 어둠 이미지와 연결된 원죄의식이 나타나 있다. 시인은 자신의 욕망의 근원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육신을 “잡초나 늪 속에서 나쁜 꿈을 꾸는/어둠의 자손, 암시에 걸린 육신”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것은
2
연에서 시인이 “어머니 나는 어둠이에요./그 옛날 아담과 이브가/풀섶에서 일어난 어느 아침부터/긴 몸뚱어리의 슬픔이에요.”라고
고백하는데서 절정을 이룬다. 이는 밝은 거리에 새처럼 지저귀며 꽃처럼 피어나는 ‘천성의 사람들’과는 다른 속성이 자신의 내면에서
똬리 틀고 있음을 스스로 시인하고 있는 것이 된다. 시인의 이러한 발언은 앞으로 그의 시가 모반과 부정의 세계로 나아가리라는
예언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시집의 첫머리에 실린 시「일찍이 나는」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너당신그대, 행복/너, 당신, 그대, 사랑//내가 살아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여, 타자와 자신을 동시에 부정해버린다.

  시인의 이러한 자기부정은 여성인 시인 자신의 육신에 내재해있는 죽음의식에 뿌리가 닿아있다. 이것은 그의 부정의식이 자신의 여성성과 시대정신을 가로지르는 중요한 화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자들은 저마다의 몸속에 하나씩의 무덤을 갖고 있다.

죽음과 탄생이 땀 흘리는 곳,

어디로인지 떠나기 위하여 모든 인간들이 몸부림치는

영원히 눈먼 항구.

알타미라 동굴처럼 거대한 사원의 폐허처럼

굳어진 죽은 바다처럼 여자들은 누워 있다.

새들의 고향은 거기.

모래바람 부는 여자들의 내부엔

새들이 최초로 알을 까고 나온 탄생의 껍질과

죽음의 잔해가 탄피처럼 가득 쌓여 있다.

모든 것들이 태어나고 또 죽기 위해선

그 폐허의 사원과 굳어진 죽은 바다를 거쳐야만 한다.

 

                     ㅡ최승자,「여성에 관하여」전문

 

    그
의 두 번째 시집『즐거운 일기』에 실려 있는 이 시는 여성으로서의 삶의 뿌리가 “죽음과 탄생이 동시에 땀 흘리는 곳”인 ‘무덤’,
즉 ‘자궁’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곳은 시인에게 있어 “어디로인지 떠나기 위하여 모든 인간들이 몸부림치는/영원히 눈먼
항구”라는 점에서 삶의 근원이며 출발점이 된다. 그런데 그곳은 ‘폐허의 사원’이고 동시에 ‘죽은 바다’라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이러한 비극적 여성성은 암울했던 당시의 시대상과 맞물려 더욱 첨예하게 드러난다. 시인은 자신이 감지하고 있는 여성적이며 시대적인
비극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리라는 예감을 하고 있다. 그는 그의 다른 시「비극」에서 “죽고 싶음의 절정에서/죽지 못한다.
혹은/죽지 않는다./드라마가 되지 않고/비극이 되지 않고/크라이막스가 되지 않는다/되지 않는다./그것이 내가 견뎌내야 할
비극이다”고 말함으로써 쉽게 죽을 수도 없고 살아서도 끝내 지지부진한 삶의 근원적 비극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의 세 번째 시집『기억의 집』에 오면 이러한 비극성이 시인 자신의 시 쓰기의 근원적 동인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다시 말해볼까.

삶에 관해서, 삶의 풍경에 관하여,

주리를 틀 시대에 관하여,

아니 아니, 잘못하면 자칭 詩가 쏟아질 것 같아

나는 모든 틈을 잠그고

나 자신을 잠근다.

(詩여 모가지여,

가늘고도 모진 詩의 모가지여)

그러나 비틀어 잠가도, 새어나온다

썩은 물처럼,

송장이 썩어나오는 물처럼.

 

내 삶의 썩은 즙,

한 잔 드시겠습니까?

(극소량의 詩를 토해내고 싶어하는

귀신이 내 속에 살고 있다.)

 

             ㅡ최승자,「자칭 詩」전문

 

  
시인이 자아와 시대를 대면하면서 얻게 된 근원적 비극성은 그의 시 쓰기의 원천이 된다. 그는 이러한 시 쓰기를,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비틀어 잠가도“썩은 물처럼,/송장이 썩어나오는 물”로 표현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의 시 쓰기는 생래적인 것이다.
여성의 생래적 글쓰기는 루스 이리가레이(Luce Irigaray)와 엘렌 식수(Helene Cixous)에 주도된 프랑스의
‘여성적 글쓰기’에 맥락이 닿아있다. 이리가레이는 여성의 말과 글쓰기 양식이 여성해방에 효과적임을 주장하고 있고, 식수는 여성적
글쓰기를 통해 여성이 자신의 잃어버렸던 본래의 육체로 되돌아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승자의 시 쓰기도
한편으로는 여성으로서의 존재 찾기에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최승자는 이렇게 씌어진 자신의 시를 ‘자칭 시’로 폄하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시 쓰기를 통해서도 여전히 자기부정의 굴레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원죄의식에
뿌리를 둔 사랑의 좌절과 시대적 비극성이 가져다준 시인의 트라우마는 그의 삶과 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시는 그나마 길이다./아직 열리지 않은,” 그가 “닦아나가야 할 길이다.”(「시 혹은 길 닦기」). 따라서
왜곡된 그의 삶과 시대를 아우르는 시 쓰기는 그에게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가 육신의 병마와 싸우기 위해
시 쓰기를 접고1999년에 시 40편을 엮은 다섯 번째 시집『연인들』을 발표한 후 시단에서 홀연히 사라지게 되지만, 그 후
11년 만인 2010년에 여섯 번째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으로 우리 곁에 돌아오게 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최승자는 혹독한 병마와 싸우고 난 후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 그는 이제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가져다 준 세상과 투쟁하지 않고
조용히 대면한다. 이러한 여유가 생긴 것은 연륜도 연륜이지만 아마도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이제
어디론가 이사를 하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 詩는 지금 이사 가고 있는 중이다/오랫동안 내 詩밭은
황폐했었다/너무 짙은 어둠, 너무 굳어버린 어둠/이젠 좀 느리고 하늘거리는/포오란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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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남희: 1996년 경인일보,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으로 『폐차장 근처』, 『이불 속의 쥐』,『고장 난
아침』, 평론집으로『존재와 거울의 시학』이 있다. 현재『시산맥』주간, 『창작 21』편집위원으로 있으며, 고려대, 숭실대에 출강하고
있다.

 

*<미네르바> 2012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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