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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격정과 섬세한 서정의 결속

Author
mimi
Date
2011-05-02 22:17
Views
10133

 


치열한 격정과 섬세한 서정의 결속

시집,『내 남자의 사랑법 2011년, 이미란 『황금알

 

 

 


                             -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이미란論 

 

  1. 

 
널리 알려져 있듯이, 서정시는 근본적으로 ‘자기 표현’의 발화 양식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자기 표현’이 꼭 내면 토로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정시의 음역(音域)은, 내면 토로에서

발원하면서도 그것이 현실이나 타자를 향해 힘껏 나아갔다가 다시
힘겹게 내면으로 귀일하는 경로를

밟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러한 서정시의 경로를 두고 우리는 주체와 타자 간의 결속 욕망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시적 욕망은 결핍과 유예를 숙명적으로 가지는

미실현(未實現)의 형식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욕망은 영속적인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통해

‘시적인 것’의 실질을 완성하게 된다. 이미란 시집은, 이러한
시적 욕망의 회로를 치열하고 섬세하게

보여주는 선명한 범례(範例)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할 것이다.

  이미란 시인은 1997년에 등단하여 첫 시집 『준비된 말도 없이 나는 떠났다』(시와시학사, 1999)를

상재한 바 있고, 이번에 12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내 남자의 사랑법法』(황
금알, 2011)을 펴낸다.

그녀는 이번 시집에서 “한 번 가서는 돌아오지 않는 것들의 이름을 부르며”(「시인의 말」) 살아온
자신의

생애를 갈무리하고, 자신을 구성해왔던 이름에 대한 상상적 열망을 통해 자신의 존재론적 ‘사랑법

구현하면서, 이제는 부재하는 그 이름들을 불러보는 사후적(事後的) 과정이 바로 자신의 시작(詩作)

과정임을 선연하게 보여준다.
말하자면 이번 시집은 돌아오지 않는 것들의 이름을 향한 양도할 수 없는

통증과 그리움에서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란 시편의 근본 심급이 이러한 개념적 일반화를 거부하는 구체적 형상들로 가득하다는 점

또한 지적되어야 한다. 그녀
시편들은 마치 공기처럼, 액체처럼, 연기처럼, ‘몸’의 곳곳에서 새어나오고

흘러나오는 구체적인 물질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이미란 시집의 전체 특성을

조감(鳥瞰)할 수 있는 지형을 모형적으로 구축하면서, 개념적 일반화로의 환원을 한사코
거부하는 그녀

시편의 구체적 심미성에 접근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2. 

 
이번 시집에서 가장 먼저 발견되는 음역(音域)은, 지금은 사라져 돌아오지 않는 이름들 가운데 시인이

직접 부르는 ‘당신’에
관련한 목소리이다. ‘당신’을 제재로 한 시편들은 한결같이 타자를 향한 열망과

유예의 반복 속에서 시인의 존재론이 구현되고 있음을
확연하게 증언하고 있다. 매우 치열하고 섬세한

감각으로 불러보는 ‘당신’의 형상에 다가가보자.


 

풍선의 이빨이 몇 개인지 아세요?

헬륨가스에 부풀은 혓바닥을 보셨나요?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당신을 만나기로 한 날

오후 3시의 마로니에 공원에 앉아

구름이 씹다버린 햄버거의 속살을

오후 4시의 벤치에게 내주며

오후 5시의 소나기가 후렴을 부르는

가로수 울타리의 공연장을 돌아

권태의 양탄자가 푹신푹신 깔려있는

지하계단을 내려갔지요

 

늦게 도착한 휴대폰 속 당신의 변명을 진동으로 바꾸고

불 꺼진 무대 위의 고도를, 오지 않는 당신이라는 고도를,

처음부터 기다림은 없었다고 당당히 독백하는 고도를

흐린 오후의 그림자를 따라온 벤치에게 내주며

이빨이 모두 달아난 풍선의 틀니를 들여다보았지요

 

무대 위에 함몰된 천정을 뚫고 도착한

사라진 약속의 당신을 기둥과 벽 사이에 던져놓고

고도라는 인생의 귀인과 삐에로를 기다렸지요

 

거기, 은발의 머리칼을 날리던 오후 6시가

절대자의 중절모를 흔들며 짠, 하고 등장하던

 

주름진 풍선의 세월을 뚫고 날아간 고도라는 당신

헬륨가스를 삼켜버린 혓바닥이 몇 개인지 아세요?

― 「당신이라는 고도」 전문

 


 
여기서 ‘고도’는, 말할 것도 없이 베케트(S. Beckett)의 ‘고도(Godot)’일 것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는, ‘열망’과 ‘유예’를 교차적으로 허락하는 ‘당신’의 속성을 강하게 유추케 하는 형상이 아닐

수 없다. 화자는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당신’과 함께 베케트의 연극을 보려고 하였는데 ‘당신’은 결국

나타나지 않는다. ‘당신’은 화자로 하여금
공원 벤치에서 오래도록 기다리게 하고 혼자 지하계단을

내려와 무대를 바라보게 만드는 ‘텅 빈’ 존재이다. 오랜 기다림을 지나
뒤늦게 전화로 들려오는 ‘당신’의

변명을 뒤로 한 채, 화자는 불 꺼진 무대 위에서 ‘당신이라는 고도’를 새삼 떠올린다.

 
“처음부터 기다림은 없었다고 당당히 독백하는” 존재인 당신이라는 고도는, “사라진 약속의 당신”이기

도 하다. 그렇게 거듭
“고도라는 인생”의 귀인과 삐에로를 기다리면서 화자는 이제는 날아가버린

“고도라는 당신”을, 그 미실현의 대상일 뿐인 ‘당신이라는
고도’를 주름진 세월을 다해 노래한다. 이때

‘고도’는 점점 외연을 넓혀 오래 머물길 원했던 ‘고도(古都)’로, 너무 외로운
‘고도(孤島)’로, 날아가버린

아득한 ‘고도(高度)’로 의미론적 확장을 거듭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당신’이야말로 “내 청춘의
주름”(「눈물의 세헤라자데」)이요, “화인의 그리움”(「보르네오 섬의 애인들」)으로 남은 존재임을 고백하는 시인의

뒷모습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이렇게 시인에게 ‘빛’이자 ‘빚’이기도 한 ‘당신’은 시집 가득, 곳곳에 번져 있다.

 


다리소반의 휘어진 말년으로 남아있는 당신, 먼저 당도한 개미떼가 훑고 지나간 풀밭 위의 찬합 사이에 세워놓은 삼천리표 자전거로
기억되는 당신, 숨은그림찾기 신문을 들추고 평상 위의 꽃무늬 접시까지 몽땅 뜯어먹고 사라진 양상군자의 커다란 발자국으로 찍혀있는
당신, 몰락한 왕조의 후예가 살고 있는 효령대군 18대손 신리 397번지의 느티나무를 그리워한 당신, 새털구름의 미소를 간직한
간호장교 옛 애인의 볼우물 속으로 홀연히 사라져버린 당신, 태양의 허기가 질러놓은 붉은 양탄자의 지름길로 성큼성큼 멀어져 간 당신

 

연병장을 울리는 병사들의 힘찬 구령 소리가

지프차에 올라앉은 검은 선글라스 속으로 달려든다

나도 그들을 따라 차렷! 경례! 힘차게 외치며

떠나버린 유년의 해 저문 푸른 들판 위를 달려간다


― 「푸른 경례 1」 중에서

 


 
시인에게 결국 오지 않는 ‘고도’였던 ‘당신’은 이제 “개다리소반의 휘어진 말년으로 남아있는” 존재로

화한다. 그야말로 폐기
직전의 순간에 와 있는 낡은 모습을 한 ‘당신’은, 숨가쁜 환유를 통해 여러 소멸의

이미지들로 대체되고 나열된다. 가령 ‘당신’은
사라진 ‘삼천리표 자전거’나 양상군자의 사라진 ‘커다란

발자국’으로 나열되다가, 낡아 사라진 왕조의 후예가 사는 곳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스스로

사라져버리고 멀어져가기도 한다. 시편 제목 ‘푸른 경례’처럼, 화자는 연병장의 힘찬 구령 소리와 함께

“떠나버린 유년의 해 저문 푸른 들판” 위를 달려가면서 사라지고 멀어져간 그 무엇을 그리워한다. 그

그리움의 이미지로 동원된
“개미떼가 훑고 지나간 풀밭”이나 “사라진 양상군자의 커다란 발자국”이나

“몰락한 왕조의 후예”나 “옛 애인의 볼우물”은 모두
멀어져간 ‘당신’의 분위기나 외관이나 속성을

강렬하게 암시한다. 지나가고, 사라지고, 몰락하고, 멀어져간 옛것의 이미지가 바로
‘당신’의 구체적

세목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당신’은 시인에게 한결같이 “마른나무 가지에 걸쳐진 희미한 달빛에/쓸쓸한 미소를 헹구며

사라지는”(「담벼락」) 야속한
존재이다 하지만 “당신 속에는 햇빛이//내 속에는 바다가”(「은유는 멀다」)

있는 숙명적 공생(共生) 관계의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게 ‘당신’은 부재한 채로, 사라진 채로, 완성되는

어떤 존재이다. 이때 시인의 시적 욕망은 ‘당신’과의 만남을 유예함으로써
역설적 완성을 꾀하게 된다.

“소풍처럼 왔다가 사라져간 바람처럼 한 줄기 문장으로 남겨지기”(「야사록夜事錄」) 싫어하는 상상적

불멸의 욕망이 아름다운 존재론적 전회(轉回)를 꿈꾸게끔 하고 있는 것이다. 

 

  3. 

 
우리는 그녀가 상상 속에서만 역설적으로 완성하는 ‘당신’에 대한 그리움의 형식을 통해 그녀 시편의

입구에 다다랐다. 이렇게
‘당신’이라는 부재의 이름을 거듭 호명했던 시인은, 이제 ‘사랑의 시학’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현저하게 이월해 나아간다. 이때
‘사랑’이란 이미란 시인의 삶을 가능케도 하고,

절망케도 하는, 가열한 에너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오롯한 에너지를 통해
시인이 완성하려 하는

‘사랑법’을 깊이 한번 들여다보자.

 


돌아누운 그의 등줄기 사이로 마른바람이 분다

그 바람벽에 살을 묻고 울어본 적이 있었던가?

온전한 그림자의 알몸을 그의 등에 비비며

축축한 암술로 돋아나는 회한을 가닥가닥 엮어서

그의 등에 암각 된 성난 슬픔의 뿌리를 토닥이다가

잃어버린 모성의 숲 내 비린 젖무덤 사이에

이 세상 가장 편안한 숨을 내려놓게 해주었던가?

 

미안한 당신, 이라고 불러본다

 

내 남자의 등에 접혀진 얼룩무늬의 날개를 본다

나달나달하게 삭은 깊은 뒤란의 날개 속엔

오랜 세월의 먼지 속에서 골라낸 성근 햇빛과

달의 골수로 길러낸 사향노루의 주머니와

첩첩한 소금창고 속 항아리 밑에 묻어둔

그만의 황홀한 비문이 숨어있을 것이다

그 맨홀 속 같은 그리움의 뚜껑을 열고 들어가

별빛을 조명삼아 뒹굴어본 적이 있었던가?

 

미안했고 미안했던 당신, 이라고 불러본다

 

밤의 창문이 가로등 불빛을 포개며 돌아눕는다

저만큼 밀려난 등과 젖가슴의 간격이 휑하다

그의 등을 타고 온 마른바람의 숲이

알타미라 동굴벽화의 구석기시대처럼 멀고 먼

야생의 무덤 같은 동굴의 입구를 지키고 서있다

거기 한 사나이의 꿈이 굽은 세월로 박혀있다

전생의 못다 푼 밀렵의 화살을 당기며

동굴 속 벽에 사향노루의 들판을 새겨 놓는다

거꾸로 도는 시계를 따라 해바라기처럼 퍼져가는

 

내 남자의 등에 매달린 빛나는 암각의 사랑!

― 「내 남자의 사랑법」 전문


 

 
여기서 ‘내 남자’는 앞에서 우리가 읽은 ‘당신’을 온몸의 음영(陰影)으로 삼는 존재이다. ‘내 남자’ 역시

마른 바람만 부는
곳에서 돌아누운 등줄기를 보인다. 화자는 그의 등에 암각 된 슬픔의 뿌리를

토닥이다가, ‘내 남자’로 하여금 ‘모성의 숲’에
편안한 숨을 내려놓게 해주지 못했음을 아프게 떠올린다.

화자는 그런 ‘내 남자’를 “미안했고 미안했던 당신”이라고 명명한다. ‘내
남자’의 등에는 접혀진

얼룩무늬의 날개가 있고 그 날개 안에는 “황홀한 비문”이 숨겨져 있다. 또한 ‘내 남자’의 등에는

“한
사나이의 꿈”이 굽이쳐 흐르는 세월로 가로놓여 있다. 화자는 한 사나이의 꿈이 각인된 황홀한

비문(秘文)을 통해 “그리움의
뚜껑”을 열고 들어가지 못했었음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뒤늦게나마

발견한 “내 남자의 등에 매달린 빛나는 암각의 사랑”은 이미란
시인이 지향하는 ‘사랑’의 차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비문처럼, ‘암각(巖刻)’처럼, 깊이 각인된 ‘사랑’이야말로
‘내 남자의

등’에서 빛나는 순간과 함께 찾아오는 가열한 시인의 정서적 에너지인 것이다. 다음 시편에서도 그런

‘사랑’의 에너지가
아름답게 번져가고 있다.

 


나는 추억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늘도 인연이라는 완행열차를 타고

당신이라는 간이역을 찾아간다

시간이 지나가는 길목엔

처음 같은 두려운 풍경이 기다린다

어느 날은 대낮의 플랫폼에서

아직은 낯선 당신 얼굴을 떠올리기도 하고

어느 날은 어두운 대합실에서

연착을 알리는 당신의 깃발을 찾기도 한다

당신은 나를 가벼운 눈길로 배웅하라

뜨거운 악수는 생략되어도 좋다

진한 이별의 말은 나누지 않아도 좋다

당신을 만나기 위한 많은 날들과

당신을 만나고 돌아선 많은 날들을

천천히 기억하며 남은 생을 살아가리니

당신의 이름이 과거로 명명됨을 슬퍼하지 마라

또 다른 간이역을 찾아 떠나는 나는

당신의 눈빛에 이 말 한 마디를 남겨둔다

나는 추억을 부정하지 않는다

추억이 된 당신이 못내 서러울 뿐이다

― 「당신이라는 간이역」 전문


 

 
‘당신’이라는 존재는 ‘인연’이라는 완행열차를 타고 들르는 추억의 ‘간이역’이다. 화자는 ‘간이역’이라는

공간 은유를 빌려
‘당신’을 다시 한 번 상상한다. 시간의 길목에 있는 그 ‘간이역’은 여러 공간 형상으로

나타나는데, 가령 화자는 ‘대낮의
플랫폼’에서는 낯선 당신 얼굴을 떠올리고 ‘어두운 대합실’에서는

연착하는 당신을 기다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화자는 뜨거운 악수나
진한 이별의 말 대신 가벼운 눈길로

돌아선 ‘당신’을 향해, “당신을 만나기 위한 많은 날들과/당신을 만나고 돌아선 많은 날들”에
대한

기억이 자신의 생의 밑거름이 될 것임을 고백하게 된다. 이제는 사라져 과거가 되어버린 “당신의 이름”

이 “또 다른 간이역을
찾아 떠나는” 순간을 허락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당신’에 대한 이별과

추억을 매개로 하여 ‘당신’과의 각별한 인연을
노래한 ‘사랑’의 시편이 된다. ‘당신’과의 만남과 이별의

순간성이 바로 ‘간이역’이라는 적실한 은유를 낳은 것이다.

 
시인은 다른 시편에서도 “우리들이 사랑한 그 길의 안부”(「담배의 연가」)를 묻기도 하고, “밤이

깊을수록 선명한 이별의
노래”(「12월」)를 웅얼거리기도 하고, “문신처럼 선명한 너의 흔적은/자다가도

숨이 막혀 눈을 뜨게 해”(「멍」)주는 것임을
아프게 노래하기도 한다. 그렇게 ‘비문’처럼, ‘암각’처럼,

‘문신’처럼 선명하게 각인된 ‘멍’의 푸른 빛깔이야말로, 이미란
시학의 아득한 통증과 그리움의 깊이를

들여다보게끔 해주는 구체적 물질성이라 할 것이다. 

 

  4. 

 
이미란 시인은 한 작품에서 “내 몸이 곧 길이다, 라고 믿기 시작하면서 그 길의 끝에 다다르기 위한

맑은 강물을 퍼 마시며 시린
모래바람에 늘어난 달빛의 혓바닥을 등에 지고 잠드는 낙타의 긴 속눈썹을

사랑하게 되었다.”(「내 몸 안에 세상의 모든 길이 숨어
있다」)고 남다른 고백을 한 바 있다. 이러한

‘몸’의 상상력은, 이번 시집을 통해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이미란 시학의 한
기둥이다. 그녀는 ‘몸’에서

발원하고 ‘몸’으로 수습하는 격정의 시학을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노래하는 시인이다. 이때 ‘몸’은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물리적 실재이자, 모든 인식과 실천이 생성되는 최초의 지점이다.

일찍이 니체(F.
Nietzsche)가 ‘몸’을 통한 세계의 무한한 해석 가능성을 제기한 이래, 우리는 ‘몸’이

이성이나 이념 지향의 인식론을
극복하는 반성적 거점이 되어왔음을 선명하게 경험한 바 있다. 그것은

가장 구체적인 원형적 실재에 대한 재발견을 통해 지워진 역사를
복원하려는 욕망과 깊이 관련되고,

‘몸’이 주체와 세계를 잇는 가장 구체적인 매개체라는 인식론적 전회의 흔적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미란

시인은 “정글 숲의 비정한 한기를 품은 짐승의 눈빛처럼”(「한편, M은 새벽 3시에 총알택시를 타고

도망을
치고」) 빛나는 치열한 격정을 통해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아름답고 섬세한 반응들을 적극

표현하고 있다.

 


노란 프리지아 꽃병이 길가에 쓰러져 있다

목이 좁아 슬픈 그림 속 물뿌리개가

알약 같은 햇빛을 보도블록 위로 쏟아낸다

바짓가랑이를 끌며 간 소멸의 구두 뒤축이다

씨방에 갇힌 허리를 두드리는 깊은 탄성과

성근 오후의 촉수가 게워놓은 위액을 따라가면

토사물처럼 번지는 뿌리의 그늘을 만날 것만 같다

 

비닐하우스에 갇혀 있던 오랜 풍문의 나날들

내.숨.통.을.조.이.는.소.풍.의.눈.물.이.보.이.나.요

묵언의 짙은 슬픔을 허공을 향해 타전중이다

 

하늘의 못에 걸린 태양의 외투를 벗기고

석양의 잔가지에 움트는 부리를 비비며

털갈이를 끝낸 새 한 마리 아득히 사라져간다

찰나로 다녀 간 뭉게구름의 계단 사이로

서늘한 그리움의 연서를 지상을 향해 털어낸다

마지막 산책의 절벽에 피어난 능소화의 행간처럼

늦은 봄날의 화원 앞에서 읽는 당신의 마지막 편지

― 「봄날의 화원 앞에서 읽다」 전문


 

 
첫 연에서는 ‘봄날의 화원’을 묘사하고 있다. 화자는 길가에 쓰러진 노란 프리지아 꽃병과 알약같이

쏟아지는 햇빛 그리고
“바짓가랑이를 끌며 간 소멸의 구두 뒤축”을 통해, 일견 병리적이고 일견

소멸해가는 풍경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남다른
전경(前景)은 곧 “토사물처럼 번지는 뿌리의

그늘” 같은 적절한 묘사를 통해, ‘봄날의 화원’이 심미적 풍경이 아닌 치명적
위난(危難)을 환기하는

풍경임을 거듭 암시한다. 그 위난의 날들은 “비닐하우스에 갇혀 있던 오랜 풍문의 나날들”인 셈이고,

화자는
숨통을 조이는 듯한 눈물을 통해 “묵언의 짙은 슬픔”을 허공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때 ‘봄날의

화원’에서 화자가 읽고 있는
것은, 새 한 마리 아득히 사라져간 하늘로부터 나타난 “서늘한 그리움의

연서” 한 장이다. 지상을 향해 털어낸 그
‘연서(戀書)’를 화자는 “마지막 산책의 절벽에 피어난 능소화의

행간처럼” 읽고 있는 것이다. 이는 봄날의 화원 앞에서 읽는
‘당신’의 마지막 편지와 의미론적 등가를

이룬다. 그 마지막 연서가 바로, 그동안 시인이 기다려온 ‘당신’에 대한 “멀미나는 노란
운명”(「해바라기」)이 아니었겠는가. 그야말로 “눈물 나게 먹먹한 충만의 시간”(「자화상」)을 숱하게 지나온 시인의 통증

어린
상징 제의(祭儀)가 바로 이 ‘마지막 편지’를 읽는 모습을 통해 수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미란 시인은 “잠을 자다가 불현듯
울어본”(「집시 풍
으로」) 시간으로 점철된 생애를 “빛나는 먼지의

나날”(「의자」)로 감내하면서도, “당신의 부재가 펼친 평화”(「풍경화」)를 오롯이 받아들이면서 자신만의

‘사랑법’을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이렇게 치열한 격정을 보여온 이미란 시학이 서서히

‘둥긂’의 형상을 지향하면서
원융(圓融)의 상상력으로 통합되어갈 것이라는 예감을 준다는 사실이다.

이는 이번 시집이 암시적으로 드러낸 한 진경(進境)이 아닐
수 없는데, 오랜 풍문의 나날을 지내고,

둥글고 따스한 세계로 진입해가는 시인의 섬세한 서정이 도드라지는 다음 시편이 그 실례가
될 것이다.

 


처음엔 가시였어요

뾰족하게 돋아난 상처였지요

짐승들도 떠도는 추운 들판이었어요

아무도 헐벗은 지붕을 가릴 수 없었지요

어둠도 잠든 밤엔 눈만 내리고 달빛도 얼어붙었어요

캄캄한 세월의 터널엔 묵은 추억의 레일만 달렸지요

화살처럼 사방에서 몰려들던 먼지의 천국이었어요

 

둥근 침묵의 방에 세를 들었지요

벽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따뜻하게 들렸어요

둥근 방은 양수의 잠처럼 포근했지요

한 달이 지나고 열 달이 지나고

모서리 없는 부드러운 방문을 열었어요

먼 거리의 하늘이 다정히 안부를 물었지요

다리를 건너 기차를 타고 푸른 신호등을 따라갔어요

둥근 창문과 둥근 계단을 지나 둥근 복도를 찾아갔지요

 

처음엔 가시였는데 생각해보니

뾰족한 그리움의 둥근 방이더군요

― 「둥근 기억」 전문


 

 
처음엔 뾰족하게 돋아난 ‘가시’이자 ‘상처’였던 추운 기억이, “둥근 침묵의 방”으로 세를 들어가자

벽에서 물 흐르는 소리도
따뜻하게 들리게 된다. 자연스럽게 그 “둥근 방”은 어머니의 양수처럼 포근한

나라를 선사한다. 지난날 얼어붙고 캄캄했던 기억을
지나 화자는 “모서리 없는 부드러운 방문”을 통해

“둥근 창문과 둥근 계단을 지나 둥근 복도”를 찾아간다. 온통 아프기만 했던
‘가시’이자 ‘상처’였던

것들이 “뾰족한 그리움의 둥근 방”으로 화하면서, 시인의 상상력은 아픈 위난과 결핍의 시간을 지나

‘둥근
기억’을 부드럽게 생성시킨다. 물론 이 시편은 ‘시(詩)’ 자체를 상상하는 일종의 ‘메타시’의 외관을

띠고 있다. 말하자면
시인은 자신의 ‘시’가 바로 ‘가시’이자 ‘상처’였던 것을 곧 부드럽고 둥근 ‘그리움의

방’으로 바꾸는 것임을 발견해간다. 그
과정이 바로 시작 과정과 유추적 상동성(相同性)을 띠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편은 앞으로 씌어질 이미란 시편의 미래적
경개(景槪)를 짐작케 하는 ‘둥긂’의

상상력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 섬세한 서정으로 시인은 “길과 길의 아늑한 간격이
아름답다.

”(「길을 가다 멈추다」)는 자각을 실어, 삶에서 ‘둥긂’과 ‘아늑함’이라는 은유가 가장 “뭉클하다는
것”

(「현지에게」)을 펼쳐나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한다.

 
생각건대, 신(神)이나 자연 같은 외재적 삶의 질서에 예속되어 있던 인간이 스스로 삶의 주체임을

선언한 것이 근대적 논리의
기초라면, 서정시는 확실히 근대의 ‘저편’을 응시하는 양식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시인들은 현실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더 나은
현실이 아니라, 꿈과 상상력으로 구성되는 ‘시적

현실’이라고 믿는다. 이미란 시인은 이러한 ‘시적 현실’을 줄곧 치열하고
섬세하게 탐색하고

추구하면서, ‘현실/꿈’의 접점에서 형성되는 긴장과 균형 속에서 자신의 미학과 윤리학을 완성해간다.

그녀는
서정시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 결핍과 부재를 견디는 힘에서 가능한 것이고,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의 결핍이나 한때 분명히 실재했던
것들의 현저한 부재에 대한 가장 원형적인 반응이 기억의

원동력을 담아내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이번 시집은 그러한 인식론적
기저(基底)에서 펼쳐진 심미적

화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5.

 
리가 읽어온 것처럼, 이미란 시인의 이번 시집은 고요하고 정태적인 상태를 지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 시편들은 내면 경험의
활력을 말의 그것으로 치환해내는 심미적 격정의 세계를 환기한다.

그리고 다양한 사물과 관념에 고유의 질감을 부여하는 창신(創新)의
안목과 그것을 언어의 구체적인

물질성으로 바꾸어내는 조형 능력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 점에서 우리는 그녀의 만만찮은 시적 능력을

통해, 사물과 인간의 상상력이 조우하여 빚어내는 구체적이고 역동적인 이미지로서의 창조물을 만나게

된다. 그 과정은 ‘당신’을
향한 기다림의 상처가, ‘마지막 편지’로 사라져가는 치열한 격정을 지나,

‘둥긂’을 상상하고 실현하는 섬세한 서정과 결속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이제 이미란 시인은 “문제는 내가 가진 예민한 속도”(「모멸에 대하여」)라면서 “이 시대의 아름다운

시를 쓰기 위하여/더 많이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모멸에 대하여」) 한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넘쳐나는

‘속도’를 근원적으로 반성하면서 ‘침묵’의 법을
배워가려는 그녀의 고백이, “너라는 불면에 취하고”

(「구제불능의 노래」) “타이레놀 두 알이 성모 마리아”(「기형도를 읽는
밤」)였던 아팠던 실존을 훌쩍

넘어, 그녀로 하여금 아름다운 세 번째 시집을 완성케 하는 근원적 힘이 되기를 희원해본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모든 예술 행위는 찰나”(「두 남자」)라고 선언하는 그녀가 “어딘지 미심쩍고 겸손했던

슬픈 위장의 말들”(「무반주
소나타를 들으며 생각한다」)을 넘어, 새로운 언어로 또 다른 심미적

결절(結節)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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