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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낯선 꽃밭

Author
mimi
Date
2011-04-06 19:49
Views
10088


 

아름답고 낯선 꽃밭

- 김두환 시집「모둠꽃밭 가꾸는」(시학)

 

                                                            - 마경덕 (시인)




 

  덩두렷하여 빛저운

  한 송이 나고자

  여태껏 벌겋게 끙끙

  비릇기만 하다가

 

  겨우 못다한

  귀심만 탱탱한

  봉숭아 외로이 끔벅이는가

 

 
제8시집「모둠꽃밭 가꾸는」책머리에 나오는 자서이다. 분명 우리말인데 알 수가 없다. 詩作 대부분이 토착어다. 시를 이해하려면
사전을 찾아봐야 한다. 평안도 사투리를 즐겨 쓰던 시인 백석, 토속적이고 향토색이 짙은 그의 시집은 주를 달아 독자의 이해를
도왔지만 김두환은 대부분 주를 달지 않아 시를 이해하는데 불편을 준다. 굳이 어려운 토착어를 사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중
하나는 사전을 찾아 읽는 맛과 재미를 주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말을 소흘히 하는 시대를 향해 그만한 열정은 가져야 하지
않느냐는 나무람 같기도 하다. 아름다운 우리말 지키기에 앞장선 김두환의 시를 읽노라면 그가 우리말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
수가 있다. 생먹은 듯, 게정, 썰레놓는, 목다심, 무롸낸다, 달보드레한, 에멜무지, 사그랑주머니… 처음 보는 낯선 우리말에
당황하게 되는데, 시인은 국어사전을 달달 외울 정도로 탐독했다고 하니 이 낯선 낱말들도 그의 손에 닳고 닳아 말랑해졌을 것이다.
마치 뻣뻣한 종이를 반복해서 구긴다면 그 결기가 사그라지듯 낯선 말들이 그의 손에서 새롭게 직조된 것이다. 그의 시들은 독특한
무늬(문체)를 지니고 있다. 길쌈을 할 때 흔히 쓰이는 삼이나 모시나 목화가 아닌, 전혀 다른 원료로 피륙을 짜는 것과 같은
방법은 그 누구의 풍風도 아닌 그만의 풍을 지니고 있다. 전통적인 기반에서 벗어나 뚜렷한 자기 관조로 한국
모더니즘(modernism)의 또 다른 측면을 개척했다는 백석도 특이한 시작법으로 관념적이고 공허한 동시대의 詩들과 차이를
두었다. 김두환 역시 세간의 흐름을 좇지 않는다. 그는 대상(對象)에 대한 이미지(心象)를 결합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연합적 상상력’으로 시를 짓는다. 꽃의 이미지를 창조해 내는 ‘상상력’은 낯설지만 설득력이 있다. 설득력이 있다는 것은 보편성을
지녔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독자의 중력을 벗어나서 위험한 무한천공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말이다. 독특한 김두환의 시들은 더
낯설기 위해 말을 아끼는 줄도 모른다. 시라는 짧은 지면에서 언어의 절제는 시가 가진 시만의 품위라고 할 수 있다. 지나친 요설은
언어의 배설이 아닌가. 군더더기가 없는 절제된 감정과 그만의 어투는 낯섦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세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아 그는
홀로 흐를 수 있는 것이다.

  임보 시인은 “오늘의 시인 가운데 우리의 모국어를 가장 사랑하는 이는 김두환 시인이다. 사라져가는 우리 고유어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작품 속에 부활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순교자적인 우리말 지킴이다.”라고 평했다.

 

 
순우리말로 지은 한 채의 詩集, 첫문을 열고 들어서면 산수유, 찔레, 장미 얼개화 산딸기 목련 동백 꽃단풍 연꽃 봉숭아… 여러
향기로 둘러싸인 집에는 냉갈냄새와 보글보글 끓는 된장국과 꼬리치며 달려오는 복슬강아지가 있다. 바지랑대에 배꽃같은 서답이 널려있는
집, 어머니가 버선발로 달려 나올 것만 같은 집, 첫장을 들추면 바람과 이슬 냄새를 품은 손때 묻은 마루냄새와 흐드러진 꽃들이
한자리에 어울려 눈부시다. 그가 지금까지 상재한 1천여 편이 넘는 시 중에서 꽃을 소재로 한 시는 2백여 편이 넘는다니 가히
‘꽃시인’으로 불릴만 하다. 꽃에 대한 그만의 독특한 시적표현은 우리말을 詩想化 하여 거듭나게 된다. 그가 말하는 꽃은 단순한
꽃으로는 읽히지 않는다. 어느덧 일흔 넷이 된 시인은 조심스럽고 정성스레 꽃밭을 가꾸는 세월의 모둠이었다고 한다. 첫 페이지 꽃 ․
1에서 꽃 ․ 20까지는 꽃 이름을 정하지 않았지만 세상냄새, 사람냄새, 산사의 바람냄새, 풍경소리가 들린다. 꽃의 이름을 달고
다시 시작되는 ‘저 난 ․ 1’에서도 가냘프고 풋풋한 난의 특성을 살려 마음과 몸이 옥처럼 맑은 여자를 이르는 옥녀에 비유하였고
‘찔레꽃 ․ 2’에서는 가난해도 넉넉한 인심과 변하지 않는 부부의 정을 노래하고 있다. 역시 사람이 꽃이다.

 

  가난해도 넉넉하여 끈끈하여

  함께 겯는 그 시절

  인심이구려

 

  소박해도 깨끗하고 투명하여

  서로 아끼는 그 마음

  노래이구려

 

  수줍어도 깔밋하여 은근하여

  좀체로 슬지 않고 쇠나지 않는

  그 깐줄기 슬그머니 잡아당기는

  부쩝이구려

 

  천둥 울어도 먹구름 부라려도

  머잖아 드러나서 독야청청할

  그 초승달 눈웃음 꾹꾹

  빌어 쌓는 높여 쌓는

  점지이구려

 

  찔러 찔러 찌른다

  저 저념佇念

  저 통시洞視

 

  -「찔레꽃 ․ 2」전문

 

 
찔레는 산기슭이나 볕이 잘 드는 냇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여기서 흔하다는 건, 지체가 낮은 범부와 그의 아내를 뜻함이
아닌가. 세상의 부부들은 신이 점지해준 자식을 낳고 가족을 이루며 살아간다. 소박하고 가난한 살림에 보릿고개도 함께 견디며
찔레넝쿨처럼 서로 얽혀 부부는 함께 늙어간다. 친근하고 부쩝한 성품에 미운 정 고운 정 쌓으며 속정도 깊어진다. 그러나 맑은 날만
있으랴. 살다보면 서로에게 가시를 세우기도 하는 것, 한바탕 서로 할퀴고 상처를 내어놓고도 생각해보면 조강지처만한 인연이 세상에
또 있을까. 못난 지아비 지어미도 찔레꽃처럼 향기가 있으니 그 깐줄기 슬그머니 잡아당기며 다시 살붙이고 사는 것이다. 같은
꽃이지만 애지중지 돌봐야 하는 고고한 난과 들에 혼자 피고 지는 찔레는 차이가 있다. 난이 기품 있고 우아한 여인이라면 찔레는
시장통에서 흔히 보는 평범한 아낙일 것이다. 꽃의 모습과 빛깔이 다르듯 사람 사는 꼴도 여러 꼴이어서 ‘장미꽃 ․ 1’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삶이 있다.

 

 

  이왕 달아올랐으니 어쩌겠나

  밤 아닌 대낮이라도 벌겋게

  가쁘게 마지막 힘꼴 태워

  감투거리하는

  그래도 못다 풀어 아쉬운 듯

  입맛 다시며 성긋거리는

  저년 이년 빨강 꼴값년 길섶꽃년 별년

  다 보겠는데, 놈들-원시정原始情들은

  은근히 빗뜨고 바작바작 부스럭부스럭

  끌린다나 눈독 들인다나 어쩐다나

 

  어쩌면

  깊은 꽃술 빛발은 따뜻한 온챗집 우뚝

  그야말로 세정世情 푸새들만이 아니고

  되깎이 은형귀 팔만대장경까지도 슬슬

  꿀걱거리게 하는

  쏠리게 하는 하지만 어지빠르지 않는

  조화는 감히 높이 살 만하다

 

  -「장미꽃 ․ 1」전문

 

 
대낮에 달아오른 꽃은 얼마나 뜨거울까, 남자 위에 올라가 하는 그 짓을 하는 여자는 분명 정이 헤픈 길섶꽃년이다. 은근히 빗뜨고
바작바작 부스럭부스럭 끌려가는 남정네들은 장미의 그 붉은 가시에 찔리고 말 것이다. 세상으로 환속했던 되깎이 중이 다시 절로
들어가는데 소맷자락을 붙잡고 몸을 숨기고 여러 가지 재난을 일으키는 못된 은형귀마저도 그 미색에 넋을 잃는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저년 이년 꼴값년 별년이다. 세상의 조화는 놀라워서 난처럼 고상하지도 찔레처럼 수더분하지도 않으니 정도가 넘고 처져서 어느
한쪽에도 맞지 않다. 김두환은 이렇듯 꽃 하나 하나에 의미를 두고 심미적 거리에서 꽃을 바라본다. 감성적 이미저리 보다는 삶에서
표출된 생활의 이미저리에 가깝다.

 

 

  세파에 눌려도

  허리에 돈 차고 학 타고

  양주楊洲까지 올라갈까 벼르던

  어머니 그 금金바리 젖꼭지

 

  가까스로 끈적끈적

  떨어지는 대로 늘채는

  젖물 방울방울, 늦둥이 달랠

  얼요깃감이지만 그지없는

  순수의

  달

  해가 솟을 듯 슬몃슬몃

  슴벅거린다

 

   -「산수유꽃 ․ 4」전문

 

 
층층나무과 낙엽교목인 산수유는 이른 봄에 핀다. 식구들은 다 자는데 혼자 일어나 새벽밥을 짓는 어머니처럼 다른 꽃들이 피기 전에
서둘러 핀다. 찬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산수유는 어머니, 늦둥이 젖먹이를 등에 업고 양주楊洲까지 올라갈까 벼르던 어머니, 그
금金바리 젖꼭지, 산수유 열매는 그리운 어머니의 젖꼭지다.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던 달덩이 같은 어머니가 노란 산수유꽃으로
피어난다.

 

  사방에 잡풀꽃 둘러앉히고는

  이따금 주장자拄杖子 굴려가며

  설법하는 깊이 씻가시는

  큰스님 큰 호령

 

  미혹迷惑들아 어서 맨발로만

  달려 와서 겁석 엎드려

  귀재려므나

 

  두고두고 막아주고 감싸 주고

  올려주고 불려주는

  겹철릭 으뜸이구려

 

  비바람 천둥 몰아쳐도

  옳게만 불러들이는

  깃발 벌겋게 흔드는 구려

 

  -「억새꽃」전문

 

 
철릭은 무관이 입던 공복(公服)으로 허리에 주름을 잡아 활동하기 편하게 만든 옷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무관들의 평상복,
공복으로 국난 시에는 문관들의 융복으로 채택 되었다고 하니 위엄을 갖춘 옷이다. 억새는 그 옷을 겹겹이 껴입고 산바람 들바람을
견딘다. 억새는 잡풀꽃 보다 키가 훌쩍 커서 휘청거리며 바람을 다 맞는다. 서리가 내리면 희끗희끗 머리가 희어지다가 이내 하얗게
쇠고 만다. 영락없이 사방에 잡풀꽃 둘러앉히고 주장자拄杖子 굴려가며 설법하는 노스님의 큰 호령이다. 늙은 억새에서 하얗게 꽃이
터져 나오듯 큰스님의 입에서 설법이 터져 나온다. 에즈라파운드는 “많은 양의 작품들을 내놓는 것보다 일생에 걸쳐 하나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이 낫다.” 하였다. ‘꽃보다 더 꽃을 사랑하는 시인’ 김두환, 시의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대부분 꽃이다. 꽃의
이미지는 김두환에게 시의 효과를 드러내는데 사용된다. 그는 시적 이미저리(imagery)를 꽃을 통해 말하고 있다.

 

 

  전철 안 노약자 자리

  하얀 들국화 여인 보기 좋게

  한 땀 두 땀 열심히 뜨개질 하는데

 

  스스로를 위한 온감 키우기일까

  누굴 북돋워 주자는

  깊은 마음 쌓아 올리기 일까

 

  덧물에 잠긴 듯 더 맑게 깔밋해도

  오래 세상일에 경더리된 탓인지

  가냘픈 손놀림, 허나 그 선심禪心

  지난 슬픔이야 다 잊고 되레

  그동안 조리차하면서 시뼈 모아진

  좀도리 여정 박아놓고 있으니

  얼마 후에 매듭지으며 인연한

  새로운 영 운김과 합환해 얼싸 좋아

  별 달을 품은 더 고아한 모습이겠지만

  글쎄다 늦게까지 극진히 실천하는

  구도자 집중集中 집중執中 끝갈망

  훨씬 더 많이 쳐주겠다

 

  -「집중과 집중」전문

 

 
시인이 운길산을 등산하고 오는 길에 만난 할머니, 이목이 집중되는 전철에서 뜨개질에 열중이다. 찬 서리를 맞으며 피는 들국화의
이미지를 차용, 머리에 서리가 내려앉은 노인을 한 송이 들국화로 노래했다. 가난한 시절을 보낸 노인은 좀도리쌀로 살림을 꾸려갔을
것이다. 평생을 아껴 쓰는 일에 이골이 난 부지런한 노인은 전철을 타고 가면서도 손을 놀리지 않는다. 그 모습이 아담하고
깔끔하다. 손끝이 야문 노인이 한 땀 두 땀 코를 꿰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몰입하는 그 모습이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당당하다. 마무리는 또 얼마나 야무질 것인가. 평생 절미(節米)하며 자식을 키워낸 부지런한 손은 곧 어머니의 손이다. 시인은
측은하게 노인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의 시는 연민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 안타까움이 희망과 감동으로 다가온다. 정성과 사랑이 깃든
모성을 김두환은 높은 값으로 쳐주고 있다.

 

 
‘모둠꽃밭’ 의 꽃들은 대부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꽃들이다. 담벼락을 덮는 길가 개나리나 들국화나 찔레, 봉숭아,
목련, 억새꽃들이다. 제3부 ‘풍경과 정취’ 이후 주인공들도 대부분 자연이다. 눈 내리는 산길, 청계산 등산길, 풍경소리
고즈넉한 산사, 보리밭, 디딜방아, 산딸기, 여승, 며느리… 그의 시들은 모성과 향수가 묻어나는 고향에 대한 인식이 잘 드러난다.
1950년대 말 끼니마저 어렵던 시절, 당시 성균관대 약학과를 다니던 김두환은 점심시간이 되면 친구들 몰래 창경원(현
창경궁)으로 들어가 주린 배를 물로 채우고 팔베개를 하고 누워 당시(唐詩)를 원문(原文)으로 읽곤 했다. 그때 암송하던 당시의
영향으로 시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종로2가 낙원동 입구에서 수십 년 약국을 경영하며 피부과 환자들의 고충을 해결해 온
명약사였다. 시집「모둠꽃밭 가꾸는」은 환자와 함께 젊음을 보낸 세월이요, 희로애락이 축소된 세상이며 꽃밭이다. 213편의 시를
꾹꾹 눌러 담은 시집은 정성스레 꽃밭을 가꾸던 ‘세월의 모둠’이다. 국적불명의 외래어 홍수 속에서 토속적인 시어(詩語)로 우리말을
지켜온 시인의 ‘집 한 채’가 볼수록 아름답고 깔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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