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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화두, 구도의 길

Author
mimi
Date
2011-02-06 12:45
Views
9804

 


  새그리고_나무-gulsame.jpg

                                                                                         사진 <한국문학도서관>에서         

                                                                                    



계간『다시올문학』(2009년 겨울호) ‘서평’

 

 김세형 신작소시집  "달빛편지 외 4편

 

 

 영원한 화두, 구도의 길

 

                                                                                                                   마경덕 (시인)

 

 
태양빛을 받아 반사하는 달은 빛이 닿는 부분만 빛을 낸다. 스스로 발광(發光)하지 않는 달,「달빛 편지」의 시적 대상인 달빛은
허상이다. 헛것을 보고 허욕을 좇는 행위는 결국 무소유와 허무로 귀결된다. “많이 갖는 것은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이며

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무소유”는 법정 스님의 수필집을 통해 널리 알려진 친숙한 말이다. 무소유,
무소득(無所得)은 불교에서는 단순하게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번뇌의 범위를 넘어서 모든 것이 존재하는 상태, 삼매의
경지이다. 무욕은 그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다. 화자는 우주와 하나가 되어 끊임없이 통찰하고 괴로움을 소멸코자 한다. 김세형이
지향하는 궁극은 면벽을 통한 깨달음과 구원이다. 김세형은 한껏 달아오른 쇠를 찬물에 식히듯 극과 극, 소유와 무소유의 간극으로
말하고자 하는 효과를 얻어낸다. 고급관능인 시각과 청각, 미를 배제한 저급관능 촉각, 미각, 후각까지 오감을 다 활용하는 김세형은
즉물적 상상력에 환상을 가미한다. 감각적 이미지의 대상은 성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관능”이다. 그 관능을 불교적 상상력과
구도(求道)의 힘으로 절제하고 다스린다.

 

 

  그리곤 꿈결인 듯, 생시인 듯, 출렁이는 흐린 달빛 눈으로

  짐짓 잠든 척 하고 있는 나의 못난 얼굴을 몰골이 송연한

  새벽달 표정으로 한참을 뚫어져라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인가?

  그의 얼굴에 덮어 쓴 검은 복면 밑으로 갑자기 무언가

  주르륵, 흘러내리더니 까칠한 내 입술 위로 낙숫물처럼

  뚝, 뚝, 떨어져내려 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비릿하고 찝찔한 것이 피눈물 같았다.

  그는 그렇게 한동안 파리하게 내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그믐처럼 돌아서서는 들창문을 향해 소리 없이 다가가

  달그림자도 남기지 않은 채 내 방을 슬며시 빠져 나가버렸다.

  화들짝 두 눈을 떠보았다.

  방바닥 한가운데엔 아직도 달칼에 베인 달 조각 하나가

  흰 피를 질질 흘리며 하얗게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달빛 편지」부분

 

 

 
여기서 달은 구체적인 시적 대상이지만 달빛은 환상이요 허상일 뿐이다. (“널, 갖고 싶었어/아주, 아주, 오랜 그
옛날부터”「달빛 편지」부분) 화자는 헛된 집착과 끝내 소유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달빛으로 말하고 있다. 소유에 대한
욕망의 무상함은「면벽」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 여자가 그 사내와 결혼한 것은 순전히 그 사내의 등

때문이었다, 그 사내의 운동장만한 너른 등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사내의 등은 여자의 벽이 되어 있었다, 사내는 언제부터인가

밤마다 자신의 잔등의 등잔불을 끈 채 등을 돌려대기 일쑤였다, 차가운

동굴 벽을 마주보고 앉아 좌부동 9년 면벽에 든 달마대사처럼,

 

침실 벽을 마주하고 앉아 늘 싸늘히 식은 채 면벽하기 일쑤였다, 한 때

물오른 한 쌍의 달마시안처럼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뜨거운

사랑의 폭죽을 황홀히 터뜨렸던 그들의 홍등 빛 신혼의 방이, 이젠

어느 깊은 겨울 산골짝, 꽝꽝 얼어붙은 빙폭 근처, 어느 눈 푸른

수행납자의 고독한 수행토굴 같았다

 

-「면벽」부분

 

 

 

 
소림사(少林寺)에서 9년간 면벽좌선(面壁坐禪)한 후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다는 이(理)를 깨닫게 되었다는 달마대사.
보디다르마(Bodhidharma)의 약칭인 달마는 중국 남북조시대에 선종(禪宗)을 창시하고 당시 불교와는 정반대인 좌선을 통하여
사상을 실천하는 새로운 불교를 강조했다.「면벽」에 등장하는 사내는 “기댈 수 있는” 따뜻한 등이었다가 “가로 막는” 차디찬 벽으로
바뀌고 만다. 밤마다 잔등의 등잔불을 끈 채 등을 돌린 사내는 여자에게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며 싸늘한 “빙폭‘이다. 그
어떤 쾌락(섹스)도 달마가 되어버린 사내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사랑’ 하나만 믿고 살아온 여자에게 변절된 마음처럼 싸늘한 것이
또 있을까? “단절”을 뜻하는「면벽」은 두 가지로 풀이할 수 있다. 돌이킬 수 없이 변해버린 “인간의 마음”을 통해 영원하리라
믿었던 것들의 나약함과 무상함을 보여준다. 또 하나는 “욕정”도 끊을 수 있는 “구도의 힘”이다. 육체적 쾌락, 수컷의 본능마저도
다 버려야만 구도의 길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즐거움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외로움의 본질”과 “덧없는 인생”을
김세형은「면벽」으로 말하고 있다. 구도의 길에 오른 사람에겐 무심은 영원한 면죄이지만 사랑의 길에 있어 무심은 영원한 죄악이라는
것이니, 사랑에게 ‘죄’를 짓지 않고서는 “깨달음”에 들지 못할 것이다.

 

 「최
후의 꽃」역시 “소유”를 통해 인간의 욕심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현세(現世)는 황금만능시대,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富”는 권력에 가깝다. “물질”은 막강한 힘으로 넘어서는 안 될 최후의 선까지 무너뜨린다. 그 힘을 이용하는 부정한
자들을 김세형은 “족속들”이라고 일축한다. “얼굴값”을 속되게 이르는 꼴값은 분수를 지키지 못하고 격에 맞지 않는 행동을 보았을 때
흔히 쓰는 말이다. 도덕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쾌락과 명예만 좇는 어지러운 세상. 육체와 정신까지 병든 오탁악세에 순수한 사랑의
마지막 은유라 생각했던 꽃, 이미 값이 다 매겨져 있다. 꽃들은 다 죽고 꽃값과 꼴값들만 남아 있다.

 

  난 그동안 꽃들만큼은 꽃값이 매겨져 있지 않을 거라 생각해왔다.

  꽃은 이 더러운 진흙탕 세상, 오탁악세에서도 더럽혀지지 않은 채

  유일하게 남은 순수한 사랑의 마지막 은유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옛날의 금잔디에 피었던 옛 꽃들에 관한 얘기였다.

  이젠 꼴값들이 세상의 꽃이란 꽃은 죄다 꽃값을 붙여 놔 버렸다.

  때문에 세상엔 이제 꽃은 없고 꽃값만 남아 있다.

  난 최후의 꽃이 이 세상 어느 후미진 골목 구석빼기에라도

  행여 남아있지 않을까하여 두 눈을 씻고

  세상 곳곳을 비바람처럼 비틀대며 평생을 쏘다녀보았다.

  그러나 꽃값이 붙지 않은 꽃은 세상에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최후의 꽃마저 꼴값들이 죽인지 이미 오래였다.

  꽃들은 다 죽고 꽃값과 꼴값들만 남아 있었다.

 

                                           -「최후의 꽃」부분

 

 

 
진흙탕 속에서도 티 한 점 없이 눈부시게 피어나는 꽃, 그 아름다움으로 여자를 꽃에 비유하기도 한다. 여기서 “꽃”은 마지막
순수이다. “순수”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것들이다. “값”을 매길 수 없는 것들은 대개 무형(無形)의 것들이다. 그 무형의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로 세상은 돌아간다. “순수”는 사라지고 “꼴값”만 남은 시대, 우리가 믿었던 “유일한 것”은 잃어버린
“최후의 것”이다.

 

 
민속무용 중 가장 예술성이 높다는 승무는 불교적인 색채가 강한 독무(獨舞)이다. 자진모리와 당악(堂樂) 장단에 맞추어 시작하는
북소리에 긴 장삼이 허공에 뿌려지듯 나풀거린다. 고깔을 쓰고 어깨에 붉은 가사를 걸치고 나비처럼 가볍게 춤을 추는 승무는
불교의식무용 중 법고(法鼓)춤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승무」에서도 “삶의 덧없음”을 “꽃” “여인” “바람”으로 말하고
있다. 오체투지 몇 생애가 지나도록 칼날을 갈면 꽃잎에도 칼이 갈린다. 참으로 길고 지루한 “구도”의 길이다. 어느 날 단도직입,
허공 속으로 사라져버릴 한 줌 목숨을 위해 삭발을 하고 출가한 여승은 꽃잎에 칼을 갈 듯 제 몸을 갈아 꽃처럼 다시 피었다.

 

 

  꽃잎이 칼인 꽃을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날렵하고 부드러운 꽃잎을 보았다

  가슴에 단도직입, 시퍼런 날선 꽃잎을 품고 있다가

  부신 달빛 아래 허공에 마구 칼질을 해대는

  슬픔이 파르라니 곱상한 여승을 보았다

  몇 생애 애타도록 찾아 헤매던 그녀였다

  염화사 앞마당에 부드러운 칼바람이 난무했다

  아찔한 꽃향기가 경내에 온통 진동을 했다

  단도직입, 칼 맞아 죽은 자만이 살아있었다

  꽃처럼 살아있었다

 

                                               -「승무」부분

 

 

 
내면의 세계를 형상화한「승무」는 결연한 의지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육적인 쾌락”보다는 “정신적 세계”에 초점을 둔
그의 시편들은 스스로 고통을 찾아 그 고통에 참여하고 성찰한다. 사물이 비롯되는 근본이나 원인을 찾아나선 김세형은「승무」에서도
삶과 죽음에 대해 묻는다. 바람처럼 사라졌던 여인, 몇 생애 애타도록 찾아 헤매던 그녀의 춤사위에 염화사 앞마당 아찔한 꽃향기가
피어오른다. 이전 속가(俗家)의 여인은 이미 죽고 단도직입(單刀直入) 선사의 적수(赤手)에 심안(心眼)이 열려 새로운 생으로 다시
살고 있다.「승무는」현세보다는 내세(來世)에 참다운 인간의 행복이 있다고 믿는 내세사상(來世思想)을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살점을 도려내고 피를 흘림은 그의 종교관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래「새의 本籍」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적
메타포를 발견할 수 있다.

 

 

  당신은 본적 있는 새를 본 적이 있나요?

  김해 김씨, 전주 이씨, 밀양 박씨, 하는 그런 것 말고 말입니다

  난 늘 새를 보는 순간 새를 놓치고 맙니다

  때문에 난 이제껏 본적 있는 새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눈이 보배시군요

  본적 있는 새를 본 적이 있으시다니 말입니다

  난 가끔씩 새들의 本鄕인 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본적 있는 새를 찾아보긴 합니다만, 그러나 그때마다

  본적 있는 새는커녕, 본적 없는 새조차 본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가끔씩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새의 본적을 찾던 누가

  무엄하게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를 잡기 위해 하늘을 향해 땅!

  하고 엽총 쏴대는 귀청 떨어지는 소린 가끔 듣긴 하지만, 글쎄요…

  전 째-액, 하는 새 본적 떨어지는 소리는 그때마다 금시초문이기에

  난 이제껏 조족지혈도 남아있지 않은 본적 있는 새 喪家에는

  감히 조문치도 못했습니다

  새는 늘 살 같이 지나는 시간 속에서만 殺意의 살에 꽂혀 날기에,

  새는 늘 바라보는 자의 눈빛 속에서만 殺意의 눈살에 꽂혀 날기에,

  시간 밖에서 서성이고 있는 난 늘 새를 놓치고 맙니다.

 

                                                      -「새의 本籍」부분

 

 「새
의 本籍」에서 “본적”은 호적법상의 고향과 “눈으로 보다”라는 “본 적”의 두 가지로 읽을 수 있다. 날개를 가진 새들의 本鄕은
하늘이다. 화자가 새를 보는 순간 새들은 금세 시야를 벗어난다. 때문에 이제껏 본적 있는 새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새를 잡을 수 있는 것은 날개의 속도보다 빠른 “총”이라는 무기이다. 살 같이 지나는 시간 속에서만 殺意의 살에 꽂혀 날아가는
바람보다 가벼운 새들,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허공에는 발자국 하나 남지 않는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력 앞에 조문
한번 받지 못한 새의 죽음은 조족지혈이다. 시간 밖을 서성이는 화자는 권력과 무관한 힘이 없는 무력한 자다. 감히 푸른 하늘에
총구를 겨누는 무엄한 자들은 누구인가? 폭력과 부정과 권력을 남용하는 비정한 세상일 것이다. 화자는 새의 죽음 따윈 안중에도 없는
무정한 시대를 향해 묻는다. “당신의 본적은 무엇입니까? 난 당신의 본적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인간의 욕망과 속성을 “구도의
힘”으로 절제하며 갈등과 번민을 통해 삶의 근원과 구원을 찾아가는 김세형의 시편은 시종 결연한 어조로 화두를 던진다. “인생이란
무엇이며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대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떠나온 본적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평생을 헤매다가 눈
깜짝할 사이 우리는 죽음 앞에 서있는 것이다.



작성자:  마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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