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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바람 같은 거/2011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

Author
mimi
Date
2011-01-15 09:03
Views
8410

 

          

 

생, 바람 같은 거 / 배귀선

 

 

  창가에 앉는다.

  ‘타이타닉’영화음악이 잔잔히 다가와 맞은편 소파에 기대고, 카페 안을 채운 커피 향은 소멸해 가는 내 기억을 더듬고 있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인 인연. 가끔 기억의 케이블을 통해 묵직한 통증이 느껴져도 그것은 내 삶의 상처였기에 소중한 것이다.

  그리움보다 지극한 상처의 밭, 그 가슴에 또 다른 흉터가 생긴다 해도 누군가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하고 가슴 뛰는 일이다.

  창밖, 한 생을 마무리하고 떠난 가을의 뒷모습을 내려다본다.

 

  뼈만 남은 푸석한 이파리. 마른 허공에 제 몸 맡긴 채 뒹굴고, 굳어지는 길 따라 가로수 앙상한 가지에 회색의 바람 걸쳐있다.

  한껏 깃을 세운 사람들 총총거리는 오후, 이따금 들리는 과일장수의 곱은 목소리 위로 매운바람이 쌓인다.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는 땅의 상처들이 움츠린 길. 한기 가득한 공간을 밀치고 트럭 한 대가 선다.

  황급히 생수통을 메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물장수. 상당한 시간이 흘러도 주인은 오지 않고 적재함에 남겨진 텅 빈 물통들만 무슨 말을 하는지 작은 입 오물거리고 있다.

   

  남기고 간 사람과 남겨진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남겨진 사람이다.

  고난이 고난을 부르는 틈에 끼어 살아온 세월. 아내로부터 남겨졌다기보다 버림받았다는 피해의식이 커 갈수록 고통은 빈 생수통 속의 바람처럼 내 몸 구석구석을 채웠다.

   

  평범한 것은 행복하다는 것, 그랬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삼대가 한 지붕 아래 살며 단란했었다.

  기독교적 인생관으로 살아온 부모님은 남에게 피해주는 일 없이 선하게 사는 분들이었다.

  험한 일들이 남의 일처럼 생각되었던 그때, 인생길 곳곳에 잠복중인 액운은 우리 가족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박테리아처럼 번식했던 고통의 순간들. 어머니는 말기암 진단으로 시한부 삶을 살아야했고 같은 해 아버지는 중풍으로 쓰러졌다.

  도피처를 찾던 아내의 잦은 가출은 결국 가족을 남겨 놓은 채 걸음을 돌렸고 그 후로 아내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어린 자식을 달고 살아야 하는 나의 원망은 한恨이 되었다.

  원망은 대상이 필요하지만 한은 정신적 상처이며 자신에 대한 속울음이다.

  부권중심에서 여성의 한은 떨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그 한을 남자인 내가 경험하는 건 지독한 형벌이었다.

   

  세상사는 맛이 막 배어드는 나이에 돌덩이 같은 밥을 목구멍에 넘기며 버려진 설움에 전율했다.

  믿었던 사람에게서 받은 배신은 원망보다 차라리 산화해버리고 싶은 비참함이었다.

  남을 해한 일 없이 살아온 삶이고 특별히 삶을 잘못 산 것도 아니었는데 왜 나였을까.

 

 
한쪽 날개가 꺾인 아들 때문에 항암치료의 고통도 잊은 채 극도로 상심해 있는 어머니와 반신불수가 되어 중환자실에 있는 아버지.
술에 젖은 벌건 눈으로 허둥대는 아비를 바라보는 어린 자식들의 두려움은 나를 깊은 절망의 늪으로 밀어 넣었다.

  프로메테우스가 이랬을까. 눈뜨면 찾아오는 고통을 참을 수 없었다.

  죽음이 그리웠다.

  찢겨진 21그램의 영혼과 고통스런 육의 사슬을 끊으려 핏빛 바다를 향해 내달렸다.

  행위의 옳고 그름과 이성적인가 아닌가는 삶의 쉼표를 찍을 수 있는 여유로운 자의 호기일 뿐 나에겐 그만한 여유도 없었다. 

 

  수성당 시누대 서럽게 서걱대는 검붉은 노을 앞에서 나는, 절벽아래 파도를 향해 선뜻 뛰어내리지 못하고 우두망찰 서 있었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남겨질 사람들이었다.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막다른 길. 그 순간 왜 노을은 미치도록 아름다웠는가. 살아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아픔 또한 살아야 할 이유라는 생각이 뒷덜미를 움켜잡았다.

  죽을 수 없어 살아야 하는 당위는 차라리 희열이었다.

  나는 정신을 수습했다. 

 

  대소변을 수발해야 하는 부모와 어린 자식을 위해 앞치마를 둘렀다.

  서투른 칼질에 손을 베어 골 패인 나무도마 위에 피가 흥건히 고이는 아픔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런 아비의 상처를 여미는 열한 살 아들의 또랑한 눈은 살아야 하는 이유였다.

  가시고기처럼 누구도 침범할 수 없고 얕잡아 볼 수 없는 아버지라는 이름이 나를 살게 했다.

   

  같은 질량의 통증도 시간이 지나면 무디어지는 걸까. 감당할 수 없는 운명 앞에 고통도 사랑해야 할 삶의 일부임을 알았고 아픔도 시간이 흘러가는 만큼 상쇄되어 갔다.

  질곡의 십여 년. 고통과 고독에 익숙해진 나는, 눈물로 가슴을 삭이는 슬픔은 꽃보다 아름다운 것임을 보았다.

 

  흐르는 물처럼 멈추지 않으며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해 가는 생. 아버지도 어머니 잠든 곳을 찾아 영원한 안식을 얻었고 아이들은 제 삶을 찾아 갔다.

  오가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고 사람 또한 그러한 것이거늘, 무엇이 화날 일이고 무엇이 고통이었는가. 생각의 스위치를 내린다. 

 

  덩그렇게 남은 나의 계절. 어느새 음악은 노팅힐의 거리를 걷고 있다.

  유명 여배우와 평범한 남자의 사랑을 그린 영화 노팅힐.

 

  사랑은 희망을 주는 것이기에 나는 오늘도 가로수 손에 잡힐 듯한 노팅힐 카페에 앉아 또 하나의 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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