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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쓸쓸한 적막, 또는 통증

Author
mimi
Date
2011-01-18 10:26
Views
9247

꽃_gulsame.jpg


                                                                                         사진<네이버 포토갤러리> 이정우(cosmos8046)님

 

 

-한옥순 신작소시집 해설 (우리詩 2010. 7월호 )-

 

 

             아름답고 쓸쓸한 적막, 또는 통증

 

                                                                                                                      마경덕(시인)

 

 

 
어느 시인이 이르기를 “시는 쓰디쓴 서약이며 시인이 흘린 내출혈의 흔적”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시는 온몸을 돌아 핏줄을 들쑤시며
나왔다는 것인데 시를 낳은 몸은 무사한가? 내상內傷이니 겉은 멀쩡하지만 모세혈관까지 터져있는 시인들은 작은 통증에도 민감하다.
신이 시인에게만 주는 아름답고 아픈 “통증‘인 것이다. 한옥순은 이 서약서에 도장을 찍었으니 스스로 자청한 지병(持病)은 시를
놓을 때까지 유효할 것이다. 꽃이 피면 다시 병이 도질 것이고 한동안 상처는 아물지 않을 것이다.「꽃이 피면 너를 잊겠다」에서는
“잊고 싶”다 보다는 “잊지 않겠” 다는 다짐이 깔려있다. 청춘을 다 지날 때까지 잊히지 않는 기억은 참으로 모질어서 꽃이 펴도
“잊지 못할” 것임을 시인은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자문하듯 최면을 걸어 상처를 어루만진다. 기억이라는 ‘지층’에 묻혀 있던
것들이 실핏줄까지 건드리며 일어설 때마다 한옥순은 꽃보다 붉게 터진다.

 

  꽃이 피면

  잊어야 겠다

 

  사방천지 흐드러진 꽃에 홀려

  혼이라도 빠진다면

  그때엔

  너를 잊을 수도 있겠다

 

  청춘의 빛으로 물든 꽃을 보면서

  젊은 날 내 흰 치맛자락에

  치자꽃물로 물들던 너를

  기어이 잊어내고야 말겠다

 

  모진 겨울 다 이겨냈는데

  모진 네 생각쯤이야

  못 이기겠느냐

  못 이겨내겠느냐 말이다

 

  꽃이 피면,

  꽃을 꺾어 놀다보면

  꽃이 지듯

  나도 너를 반쯤이야 잊어가질 않겠느냐

 

  청춘아, 붉디붉던 내 청춘아

 

     -「꽃이 피면 너를 잊겠다」전문

 

  「꽃이 피면 너를 잊겠다」는 섬세한 감수성이 돋보인다. 한옥순은 ‘꽃’이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이용해서 빛바랜 ‘청춘’을 말하는데. 여기서 흰 ’치맛자락’과 ‘치자꽃물’은 감각적 이미지로 사용되었다. 두 개의 감각, 즉 ‘꽃’은 외부의 사물에 직감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시각적인 효과를 얻어내고 ‘향기’라는 후각적 효과가 이어져서 공감각적 표현을 이루고 있다. 그토록 사모했던 대상은 ‘님’이 아닌 ‘청춘’이었듯 한옥순 시의 특질은 두 개의 대상을 사용해 예기치 못했던 역발상으로 긴장감을 준다는 것이다.「아름다운 인생」에서도 이 기법이 사용되는데 넋 놓고 시를 따라가는 독자들은 시인이 쳐놓은 덫에 걸려들고 만다.

 

  빈집 마당 홀로 대문을 바라보는 감나무

  감나무가지 사이에 줄을 치는 거미

  감꽃송이에 살며시 앉는 나비 한 마리

  빈집 건너편 등 굽은 미루나무

  그 나무 허리에 매달린 녹슨 자전거

  우듬지에 둥지를 트는 까치

  곧 늙은 미루나무 밑동에 전기톱날이 박히고

  연주가 시작될 기미를 보이는데,

  나무 그림자 아래 이삿짐을 푸는 달팽이

 

  어느 아름다운 봄날

 

                 - 「아름다운 인생」전문

 

 

  감나무와 미루나무는 거미와 까치의 집이며 나비의 일터이며 쉼터이다. 빈집은 감나무를 품고 늙어가고 자전거는 미루나무를 붙들고 녹슬어간다. 막 나무그늘에 도착한 달팽이는 그늘 아래 이삿짐을 풀고 있다. 아름다운 봄날, 고요하고 더없이 평화로운 풍경이다. 그러나 이 풍경을 좇아가면 미루나무 밑동에 전기톱날이 박혀있다. 그곳에 한치 앞도 모르는 우리네 삶이 기다린다. 한옥순은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장맛비 억수로 쏟아지던 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딱 한번 마주친 남자

  난 쓰레기에요, 술 냄새로 중얼거리던 남자

  허술하게 묶은 쓰레기봉투처럼 흐느적거리며

  십 오층 버튼 좀 눌러달라던 그 남자

 

  그날 밤

  마흔아홉 해 동안 쌓아두었던 생을

  베란다 밖으로 던져버렸단다

  생의 부스러기 한 조각조차 성한 데 없이

  산산조각이 났단다

 

  찢어진 살가죽 사이로 흐르는 핏물이 새벽길을 내고

  청소부보다 먼저 온 날벌레들이

  동 트기 전부터 아우성 치고 있었단다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잔디밭에 세워둔 팻말 위에서…

 

           -「15층 남자 쓰레기 버리는 방법」전문

 

  주제를 다루는 시인의 관점(point)에 따라 작품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옥순의 시편에서 드러나는 것들은 ‘허무’나 ‘悲哀’인데 그것들을 통해 ‘삶’의 진정성을 찾고 있다.「15
층 남자 쓰레기 버리는 방법」은 짙은 삶의 페이소스(pathos)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한옥순은 시의 도입부에서 억수로 쏟아지는
‘장맛비’를 등장시켜 한 사람의 불운을 암시한다. 15층에 사는 사내가 베란다에서 몸을 던졌는데, 하필 그곳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잔디밭이었다. 한옥순은 ‘청소부’와 ‘날벌레’는 쓰레기로 전락해버린 한 사내의 처참한 ‘죽음’을 짐작케 한다. 한
사람의 불행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종결될 것인가? 개연성을 가진 마지막 말줄임표가 여운을 남기고 있다. ‘허무와
비애’라는
일관성을 지닌 시편들은 서정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쉽게 읽히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시인이 의도한 드러나지 않는 기교를 느낄 수 있다.「주머니여, 아주머니여」에서도 이와 같은 시의 구조로 전개된다.

 

 

  무엇을 넣어주면 좋아하겠소

  무엇을 담아 줘야 행복하겠소

  뭐든 탱탱하게 채워주면 되겠소?

 

  ----------중략 ---------

 

  어떤 것을 빼주면 되겠소

  무엇을 덜어내면 좋겠소

  지금보다 얼마큼 더 헐거우면 되겠소?

  이제 그만, 이만하면

  전보다 훨씬 가벼운데,

  자꾸 자꾸만

  무엇을 계속 덜어내고 있나요?

  이젠 너무 비워 주저앉을 것만 같은데

 

  ----------중략--------------

 

  주머니 내, 주머니

  주머니 아, 주머니

  거죽만 남은 가여운 주머니

  주머니여

   아주머니여

 

  -「주머니여, 아주머니여」부분

 

  화자는 첫행부터 다짜고짜 “무엇을 넣어주면 좋아하겠소” 하고 묻는다. ‘주머니’의 특성인 ‘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주머니로 몰아가겠다는 것이다. 그 주머니는 “거죽만 남은 가여운 주머니.”가 되었다가 마지막엔 ‘아주머니’로 변하고 만다. 자식에게 살과 피를 다 나누어주고 텅 비어버린 거죽뿐인 주머니는 아, 주머니, ‘아주머니’였던 것이다. 아주머니는 곧 ‘어머니’와 이어진다. 참으로 유쾌한 반전이다. 이렇듯 시인의 시각
따라 작품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의 눈빛이 머무는 것들은 대부분 나약하고 힘이 없는 것들이다. 하릴없이
저물어가는 것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연민’으로 가득 차 있다. 한옥순은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작고 사소한 것들을 불러내어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중년의 ‘허무함’을 즉물적 표현으로 보여준다. 이와 같은 시적 특질은
「푸들푸들한 외로움」「동병상련」에서도 잘 나타난다.

 

 

  점심으로 냉면을 먹었다

  봉지냉면 한 개 사다가 삶고 헹구고 국물 내어

  혼자 먹었다

  아니다, 강아지와 함께 먹었다

  나 한 젓가락 강아지 한 올…

  나 두 젓가락 강아지도 두 올…

 

  멀리서 보면 정겹게 보이기도 하겠지만

  왠지 혼자 먹는 것보다 더 외로웠다

  강아지 눈망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그랬다

  얼음 동동 뜬 국물을 넘길 땐 소름까지 돋았다

 

  혼자 먹는 점심으론 면발이 딱이다

  혼자라서 목이 메일까봐

  왠지 쓸쓸할까봐

  눈물이 흐를까봐

  눈물 대신 면발이라도 후루룩, 삼키라고

 

                             -「푸들푸들한 외로움」부분

 

   

  
“강아지도 나도 삼복을 술술 넘기 듯 맛나게 먹었다/눈물 같은 냉면 줄기를 후루룩 삼켰다/푸들푸들거리는 외로움을 한 대접 다
비웠다.”(「푸들푸들한 외로움」) 혼자라는 것은 참 쓸쓸한 일. 절절 끓는 복날에도 소름이 돋는 말이다. 혼자 먹는 점심은 목이
메어 강아지랑 나눠먹는 화자의 고백적 심정이 얼음 동동 띄운 냉면만큼 서늘하게 가슴을 적신다. 맛있게 먹었다는 그 시원한 냉면은
‘외로움’ 한 대접이었다.

 

  여름 끄트머리 그림자가 길게 누운 마당 한쪽

  새끼 낳은 지 삼칠일 지난 어미개가 엎디어

  대문밖에 서성이는 석양 한 자락을 물어뜯는다

  저녁이 되니 제 속에서 나온 새끼 수만큼

  주렁주렁 달린 젖이 돌아 아픈 모양이구나

  장날 내다 팔린 새끼 생각이 더 드는가 보구나

  그래, 맘껏 울어라 실컷 짖어대거라

  찡하니 도는 젖몸살 아픔을 잊을 수만 있다면

  뭉친 그리움을 풀어버릴 수만 있다면,

  사실은 나도 엊그제 네가 새끼 떨치듯

  그 사람과 헤어지고 삼칠일 지났다

 

                                     -「동병상련」전문

 

 
새끼 낳은 지 삼칠일 지난 어미 개와 실연을 겪은 사람과 ‘동병상련(同病相憐)’이다. ‘이별’이라는 같은 병을 앓고 있다.
새끼를 놓치고 젖몸살을 앓는 어미 개는 젖이 불어 아프고 사람은 ‘그리움’에 더 아프다. 개는 짖을 수나 있지만 사람은 마음 놓고
울 수조차 없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헤어짐’에 아프기는 매한가지다. 한옥순의 시편들은 ‘적막’과 ‘통증’이라는 이미지를

회시키면서 하나의 초점으로 이끌어간다. 시는 고도로 압축된 언어이다. 둘 이상의 의미로 풀이되는 의도적인
애매성(ambiguity)은 한정된 의미의 전달을 넘어서 상상력을 유발시키기도 하지만 보편적 원형(archetype)을 탈피한
난해한 상상력은 시의 흐름을 막는 장애로 나타난다. 쉽게 읽히는 한옥순의 시는 결코 쉽게 쓴 시가 아니다. 작품의 분위기나 주제에
따라 다양한 어조가 생기게 되는데 한옥순은 과장되지 않고 안정된 목소리로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이는 시를 출산한 시인의 몸
곳곳에 붉은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쓸쓸한 적막” 또는 “신이 주신 아름다운 통증”이라고 부르고 싶다.

 

 


한옥순 시인

2000년 월간<문학세계>로 등단

시원문학회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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