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과 해설

문학자료실

워싱턴 문학

오늘의 시

평론과 해설

문학 강좌

세계의 명시

우리말 바루지기

워싱턴 문학 신인문학상 당선작

유배지를 향해 몸을 젓다 / 김성수 시집『걸음의 공식』

Author
mimi
Date
2010-12-23 23:48
Views
9739

 

















%EC%9C%A0%ED%86%A0%ED%94%BC%EC%95%84_gulsame.jpg?type=w2


                                                                                                               사진<네이버 포토갤러리>진박(eye_focus)님

                                                                  

유배지를 향해 몸을 젓다

― 김성수 시집『걸음의 공식』(2010. 다시올)

 

 

                                                                                                                    마경덕 (시인)

 

 

 
김성수, 그가 언제부터 섬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거친 물길을 건너 그는 아득히 외딴 섬이다. 중증 장애우인 그는 뭍에 닿으려면
지팡이 하나로 노를 젓듯 몸을 저어야 한다. 나비가 팔랑거리듯 파도가 너울거리듯 몸을 수만 번 저어야 한다. 그는 오래전 유배를
꿈꾸었고 곤장 100대를 맞고 유배지로 떠나간 죄인들처럼 죄목도 모르고 세상과 유배되어 살고 있다. 그가 한 발 한 발 내딛는
곳이 유배지와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지금 위리안치(圍籬安置)의 형벌을 견디는 중이다. 하여, 그의 시편들을 유배지에서 보낸
혈서처럼 읽었다. 김성수의 시편은 손가락을 깨물어 쓴 몸詩였다. 휘어버린 손가락, 그 손이 토해낸 詩를 나는 조심스레 받아
읽는다.

 

 

 
나는 가끔 포동포동한 돼지들이 품으로 파고드는 나태해진 일상의 건널목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유배를 꿈꾼다. 목에 칼을 차고
풀어진 정신을 주리 틀며 강원도 어느 너와집에서 배틀질하며 천이란 천마다 쪽물, 감물, 치자물 들여 널어놓고는 아라리 한 가락
목청 틔우며 어라연에 머리를 감는 버들이고 싶다.

 
아니다, 아니다 저 남도에 가족의 격려와 믿음으로 떠있는 섬 하나 바로 나인 것을, 땅끝 해남 대흥사의 독경 소리처럼 가라앉은
대륙붕 어디 즈음에 쑥대머리 날리며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바다에 띄워놓은 부표같이, 멀미를 하며 토해놓은 푸른 정신을 한 장 한 장
넘겨볼 일이다. 질기고 질긴 인연마저도 녹슬고 순해져서 이끼를 덮었노라고, 눈멀었노라고, 슬며시 손을 놓고 밴댕이 소갈딱지로
돌아눕는 세월의 뒤란을 거닐며 야속하다는 편지에 눈물 떨구고 싶다.

 
바람만 불어도 제 안을 때리는 풍경의 가벼움을 병풍을 두른 두륜산같이 가슴을 벌리고 적송을 키우려면, 삭아서 뼈도 흐물거리는
젓갈의 깊은 맛을 알아야 한다. 그윽하게 남해를 바라보며 전어 굽는 냄새 아련해 벌교를 지나 보성에 있는 외가外家 근처에 초막
하나 짓고 곡우 무렵 따낸 우전차雨前茶를 달이면 율포 바다가 봄비 맞듯 자분거린다. 초의선사의 동다송을 넘기며 다산도 추사도
찻물같이 우러나 창호窓戶마다 널어둔 댓잎 그림자는 더 짙고, 그럴 듯한 서책 하나쯤 집필할 것 같다. 정신도 쩡쩡 얼어가는 적소의
겨울밤, 마당에 세운 솟대 하나도 그리움이란 걸 알면서 인기척에도 등불을 내미는 나는 그런 유배를 꿈꾼다. 권태로움에 암주岩柱를
박듯이, 얼음을 깨고 세수를 하면 유치찬란한 삶도 벌떡 일어나 이중섭의 흰 소 같이 뿔을 들이미는 생을 마주 볼 수 있을는지…
내리는 눈발 속에서 둥지를 찾는 새 한 마리 여백 속을 난다.

 

  -「나는 유배를 꿈꾼다」전문

 

 

 
정약용이 강진(康津)에서 유배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목민심서(牧民心書)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김성수에게 혹독한 외로움이
없었다면 간절한 시들이 태어날 수 있었을까? 시인은 나태해진 일상의 건널목에 서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린다. 새로운 변화, 일탈을
꿈꾸는 시적 화자가 두려워하는 것은 타인의 시선이 아닌 바로 나태해진 자신이다. 김성수는 스스로 목에 칼을 차고 느슨해진 정신을
주리 틀며 기울어가는 육신을 곧추세운다. 우람한 적송 한 그루를 품는다면 뿔을 들이밀며 달려드는 운명과 맞장을 뜰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가족의 사랑과 믿음으로 남도 어디쯤 떠있는 섬이기 때문이다.

 

 

  불 꺼진 창가를 서성이며 내 마음도 어둡게 젖어들던,

  물 먹은 솜 같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물체들이 울림통이 있다는 것을 깨닫던 나이에

  조그만 반응에도 진동이 오던 내 안에도 악기가 있음을 알았다

  하늘에서 울리던 징소리의 파장이 날 푸르던 밤

  의성어는 소리의 번역이라고, 혀 꼬부라진 소리에 젖어 떨었다

  내가 전하는 말을 오역해버리는 닫힌 문 앞에서

  막힌 소통의 두드림은 끝내 무언가를 토해내는 속 쓰림이었다

  튕겨내는 소리가 모여 하모니를 이루는 격렬함이, 지휘자의

  등 뒤로 쏟아지는 박수 소리와 합쳐져서 큰 어울림으로 흔들렸다

  힘줄이 굵어지는 두드림에 떨어져 내린 것들이 부유하는,

  그 틈새로 발정 난 고양이가 아기를 물고 도망친다

  감성은 어느 부분을 튕기느냐에 따라 신나거나 우울해지는지

  알 것 같은 지금도, 가득 찬 통 위로 떨어지는 한 방울이 아프다

  모든 물체가 고요해지던 아침이 쓸쓸해서 화하던 상처였다고

  엽서를 보냈었다 하지만 두드리다 수취인불명으로 돌아온 텅 빈 객석을 바라보다

  두드림에 찌그러진 통을 걷어차며 세상의 비명을 들은 기억이 있다

 

                                                                                               -「난타(亂打)」전문

 

 

 
‘소리’를 이용해 감각적 이미지(sensual image)를 살려낸「난타(亂打)」는 세상과의 ‘단절’을 잘 보여준다. 전하는
말을 오역해버리는 닫힌 문 앞에서 소통의 도구는 오직 ‘두드림’뿐이었다. 미세한 반응에도 진동이 오던 심연의 악기를, 그것도 미친
듯이 두드려댄 ‘난타’였다. 스스로 두드려대고 닦달하지 않으면 그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악기가 될 수도 있었겠다. 감성은 어느
부분을 튕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 그가 튕겨낸 마음의 현은 대부분 서글프고 어둡다. 그를 튕기면 둔탁하고 우울한 소리가 몸을
치고 나간다. 그 서늘한 소리가 가슴으로 뛰어들어 감성이입(emqathy)에 빠지게 한다. 소리에 색을 덧입힌다면 그의 시편들은
잿빛이거나 짙푸른 물빛일 것이다.

 

 

  고무신 가지런히 길이 끝나는 곳에 느낌표로 남기고

  물속으로 걸어 가버린 여자가 나흘 만에 다시 땅에 누웠다

  가마니로 가려진 시신에 불은 손만 삐져나와 시퍼런 물빛이었다

  신파조 사랑의 비극이 방죽을 들어 올렸다 놓으며 웅성거리고

  둑길 나무들의 사열을 받으며 실려 가는 시신을 개들만 배웅했다

  진저리치며 몇 달간 사랑 얘기는 불온서적을 넘기 듯 조심스러웠지만

  잊힐 만하면 곡절 많은 걸음이 물속으로 산책을 갔다

  저 둥근 방죽이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문으로 기억되었고

  당골네의 살풀이로 귀청이 아프게 출렁이던 물도 가문 봄날에

  바닥을 보이고 거품 물며 퍼덕거리던 물것들의 공동묘지가 되었다

 

  실연에 쓴 소주를 마시며 문뜩 운천 방죽이 떠올랐고

  아! 사랑이 유치하다고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운천 방죽에 대한 기억」전문

 

 

  교회에서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도, 그녀의 방에

  놀러 갔을 때도, 붉게 열매를 맺은 내 안의 나무에서

  홍시 같은 마음을 전할 때도 마음 밑바닥에서 가볍게

  울던 새 한 마리

  따알꾹- 트림과 함께 하늘로 날아 가버린, 역광에

  지워지는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새가 떠난

  빈 둥지를 들고 있는 나무였다 나는

 

                                                                                                      -「딸꾹질」부분

 

 

 
기억이란 얼마나 질긴 것인가? 한 여자의 ‘죽음’은 긴 시간이 흘렀어도 격렬한 ‘통증’으로 이어진다. 여러 편에서 ‘불운’을
다루는 김성수는 ‘사랑’이라는 달콤한 오브제(objet)를 통해 쓰디쓴 ‘불행’을 보여준다. 상처가 사람의 몸을 파고들어 구멍을
내고 결국 몸은 먹히고 말았다. 시인은 ‘벌겋게 달군 쇠를 찬물에 식히듯’ 극과 극을 오간다. 한 여자를 죽음까지 몰아간 것도
‘사랑’이 준 상처였던 것.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역시 ‘사랑’일 것이다.「딸꾹질」에서도 통증의 진원지는 ‘사랑’을 놓쳐버린
‘실연’이었다. 그의 시편들은 대부분 ‘몸’이라는 모티브(motif)로 이어진다.

 

 

  제 어미의 등가죽을 뚫고 나오는

  피파개구리 새끼들

  육각형 축구공 무늬의 등짝이 너덜거린다

  숙주이며 자궁이었던 등에서 꼼지락거리는

  모양새가 엽기적이다

  내 옆에서 같이 동물의 왕국을 보다가

  잠이 든 어머니의 등이 구부정하다

  오형제를 업어 키운 등에 숭숭 바람이 넘나든다

 

  --- 중략----

 

  효자손 보다 못한 손으로 등을 만져본다

  내가 빠져나온 구멍이 아프게 만져진다

 

                                                                                                         -「구멍」부분

 

 
어머니의 몸을 빠져나와 어머니를 파먹고 사는 자식들은 피파개구리 새끼들과 다를 바가 없다. ‘피파개구리’라는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을 통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절대적인 ‘희생’을 말하고 있다. 기꺼이 먹히는
어머니의 몸은 영양을 공급하는 숙주(宿主)인 셈이다. 화자는 효자손보다 못한 ‘손’으로 구멍이 난 구부정한 등을 만져본다. 떨어져
나간 ‘몸과 몸’이 하나로 이어지고 ‘마음’이 이어지는 순간이다. 시인은 몸 중에서도 교감(交感)을 나누는 ‘손’에 비중을 두고
있다. 입이 닫히거나 말이 막히면 손은 곧 ‘입’이 되어 말을 하기도 한다.

 

 

  창문마다 촉수 같은 불빛이 어둠을 빨아들이는 밤

  사출기에서 찍어낸 달이 전선 위에 걸터앉아

  공장 안을 들어다본다 빳빳하게 세운 정신도

  이제 물러터지고, 다시 세우기 위해

  몇몇의 손가락이 제단에 바쳐졌다

  철야의 시간은 빗장을 쉽게 열어주지 않았다

  희뿌옇게 트여 오는 새벽이 충혈 된 눈동자같이

  하늘가에 붉은 천을 널어놓은, 입에서 단내 나는

  무렵에는 기계의 관절에서도 삐걱거리는

  신음과 함께 몸에서 열이 났다

 

  기름때 묻은 장갑을 벗겨내고 밤 샌 수고의

  악수를 건네는 손, 손가락 두 개가 없다

  멈칫 악수를 받지 못하는 아침이 생경하다

  그 손을 덥석 잡는 손, 그의 어린 딸내미였다

 

                                                                                                          -「촛농」부분

 

 
녹아버린 손가락, 촛농이 번들거리는 손을 서슴없이 잡아주는 건 어린 딸의 손이다. 혈연의 소중함, 가족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굳이 살아야하는 이유가 이 시 한편에 집약되어 있다. ‘죽음’을 다룬「산책을 끝내다」「지는 백목련에 대한
단상」「너, 슬픔에게 묻다」에서도 내면을 들여다보면 ‘치열한 삶’이 보인다. 며느리의 눈을 피해, 혹은 늙은 아내의 잔소리를 피해
집을 나선 한 노인이 집에 돌아오는 시각까지 일수도장을 찍듯, 길바닥에 점點을 찍은 지팡이의 순례巡禮는 生의 확인이었다. 봄비에
꽃들이 숨을 접던 날 그 기나긴 여정, 고단한 산책도 끝이 났다. 김성수는 신산한 삶의 여정을 ‘산책’이라고 말하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죽음과 대면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시인이 걷는 “걸음의 공식”, 즉 “삶의 공식”에 있다.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 그의 보폭은 불안하고 어눌하다. 달리는 세상을 따라가기에는 턱없이 짧은 보폭이다. 하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느림과 만나는 세상, 우리가 놓쳐버린 것들을 그는 다 만나보았을 것이다.

 

 

  내 병이 피라미드를 만들고 있다

  걸음이 들어가 누울 무덤이다

  서른하고도 네 해를 질주한 양다리가

  급성류머티즘에 갇혀

  내 사전에는 무릎관절이란 단어가 삭제되었다

  왼발이 세 뼘 뻗으면 오른발이 네 뼘을 뻗는 통에

  나는 다섯 뼘 자리에 지팡이를 찍어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완성한다

  이 세 꼭짓점으로 이루는 걸음은

  두 점으로 이루는 걸음보다 완전하여

  나는 열다섯 해 동안 넘어지지 않았다

  지팡이를 앞뒤로 짚는 내 걸음은 성호를 긋는다

  가파르거나 굴곡진 고난의 길에서

  정합반正反合, 정반합正反合을 기도문처럼 외며

  돌아가거나 비껴가는 순응에 귀의할 때

  내 걸음은 단단해진다

  오늘은 사전에서 어느 관절이 지워졌을까

  한 장 한 장 관절의 벽돌을 얹어

  육 할을 쌓아올린 피라미드에 마음을 눕힌다

  아직 덮지 않은 사 할의 틈으로 온 우주가 보인다

 

                                                                                                  -「걸음의 공식」전문

 

 

 
시집의 ‘표제시’이기도 한「걸음의 공식」에는 그만의 공식이 있다. 몸을 담보로 잡은 病은 피라미드처럼 쌓여가지만 세 꼭짓점으로
이루는 걸음은 두 점으로 이루는 걸음보다 완전하여 열다섯 해 동안 넘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몸이 불편한 그가 넘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생의 암초를 만났어도 아직 좌초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관점(point)을 맞춘 그의 시편들은 어둡고
암울하지만 병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건강하게 살아있다. 김성수는 지난한 삶의 속성을 바탕에 깔아두고 인간이 지닌 욕망 중
원초적 본능인 건강한 ‘性’을 통해 절망에서 하나 하나 몸을 일으켜 세운다.

 

 「봄
빛에 눕다」에서는 브래지어가 보일 듯한 블라우스에다 미풍에도 속살 간지러운 꽃치마 입은 여자와 동행한다. 늑대 같은 놈팽이가 되어
아지랑거리는 여자에게 농을 걸며 현기증 나는 봄길을 따라 걷는다. 사진집을 보고 나서 아프리카를 꿈꾸고 발목에 방울을 달고
까딱춤을 추는 인도여인을 안아본다. 야크의 방울소리를 들으며 티벳을 꿈꾸고 알맞게 익은 황도 같은 여인과 커피숍에서 마주 앉아
가슴을 설렌다. 후배가 운영하는 성인용품점에 들러 거대한 맘모스의 뼈대를 바라보고 초라하게 발기콘돔을 집어드는 사내를 구경하는
잠재된 성욕은 곧 ‘삶의 의욕’으로 읽혀진다. 아직 젊고 많은 날을 더 살아야 하는 시인이 꿈꾸는 이것들은 모두 현실이 아닌
‘바람’일 뿐이다. 시인의 의식속에 잠재된 환상(fantasy)은 틀에 박힌 원형에 매달리지 않고 실제 경험상의 사실에서 풀려나
보다 자유로운 상상력을 유발한다. 시인이 꿈꾸는 가상의 세계에서 그의 영혼은 한껏 자유롭다.

 

 

  사내의 신경은 커피숍 현관문 종소리에 민감하다

  어지러운 향수 냄새가 열린 문틈으로 달아나고

  통조림 따개로 꾹꾹 누르는 듯 테이블을 돌아오는 하이힐

  소리가 뚜껑이 알맞게 열릴 정도에서 멈춰 섰다

  어색한 인사는 상표를 훔쳐보고 내용물이 궁금하다

  눈치껏 유통기한을 확인한다 사내는 비릿한 청어는

  아닌지 뚜껑을 더 열어 본다 코끝에 도화 향이 스친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걷는 듯 몽롱해지는 순간

  창밖에는 바코드같은 비가 내리고 있다

  알맞게 익은 황도였다 그 여자는, 운수 좋은 것도

  불안한데 커피는 식어가고 빨리 황도 국물을 넘기고 싶다

  자세히 황도를 보니 손때 묻어 무른 자국이 여러 곳이다

  사내는 마음으로 내용물을 쓰레기통에 부어버렸다

  저번에는 살이 꽉 찬 참치 같은 여자를 버린 적도 있었다

  나중에 연락한다며 제조사의 번호를 주고받았다

  누렇게 익은 여자가 히스테리를 부리며 가버리고

  사내는 빈 깡통을 발로 지그시 밟고 있었다

 

                                                                                            -「통조림속의 여자」전문

 

 

 「통
조림속의 여자」는 남녀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계산된 인간의 심리를 토로한다. “현실과 환상”의 간극이 크다.「낯선 알렉산드리아의
밤」에서 시인은 아직 정박해 오는 여자가 없다고 고백하지만 유배를 꿈꾸는 시인은 누구에게도 정박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미
세파에 표류하다가 詩라는 섬에 닿았기 때문이다.

 

 
버스마다 안개만 실어 나르는 한천로 4블록, 어머니의 메리야스같이 헐렁한 빈터, 바람만 그네에 앉아 흔들리다가 휘청거리며
일어서는 풍경들을, 유배의 땅에서 시인은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안개에 취해 비틀거리는 저녁이면 불면에 뒤척이는 영구 임대아파트
불빛들도 다시 살아 환하게 빛날 것이다.

 

  <다시올문학> 2010. 가을호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