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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어둠을 포월(胞越)하는 이미지의 마력

Author
mimi
Date
2010-10-20 21:48
Views
10918

 

생의 어둠을 포월(胞越)하는 이미지의 마력

-시집,『일요일의 우편배달부』2010년 강회진,『문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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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석원(시인, 문학평론가)

 

 

 


  1.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갓이없는 바다를 밟고

  시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어디서 오는가. 시의 몸은 무엇으로 기록할 수 있는가.

  강회진은 ‘시’라는 편지에 이와 같은 질문을 담아 우리들에게 『일요일의 우편배달부』를 전달한다.

 
오래 기다렸던 편지가 도착했고, 봉투를 뜯기 전에, 소식 저 너머의 발신자를 떠올리며, 망설이며, 하늘 한 켠에 묻어두었던 얼굴을
다시 그려보며, 이제는 희미해진, 먼 곳에서 망실했던 사랑과 사람과 나무와 초원과 바다와 사막의, 잊혀질수록 다른 한 끝이
선명해지는, 재 위의 불꽃 같은, 깊고 끈끈하여 시간이 갈수록 다시 더 선명해지는 따스한 불꽃을 내장한 듯한, 노란 향기의 끝에
맺혀 있는 초원의 숨소리를, 어루만지고 끌어안으며 지나온 모두와 흘러간 전부를 낱낱이 새겨놓은 시를, 시인의 편지를 개봉한다.

 

  왜바람에 물기가 묻어 있는 걸 보니

  재 너머에 비가 오나 보다

  바람꽃 피기 전에

  비설거지해야겠다

 

  꽃잎 떨군 살구나무 아래

  시난고난한 어머니

  염소처럼 박혀 머위 잎 뜯다가

  허공 한 줌 손에 담고

  가만가만 바람의 맥을 짚어낸다

 

  이름 석 자 간신히 쓸 줄 아는 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큰 책을

  읽고 계신다

  ―「세상에서 가장 큰 책을 읽으시는」 전문 

 


 
어머니/아버지. 사랑 아닌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싸안는 육친의 육향이 맴도는 강회진의 시를 읽으며 우리는 다시 ‘서정’으로
돌아가게 된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그것 밖에서 그것 안으로 진입하여 그것을 새롭게 하는, 더 아름답게 하는, 근원의 보편에
육박하는 다른 그것의 실체들이다. 감각할 수 있는 이미지들, 의미를 끌고다니지만 의미 너머에서 파동치는 이미지들, 이미지 그
자체, 그것의 몸을 확인할 수 있기에 강회진의 시는 전통적이다. 하여 그의 시는 적통에 근접해 있다. 또한 새로워 아름답다.
강회진 시의 새로움은 ‘감각’과 그것을 전달하는 ‘표현’의 합치로 이루어진다.


  퀭한 그림자를 닮았다

  발자국마다 붉은 핏자국 선연하다

  차창에 떠올랐다가 슬쩍 사라지는

  낯익은 소름의 뒷모습

 

  낡은 구두가 끌고 가는 귀갓길

  입김 서려 손꽃 핀 차창에 기대

  외투 안주머니 얇은 월급봉투를 더듬다가

  본다, 눈 쌓인 몽골 히시건도르 초원

  자작나무 그렁그렁 타오르던 밤

  살짝 열린 게르 문틈으로

  나를 훔쳐보던 붉은 그림자

  차창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동안

  버스도 길을 멈춘다

  그 밤 내내 게르 곁을 서성이며 내 잠을 갉아먹던

  퀭한 눈,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림자에 붙들린다

 

  흠칫 뒤돌아보는 슬픈 눈

  눈 쌓인 초원을 바람처럼 내달리던 먼먼길

  거침없이 상처까지 핥으며 걸어가던

  붉은 여우, 반짝, 장작불에 빛나던

  그날 밤 눈빛을 어디로 갔다

  하늘의 대지에 닿는 별의 눈빛으로

  핏자국 쓱쓱 지우며 가던 붉은 여우는

  ―「붉은 여우」 전문

 


 
차창 속의 나, 유리창 너머의 흔들리는 공간에서 시인은 “낯익은 소름의 뒷모습”을 발견한다. 아니 그것은 발견되는 것이라서 내가
발견하고 싶다고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입김 서려 손꽃 핀 차창에 기대 / 외투 안주머니 얇은 월급봉투를 더듬다가” 볼 수
있는 것, “나를 훔쳐보던 붉은 그림자”가 “붉은 핏자국”처럼 선연하다. 월급봉투처럼 얇아진 삶의 두께를 감지할 때, 삶이 점점
가벼워져 작은 바람에도 파시식 부서질 것 같을 때, 나타나 홀연 ‘오늘, 여기’의 사람들을 저 머나먼 초원의 여인숙 같은 게르로
인도하는 붉은 여우의 눈빛이 반짝인다. 이리로 오라고, 어서 떠나라고 하는 듯이 더욱 또렷해진다. 그리움이 응축되어 있는
듯하다. 멀어질수록 강렬해지고, 작아질수록 단단해지는 여우의 붉은 눈빛이 어둠을 천공한다. 시인은 붉은 여우를 따라 “눈 쌓인
몽골 히시건도르 초원”으로 달려가고 싶어한다. “눈 쌓인 초원을 바람처럼 내달리”고 싶지만 시인은 떠날 수가 없다.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다. 붉은 여우는 지금 그곳에 없다. 붉은 여우는 지금 이곳에서 내게 떠나라 재촉하지만, 붉은 여우의 “반짝, 장작불에
빛나던 / 그날 밤 눈빛”은 이제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사라진 붉은 여우의 “흠칫 뒤돌아보는 슬픈 눈”만이 어둠
속에서 나를 쳐다본다. 나를 인도하는 여우의 “발자국마다” 붉은 핏자국이 선명하다. 여우는 “하늘의 대지에 닿는 별의 눈빛으로 /
핏자국 쓱쓱 지우며” 앞서간다. 시인의 삶도 그러했을 것이다. 지나온 생의 길에 뿌려진 붉은 핏자국을 쓱쓱 지우며 걸어왔을
것이다. 붉은 여우처럼, 끝없는 초원을 정처없이 떠도는 것이 운명인 여우처럼 시인의 삶도, 우리네 인생도 정주(定住) 없는 구름의
생이었다. 시인을 생의 신비로 이끌었던 붉은 여우는 사라졌지만 삶의 어두운 골목 모퉁이를 지날 때마다 홀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퀭한 눈”이 있다. 붉은 눈빛, 어둠을 불태우는 발화점. 여우가 나타날 때마다 시간에 불이 붙는다. 한없이 느린, 또는 느려진
시간 속에서 여우가 우리를 기다린다. 우리는 강회진의 ‘붉은 여우’를 따라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여우의 붉은 눈빛이 ‘시간의
동공(瞳孔)’이다. 사라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삶이 우리를 옭아매고 있기 때문에, 소멸된 모든
그리움은 다시 복원될 수 없기 때문에, 여우의 ‘슬픈’ 붉은 눈이 강렬하다. 강회진이 과거와 현재의 교차로를 지나는 버스
안에서, 차창 밖의 어둠 속에서, 적출한 붉은 눈빛.

 



  2.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슬치는 알 수 없는 향기

 


 
강회진의 시는 전통적인 ‘서정적인 것’들의 다양한 영토를 거느리고 있다. 강회진의 시가 아름다운 것은 ‘전통’과 ‘서정’의
선험적이고 규정적인, 따라서 권위적이고 배타적인, 그 고유성 때문이 아니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것의 강역에서 벗어나려는
운동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벌써 밖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강회진의 시는 전통적인 서정시이면서 동시에 ‘전통’과 ‘서정’에
기대지 않고도 ‘좋은’ 시의 자질을 획득한다. 전통적이어서, 서정적이어서, 그것이 시의 본원이라서, 반드시 지켜야만 좋은 시가
된다면? 강회진의 시는 안 좋은 시가 될 것이다.

 

   된장국 끓는 듯한

  개구리 울음소리, 툭툭

  그믐밤 모올래 터지는

  찔레꽃 향기

  자잘자잘 흐르고

  (……)

  풀새밭 사이로

  꽁무니에 빛을 매단 별들

  꼬물꼬물 속살거리고

  사립문 밀치고 들어서며

  어머니, 하고 부르면

  토방에 외로이 누워 있던

  흙 묻은 고무신

  속으로 한없이 떨어지는

  맑은 별들, 별들

  ―「별」 부분

 


 
된장국 끓는 소리와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겹쳐져 있다. 소리의 문양(紋樣)이 비슷하다. 비유의 동일성에 포집된 소리의 무늬들.
그것이 다시 ‘툭툭’이라는 소리로 전이되고, 그것이 물방울 터지는 모양의 시각 이미지로 독자를 인도하지만, 순식간에 “찔레꽃
향기”가 된다. 시각, 청각, 후각을 동시에 거느리는 비유의 속도가 감각의 깊이를 획득하는 순간이다. 퍼지는 찔레의 향기가
강회진의 시에서는 “자잘자잘 흐”른다. 다시 청각과 시각으로 후각이 변태(變態)된다.

 
밤하늘의 별이 벌레들처럼 “꼬물꼬물”댄다. 꼬물대는 별의 속살거림. “꽁무니에” 매달린 별의 빛이 조금 부스러져 하늘에서 지상으로
흩날리는 듯하다. 그런 밤에 “사립문 밀치고 들어서며 / 어머니”를 부른다. 잠들었던 어머니가 문을 열고 ‘맨발로’ ‘두 팔
벌리고’ ‘뛰어나올’ 것 같다. 자동적인 서정의 장면이었다. 강회진은 어머니를 시에 초대하지 않는다. 어쩌면 어머니는 벌써 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깊게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자식이 왔다가 갔는지도 모를 것이다. 이 시의 딸은 어떤 사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머니를 찾아왔어도 어머니를 뵙고 갈 수 없는 이유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인은 어머니를 그리지 않는다. 시인은
토방의 고무신을 바라본다. 어머니처럼 “외로이 누워 있던 / 흙 묻은 고무신 / 속으로 한없이 떨어지는 / 맑은 별들, 별들”을
쳐다보면서 우리는 어머니의 부재를 확신하게 된다. 어머니와 별이 하나가 되어 온 밤을 환하게 비춘다. 이 시를 휘황하게 채우고
있는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감각들 때문에 우리는 생의 어둠을 포월(胞越)하게 하는 이미지의 마력을 체험한다. 강회진 시의
아름다움이다.
           

   

 
붉은 여우 꽃 발자국 따라 가는 길 싹싸울 싹싸울 사루비아 까만 씨앗 같은 소리 들린다 모래사막에서만 자란다는 싹싸울 나무 울고
있는가 한껏 달궈진 사막에 귀를 댄다 사막을 횡단하는 숱한 발자국 소리 사막은 초원을 지나온 바람을 데려와 나를 둥글게 감싼다 내
귀는 너무도 날카로워 속울음조차 듣지 못하는데 오래 견디며 오래 곁을 내준 사막은 자잘한 풍경들로 둥근 귀를 만든다 사막 속,
무수한 귀들 돋는다


―「둥근 사막의 귀」 전문  

 


 
여우는 붉고, 여우는 걸어가고, 그 길에서 여우의 발자국 소리 들린다. 여우의 걸음 소리가 “싹싸울 싹싸울” 들려온다. 이 소리는
“사루비아 까만 씨앗” 같다. ‘사루비아’와 ‘싹싸울’의 비슷하면서도 이질적인 청각 영상이 모래사막에서만 자라는 ‘싹싸울’나무로
귀결된다. 모래사막에서 자라는 이 나무의 싹은 무엇과 싸우길래 울음 우는가. 청각이 주도하는 시. 화자는 “사막에 귀를 댄다”.
“사막을 횡단하는 숱한 발자국 소리” 들린다. 사막은 사막 너머의 초원을 바람에 싣고 내게 데려온다. 바람 소리 속에 초원의
푸른 빛 섞인다. ‘나’는 이 사막 풍경 속에 숨어 있는 낮은 ‘저 너머’의 ‘속울음’을 듣지 못하는데, 긴 기다림 때문에 모래의
낯빛으로 ‘나’를 지켜주던 ‘사막’이 “자잘한 풍경들로 둥근 귀를 만”들어준다. “사막 속, 무수한 귀들 돋”아난다. 사막
속에는 수많은 소리가 숨어 있어, 사막에 귀를 대고 모래의 숨소리를 들으면, 그 모든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 ‘나’는 오늘
사막이다. 사막 속에서 사막이 되었다. 사막에서 사막이 되어 사막의 그 무수한 소리, 생명이 움직이는 소리의 교향 속으로
들어왔다. 무수한 사막의 귀들, ‘나’라는 귀, ‘나’와 사막의 ‘귀’는 구분되지 않는다. ‘나’는 사막이요, 귀요, 모래바람처럼
움직이는 소리. 이 풍성한 청각의 축제 때문에 우리는 소리의 두께(볼륨)를 만질 수 있게 되었다. 청각을 다른 감각으로 전이시켜
세계의 이면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강회진 시의 아름다움이 충만하다.

 


눈먼 아내의 무릎 베고 누운 사내의 얼굴 위로 / 가물가물 졸음처럼 번지는 산수유 꽃빛 / 노랗게 익어가는 / 봄밤

―「봄밤」 부분

 


바람 한 점 담장 아래 붙어 있던 라일락 꽃송이 / 툭 건드리며 지나간다 / 무수한 꽃배들 어둠 속 출렁이며 떠다니다가 / 나보다 먼저 옥탑방 문을 연다 / 찢어진 골목들이 향기로 봉합되고 / 나직나직한 등불, 꽃배로 흐르는 밤

―「꽃피는 옥탑방」 부분

 


감은사 대종 / 바람 일렁일 때마다 / 잘 여문 치자꽃 향기 / 화르르 쏟아낸다 / 소리의 파문, 물고기떼 되어 흐르다가 / 하늘 길 연다 들썩들썩 / 시원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석탑

―「탑돌이」 부분

 


 
아내는 눈이 멀었고, 아내의 무릎을 베고 사내는 누워 있고, 졸음이 찾아온 사내는 스르륵 눈이 감긴다. 졸음 대신 “산수유 꽃빛”
엷은 노랑 졸음처럼 사내의 얼굴 위로 번진다. 졸음과 노랑과 봄밤의 훈향이 부부의 사랑처럼 감돈다. 「봄밤」의 시각화된 졸음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향기를 떠올리게 한다. 「꽃피는 옥탑방」에서는 ‘라일락 향기’가 가난한 삶을 지칭하는 옥탑방의 “나직나직한
등불”을 ‘꽃배’로 전환시켜 신산한 생의 빈곤을 감싸는 불빛의 따스함을 느끼게 한다. 우리 삶에 “찢어진 골목들”을 ‘봉합’하는
향기가 있을 것 같다. 맑은 봄밤의 어느 날, 담장 아래를 지나가면서 기원없이 떨어진 붉은 벽돌 같은 라일락 향기 때문에 잠깐
어지러웠던 적이 있었다. 강회진의 시가 환기시킨 어퍼컷 같은 향기의 질감이 새롭다. 「탑돌이」를 휘감고 있는 “잘 여문 치자꽃
향기”는 “소리의 파문”이 되고, 이것은 다시 “물고기떼 되어” 하늘을 흐른다. 강회진의 이미지는 고정되지 않는다. 이것에서
저곳으로 움직이고, 뛰어 빠르게 변신한다. 연속 변신하여 다른 것으로 다른 것으로 전진한다. 부분 부분이 결합되어 거대한 로봇이
되듯, 아니 푸른 대형 트럭이 ‘옵티머스 프라임’이 되듯, 강회진의 시에는 변신하는 이미지들이 가득하다. 그 이미지들은 우리 생을
초원의 ‘저 머나먼 여인숙’으로 인도하기도 하고, 다른 생의 어느 날로 안내하기도 한다. 그것이 과거의 어느 날이든, 어머니의
포근한 품이든, 고요가 깃든 서늘한 풍경이든 강회진의 시는 구체적인 감각의 현란한 하모니로 우리를 깊은 아름다움과 새로움에 대한
인식의 기쁨, 즐거운 앎의 체험으로 이끌어 간다.

 
  연못 가득 목백일홍 뚝뚝 피고 있다

  여름 하오가 꽃 속에 감겨 느리게 흘러간다

 

  잔가지 슬쩍 간질이고는 시치미 떼며

  목백일홍꽃 속 숨어버린 바람은 무슨 색일까

 

  어느 귓결 고운 사람 있어

  저 꽃자리와 바람의 울음을 짚어낼 수 있을까

 

  떨어지는 꽃 사이사이

  손잡고 거니는 청춘의 목덜미가 뽀얗다

 

  누군가 오래도록 물가에 앉아

  흐르는 꽃 퍼올려 붉은 얼굴을 닦고 있다

  ―「명옥헌」 전문

 


 
정갈한 풍경 속의 사람 하나, 꽃이 되어 꽃 뒤로 후퇴한다. 천천히 지워져, 간다. 나는 가 보지 못한 명옥헌을 강회진의 시를
통해 오롯이 체험한다. 느리게 흘러가는 한낮의 여름 오후를 휘감는 목백일홍 붉은 흔들림이 연못에 어룽진다. 붉은 파동의 문양이
이마에 새겨진다. 나무의 잔가지 떨린다. 내 몸을 간질이는 붉은 파문. 꽃 속에 숨어버린 바람의 색깔. 붉다, 피다, 떨어지다,
감기다, 느리다, 흘러가다, 간질이다, 숨다. 내가 거쳐온 동사와 형용사. 이곳, 명옥헌에서 시인은 “꽃자리와 바람의 울음을
짚어”낸다. 명옥헌 마당을 “손잡고 거니는 청춘의 목덜미”를 바라보면서, 연인들의 ‘뽀얀’ 목덜미를 쳐다보면서, 붉은 백일홍과 흰
목덜미의 대비를 응시하면서 시인은 “오래도록 물가에 앉아” 흐르는 시간 속의 풍경을 천천히 음미하고 있다. 우리는 백일홍 붉은
얼굴이 되어 명옥헌 깊어가는 여름의 고적 한 가운데를 지나가는 중이다.

 



  3.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

 


  시집의 마지막 시이다. 강회진이 바라보는 것, 강회진이 우리에게 말하려고 하는 것은

 

  이를테면

  파도는 파도와 만나

  거대한 너울로 바위를 친다

  조각나는 바다

  오래 지켜보던

  물새 한 마리

  외발로 서서

  훌쩍 파도를 뛰어넘는다

  발바닥에 붙어 있던

  모래 한 알 옮겨졌을 뿐인데

  바닷물의

  흐름이 바뀌었다

  ―「응시의 힘」 전문

 


 
이것이다. 거대한 바다 앞에 물새 한 마리가 있다. 나는 이것을 시인이라고, 시인의 시라고 생각한다. “발바닥에 붙어 있던 /
모래 한 알 옮”겼어도, ‘나’의 시가 그것밖에 되지 않는다 해도, “바닷물의 / 흐름이 바뀌었다”고 인식하는 강회진의 발언은
나를 섬뜩하게 한다. 우리는 이것을 시인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시가 저 거대한 세계의 밑바닥에서 세계와 세계
속의 사람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나는 믿고 싶다. 강회진과 함께 믿게 된다. 아니 강회진의 시가 불가능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강회진은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다른 눈으로 시간과 싸운다. 상실을 지켜본다. 시인의 견고한 응시가 세계를 관통한다. 우리의
상처를, 이곳의 아픔을 버리지 않고 생생한 감각으로 전달하는, 온몸으로 그 고통을 껴안고 앓는 강회진은 아플수록 아름다워지는
시인의 운명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모래 한 알 옮기기 위해 분투할 수밖에 없는 시인. 이 치열함 때문에, 시인의 운명에 대한
순응 이후에 발견하는 비애의 순정함 때문에, 강회진의 시는 서정 안에서 서정을 쇄신하는 ‘좋은’ 시가 될 수밖에 없다.

 



  4.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오서요, 당신은 오실 때가 되얐어요, 어서 오서요. 당신은 당신의 오실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당신의 오실 때는 나의 기다리는 때입니다. 강회진은 “기다림의 본성”(나민애, 「‘너무나 가벼운 나’에서 ‘한없이 무거운 너’에게로」, 『유심』, 2010. 05~06, p.137)을 절절하게 형상화한다.

 

 
늘 온다하여 안날부터 기다렸으나 족하는 이틀이 지났어도 오지 않았소 언덕빼기 돋을양지 쪽 노루귀나 봄까치풀에 정신이 팔렸다 해도
한겻이면 넉넉할 것을, 해토머리 오는 길 매화나무에 통통히 꽃물이 올랐다 해도 한나절이면 족할 것을 나는 족하가 일부러 에움길로
오나 싶어 동구밖까지 나가 기다렸으나 족하는 보이지 않았소 내가 직접 족하의 집 근처로 가려 했을 때는 이미 마당에 살구나무 긴
그늘이 드리울 무렵인지라, 주저하다 포기하고 밤새 족하는 도대체 어느 길에 묶은 채 나를 그리워할까 생각하였소


―「봄, 족하(足下)에게」 부분

 


 
기다림, 설레임, 오고감. 떨림, 주고받음, 가쁘게 벌개진 숨소리. ‘족하오’는 포기를 지칭하지 않는다. 기다림만으로도 충일해지는
사랑에 대하여, 우련한 즐거움에 대하여 시인은 봄의 연락에 빗대어 ‘노래’한다. ‘고유어’라는 낯익고도 낯설은, 낡았으면서도
새로운 풍경의 배면에 전통에 밀착한 정서와 호흡이 있기에 이 낯선 한국어들이 신선(新鮮)을 획득한다.

 

 
뜬금없이 당신은 하마가 보고 싶다 말했다 끝물의 벚꽃 흩날리고 손과 손 스치며 동물원 간다 봄볕 내려와 따글따글 뒹구는
나무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우리가 한 일이라고는 두어 시간 동안 하마를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무리지어 생활한다던 하마는 심드렁 홀로
집 지키고 있다 이따금 종종종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이 하마야, 하마야 악을 쓰며 불러대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하마는 비대한 몸
뒤척이며 누워만 있다 가끔 쫑긋 세워진 아이 손바닥만한 귀를 털어낼 뿐 끙, 돌아눕는 하마의 엉덩이 쪽으로 한 아이가 주먹을
먹였다 오래도록 하마를 바라보던 당신의 눈이 고요해지는 것을 본다 먼먼 생 언젠가는 이번 생을 인정할 수 있을까 이유도 알 수
없이 방바닥을 치며 통곡하던 날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뜨겁게 거절하는 당신을 다음 생에서도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당신과
나는 무리를 이탈한 하마인지도 모를 일 불온한 사랑을 꿈구는, 하마하마한 우리는 세상이 뭐라 주먹을 먹여도 가만히 두 귀
털어내며 홀로 고요해지고 싶은 건지도


―「하마(河馬)」 전문


 


 
사랑의 진실, 사랑이란 고요의 감옥, 둘만 존재해야 하는, 다른 생에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갇힌 시인. 봄날의 찬란한 소멸
속에서 느끼는 사랑의 무언과 사랑의 증발과 사랑의 어둠 그리고 사랑이라는 긴 기다림과 깊은 상처, 아련하게, 흘러,간다.

 

 
나는 빈 냉장고에서 날마다 스멀스멀 방으로 손을 뻗치는 거대한 고구마줄기에 대해 쓴 편지를 나에게 읽어준다 냉장고는 거대한
어항, 밤새 웅웅 혼자 방을 넓히며 수초를 키워내지 어항의 문을 열고, 문을 닫고, 나는 비늘갈이를 시작했어요 사랑해요 사랑하지 마
어쩌죠? 벌써 사랑해버린 걸요 어서 돌아와 예전처럼 내 가슴에 차거운 이빨을 박아주세요

  토요일의 우편배달부는 휴가를 떠났다 나는 다섯 통의 편지를 써 우편함에 넣은 후 지느러미를 접고 강구(江口)로 간다 이제 일요일, 편지의 해독은 여인(餘人)의 몫이다.

  ―「일요일의 우편배달부」 부분

 


  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 바느질 그릇을 치어놓고 떼여 보았습니다. 그 편지는 나에게 잘 있느냐고만 묻고, 언제 오신다는 말은 조금도 없습니다. 내 사랑이 더 강해지게 내 숨통을 조여주세요. 사랑하지 못하면, 나에겐 처벌뿐. 기꺼이 벌 받기 위해 사랑의 죄 짓습니다. 후일에 그에 대한 죄를 풍우의 봄 새벽의 낙화의 수만치라도 받겄습니다. 당신의 사랑의 동아줄에 휘감기는 체형도 사양치 않겄습니다. 당신의 사랑의 혹법 아래에 일만 가지로 복종하는 자유형도 받겄습니다.

  이제 편지를 다 읽었다. 일요일도 오후를 훌쩍 넘겼다. 편지를 봉투에 넣는다. 사랑에 대해, 사랑의 상실에 대해, 사랑이라는 것을 현현(顯現)시키는 감각에 대해 한동안 생각하게 될 것 같다. 강회진의 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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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 시인 

 

 

2002년 《대한매일》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아나키스트』와 『태양의 연대기』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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