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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의 해체적 양상

Author
mimi
Date
2010-05-14 19:54
Views
9511

한국 현대시의 해체적 양상



1. 주체의 소멸

1990년대는 우리 사회가 후기 자본주의 사회,
뉴미디어 사회로 서서히 진입하는 시기이다. 문화에 있어 기술복제에 의한 문화나 영상매체 문화의 발달로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논리인 포스트모더니즘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복제와 재생산은 낭만주의 이래로 강조되어 온 주체의
소멸을 가져오게 된다.

1990년대의 시는 시적 주체의 소멸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후기 자본주의의 시대로 접어들며 모더니즘이 현실의 파편화와 사물화 현상을 그리고 그로 인한 소외에 관심을
표명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주체의 부정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모더니즘이 사회현실의 객관적 묘사보다는 주관적 내면 세계, 내적
경험에 관심을 두어 주체의 소외를 강조하는 것의 연장으로 1990년대의 주체는 소외를 넘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


헐렁한 옷 속으로 내가 나를 슬쩍 집어넣으면

나는 옷의 헐렁함 속으로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가고

옷은 나를 끌어당긴 그 헐렁함의 미덕으로 나의
윤곽이 옷 밖으로 도드라지지 않게 해주었다

헐렁한 옷 속에서 그 동안 나는 속이는 일의
간편함, 세상에 나의 오목과 볼록을 드러내지 않는 일, 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많이 입어 더욱 헐렁해진 옷 속에서 지금

느껴지는 어떤 움직임, 질깃하게 짜여지지 못한

내 삶의 올이 풀리고 있다!

― 이선영, 「헐렁한 옷」중에서


이 시에서 는 세상에 대적하여
보지만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다. 결국
는 옷의 헐렁함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헐렁한 옷은 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게
감싸주는 것이다. 이 헐렁한 옷 속에서
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익숙해질수록 더욱 헐렁해진 옷
속에서
는 사라진다.

헐렁한 옷 속으로 를 집어넣는 다는 것은
물적 현실에 주체가 소외되고 있는 과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 대응하는 방법이 꼭 맞는 옷을 선택하지 못하고 헐렁한 옷
속에 자신을 감추는 것으로 드러남으로써 주체는 소외의 길을 걷는다.
세상에 자신의 오목과 볼록, 즉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일에 익숙해 있다가 결국 삶의 올이 풀리고 마는 것이다.
주체의 소외현상이 심화될 때 이르게 되는 것은 주체의 소멸이다. 헐렁한 옷 속의 주체는 결국 존재 자체가 사라져버리게 된다. 물적
현실 속에서 소외되던 주체는 헐렁한 옷 속에서 소멸되고 마는 것이다.


휴일이면 이 도시는 아이스크림으로 녹아내린다

텔레비전은 설탕 덩어리로 변해버리고

비누와의 부드러운 사랑 흘러넘치고

질주하는 차바퀴 오렌지 향기를 날린다


…중략…


휴일이면 여전히 새똥은 동상을 모욕하고

술집은 금광처럼 번쩍거린다 공원에 가

먹이를 던져주는 일 그것은

단순한 여가에 지나지 않는다

비둘기 급료는 이미 지불되었다


으레 그런 날이면 몇 개씩의 회사가

죽어나간다 그건 아주 사소한 일이다

죽은 회사는 유니폼이 벗겨진 채

마네킹처럼 길 옆 모퉁이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다 누군가 급히 택시를 부른다

마네킹은 택시에 실린다 뒤트렁크에

다리 한 짝이 덜렁거린다 황황히 택시는 떠난다

― 송찬호, 「休日」중에서


송찬호는 도시의 휴일을 담담히 보여주고 있다.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고 있는 도시의 휴일에 라는 주체는 어디에도
없다.
설탕덩어리로 변해버리는 텔레비전질주하는 차바퀴만이 있을 뿐이다. 공원에서 새 먹이를 던져주는 단순한 여가만이 도시에 남아있다.

도시에서는 현대성을 상징하는 회사마저도 사소하게
죽어나간다. 이 시는 주체의 소멸을 보여줄 뿐 아니라, 주체의 소멸을 가져온 물적 현실마저도 소멸되어 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도시 산업화를 이끌어내던 회사까지도 택시 뒤트렁크에 실린 마네킹이 되어 사라져 가는 것이다.


어두운 방에 누워 있던 수염이 지저분한 그 사람,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을 열고 집 밖으로 걸어나온다. 햇살이 너무 눈부셔 얼굴을 찡그리며 나무 그늘에 앉아 날아가는 나비를
본다. 흘러가는 구름과 흔들리는 들꽃을 본다.


들판 너머에서 들려오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에
나비들이 흩어질 때 마네킹을 든 남자 언덕 너머에서 걸어온다. 노래를 부르며, 수염이 지저분한 그 사람 옆을 지나간다. 두 사람
사이로 바람이 불고 마네킹을 든 남자 기침을 한다. 바구니를 든 여자 들판 너머에서 걸어온다. 검은 머리칼이 긴 그 여자, 두
남자 옆을 지나가며 흔들리는 들꽃과 흩어지는 나비떼를 본다. 들판 너머에서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던 검은 옷의 여자 자전거를 타고
달려와 바구니를 든 여자를 스쳐 지나간다. 들판과 언덕 사이의 좁은 길을 통해 수염이 지저분한 남자의 집 옆을 지나간다.
바구니를 들고 지나간 여자 어느새 들판을 넘어가 검은 색 파이프 오르간을 커다랗게 연주한다.

― 김참, 「지워지다」중에서


위 시에서는 수염이 지저분한 남자를 중심으로 풍경이 떠오른다. 그가 집
밖으로 걸어 나오며
햇살, 나비, 구름, 들꽃 등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 때 들판너머 마네킹을 든 남자, 바구니를 든 여자 그리고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던
검은 옷의 여자
등 구체성이 없이 객관화된 인간들이 등장한다. 먼저 마네킹을 든 남자가 그 사람 옆을
지나간다. 그리고
바구니를 든 여자가 그 두 남자 옆을 지나가고 다시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던 검은 옷의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달려와
바구니를 든
여자
를 스쳐 지나간다.

여기서 각 인물들은 서로를 지나치며 관계를
맺음으로써 서로의 존재가 확인된다. 즉
마네킹을 든 남자수염이 지저분한 남자 곁을 지나감으로써 수염이 지저분한 남자마네킹을 든 남자가 아닌 수염이 지저분한 남자가 되고, 마네킹을 든 남자수염이 지저분한 남자가 아닌 마네킹을 든 남자가 되는 것이다. 수염이 지저분한 남자가 주체로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 주체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체 외부, 곧
마네킹을 든
남자
에 의해서라는 것은 주체 소외를 불러오게 된다.

타자에 의해 인식되던 주체는 바구니를 든 여자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던
여자
가 나타남으로써 존재 인식이 불가능하게 된다. 바구니를 든 여자오르간을 연주하던 여자가 서로를 지나침으로
다른 타자들로 존재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이들이 구분되지 않고 동일시되며
타자라는 인식에 혼란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존재를 확인하던 주체는
타인들의 존재가 미끄러지며 존재 인식이 지연됨에 따라 주체의 존재마저 확인하지 못하게 된다.

주체 외부에서 존재를 확인해야 한다는 주체 소외
그리고 타인들과의 관계에서도 멀어지고 마는 주체 소외는 주체 소멸로 이어진다. 결국
수염이 지저분한 남자천천히 지워지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들판, 언덕, 그리고 그의 비명소리 등 그에게 인식되던 풍경 또한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가 그린 그림 속에서 외눈박이 금붕어가
튀어나온다. 나는 금붕어를 두 손에 받쳐들고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그림 속에는 눈이 내리고 붉은 표지판들이 눈밭에 묻히고 있다.
나는 표지판을 따라 들판을 가로지른다. 외눈박이 금붕어가 꿈틀거린다.


외눈을 껌벅인다. 내 눈꺼풀 위로 눈발이 자꾸
달라붙는다. 나는 계속 표지판을 따라 눈 덮인 들판을 간다. 바람이 눈보라를 밀치며 금붕어에게 묻는다.

― 저 사람은 누구니?


표지판이 기둥들이 눈 속에 점점 묻힌다. 그래도
나는 들판을 가로지른다. 그 동안 내 아내가, 커다란 붓을 들고 눈 덮인 들판의 표지판을 지운다. 눈보라도 지운다. 나의 귀가,
나의 팔이,

― 박상순, 「지워진 사람」중에서


타인에 의해 지워진다는 인식은 박상순의 시에서도
나타난다.

는 아내가 그린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금붕어를 들고 아내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 들판에서는 눈이 내린다. 그리고
는 눈 내리는 들판을 가로지르며 붉은 표지판을 따라 가고 있다.

는 타인이 만들어낸 세상 속에서, 즉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세계에서 목적지를
찾아간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길을 표지판을 따라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 아내는
를 지운다. 주체는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떠나는 길 위에서 타인에 의해 점점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승훈은 나/너/그로 이어지는 인칭변화를
통해 끊임없이 자아찾기를 시도한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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