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과 해설

문학자료실

워싱턴 문학

오늘의 시

평론과 해설

문학 강좌

세계의 명시

우리말 바루지기

워싱턴 문학 신인문학상 당선작

가파른 도시의 그늘과 푸른 폐허

Author
mimi
Date
2011-03-10 23:05
Views
9855

 

%B0%E8%B4%DC%28%C6%F7%C5%E4%B0%B6%B7%AF%B8%AE%29_gulsame.jpg?type=w2




    

 

 계간 『다시올문학』(2010년 여름호) ‘서평’

- 최을원 시집『계단은 잠들지 않는다』(황금알)

 

                  가파른 도시의 그늘과 푸른 폐허

                                                                     

                                                                                                                     마경덕

 

 
도시는 높이로 그 위용을 자랑한다. 가파른 계단을 품고 사는 빌딩, 계단과 계단으로 이어지는

도시는 끊임없이 상승을 지향하며 제
키를 높이 끌어올린다. 고층으로 오르려면 반드시 고통이라는

과정을 경유해야한다. 최을원은 경험으로 이루어진 기억을 시적 상상력과
결합, ‘계단’이라는 객관적

상관물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현대인들의 ‘고뇌’와 ‘갈등’을 그리고 있다. 벗어나지 못하는

일상의 공간에서 오늘도 삶의 출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시적 주체가 된 ‘계단’은 넘어야할

‘장애물’이다.

오르지 못한
‘계단’은 ‘폐허’로 이어지는데 삭막한 도시를 떠돌며 밥을 벌어온 최을원이 오랫동안

앓아온 ‘외로움’이라는 지병(持病)은 폐허에
가깝다. 외로움의 두께는 아름드리 고목처럼 두 팔을

벌려도 닿지 않는다. 늘 바깥에 서있는 그에게 중앙(中央)이란 어떤 것일까?
그는 왜 불빛이 화려한

중심을 두고 삶의 외곽에서 서성거릴까? 불빛이 사라지고 인적이 끊어진 곳에서 그는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그곳엔 수없이 버리고 싶었던 것과 하릴없이 껴안고 살던 것들이 매장되어 있을

것이다. 詩와 밥과 상처와 사랑과… 시인은 벽이 없는
그곳에서 두 무릎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다가 올 것이다. 어둠은 흠뻑 그를 적시고 그를 놓아줄 것이다. 스스로 폐허가 되어가는
집,

웅크리고 앉았던 자리엔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있다. 그가 부려놓은 적막한 시편들은 수시로

자물쇠를 채우고 세상과 고립된다.

 

  한겨울의 나목 앞에 서니 죄다 쓸모없는 열쇠다 나무는 모든 문 단단히 걸어 잠그고 떠나버렸다

저 문은 열 수 없는 문이다 챙강챙강, 나뭇잎들이 허공에서 운다 시린 하늘을 여는 중인가

 

  찬바람 속에 손을 내밀자 선혈 낭자한 여름이 만져진다 피 비린내가 나는데, 나무는 밖이다 나도

철저히 밖이다

 

  밖에서 밖으로, 안은 없는 것이다 텅 빈 곳에 텅 빈 것들은 갇히고

 

  천 개의 겨울이 지나고 갇혔던 것들이 온전히 썩으면 수많은 내가 걸어 나오고 가지마다 작은 비밀들이

다닥다닥 내걸릴 것이다

 

  봄이네, 봄이네, 사람들 버릇처럼 중얼거릴 때 바람은 취객처럼 문짝을 두드리고, 내가 열고 들어 간 그 곳,

 

  없을 것이다

  비로소 없을 것이다

 

                                                         -「봄 혹은 열쇠」전문

 

 

 

 
지난여름은 치열하였다. 피를 흘리며 만들어낸 이파리들, 한때 가지마다 걸린 푸른 열쇠들은

사라졌다.

천 개의 겨울을 견디면 봄은
올 것인가? 그가 기다리는 봄은 어디에 있는가? 열쇠는 자물쇠를

여닫는데 쓰이지만 어떤 일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키(key)에 비유하기도 한다.

나무들에게 잎은 그 나무를 알 수 있는 열쇠인 것이다. 나무들이 문을 닫는 계절, 나목(裸木)들은

출구가 없다. 단단히 닫힌 문 앞에 화자는 서있다. 최을원은 ‘열쇠’라는 오브제(objet)를 사용해

세상과의 ‘단절’과 ‘상실’을 보여준다.

시적 화자는 열쇠를 잃어버린 빈손이다. 빈손으로 세상과 맞서기엔 너무 힘겹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봄을 기다리듯 간절히 출구를 기다리는 일, 마치 동굴 속 항아리에 담긴 ‘사해사본’처럼

그는 세상에 발굴 되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인 줄도 모른다. 그래서 ‘폐허’는 현실로의 ‘귀환’을

뜻하는 또 다른 의미로 읽힌다. 그렇다면 참으로 지루하고 외로운 기다림이다.

 

  새끼돼지가 뚝배기 속에서 졸고 있다 세상은

  요람이며 무덤이다 일주일짜리 기억을 담기에 딱 안성맞춤이다

 

  햇살이 방울방울 떠들자 투레질을 하다가 퍼뜩, 놀라

  오물오물 젖꼭지를 빤다 자꾸만 빤다

 

  보글보글 꿈인 듯 부르는 소리

  여기 있어요 엄마, 아주 가까운 곳에 있어요

  대답해야 되는데 대답해야 되는데

  무거워지는 눈까풀을 치뜨는 작은 눈엔, 눈알이 없다

 

  이유 없는 것들로 가득찬 곳

  어린 게 유일한 이유요 죄인 더럽게 무정한 곳

 

  애저탕* 전문집엔 오늘도 한 상 그득 차려지고

  젓가락들 분주한 지금은 고운 봄

  벚꽃은 비명도 없이 진다

  슬그머니 뚝배기 뚜껑은 닫히고

  젖 빠는 소리만 둥둥 떠다니는 창밖

 

  전봇대엔 미아들 찾는 전단지가 하얗게 바랬다

 

                                                       -「봄이 오면」전문

 

 
어린 새끼돼지를 통째로 백숙처럼 고아서 만든 애저탕. 어미젖을 빨고 꿀꿀거리며 뛰어다녀할

어린것들이 뚝배기에 담겨있다. 딱
일주일의 생, 그토록 기다렸던 한 목숨이 사라지는 날, 바깥은

눈부신 봄이었다.

그가 꿈꾸는 완벽한 봄은 참혹하도록 잔인하였다. 위
시에서는 만물이 소생하는 ‘봄’과 일찍 생을

마감한 ‘새끼돼지’를 통해 ‘生’과 ‘死’의 희비가 교차된다. ‘생성’과 ‘소멸’을
대비시켜 더 큰 울림을

얻어낸다.

“삶과 죽음”의 간극에는 그가 수없이 놓쳐버린 “상실의 봄”이 들어있다. 눈부신 봄은 그만큼 더 깊은


화인(火印)으로 남았을 것이다.

 

  일산의 고시원 화장실, 변비로 끙끙거리는데

  만가가 흐른다 만장들을 끌며 버스가 간다

  참 천천히 간다 도시는 괄약근을 악착같이 조여

  버스 한 대 배설하는 중이다

  빌딩과 아파트와 백화점 건물들 모두 땀투성이다

  대로를 통째로 빌려준 도시의 관용은 아름답다

  정갈한 공원, 한 붕어빵장수의 일생을

  잠시 지탱해준 꽃나무 줄기의 마음새를 닮았다

  도시는 고민이 많았던 거다 함께 흐를 수 없는 자

  가장 큰 치욕이라고, 대형 전광판들 밤낮으로

  눈 부릅뜨고 있는데, 맑은 물가에 추악한 똥덩이

  마침내 떠내려 간다 고시원 계단의

  주인 잃은 신발들도 떠내려 간다

  생활 고시생들 옥상에 올라 물끄러미, 말이 없다

  마땅히 부끄러워해야만 한다

  걸리기도 하면서, 맴돌기도 하면서

  멀리 버스는 사라지고, 하늘은 배가 뒤집힌 붕어빵들이 죄다 서쪽으로만 둥둥 떠갈 때

  묵은 똥덩이 하나 시원하게 내갈긴

  이 도시는 완벽하다 비로소 행복하다

  살수차가 밑구멍을 말끔하게 씻어주며 간다

 

                                                             -「완벽한 행복」전문

 

 

 
변비에 걸린 신도시는 한 사내의 노점행상을 허용하지 않았다. 붕어빵을 굽던 사내가 공원

나뭇가지에 목을 매는 것으로 묵은 똥 한
덩이를 치운 것이다. 고시원에 판사나 검사를 꿈꾸는

고시생은 없다. 대부분 삶의 현장에서 밀려난 생활 고시생들이다. 달리는 세상과 함께 흐를 수 없어

정체되어버린 삶이다. 봄을 기다리며 열쇠를 찾아 고시원으로 몰려들었지만 정작 기다리는 봄은

오지 않는다. 하지만 최을원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폐허의 뒷면에는 정작 그가 사랑하는 것들이

숨어있다. ‘불빛이 따뜻한 집’과 추운 영혼을 녹여줄 ‘봄’ 세상을 오르는 ‘계단’ ‘횡단보도’ 등을 통해

“단절된 세상”과의 소통을 꿈꾼다. 그는 끝없이 계단을 오르고 “아늑한 집”을 꿈꾸며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서있다. 그는 늘 출구를 찾아 헤맨다.

 「높
은 집」「비둘기 교회」「크눌프, 18세가 오는 방식에 대하여」「별」「그려, 강아지풀」

「횡단보도에 갇히다」「집이 키운다」「천국의
계단」「육교」「계단은 잠들지 않는다」「25시」

「누란 모텔」「공중감옥」「즐거운 우리 집」「계단위의 사람들」등, 대부분의 시편들은
도시의

암울한 뒷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욕망의 찌꺼기”들로 러브호텔의 불빛은

꺼지지 않고 취객의 토사물을
쪼아대는 비둘기는 도시를 떠나지 않는다. 화려한 뒤편에는 “불 꺼진

아파트” “고시원” “창문에 걸린 죽은 사내들의 얼굴”
“자퇴한 아이” “13평 전셋집” 소파에서 출근해서

소파로 퇴근하는 “백수인 사내”와 “시골 교회당” “옥탑방에 사는 여자”
“러브호텔”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아이”가 뒤섞여 살고 있다. 도시는 “거대한 필터”로 오염된 도시를 쉬지 않고 걸러낸다.

부레옥잠의 질긴 뿌리처럼 도시를 흘러 다니는 부초들은 비정한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절망과

맞선다.

 

 
의자에 축 늘어져 있는 양말 속에서 빌딩이 흘러내리고 발자국들이 부수수 떨어진다 가로수 뿌리들이 벽의 잔금을 다투어 빠져나오자
노을이 구토로 왈칵 쏟아진다 골목마다 도사리고 있는 개떼들, 번득이는 시선 던지고 있다

집요한 혐의, 해방구는 어디에도 없군 벽에
걸려 대롱거리는 넥타이가 서서히 밤의 목을 조른다……

라디오에선 끊임없이 반복되는 오래된 유행가……귀뜨르르르……나 여기 살아 있소

 

  멀리 새벽 두 시의 도시가 교성을 지르며 지나간다

 


제야 돌아온 내 그림자 힘겹게 대분 두드린다 들어와 축축한 뒷골목을 벗어 건다 자넨 어디에도 없더군

완벽한 실종이야 빈손 펴
보이더니 양말 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참 길고 긴 하루였어 낯선 음성이 목구멍

속에서 웅얼거리다가 점점 작아진다 가늘고 팽팽한 선이
한 줄 텅, 끊어진다 형광등 비로소 점멸된다

 

                                                       -「양말 속에서 잠들다」전문

 

 

  빌딩에 갇혀 하루를 보낸 사내가 그림자를 끌고 골목을 빠져나온다. 넥타이를 풀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새벽 두시, 의자에 축 늘어진 양말이 생의 고단함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또 낯설고 긴 하루를

건너왔다.

한번도 ‘실종’을 원한 적이 없지만 날마다 ‘실종’되는 ‘완벽한 실종’이다.「양말 속에서 잠들다」는

‘빈손’과 ‘ 목구멍에서 웅얼거리다 사라지는 목소리를 통해 소심하고 주눅 든 삶을 보여준다. 일상에

찌든 한 사내의 불운을 통해 도시의 그늘에 가려 살아가는 소외된 자들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불을 끄고 깊은 잠에 빠진 사내는 날이 밝으면 잠을 훌훌 털고 일어설 것이다. 이렇듯 그가

사랑하는 ‘폐허’는 시들지 않는 ‘푸른 폐허’다.「을숙도에서의 일박一泊」」에서도 지고 온 저녁

하나를 깊은 밤의 한 귀퉁이에 부려놓는다.

남 몰래 곤한 잠 깔던 곳, 너무 젖어 군불을 때 줘야 하는 집에 불을 피우고 젖은 침상을 내다 말린다.

 

  계단은 늘 허기진다 겹겹이 접었던 각진 살의를 반쯤 펼친 채

  누군가의 발목을 노리는 저 많은 이빨들

  오르가즘을 달려 오르는 가속의 덩어리, 옥상을 지나

  난간을 넘어 허공에 던져버리는 거, 던져지는 거

  누군가는 순식간에 발목이 잘렸다

  언젠가는 한 가족이 몽땅 실려 갔다

  사회면마다 계단이 물어뜯은 흔적들, 고시원의

  계단엔 주인 잃은 신발들이 지천이다

 

                                                        -「계단은 잠들지 않는다」부분

 

  살얼음 깔린 돌계단은 폐지처럼 밟히고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한 계단 씩 지워지지만 그는 오늘도

계단을 오른다. 도시를 배회하며 밥을 버는 그는 삶의 변두리를 서성이면서도 한시도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
망하지 않는 그의 시선은 높은 곳을 바라본다. 시의 어조는 나지막하지만 그의 시편

곳곳에서 언어를 비집고 나오는 강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음은 바로 이 때문이다. 미처 발굴되지

못한 유전처럼 그가 사랑하는 폐허엔 많은 것들이 묻혀있을 것이다.

 

 

  버려진 자전거에 나팔꽃이 칭칭 감겨 있었다

  자전거의 의지다

  그렇게 목 졸리고 싶었던 거다

 

  일산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만취한 젊은 여자가 뒤에서 목을 끌어안는다

  제발 저 좀 집까지 데려다 주세요

  순간, 못난 자신에게 간절히 매달려준 것이

  눈물겹게 고마워

   자전거는 기꺼이 목을 내민 것이다

 

  누구나 목을 내민 적이 있다 내밀어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죽는다 한 번 죽은 자들은

  누구도 영원을 말하지 않는다

  당신도 나도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

   횡단보도 건너편까지가 영원이다

 

  그 여자를 데려다 주고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길

  부축하던 팔에 얹히던 왼쪽 젖가슴의 무게

 

  세상엔 딱 그 정도의 무게로 남는 것이 있다

  자전거도 녹슬고 나팔꽃도 말라죽었지만

  무게는 남아

  오랫동안 남아

 

  자전거가 풀이 될 때까지

  풀이 자전거가 될 때까지

 

                                                         -「목을 내민다는 거」전문

 

 
척박한 삶에 늘 목이 졸리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삶처럼 나팔꽃도 버려진 자전거를 타고 오른다.

폐허는 낯설고 각처에서 밀려난
것들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곳, 그러나 하늘을 향해 오르는 계단은

분명 어딘가 있을 것이다. ‘폐허’와 ‘계단’은 최을원의
시편을 연결하는 가상선(The imaginary line)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폐허’는 우리 모두의 ‘폐허’이기도 하다.
아무리 까치발을 뻗어도 발가락

끝이 닿지 않는 그 ‘폐허’ 속에 우리의 ‘삶’이 있다.

  그는 시종 ‘불화’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가 원하는 건 ‘소통’이다. 도시의 곳곳이 짐승처

은밀하고 늘 허기져 누군가의 발목을 노리고 이빨을 드러내고 빚쟁이처럼 쫓아온 길이 발목에

감길지라도 각진 살의를 반쯤 펼친 계단으로 누군가는 순식간에 발목이 잘리고 한 가족이 몽땅

실려 가기도 할지라도, 그는 오늘도 가파른 계단을 포기하지 않는다.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