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과 해설

문학자료실

워싱턴 문학

오늘의 시

평론과 해설

문학 강좌

세계의 명시

우리말 바루지기

워싱턴 문학 신인문학상 당선작

시의 귀, 시인의 귀

Author
janeyoon61
Date
2010-02-15 21:12
Views
9539



나무, 詩, 천 개의 귀








양버즘나무와 시인





그 많은 귀를 몽땅 잃어버렸다. 지난해, 찰랑찰랑 귀고리를 드리운 귀 밝은 나무는 다시 맨몸이다. 나는 목 잘린 캄캄한 나무 아래 서 있다.



봄은 가는데 어떻게, 이런 몰골을 하고 있나? 걸음을 멈추고 망연히 바라본다. 건너편 은행나무 쥐똥나무, 봄볕에 파릇파릇 머리가
젖는데 양버즘나무는 여전히 알몸이다. 번번이 참수를 당하고 잔뜩 독이 오른 나무의 몸속엔 짐승의 더운피가 흐른다. 성대가 제거된
나무들, 일제히 소리없이 울부짖는다. 몸에서 빠지지 않는 슬픔들. 옹이에 옹이를 덧댄, 끔직한 상처들로 나무는 이미 사나운
짐승이다. 허물을 벗듯 몸서리치며 껍질을 벗는 양버즘나무에 얼마나 많은 톱날이 다녀갔나. 불거진 옹이, 잘리고 잘려 뿔이 된
나뭇가지. 누구든 건드리면 뭉툭한 뿔로 치받을 태세다.



도로변에 즐비한 저 성난 뿔들, 전선(電線) 사이로 막무가내 모가지를 디미는 나무는 또 다시 헛농사를 꿈꾼다. 올해는 얼마나
농사를 지어야 하나. 몇 가마니의 그늘을 지상에 부려야하나. 목련이 피고 라일락이 지는 동안 허공에 빈 밭만 갈고 있다.



나무의 농사는 늘 적자(赤字)뿐, 한 트럭의 그늘이 실려 가고 한 트럭의 허공도 베어져 다시 빈손인 나무, 사월이 다 가도록
뭉툭한 손으로 터진 살을 꿰맨다. 한 땀 한 땀 제 몸을 깁고 있다. 나무는 끈질기다. 키를 늘리고 더 깊이 뿌리를 묻는다.
상처 많은 양버즘나무를 바라보면 가난한 시인이 떠오른다.



한 가마니의 그늘이 실려 갔다

그늘만큼 허공도 잘려나갔다



떨어뜨린 그림자를 싣고 버스는 달려가고

청소부는 돗자리만한 그늘을 쓸어 담았다

천 개의 귀를 가진 양버즘나무

찰랑찰랑 목까지 드리운

방울귀고리도 몽땅 잃어버렸다

늘 적자((赤字)인 나무의 농사법



마디마디 관절이 불거지고

욱신욱신 무릎이 쑤신다

이쯤 농사를 접으라 해도

고집쟁이 저 여자



놔두면 묵정밭 된다고

그럴 순 없다고

끙, 무릎을 일으킨다



헛농사를 짓는 양버즘나무

4월 느지막이

허공에 밭을 간다



                  ―졸시 「양버즘나무」





용기를 잃는 건 사람들 뿐. 나무는 절망을 모른다. 진물 흐르는 생살 위에 금세 파란 귀를 내밀고 도시의 찌든 하늘과 매연과
소음을 천 개의 귀에 주워 담는다. 허공에 지은 집은 허공의 것, 자란 만큼 잘려지는 나무는 푸짐하고 넉넉하다. 제 발등에
무성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늙은 청소부는 돗자리만한 그늘을 자루에 쓸어 담는다.



언젠가 멋진 나무 떼를 만난 적이 있다. 한강 둔치로 가는 길, 묵은 양버즘나무들이 터를 잡고 있었는데 어찌나 머리끝이
까마득한지 그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본디 그렇게 키가 높던 나무였다. 놔두면 절로 하늘까지 오르는 나무였다. 모두
당당하고 의젓했다. 팔을 벌려 한들한들 춤을 추고 있었다. 팔랑팔랑 바람을 주고받는 나무들, 나무들, 나뭇잎 옷자락이 푸른
하늘에 물결치고 귀고리 부딪히는 소리 찰랑 발등으로 떨어졌다. 수많은 방울귀고리를 흔들며 나를 굽어보고 있었다. 무심한 손들이
얼마나 나무에게 몹쓸 짓을 했는지, 관절을 부러뜨려 무릎 꿇게 하였는지 울컥 눈물이 고였다.



그저 오가며 허물 벗는 모습이나 바라볼 뿐. 우리가 나무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 찌든 밑동에 일련번호가 찍힌 명찰 한 장 꽝꽝 못질해 두는 것 밖에.



사철 피를 흘리며 제 생살을 벗겨내는 나무의 몸에 깊은 우물이 있을 것이다. 두레박이 텅, 떨어지는 서늘한 우물. 겨우내 물을 퍼 올려 발끝을 적시고 목을 축이지 않으면 그 혹독한 추위를 탈 없이 보낼 수 있겠는가?



아마 그럴 것이다. 이 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우물이라는 슬픔의 웅덩이가 있을 것이다. 제 몸에 간직한 슬픔을 끊임없이 토해내고
그 슬픔의 힘으로 허리가 굵어지고 나이테가 새겨지고 마침내 향긋한 주검이 될 것이다. 나이테는 나무가 흘린 눈물자국, 물결처럼
파문 진 주름들이 눈물이 아니라면 어찌 죽음이 그렇듯 향기로울 수 있으랴.



우리가 무심히 지나칠 때도 나무는 물을 긷고 있을 것이다. 언 손 호호 불며 제 몸에 텅, 두레박을 던져 마지막 한 방울까지 우듬지로 끌어올릴 것이다.



시인도 한 모금의 시를 위해 깊이를 알 수 없는 서늘히 두렵고 캄캄한 우물에 몸을 던진다. 왜 시를 쓰는가? 견딜 수 없는 그
무엇이 시를 쓰게 한다. 참을 수 없는 슬픔 같은 것, 서러움 같은 것, 나를 목 메이게 하는 것, 목 타게 하는 것, 시는
나에게 막다른 골목이다. 어둡고 긴 골목을 구불구불 걸어와 닿은 막다른 골목, 더는 나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그런 막막한
벽이다. 나는 그 골목에서 절망하고 소망한다.



시는 늘 기다리라고 한다. 기다려. 기다려.… 시인들은 이미 기다림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 헛 약속에 속으며 날마다 늙어간다.
내가 조금만 더 행복했더라면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에 만난 이름 석자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모 시인도



“나에게 오면 모두 불행해. 시를 쓴답시고 한 가지도 제대로 해 놓은 게 없어.”



하며 탄식하였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위치에서 존경받는 시인, 아니 많은 걸 가져 부러워했던 그 시인의 입에서 ‘불행’이라는 말이
서슴없이 튀어나왔다. 그때, 알았다. 시를 위해 두렵고 캄캄한 우물에 수없이 몸을 던진 분이라는 걸, 시로 인해 얻은 만큼
잃기도 했다는 것을.



끝방을 아시는가? 바닥에 닿아본 사람만이 끝을 만날 수 있다. 강미정의 끝방을 보자. 아마 이 시인도 시를 붙들고 안절부절 내려놓지 못했을 것이다. 오래오래 시를 품고 앓았을 것이다.



여러 개의 어둔 방 모서리를 돌고 돌아가

맨 끝에야 다다르는 막다른 골목 같은 방

수많은 빈 방 지키며 부르는 노래 간혹간혹 들리는



그 끝방, 가장 많이 아픈 아픔이

가장 많이 기다린 기다림이 산다는 방,



                              ―강미정의 「끝방」 부분





시의 귀, 시인의 귀





시도 시인도 모두 천 개의 귀를 가졌다고 믿는다. 귀 밝은 詩. 놈이 얼마나 영악한지 상대가 저를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훤히 꿰고
있다. 그 많은 시인들이, 시야, 시야, 하고 부르지만 아무에게나 선뜻 제 살점을 떼어주지 않는다. 시 없인 못산다고, 나랑 한
살림 차리자고 붙들고 늘어지면 슬며시 마음을 열까. 그저 자나깨나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싸늘히 등을 돌린다. 어느 시인은 토씨
하나 때문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는데, 그 정도는 되어야 함께 놀아주지 않겠는가? 보이지 않는 바람의 마음까지 읽어내는 시인의
몸에는 얼마나 많은 귀가 달려있을까?



시인은 양버즘나무처럼 생각이 많다. 오 년, 십 년. 수십 년 마음밭을 갈고 詩를 키워 한 권의 시집을 내놓지만 공들인 것에 비해 헛농사가 대부분이다. 늘 적자뿐인 농사법(農事法)이다.



그래도 시인은 악착같이 시를 쓴다. 도무지 절망을 모르는 족속들이다. 시에 미쳐 모두 제 정신이 아니다. 멀쩡한 정신이면 몸을
허물어 시를 쓰겠는가? 나 역시 시에 빠져 애지중지 키운 화초도 죽이고 십 년 넘게 사랑한 열대어도 죽였다. 그 좋아하던 운동도
친구도 다 버렸다. 독한 시를 끊을 수 없어, 끊어지지 않아, 끊어지는 것들을 먼저 버리고 말았다.



시는 죽을 때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시를 잘 알지 못한다. 시로 인해 애태우고 있을 뿐이다. 시는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아니 시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늘 헛농사를 짓는 나에게 시가 달려와 줄 것인가?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