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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Author
mimi
Date
2009-08-31 12:06
Views
10840

 

 

문정희의 [성공시대]
오세영의 [욕정]
최동호의 [해골바가지 두드리면 세상이 화창하다]
최정애의 [아기 되던 날]
원구식의 [서울야곡 2002ㅡVer.3.0]
함순례의 [사랑법]
조정인의 [지하드]를 중심으로 논의해본다.

재미가 없는 시가 너무 많다. 내가 맛보고 싶은 시의 재미는 'interest'가 아니라 'fineness'에 가깝다. 시를 읽을 때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공감이나 감동이 있을 수 있고, 참신함이나 산뜻함을 들 수도 있다. 시인의 상상력이 재미를 주기도 하고 '깨달음', '놀람', '괴로움' 등이 뜻밖의 재미를 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계간지와 문예지 3, 4월호 20여 권을 쌓아놓고 읽어도 재미있는 시가 그리 많지 않다. 개성이나마 있으면 읽을 맛이 있을 텐데, 참 많은 시가 이름을 가리고 읽는다면 시인의 이름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개성이 없다. 봄이어서 그런지 천편일률적인 봄 노래가 아직도 즐비하다.
서양의 미학에서 미적 범주(aesthetic categories)를 크게 여섯 가지로 나누고 있는데 순정미·우아미·숭고미·비장미·골계미·추(醜)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우리 문학은 특히 골계미의 전통이 강하였다. 한(恨)이란 것은 일제 강점기에 형성된 개념이 아닌가 한다. [흥부전] [장끼전] 같은 산문은 차치하고라도 [귀지가] 같은 고대가요, [서동요] [처용가] 같은 향가, [쌍화점] [이상곡] [만전춘] 같은 고려가요, 그리고 조선조의 수많은 사설시조에는 골계미가 풍성하였다. 골계미를 발휘하는 시는 대개의 경우, 성적 담론을 담고 있다. 풍자시의 대가 송욱·전영경·김지하는 물론이거니와 80년대의 박남철·황지우·장정일·김영승, 90년대의 함민복·유하 등의 시에는 남녀상열지사에 대한 이야기가 거리낌없이 행해져 야릇한 즐거움을 제공하곤 하였다. 그런데 요즈음의 시들은 풍자성이 죽고 서정성이 강해져서인지 별 재미가 없다. 다소나마 재미있는 시를 찾아서 이번 호 계간평을 써볼까 한다.

어떻게 하지? 나 그만 부자가 되고 말았네
대형 냉장고에 가득한 음식
옷장에 걸린 수십 벌의 상표들
사방에 행복은 흔하기도 하지
언제든 부르면 달려오는 자장면
오른발만 살짝 얹으면 굴러가는 자동차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기만 하면
나 어디든 갈 수 있네
나 성공하고 말았네
이제 시만 폐업하면 불행 끝
시 대신 진주목걸이 하나만 사서 걸면 오케이
내 가슴에 피었다 지는 노을과 신록
아침 햇살보다 맑은 눈물
도둑고양이처럼 기어오르던 고독 다 귀찮아
시 파산 선고
행복 벤처 시작할까
그리고 저 캄캄한 도시 속으로
폭탄같이 강렬한 차 하나 몰고
미친 듯이 질주하기만 하면
―[성공시대] 전문

문정희의 [성공시대]({현대시} 4월호)는 현대인의 욕망 추구가 끝간 데 없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 시종일관 빈정거리며 쓴 시이다. 시적 화자가 내지르는 '행복한 비명'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할 수 없는 것은 또 무엇인가. 돈만 충분히 가진다면 먹을 것과 입을 것, 부족할 것이 없다. 자동차를 몰고 어디든 놀러가서 "내 가슴에 피었다 지는 노을과 신록"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시적 화자는 시인이다. 시만 폐업하면 불행이 끝나고 행복한 나날을 살아갈 수 있지만 시인이기에 그것을 거부한다. "저 캄캄한 도시 속으로/폭탄같이 강렬한 차 하나 몰고/미친 듯이 질주하기만 하면"에 이르면 입가에 머문 미소를 거두게 된다. 도시는 뜻밖에도 밝지 않다. 어둡다. 그 어둠 속으로 미친 듯이 질주하다간 사고가 나게 마련이다. 욕망을 추구하며 무작정 달리다간 대형사고를 맞을 수밖에 없으리란 경고를 시인은 하고 있다. "어떻게 하지? 난 그만 부자가 되고 말았네"라는 재미있는 말로부터 시작된 이 재미있는 시는, 주제의 측면에서는 재미를 따지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심각하다.
집이 전소되고 사람이 죽는 화재 참사는 엄청난 재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을 소재로 하여 물질의 욕정을 그린 시가 시의 재미를 십분 맛보게 한다.

갑작스런 화재로 집이 전소되었다.
화인은 난로의 과열,
아빠는 죽고 엄마는 화상을 입고
단란한 가정은 깨져버렸다.
물질도 때로는 욕정으로 몸부림을 치는 것일까.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자 일순,
본능으로 전율하는 쇠붙이는
뜨겁게 달아오른다.
건드리지 마라
오늘밤 나는 너와 더불어 온몸을
불사를 수도 있다.
전류(電流),
밤마다 정사(情事)를 꿈꾸는
물질의 에로스
―[욕정] 전문

내가 보건대 오세영의 [욕정]({문학사상} 3월호)은 네 부분으로 분할이 가능하다. 화재 이야기(4행), 물질의 본능에 대한 고찰(4행), 인간의 욕정(3행), 그리고 마지막 3행은 본문 그대로이다. 짧은 시이지만 변화가 무쌍하다. 인간은, 특히 남자는 성적 욕구가 폐경기가 있는 여자보다 더 강하고 더 오래 지속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시인은 인간의 욕정에 대해서가 아니라 물질의 욕정, 물질의 에로스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물질이 몸부림치고, 뜨겁게 달아오르고, 온몸을 불사르고, 밤마다 정사를 꿈꾼다. 물질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시인이야말로 언어의 창조주가 아니고 무엇이랴. 시인의 현대적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된 시이며, 짧은 시이지만 긴장감이 늦춰진 행은 하나도 없다.

아침 딱따구리 계곡의 나무를 둥치 큰 나무를 흔드는데
졸면서 마당 쓰는 동자승 바라보고
빙그레 미소 짓는 부처님 살풋한 눈빛

법당의 큰스님 자기 해골 두드리는 소리
산과 계곡으로 퍼져나가
세상의 햇살이 아기 걸음마처럼 화창하다
―[해골바가지 두드리면 세상이 화창하다] 전문

최동호의 이 시({유심} 2001년 겨울호)에는 부제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가 붙여져 있는데, 같은 부제를 단 시의 편수가 꽤 된다. 이런 부제를 붙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선시의 새 경지를 개척해보려는 것. 둘째는 생과 사, 성과 속, 색과 공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개진해보려는 것. 셋째는 생활 속에서 불심을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 아무튼 시의 앞 연에는 사찰의 아침 풍경이 담겨 있다. 졸면서 마당을 쓰는 동자승의 등장도 재미있지만 이 시의 재미는 "법당의 큰스님 자기 해골 두드리는 소리"에 있다. 목탁을 스님의 해골로 상상한 것도 재미있는 요소이고 그 소리가 산과 계곡으로 퍼져나가자 "세상의 햇살이 아기 걸음마처럼 화창하다"는 마지막 행도 그 표현이 무척 재미있다. 시인은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는 동안에도 시간이 가고 있음을 말해주려 한 것일까, 늙음과 죽음이 비극이 아님을 들려주려 한 것일까. 해골에서 나는 소리가 산과 계곡으로 퍼져나가 햇살을 화창하게 한다는 것은 청각적 이미지의 시각적 이미지로의 변환이며, 한 죽음이 또 하나의 생명을 낳는다는 인식의 일대 전환이다. 단 6행의 시가 사람의 눈을 부시게 한다. 아기가 나오는 또 한 편의 시가 있다.

아가가 문을 밀고 나오던 날
지구 위에 생명 하나 심은 게 좋아 웃다가
웃음이 눈물이 되는 법 깨달았지요
눈감고도 우유 먹는 게 신기하여
종일 굶은 배가 벌렁벌렁 뛰었구요
배내옷보다도 작은 인형만한 아가
그 쬐끄만 몸은 우주를 채우고도 모자라
제 주먹만한 할미 가슴으로 비집고 오데요
…(중략)…
안개꽃다발보다 짧은 키에서
어쩜 그렇게 깊은 생각이 나오는지
조근조근 귓속말 나눌 때
오므린 입이 졸리운지
입술을 딱 벌리고 하품을 하데요
그때 내 가슴에서 기쁨 한 덩이 탁 터졌지요
꽃망울 하나가 놀라서 피었구요
―최정애, [아기 되던 날] 부분

이 시는 {시현실} 신인작품상 당선작 5편 가운데 하나이다. 손녀가 태어나 자라는 모습을 보며 신비로움과 기쁨에 휩싸여 쓴 할머니의 시라고 여겨진다. 즉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쓴 생명 예찬이다. 예찬의 대상은 아기만이 아니라 모성도 포함된다. 아기를 낳아보았기에 아기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 곧 세상의 모든 어머니이다. 이 시는 아기를 낳음으로써 아기의 마음과 몸을 갖게 된 어머니에 대한 예찬이면서 이 세상 모든 신생에 대한 찬양이다. [아기 되던 날]에는 아기가 커 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얼마나 잘 그렸는지, 독자는 읽고 있는 동안 아기의 마음이 된다. 티없이 맑은 마음을 가지면서 많이 행복해진다. 아기의 귓속말과 하품이 내 가슴에 기쁨 한 덩이를 터뜨리고, 꽃망울 하나가 그 때문에 놀라서 피어난다는 마지막 처리는 신인답지 않은, 무척 세련된 기법이다.
세상의 모든 아기는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지 않으면 태어나지 않는다. 생명을 순수함의 결정체로 본 최정애의 시각과 달리 원구식은 여성을 회임케 하지 않은 정충, 그 "폐기된 욕망의 찌꺼기"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시는 몹시 지저분하다. 묘하게도, 지저분한 묘사가 시의 재미를 만끽하게 한다.

1
정충보다 더러운 곳에 버려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휴지에 싸여 더럽기 그지없는 쓰레기통에,
냄새나는 무책임한 하수구에,
때로는 변기 속에 머리를 처박고
죽음의 유영을 할 것이다.
폐기된 욕망의 찌꺼기는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곳에 버려지는 법!
의심하지 마라,
세상에서 가장 큰 쓰레기통이
그대 머리 위에 있음을.
―[서울야곡 2002―Ver.3.0] 부분

원구식의 서울 묘사는 이 시({시와 시학} 2002 봄호)의 1번에서 쓰레기통과 하수구와 변기 속에 버려지는 정충에 집중되어 있다. 정충은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곳에 버려지고, 버려진 정충은 생명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지만 난자와 결합한 정충의 신세는 그렇지 않다. "따뜻한 양수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난다. "산소를 터뜨려 주는 어머니의 자궁,/골고다의 언덕보다 단단한 골반이/생명을 보장하는 그 곳"에서 생명은 "세상에서 가장 깊은 잠을 잘 수" 있다. 운 좋게 버려지지 않고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자라나 그렇게 태어나고, 그렇게 수도 서울에서 꿈틀거리며 사는 우리 시민들. 서울의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3
봄비를 맞으면서
정충처럼 남산을 걸어갈 때,
나는 보았다.

하늘 아래 가장 많은 십자가들이 반짝이는 서울의 붉은 밤을. 신생의 아침은 혼돈 속에 오는 것. 세상은 좀더 썩어야 할 것이다. 역사도 사랑도 이데올로기도 좀더 썩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도저히 더 이상 썩을 것이 없을 때, 혼돈의 종결자가 더 이상 두드릴 배신의 뒤통수가 없을 때, 신생의 아침이 정충처럼 꿈틀거리며 서울의 자궁을 두드릴 것이다.

아,
어느 님이 버리셨나.
하루가 천 날 같은,
천 날이 하루 같은, 혼돈의 꽃다발을……
―[서울야곡 2002―Ver.3.0] 부분

시는 여기에 이르러 반전한다. 신생의 아침은 혼돈 속에 오는 것이므로 이 세상도 역사도 사랑도 이데올로기도 썩어야 할 것은 좀더 썩어야 한다. 썩을 것 다 썩어 더 이상 썩을 것이 없을 때 비로소 "신생의 아침이 정충처럼 꿈틀거리며 서울의 자궁을 두드릴 것"이다. 정충이건 무엇이건 썩어 문드러지는 것이 있어야 거름이 생겨난다. 거름, 즉 새 생명의 자양분이 없이 어떻게 신생의 아침을 구가할 수 있으랴. 버려지는 정충들, 그 혼돈의 꽃다발이 썩었기 때문에 서울은 이렇게 굴러가고 있는 것이리라. 1300만이 산다는 서울, 초스피드와 만성 정체가 엇갈리는 서울에서의 삶이여! 버려진 정충이 아니라,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정사를 재미있게 묘사한 시가 있다.

늘어나는 것이 어디 그뿐이랴 울 엄니 이태가 멀다 실제 배가 불렀다는디, 갈이질에, 새끼들 가동질에, 하루 해가 지는지 가는지 하 정신 없었다는디, 울 아부지 저녁밥 안치는 엄니 그대로 부엌바닥에 자빠뜨린 거라

그 징헌 꽃이 셋째 딸년 나였더란다 첫국밥 수저질이 느슨할 밖에…… 임자 암 걱정 말어 울 아부지 구레나룻 쓰윽 훑었다는디, 스무 날을 넘기자 사랑방 올린다고 밤새 불을 써 놓고 퉁탕퉁탕 엄니 잠을 깨웠드란다 모름지기 사내 자슥 셋은 되야 혀 그때 되믄 계집애들이랑 분별하여 방을 줘야 않겄어!
―[사랑방] 부분

함순례의 [사랑방]({시와 사람} 2002 봄호)에는 태생의 비밀이 조금도 비밀스럽지 않게 묘사되어 있어 미소를 머금게 된다. 이태가 멀게 배가 불렀던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자궁에 씨를 심었던 아버지의 정사가 "저녁밥 안치는 엄니 그대로 부엌바닥에 자빠뜨린 거라"는 재미있는 표현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아버지는 아들을 셋은 낳아야 한다며 이제 겨우 산후조리를 끝낸 어머니를 깨워 퉁탕퉁탕 또다시 방의 일(房事)을 벌인다. 사랑방을 만들게 된 이유도 재미있다. 딸이 셋이지만 아들이 계속 태어나면 방을 나눠줘야 한다고 사랑방을 만든 아버지의 자식 욕심에는 고소가 머금어진다. 부쳐먹을 땅뙈기 하나 없던 아버지는 적수공권으로 집을 올리고, 방을 늘이고, 자식을 낳고, 전답을 넓혔다. 그 아버지는 "성 안 차는 아들 두 놈 부려놓고" 저승으로 가버리셨다. 시인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그 왕성한 성욕과 자식욕을 비난하는 입장에 서지 않고 기리고 있다. 그랬었다, 농경사회에서 자식은 곧 재산이었고, 자식농사는 인생의 큰 즐거움이었다.
여성의 회임 능력은 초경으로부터 시작된다. 초경―성스럽기도 하고 속되기도 한 것,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한 것. 초경을 맞은 소녀가 있는 데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임시보호텐트이다. 초경의 피를 흘리는데 총성이 울리고, 소녀는 젊음을 꽃피워보지도 못하고 숨을 거둔다. 조정인의 [지하드]({리토피아} 2002 봄호)는 신인의 시답게 참신한가? 신인답지 않게 참신한가? 1998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한 그의 첫 시집이 기다려진다.

포인세티아 손톱 만한 속엣것이
이상하다 바닥에 뚝. 선혈처럼 진다
어제 밤새에도 뚝뚝 앳된 꽃잎을 흘려놓더니

초겨울 임시보호텐트 새우잠에서 눈뜬
차도르 속 겁먹은 검은 눈동자 젖어온다
새로 깐 요 홑청을 적시던
초경의 아침은 그렇듯 문득 찾아오질 않던가

오늘 무슬림의 한 소녀 홀로 해 뜨나보다
울컥울컥 꽃잎을 쏟아내다 보다

꽃을 통과하는 한 발 총성

펄럭, 들쳐지는 지구의 속엣것에
점점이 붉은 체온 번진다
―[지하드] 전문

'지하드'는 성전(聖戰)으로 번역이 되는데, 이슬람교도에게 전쟁에 의해 이슬람을 전파하도록 하는 종교적 의무이다. 정치적인 투쟁에 종교적인 의무를 부여한 것은 이슬람의 오랜 전통이었다. 그런데 이 시의 제목은 성전(聖戰)이 아니라 성전(性戰) 같다. 소녀가 여성이 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초경이라는 신체의 변화가 1∼3연에서 묘사된다. 시의 급반전이 제4연에서 이루어진다. 꽃(소녀의 성기)을 통과한 한 발의 총성은 이스라엘 군인이 쏜 총에서 울린 것일까? 그 총을 나는 남성의 성기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마지막 연을 보라. 소녀의 몸은 천에 덮여 있는데, 바람이 불어 펄럭 들쳐지자 "지구의 속엣것에/점점이 붉은 체온 번진다"고 하지 않는가. 소녀는 초경을 맞이한 날, 총탄에 죽고 말았다. 이 시는 소재 선택과 주제 설정도 새롭지만 전개 방식과 전환의 과정이 무척 참신하다. 비극적인 상황을 너무 재미있게 그려 그것이 흠이라면 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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