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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의 서술적 경향, 그리고 그 특징

Author
mimi
Date
2009-04-03 09:51
Views
22524

김수영 시의 서술적 경향, 그리고 그 특징

한명 희


1. 왜 김수영 시가 문제인가



시인을 두고 그에 대한 문학사적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라지는 대표적인 경우가 김수영이 아닐까 한다. 물론 미당 서정주의 시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보다 더 오래 되었고 더 지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정주의 경우 문학 외적인 요소,
그러니까 그의 개인적인 행적에 대한 평가가 시에 대한 그것에까지 침범한 경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수영은 그의 시세계에
대해서만도 전혀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김수영 신화 혹은 김수영 현상으로까지 불리면서 수많은 논의를 불러일으켰던 김수영에 대해 의심을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은 그 근거를 주로 김수영 시가 제대로 된 시가 아니라는 점을 들고 있다. 이것은 김수영 시가 소시민적 삶에 종속되어 보다 현실적이고 집단적인 준거를 갖지 못했다거나 시인 의식이 민중적 현실에서 싹트지 못하였다는 비판보다 먼저, 그리고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가 제대로 되었느냐 안 되었느냐는 사상 이전의 문제이며, 좋은 시를 썼느냐 아니냐는 그가 좋은 시인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유일무이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런데, 김수영의 시에 대해 시적 형상화가 부족하다고 하거나 미숙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논의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이 대부분
김수영 시가 지닌 산문성 혹은 서술성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그의 시가 전통적인 시의 관습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도
주된 이유가 되고 있다. 시의 기원에서부터 생각해본다면 산문성 혹은 서술성 역시 전통적인 시의 형식을 이탈한 경우이므로 이 두
가지는 서로 부분집합 혹은 교집합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수영 시가 난해하고 모호하다는 이유로 시적 성취면을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의 시의 난해성 역시 산문적 진술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산문의 벅참을 자각한 드문 시인으로서 산문의 벅참을 시 쪽으로 이끌어가고자 애를 썼으나 그의 시는 대가적 기품을 얻는 데는 끝내 실패
다는 김윤식의 비교적 온건한 비판은 물론이고 시의 관습을 충족시키는 부분이 없는 시의 위험 수위라는 조남현의 비판, 또
산문적이고 설명적이며 구조의 전제도 없는 시의 사기라는 전봉건의 비판은 모두 김수영 시의 이러한 문제들과 관련되어 있다.


의 서술화, 서사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는 김수영 시의 서술적인 성격을 논의하는 이 글의 범위를 넘는 것이므로 여기서는
자세히 논의하지 않기로 하지만 시의 서사화가 이미 현대 서정시의 중요한 특징이 되어 있음은 지적해 둘 필요가 있겠다. 시의
서술적 경향이 김수영에 의해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
서술적 경향이라는 말보다 서술시 혹은 서사시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이  더 자주 쓰이는 것 같지만 여기서는 이 단어를 택했다. 서술시, 서사시라는 명칭은 서정시
다른 장르를 상정하는 것 같은 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늘 부정적인 것으로 평가되어온 것도 아니다. 1920년대의
주요한 「니애기」, 김동환 1930년대의 백석, 이용악의 시들은 서술적인 시들로 이해되고 있으며 나름대로의 문학사적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1920년대의 임화의 소위
단편서사시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왜 김수영 시의 서술적 경향은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일까? 이것은 달리 말하면 김수영 시의 어떤 부분이 김수영의 개성적인 면모인가를 묻는 것이 된다. 이전의 서사시, 서술시, 이야기시 등과 다른 김수영 시의 특징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김수영의 문학사적 위치에 대한 대답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2. 김수영 시의 서술적 경향


2-1 개인사적인 내용


수영 시 중 서술적 경향이 우세한 시들은 대부분 시인 자신의 개인사적인 일들을 지극히 일상적인 언어로 노래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개인사적인 것들을 노래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시에 일상어를 도입하게 하고 시를 서술적으로 만든다. 서정시란 원래가
시인의 감정과 느낌에 주력하는 것이지만 자질구레하게까지 느껴지는 생활의 요목들에서 느껴지는 정서를 쓴 시는 흔치 않았다.
김수영이 늘어놓은 개인사란 것은 라디오를 새로 산 것(「금성라디오」, 신문값 받으러 온 아이에게 화를 낸 것(「제임스 띵」)
등은 물론이고 서정시에는 거의 금기처럼 여겨지던
을 버는 문제(「돈」)를 비롯 설사를 하는 것(「설사의 알리바이」), 아내와의 성관계(「성」)에까지 이른다. 집에 도둑이 든 것을 소재로 하고 있는 다음의 시를 보자.


도적이 우리집을 노리고 있다

닭장이 무너진 공터에 두른 판장을 뚫고

매일밤 저희집처럼 출입하고 있다

개가 여러번 짖는 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귀찮아서 나가지를 않았다

쥐보다 좀 큰 도적일 거라 아마

그 정도일 거라


돈에 치를 떠는 여편네도도적이 들어왔다는

말에는 놀라지 않는다

그놈은 우리집 광에 있는 철사를 노리고 있다

싯가 칠백원가량의 새 철사뭉치는 우리집의

양심의 가책이다

우리가 도적질을 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훔친 거나 다름없다 아니그보다도 더 나쁘다

앞에 이층집이 신축을 하고 담을 두르고

가시철망을 칠 때 우리도 그 철망을 치던

일꾼을 본 일이 있다

그 일꾼이 우리집 마당에다 그놈을 팽개

쳤다 그것을 그놈이 일어 끝나고나서

가져갈 작정이었다 막걸리값으로 하려고

했는지 아침 쌀을 팔려고 했는지 아마

그 정도일 거라 그것을 그놈이 가져  

가기 전에 우리가 발견했다

이 횡재물이 지금 우리집 뜰아래광에    

들어 있다


나는 도적이 이 철사의 반환을 꾀하고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 건넌방의 캐비네트를

노리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광문에 못을 쳐놓았다

그 이튿날 여편네와 식모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철사뭉치는 지하실에 도피시켜 놓은 모양이었다

도적은 간밤에는 사그러진 담장 쪽이 아닌

우리집의 의젓한 벽돌기둥의 정문 앞을

새벽녘에 거닐었다고 한다

시험 공부를 하느라고 밤을새는 큰아이놈의

말이다 필시 그럴 거라

― 「도적」 전문



단 이 시는 도둑이 집 안에 들었던 '사건'을 시간적 순서와 인과 관계를 고려하여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나와 아내, 아들,
도둑 등의 인물의 개성이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는 도둑이 들었다는 특정한 사건의 전말을 보여주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도둑이 든
스토리를 들려주는 것보다 도둑과 관련된 화자의 정서를 표출하는데 더 중점이 모아지고 있다. 이 시를 자세하게 읽으면 시인이, 우리집매일밤 저희집처럼 출입하는 도적도 도적이지만 자신을 포함하여 식구들 모두가 도적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이 시를 통해 김수영이 하고자 하는 얘기다. 어떻게 자신의 식구들을 도적보다도 더 나쁘다고 하게 된 것인지 살펴보자. 화자의 집을 무단 침입함으로써 도적이 된 사람은 사실은 앞에 2층집이 신축을 하고 담을 두르고/가시철망을 칠 때
일하던 일꾼이다. 그는 철사뭉치를 일이 끝나고 나서 가져갈 요량으로 화자의 집 마당에다 갖다 놓는다. 그는 일단 철사뭉치를
훔침으로써 도적이 된다. 그런데 그 일꾼이 갖다 놓은 것인 줄 알면서도 철사뭉치를 광에다 가져다놓고 광문에 못을 쳐놓기까지 한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화자다. 광 속에 있던 철사뭉치를 다시 안전하게 지하실로 옮겨놓은 사람도 있으니 그가 바로
여편네와 식모
다. 그러니까 이 시의 화자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은 자신을 비롯한 집 안 사람들이 직접 도둑질을 한 것은 아니지만 도둑에
다름없으며 그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시는 일차적으로는 시인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부도덕성에 대한 반성이지만
독자들에게 각각 자신의 마음 속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우리가 김수영의 지극히 개인사적인 내용을 기술하고 있는 시들에서
느끼는 매력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김수영 시의 명편으로 여겨지는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나 「거대한 뿌리」는 그 시의 성공이
이러한 일상잡사의 시화에 상당부분 힘입고 있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부분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남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8. 15 후에 김병욱이란 시인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사년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다

― 「거대한 뿌리」 부분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오십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는 자신의 모습, 또 이십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 자신의 개인적인 일상을 그려낸 것이 시의 성공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거대한 뿌리」에서 인용한 1연 부분은 자신이 앉는 모습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때 앉음새는 일종의 비유로 이해되어야 하겠지만 자리에 앉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 비유의 힌트를 얻었다는 것부터가 김수영적인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김수영 신화를 만들어준 것은 이렇게 자전적인 내용에 대사회적인 발언을 더한 것, 그러니까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경우는 일상에서 느껴지는 자신의 옹졸함에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옹졸함을 결합함으로써 거꾸로 언론 자유, 월남 파병 반대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현실참여적인 발언조차 그의 자전적인 일상 속에 녹아있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김수영 시의 중요한 특징이다.  


2-2 시인 자신의 목소리

김수영의 시 중 서술적 경향이 강한 시들이 지니는 또다른 특징은 시인 자신의 개인적이고 자전적인 내용을 시인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전달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시인들은 퍼소나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시 속의 자아는 시인 자신이라기보다는 상상 속의 자아로, 이 상상 속의 자아는 퍼소나
혹은 시적 화자로 불리웠다. 시적 공간과 일상적 삶의 공간이 다르기 때문에 시적 공간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목소리가 따로
요구되었던 것이다.
시는 시인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개성으로부터 도피한다는 엘리어트의 몰개성론은 이런 맥락에서 탄생한다. 그러나 김수영의 시들은 퍼소나를 사용하는 대신 직접 시인 자신의 개인적이고 자전적인 내용들을 자신의 음성을 통해 직접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수입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너나 나나 매일반이다

모이 한 가마니에 사백삼십원이니

한달에 십이, 삼만원이 소리없이 들어가고

알은 하루 육십개밖에 안나오니

묵은 닭까지 합한 닭모이값이

일주일에 육일을 먹고

사람은 하루를 먹는 편이다


모르는 사람은 봄에 알을 많이 받을 것이니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봄에는 알값이 떨어진다

여편네의 계산에 의하면 칠할을 낳아도

만용이(닭 시중하는 놈)의 학비를 빼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고 한다


나는 점등을 하고 새벽모이를 주자고 주장하지만

여편네는 지금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아니 사백삼십원짜리 한 가마니면 이틀은 먹을 터인데

어떻게 된 셈이냐고 오늘아침에도 뇌까렸다


이렇게 주기적인 수입변동이 날 때만은

네가 부리는 독살에도 나는지지 않는다


무능한 내가 지지 않는 것은 이때만이다

너의 독기가 예에 없이 걸레쪽같이 보이고

너와 네가 반반―

[어디 마음대로 화를 부려보려무나!]

― 「만용에게」 전문(1962)



를 담화의 일종으로 보면 화자, 청자, 화제가 시의 3요소가 된다. 시에서 이 세 가지는 더욱 세분되어 실제 시인, 함축적
시인, 현상적 화자, 현상적 청자, 함축적 독자, 실제 독자로 나뉘어진다. 이중 실제 시인과 실제 독자는 텍스트 외부에 존재하는
인물이며 함축적 시인, 현상적 화자, 현상적 청자는 텍스트 내의 인물이다. 김수영의 시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실제 시인이나 함축적
화자와 동일한 현상적 화자
가 시의 표면에 드러난다. 이 시에서 텍스트 밖의 인물인 실제 시인 김수영과 텍스트 내의 화자
개성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시가 보여주는 양계하는 모습이 김수영의 실제 생활과 그대로 일치한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시는 시인이 상상력을 통해 구현해 낸 객관적 세계가 아니라 시인 자신의 주관적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느낌을 주게 된다.


종로네거리도 행길에 가까운 일부러 떠들썩한 찻집을 택하여 나는 앉아있다

이것이 도회 안에 사는 나로서는 어디보다도 조용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반역성을 조소하는 듯이 스무살도 넘을까말까한 노는 계집애와 머리가 고슴도치처럼 부수수하게 일어난 쓰메에리의 학생복을 입은 청년이 들어와서 커피니 오트밀이니 사과니 어수선하게 벌여놓고 계통없이 처먹고 있다

신이라든지 하느님이라든가가 어디있느냐고 나를 고루하다고 비웃은 어제저녁의 술친구의 천박한 머리를 생각한다

그 다음에는 나는 중앙선 협곡에 있는 역에서 백여리나 떨어진 광산촌에 두고온 잃어버린 겨울모자를 생각한다

그것은 갈색 낙타모자

그리고 유행에서도 훨씬 뒤떨어진

서울의 화려한 거리에서는 도저히 쓰고 다니기 부끄러운 모자이다

거기다가 나의 부처님을 모신 법당 뒷산에 묻혀있는 검은 바위같이 큰 머리에는 둘레가 작아서 맞지 않아서 그 모자를 쓴 기분이란 쳇바퀴를 쓴 것처럼 딱딱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시골이라고 무관하게 생각하고 쓰고 간 것인데 결국은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서울에 돌아온지 일주일도 못 되는 나에게는 도회의 굉음과 광증과 속도와 허위가 새삼스럽게 미웁고

서글프게 느껴지고

그러할 때마다 잃어버려서 아깝지 않은 잃어버리고 온 모자생각이 불현듯이 난다


기 나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 먹고 떠들고 웃고 잇는 여자와 젊은 학생을 내가 시골을 여행하기 전에 그들을 보았다면 대하였을
감정과는 다른 각도와 높이에서 보게 되는 나는 내 자신의 감정이 보다 더 거만하여지고 순화되어진 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구태여 생각하여본다

그리고 비교하여본다

나는 모자와 함께 나의 마음의 한모퉁이를 모자 속에 놓고 온 것이라고

설운 마음의 한 모퉁이를.

― 「시골 선물」



시를 산문적 진술로 환원해 내용을 요약해보자면 종로의 찻집에 앉아있으니 조용한 시골 생각이 난다는 단순한 것이 된다. 그러나 이
시의 묘미는 이렇게 단순한 내용을 시로 만들어내는 방식에 있다. 김수영은 이 시에서 주로 문장 단위로 행을 배열하고 있는데
문장이 짧은 행보다는 오히려 문장이 긴 3, 9, 15연 등을 한 문장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것은 김수영이 의도적으로 산문적으로
배열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방식은 이 시의 주제이기도 한
도회의 굉음과 광증과 속도와 허위
나타내는데 있어 적절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문장 서술 방식의 묘미 외에도 이 시는 시인 김수영의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을 자신 자신의 목소리로 독자에게 제공한다는 데 있다. 이 시에서도 독자는 시적 화자의 목소리를 김수영의 그것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수영의 시에서는 특별히 실제 시인과는 다른 목소리를 지닌 '퍼소나'를 통해 발화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없다. 특히 많은 시들이
시인 자신과 같은 화자를 통해 이야기함으로써 그의 시 모두를 상호텍스트적으로 읽게 한다. 김수영의 산문까지도 시에서와 같은
개성을 보임으로써 그의 전 작품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2-3 감정의 직접적 진술


수영의 시가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된 주된 요인 중 하나는 그의 시가 시 속에 감정을 직접적으로는 드러낸 것에 있다. 그리고
감각적 표현보다 추상적 표현이 많다는 것도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서정시의 기본은 감정이입을 통해서, 혹은 감정의 고양을
통해서 시적 효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수영의 시는 다른 사물에 의탁해 화자의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는 드물고 대신
직접적으로 진술한 부분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내가 사는 이 지붕 우를 흘러가는 날짐승들이

울고가는 울음소리에도

나는 취하지 않으련다


사람이야 말할 수 없이 애처러운 것이지만

내가 부끄러운 것은 사람보다도

저 날짐승이라 할까

내가 있는 방 우에 와서 앉거나

또는 그의 그림자가 혹시떨어질까보아 두려워하는 것은

나는 아무것에도 취하여 살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 「도취의 피안」 부분


뒤집어진 세상의 저쪽에서는

나는 비틀거리지도 않고 타락도 안했으리라


그러나 이 눈망울을 휘덮는 싯퍼런

작열의 의미가 밟허지기까지는

나는 여기에 있겠다

― 「동맥」 부분



의 두 시의 인용 부분은 행갈이가 없다면 산문과 구별하기 어려울만큼 산문투의 문장을 구사하고 있다. 거기다 시인의 감정, 생각,
의지 등이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어 전통적인 시의 방법으로 볼 때는 시로서의 결격 사유가 많다. 인용한 시들
말고는 김수영 시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진술하고 있는 것이 많다. 그러나 시는 한 편이 유기적인 종합체이므로 시의 일부만을 떼어서
판단하는 것은 시의 이해에 치명적인 오류를 가져올 수 있다. 「도취의 피안」은
아무것에도 취하여 살기를 싫어한다는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 날짐승의 상징적 의미를 파악해야만 한다. 「동맥」은 시의 앞부분에 반복되는 내 몸은 아파서/ 태양에 비틀거린다와, 끝 두 연 햇빛에는 겨울보리에 싹이 트고/ 강아지는 낑낑거리고/ 골짜기들은 평화롭지 않느냐/ 평화의 의지를 말하고 있지 않으냐// 울러 간 새와/ 울러 올 새의/ 적막사이에서가 없이는 시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 이 부분이야말로 이 시가 서정성을 담보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도회안에서 겨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는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듯이 돌고있다

― 「달나라의 장난」 부분


이 시도 분명히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이라는 주제를 선명하게 노출하고 있다. 그것도 화자의 직접적인 발화를 통해서 노출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이 시를 평가절하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이 시는 팽이가 도는 것을 달나라의 장난으로 비유한 것, 그리고 화자가 팽이가 도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운명과 사명
깨닫게 되는 과정 등이 이 시의 장점으로 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 전체와의 유기적인 통일성을 고려하지 않고 읽을 때,
김수영 시는 시의 중요한 덕목을 많이 놓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김수영의 시를 자세히 검토해보면 그의 시에 
비유가 아주 많이 구사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설과 아이러니를 구사한 시들도 상당히 많다. 김수영 시에 드러나는 감정의
직접적 진술은 이러한 풍부한 시의 기법 속에 부분부분 드러남으로써 오히려 시를
낯설게 만드는 효과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3. 새로운 시의 탄생



수영 시에 대한 거부 반응의 일부는 그의 시가 보여주는 낯섦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싶다. 1920년대에서부터 우리시에는 서술적
요소가 도입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서술시, 이야기시 등이 서정시의 영역으로 자리잡고 있다. 김수영 시에 드러나는 서술적 경향은
김수영 이전의 시들과 몇 가지 점에서 변별성을 지니는데 그것이 바로 자신의 개인적인 일들을 적극적으로 시화한다는 것, 시인
자신과는 다른 퍼소나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자신의 음성을 사용한다는 것, 또 감정의 직설적인 발화를 시의 한 방법으로 상승시키고
있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분명 전통적인 서정시의 관점에서 볼 때는 시성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부분이 바로 김수영이 서정시의 영역을 확대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수영이 살아 있어 그에게 당신의 시는 전통적인
시형식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파괴했다고 말한다면, 김수영은 이것을 칭찬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의 산문 곳곳에서 새로운
시를 쓰려는 그의 노력을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그러한 추정이 가능하다. 전통적인 서정시의 양식을 따르는 것, 그것은
김수영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김수영 시가 보여준 새로움은 새로운 시를 쓰려는 그의 노력 속에서 탄생된 것이다. 그의 이러한
시도가 적어도 현재까지는 성공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 시대의 많은 좋은 시인들이 그가 개척한 시의 방법을 받아들이고 다시
이것을 자기식으로 변용하여 창작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수영 문학은 우리 시사에서 새로운 물줄기를 튼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거기에서 수많은 지류들이 흘러나와 또다른 물줄기를 형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한명희|시인삼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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