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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이여 베스트셀러가 아닌 진짜 시를 만나라

Author
mimi
Date
2009-03-26 07:28
Views
9618

신경림의 문학칼럼

시집이 곧잘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 내막을 알고 나면 이내 실망하게 된다. 몇 예외를 제외하면 그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시집이란 것들이 대개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좋은 시와는 거리가 먼 것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변소에 앉아서 쓴 시라고 천박하게 비유되기도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시라기보다는 낙서라는 표현이 더 맞을 시들이다.

결 국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것은 시의 독자가 확대되어서가 아니라 그 수준이 낮아져서라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나는 이 현상을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끝내 낙서 같은 시의 울타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마침내 이에 만족하지 않고 좀더 높은 수준의 시를 찾는 독자로 발전 하는 경우도 없지 않을 터이니까 말이다.

여기서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독자도 없지 않을 것이다. 독자가 좋아하면 그것이 좋은 시이지 좋은 시가 어떻게 따로 있을 수 있는가 라고. 이 말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시 좋은 시는 있다. 그것을 한두 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시가 함부로 씹어 뱉고 아무렇게나 주절대는 낙서 따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무언가 새로운 말, 참된 표현을 탐색하는 치열한 정신적 과정의 결과물이라는 점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독자들도 또한 똑같은 치열한 정신을 갖고 대해야만 시를 올바르게 읽게 된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낙서하듯 또 낙서를 즐기듯 시를 읽을 때 시의 참 재미는 영 놓치고 만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시인이란 일반 사람과 똑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시인 중에는 미용사도 있고 보일러공도 있고 무역상도 있으며, 교사도 있고 정치인도 있고 주부도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일반 사람과 다른 그 무엇이 하나 있다.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만지지 못하는 것을 만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시를 읽는 재미는 바로 이들이 이런 능력을 가지고 보여주는 세상과 접속하는 일이다. 함부로 써댄 낙서 같은 시가 이런 세상을 보여 주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시가 소음만큼이나 흔하고 시집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도 시의 시대는 지났다는 자조 섞인 탄식이 나오는 현실의 한 모서리에는 낙서 같은 시집이 독자를 사로잡아 베스트셀러가 되는 왜곡된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

이 것은 시의 몰락의 결과이기도 하고 거꾸로 시의 몰락을 재촉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인이 그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보여 주는 세상에 들어가 삶의 깊은 곳을 맛보겠다는 생각으로 시를 대하는 독자라면 결코 이런 시집을 선택하지는 않으리라. 어느 시인이 방송에 나와 얘기하는 것을 들은 일도 있지만 시집 한 권이 불과 차 한 잔 값이다.

낙서가 아닌 진짜 시를 만난다면 이 차 한 잔 값으로 그 열 배 스무 배의 즐거움을 시집에서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독자들이 알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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