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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추천 수필 - 엄마의 정원/마진

Author
문학
Date
2017-10-04 21:00
Views
1397


엄마의 정원/마진



 



 



이른 아침에 뜰에 나가 화단에 물을 준다. 넓은 호스타 잎에 물이 떨어지면 여름날 함석지붕에
듣는 장마비 소리가 난다
. 땅을 덮고 있는 키 작은 풀들에게도 물을 준다. 그 런 풀이 없는 화단은 겉만 화려하고 속옷은 제대로 챙겨입지 않은 여자같다고 어느 시인 이 쓴 글을 읽었다.



한동안 우리
집에 와서 머물렀던 조카는 뜰에서 일하는 나를 보고 영국에 살 때 늘 정원 에서 살다시피 하던 할머니 모습이 연상된다고 하였다
. 엄마는 오빠네 가족이
영국에 사는 동안 그곳에 가셔서 몇 계절을 지내셨었다
. 엄마는 우리가 아직 집을 사기 전 미국에도 오셔서
반 년동안 계셨는데 뒷마당에 내가 심었던 꽃들과 깻잎들이 엄마가 계시는 동안에 눈에 띠게 싱싱하고 풍성해졌었다
. 엄마가 가시고 난 뒤에 뒷마당은 어딘가 빛을 잃고 식물들은 시들해져 갔다.



꽃 가꾸는
일에 게으른 나는 주로 다년생 꽃들을 심어 놓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현상유지만 하는 편이다
. 지나치게 열심히 꽃들을 키우던 엄마에 대한 방어기제
일까
. 없는 살림에도 자꾸 꽃화분을 사고 기르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어 엄마가 아직도 철이 없는가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



서울의 아파트에서도
종종 화분을 사들이는 엄마때문에 올케언니는 무척 곤란 했을 것이다
.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떠나오며 집에 있던 화분들을
이웃에게 나눠 줄 때 엄마는 벤자민 만큼은 당신이 가져가겠다고 하셨다
. 키가 천정에 닿을 정 도로 자라서
마침내 작은 조롱박 모양의 열매까지 열린 벤자민을 엄마는 무척 귀애하셨었다
. 그 큰 나무를 멀리까지 운반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고 오빠 식 구들이 좋아할 리도 없어 제발 포기하시라고 말렸지만 엄마는 결국 큰 돈을 들여 용달차를 불러서 옮겨 가셨다
.



우리가 떠나온
, 실직한 오빠가 집을 줄여서 이사를 했다. 오빠네의 그 많은 살림살이들을 놓을 공간도 부족한
집에서 벤자민은 다용도실 한귀퉁이에 반쯤 몸을 접고 지내다 어느 겨울에 얼어 죽었다고 했다
. 그 얘기를 하실
때 엄마는 목이 메이셨다
. 나도 마음이 아팠다. 죽은 벤자민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 인간사 의 어쩔 수 없음에 대한 연민같은 것이 있었다
.



아버지의 병고로 수십년의 신산한 세월이 시작되기 전, 엄마에게는 짧은 동안 이나마 정원을 가졌던 때가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와서 구경하며 젊은 새댁의 부지런한 뜰을 칭찬했다고 한다. 장미넝쿨이
담장위로 넘어가고 작고 동그란 연못 가장자리로 각종 꽃들이 피어있는 속에 엄마와 오빠가 앉아있는 모습의 사진을 나도 본 적이 있다
.



엄마는 우리가
마당있는 집을 사면 손수 정원을 꾸며주는게 소원이라고 입버릇 처럼 말씀하셨지만 정작 우리가 작은 화단이 딸린 집을 샀을 때는 너무 연로하 셔서
더이상 비행기를 타실 수 없게 되었다
. 나는 때때로 엄마와 함께 정원을 만드는 상상을 하면서 새삼 아쉬운 감회에 젖곤
한다
.



 



<엄마와 나는 서로
등을 돌리고 앉아서 엄마는 과꽃
, 봉숭아, 나팔꽃같은 유년의 꽃밭에
있던 꽃들을
, 나는 루핀이나 라넌큘러스같은 서양풍의 꽃을 심고 있다. 그리고는 같이 땅을 파서 사과나무를 심고 목백일홍과 라일락을 심는다. 엄마는 포도나무와 등나무도
올리자고 한다
. 내가 오늘은 그만하자고 하면 그러자고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어느새 울타리 아래에
넝쿨장미가 심어져 있다
. 내 굼뜬 행동에 엄마는 여느때처럼 잔소리를 하고 나는 늘 그렇듯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른다
. 마음이 상한 채 엎어져서 흙을 파고 꽃을 심다보면 어느새 마음도 흙과 함께 풀어져 있다..>



 



세월이 흘러서
그 정원에 계절마다 꽃들이 피고 지고 벌 나비가 오고 사과가 무르익으며 저녁 바람이 불어와서 향기를 흩날릴 때
, 이승에서 엄마와 겪었던
모든 괴로움들도 하나 둘 바람에 날려가 버리지 않을까
. 꽃나무 아래 설 때마다 엄마를, 엄마라는 한 여자를, 그 여자의 추억과 꿈을 기억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하여 엄마를 마침내 이해하고 엄마와 온전히 화해를 하게되는, 그런 뜰을 이제 마음속에서나
간직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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