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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추천 수필 - 나의 과일나무/송윤정
나의 과일나무 / 송윤정
뒷마당에서 복숭아나무, 사과나무, 배나무에 열매가 달린 것을 보았다. 이 나무들은 6년 전 봄, 이 집에 이사 온 후 가을에 심었으니 5년
만에 처음 열매를 맺은 것이다. 당시 나무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던 나는 과일나무를 심고 싶은 마음에
광고를 보고 온라인으로 덜컥 주문을 했다. 몇 주가 지나 배달된 것은 꼬챙이 같은 나무토막들이었다.
나무라면 뿌리가 있고 뿌리는 흙으로 싸여 있어야 할 터인데, 좁다란 상자 안에 뿌리도
없는 꼬챙이들이 신문지에 싸여 왔다. 나무의 유통과정을 쉽게 하기 위해 자기들이 개발한 신기술로 이런 형태로
나무를 보내니 땅에 심으면 과일수가 된다는 쪽지와 함께.
남편은 내게 사기당했다고 내다 버리라고 했지만, 나는 뒷마당 한쪽 구석, 햇빛 잘 드는 곳에 거름까지 주며 심었다. 이듬해 봄 그 꼬챙이들에서 파릇파릇한 새잎이 돋아났고,
신기하게도 해마다 키가 부쩍부쩍 컸다. 세 해전부턴 봄이면 꽃도 예쁘게 피었다.
꽃이 처음 핀 해에 ‘꽃이 피니 열매도 열리려나?’ 하고 기대했지만, 열매는 기색도 없었다. 그 이듬해도
꽃만 피고 진 후 열매는 없자, 남편은 나무도 암수가 있는데 한 그루씩만 심어서 그렇다고 하고 방문하신 부모님들은
나무에 거름을 안 줘서 그렇다고 했다. 나는 거름을 주는 일은 할 수 있지만, 나무에 정말 암수가 있으면 지금 심어진 나무들의 암수를 어떻게 파악해서 짝을 맞출 수 있을지 난감했다.
이런 나무들에게서 마침내 열매가 달린 것을 보니 감개무량感慨無量하다는 말과 함께, 새벽 예배에서 룻기 1장을 묵상하면서 스친 생각이 떠올랐다. 남편과 아들 둘을 잃은 여인 나오미 Naomi, 이 여인이 평탄한 인생을 누렸다면 성경에서 짧지만 중요한 한 대목을 차지할 수 있었을까? 나오미의 이야기는 내가 문인으로 등단하게 된 계기를 떠올리게도 했다. 아프리카의 한 자그마한 나라, 리소토 Lesotho로 출장을 갈 때 36시간이 넘게 걸려, 그것도 가방까지 잃어버린 고생이 2014년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추수감사절에 즈음하여'라는 글을 쓰는 소재가 되었고 그 글이 워싱턴문인회 공모전에 당선되면서였으니까.
2014년 말에 워싱턴문인회 수필 부문 신인상을 받고 2015년부터 매월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글을 썼다. 그 이듬해부터는 문인회의 재정까지 맡아, 직장일, 가사, 엄마로서의 직분 등등으로 지칠 땐 ‘내가 무엇하러 이렇게 글을 쓴다고 애를 쓰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버둥거리며 버티어 온 지 어느덧 삼 년 차다. 2017년 6월에 올 출간될 책에 실을 작품들도 모두 보냈으니, 문인회 연간 출판을 위해 글을 다듬는 작업도
세 번을 마쳤다. 이런 출판을 통해, 작년에 출판된 책을 다 읽은 후
“새 책이 언제 나오느냐?”고 물으시는 내 아버지를 팬으로 얻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평범치 않은 내
과실수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 해가 내가 문인회 모임을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비록 눈에 보이는 열매들을
맺지 못한 순간들에도 그 과실수들은 햇살과 빗물을 받으며 성장을 멈추지 않았으리라. 그러하기에 꽃을 피우기
시작한 지 삼 년 만에 맺힌 그 열매들이 더더욱 감사하다. 그 열매들은 아직 탐스러울 만큼 크고 알차 보이진
않는다. 비록 지금은 보잘것 없어 보여도 매달린 그 열매들은 날마다 색을 더하고 더욱 풍성하여 지리라는 것을
믿는다. 때때로 하잘것없어 보이는 내 글쓰기도 부단히 노력하면 풍성한 열매로 자라게 될 것이라고 속삭여주듯
나의 나무들의 초록 잎이 햇살에 반짝인다.
2017.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