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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추천 수필 - 쌍둥이의 세계/김레지나
쌍둥이의 세계
김레지나
친구의 손자/손녀인 쌍둥이의 돌잔치에 초대를 받고 생일 카드를 준비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카드를 한 장 집어 들었다. 처음엔 무심코 카드 한 장에 둘의 이름을 쓸 생각이었으나 쌍둥이 엄마로서의 경험상
개인별로 준비해야 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카드를 따로따로 준비하였다. 참석한 돌잔치에서 첫 생일을 맞은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운 쌍둥이를 보면서 자연스레 이젠 서른 살이 된 나의 쌍둥이 아들의 유년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쌍둥이 출산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임신 9개월이 되어서야
쌍둥이란 걸 알게 되었고 쌍둥이는 조기 분만이 대부분인데도 난 예정일을 하루 넘기고 나서 정상분만을 했다. 미국인 남편의“고추다!.”그리고 5분 후에 “또 고추다!”라는 경의에 찬 외침과 함께
8파운드의 쌍이와 7.5파운드의 둥이가 우리에게 왔던 것이다.
의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요즈음엔
다둥이의 모습이 흔한 광경이지만 30년 전에는
쌍둥이 유모차를 밀고 나가면 사람들의 시선이 줄곧 우리를 따라다녔다. 나도 여느 쌍둥이의 부모처럼 어릴 적엔
쌍둥이라는 특성 때문에 뚜렷한 개성이 있는 두 명의 아이인데도 이를 무시하고 한 아이로 뭉쳐 키웠던 것 같다. 같은 색의 옷과 신발, 같은 머리형, 같은 과외활동에
참여케 하였다. 이런 이유때문인지 지금도 난 뭘 사든 간에 두 개씩 사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일란성 쌍둥이기에 흥미나 성격이 비슷한 이유이기도 했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두아이에게 똑같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에만
급급하여 아이들의 의견이나 개성을 고려하기보다는 한 아이를 선호하지 않고 공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쌍둥이의 유전론과 환경론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들이 끊임없이 보고 되고 있는 가운데 내 나름대로 지켜본 두 아이의 어릴 적 생활 습관 속에서 몇 가지를 찾아내 본다.
그 중 하나는 둘만의 세계에서도
위계질서가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리더의 역할이 몇 달 단위로 자연스럽게 바뀌는 것이다. 이런 자연스런 교체에 한동안 혼돈이 온 적이 있었는데
이는 아르바이트를 하여 돈이 생긴 아이가 자기 차례가 아닌데도 리더 역할을 한동안 계속한 적이 있었고 그 원천은 바로 돈의 힘이었다.
더욱 특이한 사실은 그들사이에 둘만의 언어가 생성되는 것이다.
단어보다는 표정과 몸짓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으며 부모가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도 아니고 한국말도 아닌 단어를
둘만이 공유하는 것이다. ‘파마트먼트’는 ‘아파트’이고 ‘투(two)똥’은‘대변’을
뜻한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또한 어릴 적 사진 속의 본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대부분 상대방을 자신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지만, 상대방의 얼굴 속에서 자신을 보기 때문인가 싶다.
이제 와 새삼 돌이켜보면 어릴
적부터 쌍둥이의 틀에 가두지 않고 하나의 개인으로 키웠다면 둘의 의식구조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고등학교 때까지는 둘이서 친구나 과외활동, 취미생활 등을 모두 공유하였기에 두 아이를 개별적으로 다루기보다는 하나로 생각했었다. 대학을
각자 다른 곳으로 간 후 둘의 생활반경이나 친구들이 달라지자 각자의 개성이 더욱 뚜렷해졌고 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바뀌게 되었다.
그제야 쌍둥이 아들을 키운다기보다는 그냥 2명의 아들 형제를 키우는 부모가 되어갔고
따로따로의 성격과 취향을 인정하게 되었다.
오늘 돌잔치를 한 아이들은 이란성
쌍둥이여서 같은 색의 옷을 입힐 우려는 없겠지만 어릴 적부터 각자의 개성을 길러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