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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갈이/ 송윤정

Author
문학
Date
2015-09-30 06:06
Views
1895


 봄에 시부모님이 한국에서 오시기 전날, 집 앞 현관에 놓인 두 화분에 놓을 꽃바구니를 사 장식하였다. 노란 베고니아가 가득하게 핀 꽃 바구니였다. 풍성한 노란 꽃들은 볼 때마다 봄의 향기와 어우러져 집의 입구를 화사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시부모님도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초여름, 중복 그리고 말복에 이르르니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던 베고니아 꽃바구니의 꽃잎은 짙은 갈색으로 타들어 있었고 초록 잎들마저 불에 달구어져 가고 있었다.


 지난주 말라 죽어가는 꽃바구니를 보고, 마음이 아파 그 마른 잎을 다 잘라냈다. 그리고 그나마 남은 잎이라도 생명을 이을 수 있게 날마다 물을 흠뻑 줬다. 말라 비틀어져 가던 잎 사이사이로 다시 파릇파릇한 새잎과 꽃망울이 돋아 나왔다. 하지만 집 앞 드라이브 길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현관에 보이는 커다란 두 화분은 듬성듬성 솟아나 있는 마른 잎 가지들과 새로 솟아나온 꽃잎으로 마치 까치에 파먹힌 머리털 마냥 영 보기에 민망했다. 그래서 그 바구니의 베고니아들을 다른 화분으로 옮겨심기로 마음을 정했다.


 “꽃집에서는 일년생으로 팔지만, 실내에서 겨울을 나면 다음 해에도 잘 자란다”는 시어머니의 조언을 기억하며 실내에 놓을 화분들에 나누어 심기로 했다. 꽃을 꺼내 보니 커다란 바구니 안에 베고니아 뿌리 네 개가 뒤엉켜 있었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한 바구니 안에서 네 뿌리의 열매들이 자리다툼을 하느라 어떤 가지들은 뒤틀어져 있고, 어떤 가지들은 같은 햇살과 물을 받았어도 키가 월등하게 컸다. 메마른 가지 사이로 새로이 초록 잎과 노란 꽃들이 여기저기 솟아나 있었는데, 그중 어떤 꽃잎들은 다 타들어 간 마른 가지 끝에 간신히 달려 있었다.


 그처럼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여린 꽃잎은 마치 죽어가는 어미의 젖을 물고 매달린 가녀린 새끼처럼 생명의 끈질김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행여나 그런 꽃잎이 떨어질까 싶어 조심조심 뿌리를 파내 무슨 보물덩어리인 양 다루며 분갈이를 하였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하였어도 몇 꽃줄기는 바닥에 떨구어졌고, 생명의 끊을 놓쳐버린 그 줄기들이 어찌나 안스러운지! 행여 그 줄기를 흙에 심으면 그 나름의 뿌리를 이루어 살 수 있을까 싶어, 줄기를 흙에 묻고 조심히 꼭 눌러 주었다.


 분갈이를 하고 매일매일 물이 모자란 지 들여다보니, 어느새 새잎과 꽃들이 부쩍 자라 있었다. 화초를 잘 키우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강렬한 햇살 아래서 혹은 그늘진 곳에서 잘 자라는지와 같은 각 화초 기질에 맞는 환경과 물과 관심과 사랑. 문제는 그 간단한 것들을 반복해서 매일매일 지속해내느냐였다. 하긴 종종 발표되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x가지 습관>이라는 글들에서 열거한 것도 대단한 것들이 아닌, ‘매일 명상하기’, ‘일찍 일어나기’, ‘소중한 것을 먼저 하기',’먼저 이해하고 이해시키기' 등등의 기본적인 것들이다.


 언젠가 녹화된 법륜스님의 강연을 보게 되었다. 젊은이들이 가득찬 한 대학 강당에서 한 청년이 일어나 “군 제대 후 여러 결심을 하였지만, 번번이 작심삼일이 되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는데 어찌하면 좋겠냐”고 상담을 청했다. 법륜스님은 “욕심이 너무 많아서 그래. 한번에 여러 결심을 하지 말고 작은 결심 한가지로 시작해서 결심을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일을 지켜야 해. 예를 들어서 담배를 끊겠다 결심했으면, 세상이 두 쪽이 나더라도 지키는 거야. 근데 아무래도, 아무리 작은 결심이라도 못 지키겠으면,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욕심 없이 살던가.”하고 답하였다.


 말복이 지났다해도 8월 중순 한낮의 햇빛은 땅을 갈라놓고 여린 꽃들을 모두 숨죽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아침에 물을 주고 나간 꽃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모두 고개를 떨구고 늘어져 있다. 오늘 저녁도 집 안과 밖의 화초들을 살펴보며, 나는 수행을 한다. 타들어 갈 듯한 지옥 불에도 생명을 견디게 할 수 있는 건 지치지 않는 사랑의 손길임을 되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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