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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신인문학상 소설부문 우수상/ 심선
소설-우수상
꿈꾸던 세상
-심선
선우와 나는 처음부터 비교의 대상이나 관계의 대상이 될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내 앞에서는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지만 “어떻게 너 같은 사람이 선우의 친구가 될 수 있어?” 하고는 의아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 두 사람간에 무슨 특별한 계략이 있거나 아니면 모종의 말 못할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나에 대한 부러움을 넘어 알 수 없는 경계심을 품기도 했다.
선우와 나는 같은 중학교를 나왔고 같은 고등학교를 배정 받아서 같은 반은 아니라도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중학교 동창생들은 물론이고 고등학교 재학생 아이들에게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왜냐하면 선우는 중학교 3년간 반장을 독차지 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3학년 때는 전교 회장을 지냈으며 뛰어난 외모를 지니고 있고 3년 내내 전교 1등을 놓쳐 본적이 없는 그야말로 킹카 중에 킹카였다. 선우의 아버지는 대학병원의 정신과 의사이며 자주 티브이에 출연해서 사회적 명성이 있는 분이고, 어머니는 유명 여자대학 음대 교수이다. 그에 반해서 나의 경우는 외모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지니고 있고, 학교 성적도 중간에서 약간 상위에 속해 있을 뿐, 가정 형편도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평범한 그런 가정이었다. 아버지께서는 개인택시를 운전하고 계셨고 어머니는 동네 식당에서 찬모로 일을 하며 동생과 함께 네 식구가 서울에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선우와 나는 외형적 모습에서 보여지는 것도 그렇고 살아가는 방식이나 부모님의 사회적 신분을 비교해 봐도 무엇 하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선우가 모든 아이들에게서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는데 그런 그녀에게 유일한 친구가 나 라는 것이 대부분 아이들에게는 질투의 대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일 수 있겠다고 여겨졌다. 어쩌다 아이들 중 누군가가 나에게 그 이유를 물어오면 나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어서 “나도 몰라, 선우에게 물어봐” 라는 하나 마나 한 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했다. 아이들 모두는 고등학교에 진학 해서도 선우는 학년 1등을 독차지 하여 최고 자리를 한번도 놓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의 믿음을 선우는 정확하게 지켜가고 있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지켜가고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식 날 교장 선생님은 선우의 존재를 알리고 학교의 보물처럼 특별관리를 하겠다는 선언을 했고 그 선언으로 학교 전체가 선우를 특별 관리 대상으로 보호 하였으며 학교에서 선우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독보적인 그녀의 존재는 학교의 일진 언니들도 그냥 바라만 볼 뿐 상대하려고 들지 않았다. 그렇게 특별한 선우가 어느 날부터 나에게 접근을 해왔고 예상치 못한 그녀의 접근에 나는 엉거주춤 당황해 했다. 하지만 소리 없는 그녀의 매력에 나는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 가고 말았다. 1학년 여름 방학이 지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학교 복도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학교 유도부의 주장이기도 한 삼 학년 민기형이 우리 반 반장인 윤호를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게 괴롭히고 있었다. 얼굴이 사각형이고 몸집이 당당한 민기형은 욕을 섞어서 소리를 지르며 윤호의 손목을 뒤로 꺾은 채 복도 끝을 향해 끌고 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런 광경을 창문 뒤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을 뿐, 누구 하나 나서서 제지할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화장실에 다녀오던 중이었고 복도 끝에서 그 광경을 목격하고 무조건 달려들어 민기형의 소매를 붙잡고 제지를 하였지만 민기형의 들어 메치기에 허공을 한 바퀴 돈 후 마루 바닥에 그대로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정신을 차린 것은 학교 양호실 침대 위였고, 그 날 이후 나는 동급생들 에게는 ‘정의로운 애’로 통했다. 2,3 학년들 사이에서는’지독한 놈’ 또는 ‘조심해야 되는 애’로 통했다. 그 날부터 민기형이 졸업할 때까지 계속해서 시달림을 받아야 했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그날의 일은 선우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선우는 나에게 조금씩 다가와 특별하게 대하기 시작 했다. 선우는 내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서 떠들고 있거나 장난을 치고 있으면 슬쩍 내 주위로 와서 조용히 지켜 보다가 계속 거기에 있었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함께 웃었다. 가끔 등 하교 길에서 만나면 일부러 내게 다가와 나란히 걸었고 날씨며 꽃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는 했다. 그녀의 그런 행동이 처음엔 부담으로 다가와 나는 한 걸음 물러나서 어색하게 받아드리고 했다. 2학년에 올라가서 선우와 한 반이 되었다. 나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친구들은 축구를 한다거나 농구를 할 때도 나는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다. 오히려 선우가 나에게 다가와서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도 하면서 친한 친구처럼 웃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가까운 관계로 나를 이끌어 갔다. 가끔은 그녀의 요청으로 어딘가에 들려서 무언가를 함께 먹고 가기도 했고, 그녀가 읽고 있다는 책을 빌려 주기도 했다. 선우는 학교에서 나 이외의 누구와도 사적인 얘기를 잘 나누지 않았다. 선우는 자신의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 예를 들면 집안에서의 자신의 위치나 부모님과의 갈등과 오빠와의 차이 등에 대해 가감 없이 이야기를 들려 주고는 했다. 선우는 치열한 경쟁에서 남보다 무조건 위에 있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어긋난 강요에 힘들어 했고 그런 부모님의 기대와 자신의 생각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서 무슨 해답 같은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때로는 자신의 생각에 대해 긴 시간 이야기를 하고 눈물을 비치기도 했는데 언젠가 선우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호야…… 너를 보면 나는 이상하게 편안해 진다. 나에게 없는 것을 너는 가지고 있어…… ”
그녀의 얘기를 들으면 겉으로 보기에는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완벽해 보이는 그녀였지만 마음속에 감쳐진 무언가 다른 아픈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가만히 있는 것이 전부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도 없었고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늘을 뒤덮은 잿빛 구름은 금방이라도 엄청난 양의 비를 뿌릴 준비를 끝내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바람을 타고 밀려 오고 있었다. 그 날 나는 교실 청소를 마치고 우산도 없이 서둘러 학교 밖 돌담 길을 뛰듯이 달려가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 가까이 도착 했을 때 조금씩 내리는 빗방울에 우산을 쓰고 무언가를 두리번거리는 선우를 발견 했다. 선우도 나의 접근을 발견하고는 그녀 특유의 엷은 웃음으로 나를 반겨 주었다.
“나 너무 배 고프다”
선우가 말했고 나도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우리 자장면 먹고 갈래?”
“응 난 짬뽕 먹을 거야”
우리는 버스 정류장 뒤쪽에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가 조금 가파른 계단을 올라 갔다. 계단의 층층마다 ‘중화요리 북경원’ 이라는 스티커를 부쳐놓은 중국집엘 들어 갔다. 애매한 시간이라 그런지 홀 안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고 주인 부부가 티비를 보며 무료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창가 쪽에 앉아서 들어올 때 선택해 두었던 메뉴가 있었지만 자장면과 짬뽕의 갈등 속에 애초의 결심을 잊고 결정의 반대로 선우는 짬뽕을, 나는 자장면을 시켰고 군 만두도 추가해서 시켰다. 남자 주인이 주방 안에 들어가 불을 지피고 밀가루 면을 뽑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자장면 볶는 냄새가 배고픈 두 사람의 식욕을 자극해서 나도 모르게 고개가 자꾸만 주방 쪽으로 돌아 갔다. 주인 여자가 단무지와 양파를 춘장과 함께 테이블에 놓아 주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단무지와 양파 위에 식초를 뿌렸다.
“주호야…… 사람들은 양파와 단무지에는 왜 꼭 식초를 칠까? 그것도 상대의 의사를 묻지 않고서”
“응…… 미안해…… 나는 당연히 칠 줄 알았어…… 미안해”
나는 당황해서 구를 한다거나 농구를 할 때도 나는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다. 오히려 선우가 나에게 다가와서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도 하면서 친한 친구처럼 웃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가까운 관계로 나를 이끌어 갔다. 가끔은 그녀의 요청으로 어딘가에 들려서 무언가를 함께 먹고 가기도 했고, 그녀가 읽고 있다는 책을 빌려 주기도 했다. 선우는 학교에서 나 이외의 누구와도 사적인 얘기를 잘 나누지 않았다. 선우는 자신의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 예를 들면 집안에서의 자신의 위치나 부모님과의 갈등과 오빠와의 차이 등에 대해 가감 없이 이야기를 들려 주고는 했다. 선우는 치열한 경쟁에서 남보다 무조건 위에 있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어긋난 강요에 힘들어 했고 그런 부모님의 기대와 자신의 생각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서 무슨 해답 같은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때로는 자신의 생각에 대해 긴 시간 이야기를 하고 눈물을 비치기도 했는데 언젠가 선우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호야…… 너를 보면 나는 이상하게 편안해 진다. 나에게 없는 것을 너는 가지고 있어…… ”
그녀의 얘기를 들으면 겉으로 보기에는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완벽해 보이는 그녀였지만 마음속에 감쳐진 무언가 다른 아픈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가만히 있는 것이 전부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도 없었고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늘을 뒤덮은 잿빛 구름은 금방이라도 엄청난 양의 비를 뿌릴 준비를 끝내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바람을 타고 밀려 오고 있었다. 그 날 나는 교실 청소를 마치고 우산도 없이 서둘러 학교 밖 돌담 길을 뛰듯이 달려가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 가까이 도착 했을 때 조금씩 내리는 빗방울에 우산을 쓰고 무언가를 두리번거리는 선우를 발견 했다. 선우도 나의 접근을 발견하고는 그녀 특유의 엷은 웃음으로 나를 반겨 주었다.
“나 너무 배 고프다”
선우가 말했고 나도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우리 자장면 먹고 갈래?”
“응 난 짬뽕 먹을 거야”
우리는 버스 정류장 뒤쪽에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가 조금 가파른 계단을 올라 갔다. 계단의 층층마다 ‘중화요리 북경원’ 이라는 스티커를 부쳐놓은 중국집엘 들어 갔다. 애매한 시간이라 그런지 홀 안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고 주인 부부가 티비를 보며 무료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창가 쪽에 앉아서 들어올 때 선택해 두었던 메뉴가 있었지만 자장면과 짬뽕의 갈등 속에 애초의 결심을 잊고 결정의 반대로 선우는 짬뽕을, 나는 자장면을 시켰고 군 만두도 추가해서 시켰다. 남자 주인이 주방 안에 들어가 불을 어쩔 줄 몰라 말했다.
“아니야…… 나도 식초 치는 것 좋아해…… 그냥 해본 말이야”
선우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단무지를 손으로 집어 입에다 넣고 와삭와삭 씹으며 말했다.
“미안해…… 싫으면 더 달라고 할게……”
“아니야 그냥 해본 소리라니까……”
선우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고 그때 주인 아주머니가 군 만두를 가져다 주었다. 만두를 먹으며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라 시선을 비 내리는 버스 정류장에 오고 가는 사람들로 옮겼다. 그렇게 어색해져 가는 분위기를 깨고 선우가 나에게 물었다.
“주호야……”
나는 만두를 집어서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양파를 춘장에 찍어 먹으려다 말고 선우를 쳐다 보았다.
“어떤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 일까......? 그리고……사랑이 무엇일까......?”
내 눈에 시선을 고정하던 선우가 약간 어눌한 표정을 지으며 그러나 강한 눈빛으로 나지막이 나에게 물어왔다. 나는 조금 당황해 했고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초점을 잃고 흔들리고 있었다.
“음…… 글쎄…… 난 그런 거 아직 생각 못해 봤는데……”
내가 말꼬리를 흐리며 자신 없게 말했다.
“주호야……”
“……나는 따뜻한 세상 하나를 만들고 싶어, 아무리 추운 거리를 돌아 다니다가 돌아와도 내 마음과 또 다른 마음을 맞물려 넣으면 아름다운 모닥불로 타오를 수 있는 세상 같은 것……”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경쟁이 원칙이 되고 일등만이 살아남는 세상, 그 숨막히는 현실 속에서 나를 지켜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 돈과 권력 앞에서 무릎을 끓어야 하는 자본주의의 천박한 속성에서 벗어나고 싶어.”
선우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당황 하였고 무슨 말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였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때는 선우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몰랐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은 그녀가 원하는 세상은 누구나 꿈꿀 수 있는 세상 이었다.
“세상에는 가질 수 있는 것과 버려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내가 지금 가진 것이 버려야 할 것일 수도 있고, 버려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가 가져야 할 소중한 것일 수도 있어,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렸을 수도 있고…...”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침 어색한 분위기를 막아줄 음식이 나왔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각자의 주문한 음식에 열중했다. 나는 자장면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고 선우는 절반도 먹지 않고 젓가락을 놓았다. 솔직히 선우가 남긴 것을 먹고 싶었으나 선우가 싫어할 것 같아 포기 하고 나도 젓가락을 내려 놓았다. 선우가 조금 전의 표정과 달리 그녀 특유의 엷은 미소를 지으며 가방에서 초콜릿을 꺼내어 한 개는 나에게 주고 한 개는 자신이 까먹었다. 선우는 잠시 뒤에 자신의 진로에 따른 새로운 생각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처음엔 동의 하기 보다는 나의 현실과는 너무나 다른 입장에 커다란 벽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녀의 논리적이고 합리적 생각에 공감을 하게 되고 조금씩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주인 아주머니는 걸려오는 주문전화를 받아서 주방 안에 큰 소리로 전달하면 주방 안에서 음식에 불 맛을 내려는 주인 아저씨의 능숙한 웍 질 소리와 냄새가 홀 밖으로 흘러 나왔다. 그림 없이 커다란 숫자만으로 만들어진 달력 맨 밑에 새마을 금고의 상호가 써있고 어느 정치인의 이름이 시계축의 아래쪽에 새겨진 둥근 벽시계가 어느새 여섯 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
“선우야…… 너 같은 사람에게도 걱정 이라는 것이 있구나…… 미안해……”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고, 선우는 알지 못할 묘한 웃음을 흘리며 내 손을 잡았다. 중국집을 나왔을 때는 비가 그쳐 있었다. 대신 진짜 어둠이 수채화 물감이 물에 번지듯 세상 전체에 번져 오고 있었다. 그 이후에도 나는 선우를 그 정도의 거리에서 그 정도의 마음을 주며 상대하고 있었다. 더 가까이 가려고 해도 그녀가 뿌리칠 것만 같고 어쩌면 아주 멀어 질 것 같은 걱정에 더 다가가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내 마음을 제어 하고 있었다.
선우는 원하던 대학, 원하던 과에 당연하게 합격을 했다. 오히려 부모님은 해외 유학을 종용했고 영국과 미국의 유명 대학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음에도 그녀는 과감하게 포기를 하고 자신이 원하는 서울대학을 선택했다.
나는 부모님의 경제적 형편을 생각해서 지방 국립대를 지원했고 원하던 과에 다행히 합격 했다. 문제는 내가 합격한 과가 부모님이 원하는 의대나 법대가 아닌 국문학과 라는 것이다. 문제의 국문학과는 2년전 예산상의 문제로 문예창작과 와 통합이 되었으며 다시 머지 않은 미래에 절반으로 축소될 예정으로 되어 있었다. 학교 자체에서는 국문학과를 통째로 없애고 싶었지만 국립대학이라는 상징성이 있고, 그러한 상징성을 무시 할 수는 없었다. 이러저러한 상황은 수험생의 지원율을 현저하게 떨어뜨렸다. 그 결과 내가 입학할 당시 같은 과에 합격한 학생들은 다른 해 보다 어딘가 모호해 보였고 비실용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며 그런 분위기는 나의 앞길이 보이는 듯 해서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 국문학과 40명 남짓한 신입생 가운데 실제로 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생들은 손에 꼽을 정도 이고 신입생 대부분의 생각들은 공무원을 미래의 직업으로 생각하는 부류와, 그냥 놀다가 시집이나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여자애들로 나누어져 있는 듯 했다. 그러한 아이들에게 국문학이란 고교 수업과 수능에 대비를 해서 지겹도록 읽고 또 읽어야 했던 지루하고 재미없는 문장들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왔고 앞으로는 4년 이상을 그 지루한 것들을 읽고 또 읽어야 한다는 현실이 우울하기만 했다. 나는 가능한 조용히 혼자 있는 것을 택했다. 특별히 동기생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보다 차라리 어제 읽었던 지루한 책을 다시 읽는 편이 났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했다. 칙칙한 빛깔의 국립대학 국문학과 건물들은 내가 생각했던 희망에 부풀던 대학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학업의 방식과 가능하면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선배들과 자신만의 세계에서 상대의 생각이나 형편 따윈 전혀 아랑곳 하지 않는 동급생들, 오히려 가끔 마주치는 경영대학이나 의대, 법대생들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학교는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다. 어느 날인가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추어 강의실에 도착해 보니 강의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다 싶었으나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엉거주춤하게 앉으려다 칠판에 쓰여 있는 ‘금일휴강’ 이라는 글자를 발견 했다. 허무하고 억울한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누군가가 강의실로 들어 왔다. 민혜 였다. 민혜와 나는 눈을 마주치고 어이없는 웃음으로 서로의 상황을 알아보며 어색하게 바라 보았다. 민혜가 강의실을 빠져나가던 걸음을 멈추고 나를 향해 걸어 왔다. 그녀는 묘한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 김민혜야……”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녀의 손 끝을 간신히 잡으며
“응…… 난 이주호……”
다행히 그 날 민혜도 나도 그 외에 수업이 없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의기가 합쳐진 우리는 서둘러 학교를 빠져 나와서 도심지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그저 예쁘다고 할 수는 없는, 그렇다고 밉다고 할 수도 없는 평범한 얼굴을 가진 민혜지만 활발하고 긍정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누구와도 친하게 지냈지만 혼자 있을 때도 그녀는 바빠 보였다.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있거나, 가끔은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강의실에서 종종 마주쳤을 때도 그녀는 항상 웃는 얼굴로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했지만 오늘 이전에는 한 번도 아는 체를 하거나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 역시 특별히 그녀에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이 대부분의 학교 생활을 혼자 있다가 수업이 끝나면 자취방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우리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도심지의 번화가가 끝나는 조금 외진 골목길에 자리한 커피 마니아들 에게는 유명세가 있는 ‘커피마니아’ 라는 커피숍으로 왔다. 민혜는 카페 주인과 잘 아는 듯 했다. 카페의 주인은 부드러운 인상을 지녔고 가볍게 기른 수염이 짙은 눈썹과 매우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카페 안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이층으로 올라가는 층계 옆 창가에 앉아 노트북을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는 남자 손님이 있었고, 카페 주인은 커피를 볶다가 민혜에게 환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했다. 민혜가 나를 소개 시켜 주었고 카페 주인은 창가 쪽 테이블로 우리를 안내하며 반갑다는 인사를 했다. 민혜는 나의 의사를 묻지도 않은 체 내가 알아 들을 수 없는 메뉴를 시켰고 카페 주인은 매장에서 안이 들여다 보이는 오픈형 주방으로 들어가서 핸드 커피 밀로 커피를 갈아서 핸드 드립 방식으로 커피를 내렸다. 커피 향이 차이코프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의 첼로 선율에 얹혀서 커피숍 전체에 향기롭게 퍼져 나갔다. 처마 끝에서 방울 방울 떨어지는 낙숫물의 속도와 커피드립에 떨어지는 커피 방울이 묘한 리듬을 맞추며 나도 모르게 커피 향기에 취해가고 있었다. 차이코프스키와 커피향기에 취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체로 민혜가 이야기를 하고 나는 듣는 편이었다. 민혜는 처음엔 커피의 산지 별 맛과 특성 등의 이야기로 나를 압도하다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예술과 인생, 문학과 사랑에 대하여 끝없는 날개를 펼쳤고 무지개가 피어나는 세상의 중심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듯 감격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이야기 했다. 나는 그녀의 이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폭넓은 상상력과 이해력에 대하여 놀라움과 동시에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주장에 어느 정도 압도 당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 넘게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카페 주인은 두 번씩이나 커피를 리필 해 주었고,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 악장을 비롯해서 바흐의 G 선상의 아리아 같은 무겁지 않은, 가을비에 어울리는 음악으로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 말을 체 끝내지도 않고 민혜는 약속을 잊어버렸다는 외마다 소리를 지르고는 떠나 버렸다. 얼마나 급하게 나갔는지 민혜의 꽃무늬 우산도 그냥 두고 떠나 버렸다. .
선우는 가끔 서울에서 이 곳 C시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 와서 나에게 전화를 하고는 했다. 그 당시 나는 민혜와 정식으로 사귀기 시작 했고, 그녀의 입술을 탐하는 관계까지 발전되어 갔다. 선우의 모습과 행동이 변하기 시작 한 것은 그 해 가을쯤부터 인 것 같다. 중간고사를 마치고 긴장을 풀고 조금은 피곤해 하던 날에 선우의 전화를 받고 그녀가 기다리는 커피 마니아로 들어 섰다. 민혜와 자주 들려서 이제는 단골로 인정을 해 주듯, 커피마니아 사장은 오늘도 변함 없이 주방 안에서 커피를 볶다가 나를 보고 환한 웃음으로 목례를 하고 눈짓으로 선우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선우는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선우를 위해 커피마니아 만의 스페셜 메뉴인 사이폰 커피를 시켰다. 주인은 과학 실험실의 실험기구 같은 유리대롱 속에 커피를 담아서 선우와 내가 마주 보고 앉은 테이블 위에 놓고 알코올 등 에 불을 붙였다. 오 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 아래에 있던 물이 뜨거워 지면서 커피가 담겨져 있는 대롱의 위 부분으로 이동을 하여 커피를 우려내고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아 모래가 비워지는 시간에 맞추어 알코올 등 에 불을 끄고 진한 포도주 빛 색깔로 우러난 커피를 영국 왕실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금장으로 장식한 고급 커피잔에 따라 주었다. 커피 향이 알라딘의 램프에서 펴져 나오는 연기처럼 선우와 나 사이의 공간 사이를 휘날리며 약간의 어색함을 묻혀서 날아가고 있을 때, 선우가 조금은 풀기 없는 목소리로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다고 말했다. 처음에 나는 그 말을 믿지 못해서 농담처럼 받아드렸는데 선우는 조금도 웃지 않고 정말이라고, 그 사람이 정말 좋다고 진지하게 말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선우가 좋아하게 된 사람은 선우가 과외를 가르치는 학생의 학부형 이었다는 사실에 나는 다시 한 번 놀랬다. 나이가 선우보다 열 세 살이나 많고 이름을 대면 웬만한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 소설가라는 사실에 나는 경악했다. 선우는 의외로 담담한 표정으로 부드럽고 몽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는데 나는 선우의 표정에서 선우가 그 사람을 진짜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고 그런 내 모습에 선우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오히려 담담한 얼굴이었고 오히려 조금은 당당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나는 입 밖으로 내 뱉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그것이 정상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하니?”
나는 망설였지만 이 순간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지켜온 선우에 대한 망설임과 소중한 보물처럼 내 가슴 한 켠에 간직하고 있었던 나의 기대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듯 해서 조금 무례하지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지극히”
선우의 대답은 짧고 단호했다. 선우의 너무나도 당당한 표정과 대답에 나는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던 기대가 무너지며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정상적이고 비 정상적이고 그런 것은 생각 안 해 봤어, 그냥 그 사람을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사실이 중요하고 그리고 난 지금 행복해……”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한다는 것은 그녀에 대한 지금까지 지녀온 우정에 대한 모독이고 어쩌면 지금까지 지켜온 선우에 대한 나의 영역에서 그녀가 떠나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서웠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옳은 거야, 어차피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져야 되는 문제니까”
선우는 표정에 약간의 미안함을 묻혀서 피식 웃었다.
“하지만…… 너의 논리대로 라면 모든 것은 정상일거야”
라고 나는 말했다.
선우는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안으며,
“나의 논리라고……?”
하고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엷은 웃음을 띠며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선우의 예쁘고 세련된 얼굴에서도 약간의 어색함이 배어 있다고 나는 생각 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금껏 한 번도 매니큐어를 칠해 본 적이 없을 것 같은 비늘 같은 선우의 손톱 끝을 살짝 눌렀다. 그때까지 나는 선우를 그렇게 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녀에게 확실한 내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선우의 생각이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해서도, 선우의 감정을 공감해서도 아니고 이제는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려고 했던 내 마음을 버리고 그녀를 친구로 생각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우리 나가자…… 너랑 술 한 잔 하고 싶어……”
우리는 아무런 말없이 단풍이 제법 붉게 물든 무심천 둑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무언가 내 가슴속을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줄기 텅 빈 바람인지도 모르겠고, 늙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오늘로 선우와의 관계가 과거의 것이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불안한 마음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나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고 초조함은 어색함으로 발전되어 갔다. 창이 넓어서 무심천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일 것 같은 이층 카페로 들어 갔다. 창가에 앉았다. 밖에서 보이던 모습보다 조금 작고 약간 어두운 실내 조명이 오히려 분위기를 따뜻하게 느껴지게 했고 실내는 온 통 나무로 장식되어 있었다. 우리가 앉은 의자도 나무로 만든 것이 엉덩이 닿는 부분만 푹신한 쿠션을 넣어서 깔려 있고 원목을 다듬어서 만든 테이블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져 있었다.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 버렸네……’ 산울림의 ‘회상’ 이라는 노래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맥주와 과일 안주를 시켜놓고 마주 앉았다.
‘우~ 돌아선 그 사람, 미운 건 오히려 나였어……’ 산울림의 노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말했다.
“선우야……하지만 네가 한 선택에 대한 책임은 너 혼자서 져야 할 거야……”
“분명히 잃게 되는 것이 생길 거야…… 너는 다른 사람하고 달리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니까 내가 말하는 것이 주제 넘는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사람들이 말하는 평범함이나 정상적인 것, 상식에 맞는 행동이라고 생각 되지는 않아…… 그런 비 정상에 대한 안정성 같은 것은 네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
선우는 과일에 꽂힌 꽃 모양의 장식용 나무막대 셀로판 수술을 한쪽 손으로 다듬으며 내 말을 물끄러미 듣고 있지만 천천히 눈을 끔벅이며 허공을 향해 검고 커다란 눈동자를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선우의 모습이 자기자신과 상대를 동시에 들여다 보고 있는 듯이 보였다. 흔들리는 나의 속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내 감정의 보호막이 무너지며 “내가 무슨 말 을 하고 있지” 하고 나는 속으로 질책 했다. 청바지 뒷주머니에 넣어둔 전화기가 진동이 몇 번 울렸고 나는 받지 않았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민혜의 전화 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오직 선우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또 다시 진동이 울렸다. 이번에도 나는 받지 않았다.
“……주호야…… 나를 이해해 달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고 그에게서 나는 진정함이 느껴져, 지금껏 내가 느껴보지 못했던 순수함 이라고 할까…… 아무튼 난 지금 행복하고 내가 하고 있는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거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세상에는 상식이라는 것이 있어…… 너의 행동은 솔직히 그 상식의 약속에서 벗어난 것이고, 그렇다고 상식의 범주가 모두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나는 너를 이해하고 싶어”
나는 선우의 눈을 천천히 바라보며 말했다. 선우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나는 눈시울이 붉어져 고개를 돌려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리창 밖으로 내려다본 무심천이 분홍빛으로 시작해서 석류 빛으로, 다시 잿빛으로 변하더니 서서히 달빛의 부드러움과 어우러져 무심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날 선우도 그렇게 무심히 무심천을 떠나 갔다.
선우가 떠난 뒤로 한동안 내가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인지하는 기준은 선우로 시작 되었다. 민혜와 커피마니아에서 커피를 마시다가도 선우는 두 손으로 커피잔을 받치고 마셨지, 학교에 가려고 옷을 입다가도 “너는 체크무늬 남방이 잘 어울려” 했던 선우의 말이 생각이 나서 바꿔 입고는 했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을 때도 라면은 계란 없이 단무지에 먹어야 제 맛이 난다는 선우의 고집이 생각나서 나도 그렇게 먹었다. 그렇게 10월이 가고 11월이 찾아 왔고, 나는 군입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민혜와의 관계는 선우와의 만남 이후 약간의 서먹함과 어색함이 있었지만 입대를 앞둔 상황을 측은하게 생각한 민혜의 용서로 그녀의 자취방으로 찾아가 섹스도 하고 같이 밥도 먹고 하면서 선우가 남기고 간 흔적을 지우려고 노력했다. 학기를 마치고 입대를 하였다. 팔 주간의 기본훈련을 마치고 동부전선 수색대에 배치가 되었다. 병영생활이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만족하려고 노력 했다. 시간은 흘러간다. 흐르는 시간은 모든 것과 동반해서 흐른다 그 흐름 속에는 선우도 잊혀져 가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나를 확인하고는 어느 정도 군생활에 안정이 찾아왔고, 시간이 허락 되는 대로 책도 읽고 제대 후의 복학 준비를 하며 군 생활의 규칙적인 생활에 익숙해 있었다. 말년 휴가를 나왔다. 이제는 선우의 기억이 내게서 대부분 사라져갔다고 생각하고 민혜와의 관계에 열중하고 있었다.
소중한 휴가기간이 거의 끝나가고 부대 복귀를 몇 일 앞둔 어느 날 선우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우는 병원 응급실에 있었다. 시간은 새벽 3시 였고 나는 민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내가 침대 가까이로 다가가자 선우는 창백한 얼굴로 웃었다.
“……주호 왔구나……”
목소리가 어둠처럼 묻혀 있지만 하얀 고른 치아를 보이며 웃고 있는 모습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어……”
내가 피 멍이 들어 퍼렇게 물든 선우의 손을 잡으며 울먹이듯 말했다.
“응……그냥…… 나 바보 같지......?”
나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너…… 왜 그러는 거야”
“미안해 주호야……”
선우가 조금은 피곤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눈 길을 돌렸다. 눈가에 묻어나는 슬픔이 이슬처럼 솟구쳐 그녀의 창백한 볼을 타고 귓등으로 흘러 내렸다. 선우가 음독한 이유에 대하여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선우의 얼굴을 들여다 보면서 이 여자는 나에게 무엇으로 남아 있나를 생각 했다. 어쩌면 나에게는 실체가 없는 영혼 같은 존재 일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비교의 대상도 관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이 였지만 그녀의 마음속에 내가 머물고 있고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사람은 단순히 하나의 면이 아닌 보는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육면체의 거울 같이 전혀 다른 모양으로 보일 수 있고, 어쩌면 시간과 공간의 차이에 따라서 모양과 위치가 끊임없이 변해 가기도 하고, 때로는 다양한 여러 가지 상태로 존재하는 집합체 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단순하게 한 면만 보면서 그 사람을 정의 하거나 단정짓는 일은 어리석고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어쩌면 선우에게 향하는 내 마음의 진정성 이라는 것을 나는 믿기로 했다. 그것을 부정치 않겠다는 다짐도 했다.
긴 시간이 흘렀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지방신문의 사회부 수습기자를 하고 있었다. 민혜는 운 좋게 C 시의 여자 중학교에 국어선생으로 발령을 받았고 우리는 결혼 날짜를 잡아두고 결혼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선우와 연락을 주고 받은 지가 어느새 3년여가 지났다는 것과 선우의 음독사건 후 4 년이 지났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소설가와 헤어진 후 사법고시를 준비하기 위하여 남쪽의 어느 절간으로 들어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 나는 나대로 생활 속에 묻혀서 그렇게 세월을 흘리고 있었다. 선우에게 연락이 온 것은 신문사의 사회부 수습기자 딱지를 떼고 이제는 제법 특종을 찾아서 여기 저기 사건의 냄새를 맡고 기웃거릴 줄 아는 4 년 차에 접어들었고, 큰 딸 지현이 3살이 되었다. 민혜가 둘째를 임신하여 학교를 퇴직하고 나름 한 가정의 남편과 아빠로 평범하게 생활을 이어가고 있을 즈음에 선우에게서 결혼을 한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망설였지만 망설이면 망설이는 만큼 그녀의 기억에서 방황하는 내가 보였다. 선우의 남편 될 사람은 강남의 잘나가는 성형외과 의사인데 선우 자신이 너무 완벽한 미인이라서 그를 찾아오는 손님들 대부분은 그녀처럼 고쳐 달라고 주문한다는 것이다. 또한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녀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연수원을 거쳐 작년 여름 서초동에 위치한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예식이 끝나고 테헤란로의 고급 카페에서 에프터 파티가 열렸다. 선우의 간청에 못 이겨 나는 그 곳까지 따라 갔다. 선우를 알게 된 중학교 시절부터 17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선우의 부모님을 본 것은 그 날이 처음 이었다. 언뜻 보아도 그들은 완벽한 중년부부를 넘어서 최고의 지성과 최고의 품위를 지닌 분들 이었다. 부드러운 인상의 아버지는 누구보다 세련된 말솜씨로 하객을 사로 잡았으며 어머니는 날카로운 인상이기는 해도 가느다란 금테 안경이 인품 있는 대학교수의 풍모를 유감 없이 보여 주고 있었다. 파티가 한창인 카페 한 구석에 조용히 머물다가 때로는 음악의 장단에 맞추어 손뼉을 치기도 하고, 흥이 오를 때면 어깨춤을 까딱거리는 모습으로, 신랑 신부의 친구들이 함께 축가를 부를 때는 평화롭고 푸근한 표정으로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선우와 그녀의 남편은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답고 잘생긴 부부라고 느껴질 정도로 한 쌍의 완벽한 신랑 신부가 탱고 리듬에 맞추어 탱고를 추고 있는데, 선우의 푸시아 핑크색 코로세 드레스가 우아함을 넘어서 누군가를 유혹하듯 넘실대고, 신랑 신부의 춤에 도취된 하객들은 모두다 부러움과 축하의 손뼉을 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선우의 부모님은 우아하고 여유로운 표정 넘어 자신들의 딸이 보내는 유혹의 신호와 잘생기고 훌륭한 사위의 모습에 수십 년에 걸쳐 다듬고 가꾸어온 완성된 자랑스러운 작품에 대한 결과물에 만족해 하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 났다. 더 이상 이곳은 내가 머물 곳이 아니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껏 내가 품었던 그녀에 대한 연정이 부질 없는 허상이었다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단순한 진실이 가져다 준 충격 앞에 그 자리에 더 이상 지킬 수 가 없었다. 모든 것이 오래된 꿈처럼 느껴졌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나 자신만 빼고 모두가 다른 세상에 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 이제 선우와의 관계는 나와는 별다른 세계의 일이라고 느껴지며 모호하게 품고 있던 그녀와의 관계를 끊어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한편으로 이 사람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내가 그들과의 거리를 느낄 뿐, 그들에게 책임을 묻거나 잘못된 삶이라고 따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미 내 마음도 선우와의 결별을 기다려 왔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일이 더 이상 나에게 아픔이나 슬픔으로 다가 와서는 안 된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고 선우에 대한 모든 것들을 잊어버릴 준비가 되었다고 나는 생각 했다. 커피를 마실 때 두 손으로 컵을 잡는 모습도, 체크무늬 남방셔츠가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던 다정함도, 라면은 계란을 넣지 않고 노란 단무지에 얹혀서 먹어야 된다는 그녀의 습관도 잊기로 했다. 나는 마음이 아팠다. 내 자신이 초라하고 불쌍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나는 지방신문의 사회부 기자를 퇴직하고 서울의 유명 일간지 정치부 기자가 되어 국회를 출입하고 있었다. 어느새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머리 숱이 윤기를 잃어가며 얼굴의 가로 면적이 조금씩 넓어져 가고 있었다. 아내 민혜는 국어교사 직을 퇴직하고 두 딸의 양육에 전념 하다가 작은 딸이 열 살이 되던 해에 돈을 벌기를 결심하고 사립 중학교 행정 실에 행정교사로 취직 했다.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었고, 가끔 누군가의 집에 모여서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했다. 그 모임에는 대부분 민혜와 비슷한 나이와 생활 수준 역시 비슷한 사람들이 모였었고 가끔은 부부를 동반해서 모임을 갖는 경우도 있었다. 선우는 결혼식 이후 나에게 단 한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고, 나 역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가끔은 서운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에 서서히 내 삶의 주위에서 사라져 갔다.
국회의원 선거철이 다가 왔다. 국회를 출입하는 기자가 가장 바쁜 시기이기도 하다. 오늘도 국회 의원 회관 에는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여 야의 청년 인재 영입 기자 회견이 잡혀 있는 날이다.
“젊음이 만드는 미례 대표 윤선우 변호사 입니다. 정치를 하기에는 아직 어린 사람 입니다. 하지만 병들지 않은 생각으로 낡은 정치를 바꾸고 싶습니다. 청년이 불편하지 않는 세상, 더불어 산다는 말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원칙과 공정과 정의가 살아있는 그런 젊은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국민을 대하는 정치가 그렇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그러나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멀리 가고 싶습니다. 세상의 낮은 곳을 향하여 내미는 저의 진심 어린 손을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A 신문 이 주호 기잡니다. 평소에 젊은이의 정치 참여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젊은 정치의 가치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는 지요?”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마음이 흔들리는 것만큼 목소리도 흔들리고 있었다. 선우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 빛이 내 목소리의 떨림만큼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덧붙여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이란 어떤 세상이고,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나는 그 말이 하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세상 어디에도 미칠 수밖에 없는 현실, 그 숨막히는 현실 속에서 나를 지켜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고 돈과 권력 앞에서 무릎을 끓어야 하는 자본주의의 천박한 속성 앞에 그래도 순수함을 지키고 싶어.” 나는 언젠가 선우가 나에게 했던 그 말을 기억하고 지금도 그녀는 따뜻한 세상을 꿈꾸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꿈을 나는 동경 했고 내 마음과 그녀의 이상이 더해지면 아름다운 모닥불 같은 세상이 이루어 지리라 믿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대답을 듣지 않고 회견장을 나왔다. 국회의사당 뒤편 윤중로에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인생도 사랑도 사라지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감추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가 그렇게 될 것으로 말미암아 서러워했고 고통 속에서 그리워했을 뿐이었다. 나는 비롯 되었지만 그녀에게도 비롯됨이 있을까?
나는 울고 있었다. 나도 변하고 그녀도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윤중로의 벗 꽃이 내 꿈처럼 떨어진 채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