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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신인문학상 수필부문 수상작/ 박현정, 박경주
<수필부문 가작>
도시락의 시간
박현정
새벽 3시 30분, 어김없이 눈을 떴다. 1층 부엌으로 내려갔다. 창문을 열었다. 밖은 아직도 까만 보자기를 덮어쓰고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다. 캘리포니아도 이제 겨울이라고 제법 얼음 같은 바람이 분다.
압력 밥솥 뚜껑을 열었다. 물에 푹 담가 두었던 현미와 콩들이 얼굴을 빼꼼히 내민다. 밤사이 물을 먹고 통통해진 얼굴들이 귀엽다. 물을 좀 더 붓고 뚜껑을 덮어 가스 불을 켰다. 잠시 후 압력솥에서 칙칙폭폭 소리가 난다. 고슬고슬한 밥 냄새가 퍼진다.
이렇게 아침밥을 준비하고 도시락을 싼 건 결혼하고부터였다. 벌써 16년이 되었다. 엄마가 해 주는 밥만 먹던 내가 다른 이를 위해 아침밥을 하고 도시락을 만드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오늘 아침은 또 뭘 해서 주나? 점심으로 어떤 걸 만들지? 거창한 음식을 하는 것도 아닌데 늘 고민이 된다. 우리 엄마는 그 많은 도시락을 어떻게 싸셨을까?
엄마는 새벽마다 도시락을 7개나 준비하셨다. 고등학교 다니는 큰언니, 작은언니가 각각 2개씩, 나와 여동생, 남동생이 1개씩이었다. 각기 다르게 생긴 플라스틱 도시락통과 반찬통이 군대의 행군을 보는 듯했다. 멸치볶음, 콩장, 어묵볶음, 콩나물, 시금치, 김치 볶음이 대표 주자들이었다. 하지만 같은 반 친구 수경이 것은 달랐다. 분홍색 코끼리 보온 도시락이었다. 비엔나소시지 볶음, 돈가스, 메추리가 들어간 장조림으로 “오!”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게도 특별한 것은 있었다. 엄마는 항상 밥 위에 계란 후라이를 얹어주셨다. 다른 반찬은 없냐고 물었지만 소용없었다. 그래도 가끔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 이후에는 좀 달라졌다. 롯데 살로우만 햄이나 백설 불고기 햄이 반찬통에 들어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참치캔을 통째로 도시락 가방에 넣어주셨다. 참치캔은 특히 내가 좋아했다. 엄마가 들기름에 구운 김에 계란 덮은 흰밥을 얹고 그 위에 참치와 볶음김치를 올려주면 화룡점정이었다.
나는 짝꿍 승희랑 화요일, 2교시 수학이 끝나면 도시락을 미리 먹었다. 머리에서 쥐가 나는 시간이었으니 에너지가 필요한 것은 당연지사, 지당한 말씀이라고 깔깔거렸다. 다음 시간이 예쁜이 가정 선생님이니 왜 냄새나게 밥 먹었냐고 혼날 일도 없었다. 쉬는 시간 10분. 그 안에 도시락 한 개쯤 먹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밥과 반찬을 꼭꼭 씹어 먹는다는 것은 사치였다. 희한한 것은 엄마의 도시락은 아무리 빨리 먹어도 체하는 법 없이 소화가 잘 되었다.
까불이 희경이는 수업 시간에도 도시락을 까먹었다. 김에 밥을 싸서 입에 쏘옥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그녀는 수업 시간에 몰래 먹는 도시락이 제일 스릴 넘치고 맛있다고 했다. 친구들은 희경이에게 반칙이라고 놀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항상 한문 시간에만 도시락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한문 선생님은 냄새를 맡지 못하셨다. 한번은 뿡뿡이 인숙이가 수업 시간에 방귀를 뀐 적이 있었다. 군대 화생방 수준이었다. 반 아이들이 코를 막고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은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냐고 하셨다. 비염 때문에 코만 킁킁거리셨다. 선생님은 눈도 무척 나쁘셨다. 두꺼운 뿔테 안경은 그냥 눈이 나쁘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용도로 쓴다고 봐야 했다. 거기다 낼모레면 정년퇴직을 하시는 분이셨다. 그런 분 시간에 스릴 운운하는 것은 반칙이 아닌가?
나와 친구들은 한 달에 한 번 특별식을 해 먹었다. 짝꿍 승희가 집에서 양푼 그릇을 가져오고 내가 엄마표 맛 고추장을 가져오는 날은 완벽한 비빔밥을 만나볼 수 있었다. 기름집 딸내미 은이가 아침에 갓 짠 참기름을 한 병 통째로 들고 오는 날은 갈비찜이 와도 이길 수 없었다. 그날만큼은 평범한 반찬들이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점심을 가져오지 않는 아이들도 걱정 없었다. 도시락 뚜껑 하나 빌려서 밥을 한 숟가락씩 얻으러 다녔다. 그러면 두 공기는 족히 나왔다. 그것도 귀찮은 아이는 포크 숟가락만 들고 다니면서 반 친구들의 도시락을 습격했다. 친구들의 핀잔은 애교로 여기는 것 같았다. 골라 먹는 재미를 놓치는 건 정말 어리석은 짓 일 테니 말이다.
엄마에게 우리들 도시락 7개를 어떻게 싸셨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는 힘든 줄 몰랐다고 하셨다. 그저 따뜻하게 지은 밥을 자식들에게 먹이고 정성을 들였다고. 엄마가 해 준 밥 먹고 아프지 말라는 간절한 마음뿐이었단다. 잠을 못 자서 고단해도 그때가 정말 좋았단다.
나에게 주변 사람들이 말한다. 저녁에 미리 마련해 두면 편하지 않느냐고. 뭐 하러 일찍 일어나느냐고. 나도 그 정도는 안다. 하지만 아침 일찍 정성스럽게 아침밥과 도시락을 준비하는 시간은 소중하다. 어느새 나는 엄마를 닮아버렸다. 그래서 부부싸움을 한 다음 날도 아침밥과 도시락을 준비한다. 그동안 미운 마음은 버리고 정성만 담는다. 전날, 우리가 싸웠다는 것도 잊고 남편이 조용히 말한다. 콩나물국이 시원하고 얼큰하다고. 어제 점심으로 먹은 치킨 샌드위치도 맛있었다고. 고맙게 잘 먹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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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장려상>
영화 ‘군함도’를 보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함도’
박경주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 같다”
보는 내내 어둡고 바람이 통하지 않아 악취가 나고, 눅눅하고 아팠던 영화 속에서 소희와 소희 아빠가 나지막이 희망가를 부른다. 달빛같이 뿌연 희망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게도 천천히 스며든다.
영화 <군함도>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에 있는 하시마섬 탄광에서 있었던 한국인 강제노역의 실태를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일본은 조선인들을 강제로 끌고 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바다 밑 탄광에서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거의 누운 상태로 석탄을 캐는 강제노역을 시켰다.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총칼로 위협을 받으며 일해야 했던 강제징용 노동자들은 그 당시를 지옥보다도 더 참혹했다고 회고한다. 이런 반인륜적인 역사현장이었던 하시마섬을 일본 정부는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렸다. 인간성 말살과 인간 학대의 증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 섬을 산업혁명의 현장이라는 이름을 덧입혀 진실을 왜곡하려는 것이다.
하시마섬이 군함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건, 섬의 좁은 땅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려는 미쓰비시가 1926년 일본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인 7층 아파트를 짓기 시작해 고층 건물을 계속해서 지었고, 그 좁은 섬에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선 모습이 마치 군함처럼 보여 군함도라 불렸다고 한다.
영화는 1945년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들이 군함도로 끌려가 그곳에서 착취당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강제로 끌려갔던 조선인 중에는 친일 조선인도 있어 일본 간부들과 짜고 같은 조선인의 임금을 중간착취하는 가슴 아픈 사실도 말하고 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일본군들은 강제징용, 노동착취의 증거를 없애려고 조선인 노동자들을 모두 죽이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지기 전, 조선인들은 탈출을 시도하고 처절한 싸움의 과정에서 결국은 많은 사람이 죽는다.
관람하는 내내 검은 탄광 갱도에 앉아 있는 느낌이던 영화가 끝나고,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뜬다.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영화 속 노동자들의 눈빛이 너무도 무겁게 내게 와서 훌쩍일 수도 없다. 1945년 그때, 지옥 같은 그곳에서 살며 숨 쉬어야 했던 어린아이들. 폭력을 당하는 사람들과 욕심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 이유도 모르고 끌려가 참담한 역사를 견딜 수밖에 없던 우리의 아픈 과거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었을까.
영화의 중간쯤, 어두워지는 바다에서 날카로운 파도를 헤치며 어린 조선인들이 중대한 임무를 띠고 지옥 섬을 탈출하고 있다. 그러나 곧 한 아이는 총에 맞아 죽고, 두 아이는 바다 한가운데서 일본 배에서 던져진 그물에 잡혀 그대로 끌려가며 차가운 바다 그물 안에서 죽는다. 아가미로 숨을 쉬지 않는 우리의 아이들이 그물망 안에서 물고기처럼 파닥거리지도 못하고 죽어갔다. 너무 가엾고 불쌍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갈 무렵 바다에서 죽어간 조선 아이들의 중대한 임무가 시작부터 ‘그냥 처절하게 죽어가는 것’ 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는 정말 숨이 턱 막히는 배신감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죽음의 임무를 준 -아이들이 죽을 때까지 믿었던- 선생님(윤학철)은 같은 조선인을 착취하며, 돈을 만드는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친일파였다.
어두운 갱도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웅얼거림, 낮은 채도의 효과음들, 침략당함이 어떤 것인지 공포감으로 다가올 때쯤 들려오는 경쾌한 행진곡에서 느꼈던 짓이겨진 잔인함. 일본의 비행사들이 가미카제를 하러 가기 전에 불렀다던 ‘동기의 벚꽃’ 노래를 일본군들이 부르는 장면에서 조선인들의 얼굴에서 보인 고통 속의 무력감. 삶의 끝자락일지 모르는 순간 들리는 ‘둥개둥개 둥개야’의 낮고 다정한 노랫소리. 어둡고 좁고 얽히고설킨 갱도. 일본 전범기가 찢기는 타당한 소리와 몸짓, 원폭이 터지면서 발하는 전쟁의 섬뜩한 빛. 이 모든 요소로 인해 영화를 보는 동안 나의 온몸엔 전율이 흘렀다.
영화 속에는 이제야 막 알려지는 이야기들이 있다. 강제징용의 실상, 일본인보다 더 잔인했던 친일파 조선인들의 모습. 아직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철면피 윤학철들,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 이야기 등.
<군함도>는 스크린 독과점 문제, 역사적 사실과의 차이에 대한 해석, 친일과 반일에 대한 논쟁 등 여러 가지 의견들이 부딪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가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그 피해자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간절함이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군함도라고 불리는 하시마섬의 역사적 사실을 보여준 것에 감사한다. 온몸으로 지옥을 살아내야만 했던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기억하고, 지옥 같은 섬에서 삶을 견디어 낸 그들을 위로하는 방법을 지금 이 시대에서 함께 찾기를 바란다. 역사의 사금파리 조각 같은 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아픈 역사 속에서 가엾게 죽어간 이름 모르는 그들을 위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