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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문학 신인문학상 당선작
제20회 워싱턴문학 신인문학상 소설부문 장려상
오월과 유월 사이
김종숙
준은 왜 갑자기 사라져 버린
걸까. 그가 가끔 미친 사람처럼 그녀에게 소리를 질러대고 이상한 행동이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덮을 수 있을 만큼 보미는 그를 사랑했다. 아틀란타에 산다는 그의 아버지와 엘에이에 산다는
이혼한 어머니, 하와이에 산다는 준의 친할머니 이야기를 언뜻 들었기에 며칠 소식이 끊겼을 때는 잠깐 머리
식히러 가족들에게 갔거니 하고 기다리다 한 달이 넘어가니 더 이상 기다릴 수 만은 없다는 생각에 그가 사는 아파트를 뒤져서라도 어떤 단서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보미는 일을 끝내고 준의 아파트로 향했다.
그와 사귄지 일 년이 지났을
때 돈도 아낄 겸 같이 살자는 그녀의 제의를 무참히 거절하던 준이였다. 그의 아파트의 열쇠를 가지게 된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끔찍이도 사생활에 집착하던 그가 야속했었다. 그에게 연락이 끊긴 후 혹시나 해서
매일 들리긴 했지만 준의 성격을 알기에 뭐하나 건드리지 않고 잠깐 앉았던 자리까지 그대로 정리하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준은 무척이나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세심하고 예민한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하얀 그의 침대시트에 떨어져 있는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집어내 쓰레기통에 버리곤 하였다. 그녀는 뉴욕에서도 교통이 편리하다는 이유로 싸고 위험한 아파트에서 살았다. 하지만 그녀의 아파트와는
대조적으로 준의 아파트는 그녀가 엄두도 낼 수 없는 렌트비로 맨해튼 중심부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기에 이런
아파트에서 살 비용을 다 감당하는지 그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아마 할머니, 아버지,
이혼한 엄마가 다들 미국에 오신지 오래 되셨으니 자리 잡고 사시면서 외아들 준에게 돈을 넉넉하게 보내주시나보다 라고만
짐작을 할 뿐이었다. 한인 교회에서 준을 처음 보고 보미는 첫눈에 반해 버렸다. 그가 잘 생기기도 했지만 묘하게 사람을 끄는 구석이 있었다. 목소리 크고 남 웃기기 좋아하는
남학생들을 좋아하는 친구들과는 달리 외로워 보이기도 하고 고독해 보이는 준에게 보미는 자신의 이름처럼 봄같이 환한 미소를 짓게 만들고 싶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보미가 너무나도 간절히 바라던 미국 시민권자에 고등학교 때 미국에 온 자신과는 비교가 안 되게 네이티브
영어를 하는데다 부유한 집안까지. 부러웠다. 하지만 알아 가면 갈수록
반전의 반전의 매력을 넘어 나중엔 의문투성이에 도대체 준의 정체가 과연 무엇일까를 의심스럽게까지 하기도 하였다. 영화에 나오는 FBI나 무슨 첩보 요원인가? 비밀투성이에
가끔씩 발작적인 그의 돌출 행동을 무서워하며 사실 헤어지려고도 맘먹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의 눈물.
그 깊은 눈에서 흘러내리는 그의 눈물을 보고 나선 보미는 이제 더 이상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늪에 빠졌음을 직감했다.
그는 웃고 있어도 슬퍼 보였고 불안했으며 그의 눈물은 그녀까지 미치게 만들었다. 보미는 그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보미는 가정을 갖게 된다면
언젠가는 이곳 어퍼 웨스트사이드의 아파트나 콘도에서 살면서 유모차를 끌고 가까운 카페에 가서 준과 크림치즈를 적당히 바른 베이글과 커피를 마시다
슬슬 걸어서 구겐하임 박물관이나 어린이 뮤지엄으로 가서 한가한 주말 오후를 보내는 것을 가끔 상상하고는 하였다. 월 스트리트나 정신없이 분주한 타임 스퀘어가 지척에 있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어퍼 웨스트사이드에 발을 내딛으면 왠지 모르게 관광지나
일터가 아닌 주택가에 들어선 기분이 드는 게 아마 뉴욕에 둥지를 튼 뉴요커들이 많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센트럴 파크를 사이에 두고 어퍼 이스트사이드와 사이좋게 맨해튼에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지역으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급스럽고 넉넉하고
여유로운 기운이 도는 곳이었다.
할리웃 스타나 태생부터 다르게
태어난 재벌 자제들이 주로 사는 5th 에비뉴나 파크 에비뉴로 유명한 어퍼 이스트사이드 지역과는
다르게 이곳은 자수성가로 입성하는 부자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가꾸어진 브라운 스톤 하우스들이 있고 그
속에는 텔레비전 광고에서나 나올법한 커플들이 길거리를 걸어 다녔다. 잘 관리가 되어 있는 공원과 잘 갖추어
입은 가족들, 디즈니 영화에서 튀어 나온 듯한 인형 같은 강아지와 산책하는 풍경은 너무나 평화스러워 보미는
혼자서도 노천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었던 곳이었다. 잘 가꾼 가로수들이
한국의 수목원처럼 쭉 뻗어 있는 거리를 걷다보면 가끔 마돈나나 알렉 볼드윈 같은 대 스타들도 마주쳤다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종종 듣기도 하였다.
남북전쟁 이전의 빌딩도 있어 감탄할 만큼 아름다운 건축 양식에 눈을 감고는 한국에서 일어난 동족상잔의 비극처럼 미국에서도
흑인 노예제도를 놓고 벌어진 남북전쟁을 상상해 보기도 하였다. 동네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오랫동안 살았던
것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이곳에 준의 아파트가 있었다. 예쁜 연못, 호수, 폭포 그리고 산책로가 불과 10분 도보 거리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뉴욕 최초의 럭셔리 아파트 다코타는 존 레논이 살해당했던 바로 그
아파트이다. 플라자 호텔을 디자인한 회사에서 북부 독일 르네상스 스타일을 살려 디자인한 고급 아파트로
1976년 역사적인 랜드마크로 지정되었으며 슬프게도 1980년 12월 8일 밤 비틀즈의 존 레논이 그의 열성팬 마크 데이빗 챕맨에게 살해당해서 더 유명해졌다.
존 레논의 죽음을 발표한 부인 요코가 그의 장례식은 없으며 인권을 위해 노력하고 기도했던 존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했다.
1980년 12월 14일 오노의 바람대로 센트럴
파크의 10만 명을 비롯해 전 세계 백만 명의 사람들이 10분 동안
존을 위해 기도했다. 범인인 마크 데이빗 챕맨은 20년에서 종신형으로
처해져 아직까지 7차례 보석 신청이 기각되어 아직도 복역 중이라고 준은 심각하게 말해 주었다.
이곳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보미는 렌트비가 비싸서 엄두를 낼 수가 없었지만 준과 사귀고 나서는 준의 집을 드나들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보미의 아빠가 하시는 사업이 이제는 예전 같지 않아서 보미는 비싼 유학비용과 생활비를 더 이상 아빠에게만 의지할 수 없었다.
보미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장학금도 받고 닥치는 대로 일하고 공부하며 그런 절박함이 없는 여유로운 모습의 준이 얄밉기도
했다.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준의 아파트에서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 거기다 한국에 있다는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첫 번째 어머니와 배다른 누나의 전화번호와 주소까지 빼곡하게 적혀 있는 수첩을
찾아내었다. 수첩에는 가족들 말고 준과 그의 친구들 연락처는 없었다. 수첩 옆에 오래 되어 보이는 낡은 일기장으로 보이는 노트가 있었지만 그것까지 건드리고 싶진 않아 다시 제자리에 넣어두었다.
영어로 거기다 필기체로 휘갈겨 쓰여 있었기에 자세히 볼 여유가 없었다. 수첩 속의
연락처를 사진을 찍고는 그냥 제자리에 넣어 놓았다. 놀랍게도 백 달러 지폐가 뭉치로 묶인 다발 몇 개도 발견하여
우선 급한 대로 이 어마무시한 아파트의 렌트비와 이거저거 밀린 유틸리티 비용을 지불하고 잔뜩 쌓여져 있는 우편물도 정리하였다.
-헬로. 여보세요. 저쪽에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혹시 준이 아버님이신가요?
-어. 준 준이 저 준이에게 무슨 일 생겼나요?
-아…….아니요. 전 혹시 준이씨가 아버님께 간 줄 알고.
전 여자 친구 보미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체크해가며
전화를 해 보았지만 다들 그와 마지막으로 연락 한 것이 짧게는 오년에서 십년은 족히 넘어 보였다. 보미는 우선 그녀가 살고 있는 뉴욕에서 가까운 곳에서부터 그와 관계된 사람을 만나보기로 계획을 짰다. 방학이니까 학교는 안 빼먹어도 되고 아르바이트하는 바 주인에게 말을 해 놓았다. 준이 아버지부터
우선 아틀란타에 가서 하루 이틀 지내며 말씀을 듣고 엘에이 사시는 준이 어머니를 뵈면 무언가 잡히는 것이 있을 것만 같았다.
어릴 때부터 똘똘했던 보미는
고등학교 때 뉴저지에 계시는 보미 외삼촌댁에 홈스테이하면서 미국생활을 시작했다. 그땐 보미 아빠 사업이 번창해서 외동딸이었던 그녀를 조기 유학
열풍 대열에 합류시킨 것이었다. 유학비자로 왔기에 공립학교에 가지 못하고 사립학교에 다니면서 보미는 처음엔
낯설고 힘들었지만 곧 적응을 했다. 보미에게 May라는 영어이름을 지어준
건 준이었다.
-내 이름이 왜 준인지 아니?
-글쎄. 미국이름으로도 한국이름으로도 쓸 수 있어서?
-아니 내가 6월에 태어났거든. 네 말도 일리는 있구나.
넌 한국이름이 보미니까 봄. 봄의 여왕 May로 해라. May Shim 너무 예쁘다.
-June Kang,
May Shim 잘 어울리네!
그들은 오월과 유월이었다. 파릇파릇 한창 예쁠 나이였다. 계절로 치면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이랄까.
준은 비틀즈를 좋아했다. 존 레논이 살았고 살해되었던 다코타 아파트 바로 앞 센트럴 파크로 들어서면 존 레논을 추모하는 스트로베리 필즈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죽음 후 누군가가 엄청난 돈을 기부해 현재까지도 예쁘게 관리되고 있는데 바닥에 큰 동그라미 안에 그의 노래 제목인
IMAGINE이 씌어져 있었다. 존 레논의 생일과 사망일에는 전 세계에서 엄청난
인파가 모여든다고 준은 말해주었다. 존 레논이 음악적 실의에 빠져있을 때 부인 오노 요코가 영감을 줘서 만들어진
원래도 유명한 곡이지만 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 킬링필드의 마지막 장면 OST곡으로도 더욱 더 유명해진 곡이다.
상상해보세요, 그곳엔 천국이 없어요.
당신이 (상상하는 것을) 시도해본다면, 쉬울 거예요.
우리 밑엔 지옥도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우리 위엔 오직 하늘만 있죠.
상상해 보세요.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서 산다면 말이죠.
아무 국가도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상상해보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아무도 죽이지도 죽지도 않죠.
그리고 종교도 없죠.
모든 사람들이 평화 속에서
사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당신은 아마 제가 몽상가라
말하겠죠.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저 혼자만이 아니에요.
당신이 언젠가는 우리와 함께
하기를 희망합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우리처럼 될 거에요.
상상은 소유할 수 없어요.
당신이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하군요.
배고픔과 욕심은 필요 없잖아요.
인간의 형제애가 있잖아요.
모든 사람들을 상상해보세요.
나눔이 온 세상에 있다면…….
당신은 아마 제가 몽상가라고
말하겠죠.
하지만 전 혼자가 아닌걸요.
당신이 언젠가는 저희와 함께
하길 희망합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우리처럼
살게 될 겁니다.
존 레논의 이메진을 특히나
좋아했던 준은 음악을 들으며 보미를 기다리다가 보미가 오면 한쪽 이어폰을 보미의 귀에 꽂아주며 함께 이메진을 듣는 것을 좋아하였다. 준과 보미의 데이트는 주로 준의 아파트 근처 센트럴 파크에서 산책을 하면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거나 맨해튼에 있는 코리아 타운에 가서
한국 음식을 사먹는 것이었다. 비틀즈의 음악이 좋다는 준에게 너무 구닥다리라고 보미는 놀리고는 하였다.
보미는 아버지 세대나 할아버지 세대의 음악에 빠져있는 준이 신기했고 준은 비틀즈 음악은 시대를 초월하는 힘이 있다고 대답하였다.
어릴 때의 가정환경이 그다지 좋지 못했던 존 레논의 이야기를 보미에게 들려주는 준이 가끔은 이상해 보였다.
선원이던 아버지 프레디 레논은 존 레논이 어릴 때 가출해 실종되었고, 어머니인 줄리아
레논도 다른 남자와 동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언니인 메어리 부부(통칭 미미 이모)에게서 자랐다고 했다. 6살 때 아버지가 돌아와 몇 주간 같이 생활했었고, 후에 어머니가 데리고 가지만 같이 살지는 못하고 다시 미미 이모 곁에서 살게 되었고, 아버지는
다시 실종됐다. 아니 보미는 준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아닌 아무 관심도 없는 존 레논의 과거사를 시시콜콜히
얘기해주는 준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존 레논은 아버지의 실종 후 근처 고아원이었던 스트로베리 필즈에서 자주
놀았으며, 이 때 Walrus(바다코끼리)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2월 7일이 무슨 날인지 아니?
-너 생일이야?
-아니. 1963년 11월 22일 존 F.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미국의 희망을 잃은 미국인들은 공황상태에 빠졌거든.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는 할리웃에서 영화 출연에 골몰했고 미국인들은 수퍼스타가 필요했어. 그러는 타이밍에 1964년 2월 7일에 미국을 뒤흔들 4명의 영국 청년들이 여기 바로 뉴욕 그새 새로 이름이 바뀐
JFK공항에 도착해. 완전 드라마틱 하지 않니? 그게 50년 전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50년이 지나고
이제 폴과 링고스타만 남았네.
-준! 존 레논 얘기 그만하고 너 얘기 좀 해봐. 난 존보다
준 얘기 듣고 싶어. 나랑 아무 관계없는 존은 무슨 플리즈 준!
-오월아. 난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고
말했잖아.
-나 보미거든. May까지는 좋아도 오월이는 무슨 기생이름 같잖아. 난 너 부모님 얘기 듣고 싶어. 한 번도 가족에 관해 얘기해준 적이 없어. 고아도 아니면서 왜 그래? 난 수다쟁이인데 넌 너무해. 아무리 내가 너의 쓸쓸함에 끌려서 좋아했지만 사귀면 사귈수록 갈증이 난다. 바닷물을 마시는
기분이야.
-아빠는 비틀즈를 좋아하셨어. 특히나 존 레논을. 아빠는
존 레논처럼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연상인 여인을 좋아하셨대. 오노 요코 알지? 그 일본 여자.
-그럼 엄마가 연상이셨나?
준은 자신에 대해선 자신을
둘러싼 친구들, 무슨 일을 하는지, 가족에
대해서도 일절 얘기해 주지 않았다. 그러는 준이 비틀즈와 존 레논의 이야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이며 수다쟁이가
되는 것이 보미는 싫지 않았다. 보미까지 비틀즈와 존 레논이 좋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언젠가는 비틀즈와 존 레논의 이야기를 해 주듯 준의 어린 시절과 가족에 대해 들을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불쑥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해서는 같이 밥을 먹고는 산책을 하는 게 다였다. 보미는
준이 언제나 손을 잡아주려나, 첫 키스는 언제나 해주려나, 준과의 베드신을
상상하며 얼굴이 붉어졌고 혹시 준이 게이가 아닐까 의심해 보기도 하였다. 무심한 듯 하면서도 가끔 자상한
오빠같이 보미가 고생하는 게 안쓰럽다며 공부만 하고 바에서 하는 웨이트리스는 그만두길 바라기도 했지만 보미는 그런 걱정만으로도 준이가 고마웠다.
미국에 온지 5년이 넘었지만 뉴욕과 뉴저지 말고는 딴 곳은 가본 적이 없는 보미였다. 준을 찾아 나서면서
본의 아니게 미국 대륙 횡단을 하게 된 것이 왠지 그녀의 운명처럼 느껴졌다. 아틀란타 공항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뉴욕은 공항이 세 개나 있어 분산이 돼서 그런지 아틀란타 공항이 더 복잡하게만 느껴졌다.
택시를 잡아타고 준의 아버지 집으로 향하였다. 운전대를 잡은 흑인 아저씨의 툭 튀어
나온 입으로 질겅질겅 껌을 씹어 대는 옆모습을 흘낏 쳐다보면서 보미는 뉴저지 외곽에서 보았던 큰 저택을 예상하며 준의 아버지의 모습 또한 눈을
감고 상상해 본다. 준이처럼 호리호리하고 잘 생겼을 거야.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일까. 그런 거 여쭤 보는 게 실례인가? 뭐 알아서 말씀해
주시겠지. 근데 왜 그리 서로 연락을 안 하고 사셨을까. 미국선 다들
그리 사는 건가? 아닌데 다들 외로워서 친척들 가족들 엄청 챙기던데. 무슨 사연일까? 보미는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벌써 도착했다는 흑인 아저씨의 남부 악센트가 있는
영어에 감았던 눈을 떴다.
그녀를 내려준 곳은 보미가
상상했던 부촌의 풍경이 아니었다. 오월의 끝자락으로 계절은 어느새 바뀌어 신록이 싱그럽기 그지없건만
잔디 관리 상태나 집 사이즈에서 느껴지는 이 동네는 한눈에 봐도 중간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참 아래 동네 분위기였다. 좀 침침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드리워져있는 어디선가 경찰차 사이렌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오고 집이 두 개씩 붙어 있는 듀플렉스 중 오른쪽에
있는 집이었다. 전화에 대고 긴 얘기를 할 수 없어 주소만 간단히 확인을 했더랬다. 보미는 한참을 망설인 끝에 간신히 초인종에 손을 갖다 대었다.
민첩하라고 민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셨지만 나는 민첩과는 거리가 멀었어. 몹시도 아둔했지. 부모님은
허구한 날 부부싸움을 하셨고 난 지긋지긋한 집구석이 끔찍이도 싫어 맨날 밖으로만 쏘다녔지.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것을 목격한 뒤로는 나는 절대 여자를 때리지 않기로 결심했더랬어. 아버지는 평범한 공무원이었지만 세무쪽
일을 하셨기에 접대를 받는 일이 많으셨는지 매일 술에 취해 들어오기 일쑤였고 다른 공무원들 보다 뒤로 빼돌리는 돈이 꽤 많았는지 어머니는 계돈으로
한 달에 얼마가 들어간다느니 그런 소리를 해대는 걸 나는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니었어. 곗날마다 엄마 친구들로
보이는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한 아줌마들 사이에서 꾸역꾸역 설렁탕을 큼지막한 깍두기와 같이 먹었던 기억이 그나마 내가 가지고 있는 행복한 유년 시절의
전부라네. 어머니가 들었던 곗돈을 들고 계주가 미국으로 튄 것이었어. 한두 푼이 아니어서 우리 집엔 타격이 너무 컸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을 만큼이나 팼더랬어. 사람이 사람을 개 패듯 팬다는 게 어떤 건지 그날 나는 깨달았지. 혹시 엄마가 죽지나 않을까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지만 너무나도 무서워 엄마를 때리지 말라고 아버지에게 대들지도 못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네.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엄마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두 손을 잡고 무릎 꿇고 아버지에게 빌면서 맞고 또 맞았지. 엄마가 미국으로 그 계주를 찾으러 갔다는 얘기를 들은 건 한참이나 후였어. 난 엄마 없는 아이로
자랐고 어린 나이에 엄마의 부재는 내 가슴 속 한으로 남았지. 따르는 여학생들이 많았지만 난 여자 쪽으로도
민첩하지 못했어. 다들 다가왔지만 내 주위의 성격 좋은 친구들에게로 관심이 쉽사리 옮겨졌지.
폭력적인 아버지와는 사이가 좋을 리 없었어. 엄마를 때린 장면이 내 기억에 너무나
선명하여 아버지를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네. 공부를 잘 할리 없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삼수한다고 빈둥대다 그 돈으로 모델 학원에 등록해 버렸어. 엄마에게 간간이 편지가
왔고 아버지가 먼저 가로채지 않는 한은 엄마의 글씨와 사진으로 엄마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있기는 하다라는 확인을 아주 가끔 할 뿐이었지.
다행히 모델로 무대에도 서고 드라마 엑스트라나 단역 출연도 하면서 내 입에 풀칠은 겨우 해서 아버지에게 손을 벌리지 않게
되었어. 그 즈음 만나는 여자가 생겼지. 강남의 미장원에서 머리를 하는
누나였는데 나에게 어찌나 엄마처럼 잘 해 주는지 난 아버지와 같은 집에서 살기 싫어 그 누나 집으로 짐을 싸서 같이 살기 시작했다네.
그러다 누나가 임신을 했지. 내가 아빠가 되는구나. 스물다섯에 아빠가 된다는 것이 더럭 겁이 났지. 무서운 아버지에게도 동거를 하다 다섯 살 많은
여자를 임신시켰다는 말을 차마 꺼낼 수가 없었어. 누나에게 하와이에 있는 엄마에게 갔다 오겠다고 했어.
가진 것 하나 없는 내가 한국에서 처자식을 건사할 자신이 없었던 거지. 있는 돈을
다 털어 비행기 티켓을 샀고 여비를 마련하였어. 나도 미국 가서 누나와 내 아가를 초청하면 된다고 너무 쉽게
생각해 버렸던 거야.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했어. 거진 십오 년
만에 보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어. 대신 야자수 나무에 이국적인 풍경을 상상하며 평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 보는 것이어서 소화가 안 되도 주는 기내식을 공짜라고 다 꾸역꾸역 받아먹으며 사 가져간 포켓영어의 필수 생활 영어를 더듬거리며 외우고 있었지.
와이키키 해변이니 하와이 섬의 화산 관광이니 하는 것은 내겐 사치였고 택시를 잡아타고 엄마의 마지막 주소로 찾아갔다네.
리얼터를 한다는 엄마의 편지 내용과는 다르게 그 곳은 웬 허름한 술집이었어. 소피아
정을 찾았지. 열 살 때 헤어지고 처음으로 만나는 모자상봉이었지만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감동은 없었어.
십오 년 동안 엄마는 고생이 심했는지 너무나도 늙어 있었어. 기가 세 보이는 갈매기
눈썹 문신이 그려진 교포 화장에 처음에는 술집에 다니다 이제 나이 먹어 주방 찬모를 하는 듯 짐작이 되었지만 뭐라 자세히 물어볼 수가 없었다네.
왜 부동산 중개업을 한다고 거짓말을 해서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는지 따져 물을 수도 없었어. 단 하나 시민권이 있냐고 물어 봤고 엄마는 아직도 불법 체류자라는 답변만을 내게 들려주었지.
정신없이 준의 아버지, 민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보미는 처음 보는 자신에게 고해성사를 하듯 처음엔 어색하게 준의 이야기를 나누다 봇물 터진 듯 나오는 민의
성장이야기와 미국에 오게 된 이야기에 몰입해서 듣고 있었다. 준이 아버지를 닮아 키도 크고 잘 생겼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민의 주름진 얼굴을 바라본다.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가 처음엔 잘 안 보이던 인물이 하나하나
뜯어보니 젊었을 땐 꽤 잘 생겼다는 소리를 들었음직한 이목구비가 들어왔다.
무슨 정신으로 어떻게 뉴욕까지
가게 됐는지 나도 모른다네. 하와이하면 떠오르는 건 야자수 나무가 즐비한 와이키키 비치가
아니라 어두컴컴한 한국 술집의 철 지난 크리스마스 조명의 희미한 불빛 사이로도 선명하게 보이던 엄마의 갈매기 눈썹 문신이었어. 아버지도 싫었고 엄마도 차라리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편지 속의 사진으로만 남겨 졌어야 했는데…….
상상 속의 엄마로 끝났어야 했던 거야.
누나가 너무 보고 싶었고 이제는
태어났을 아가도 궁금했어. 영주권을 가장 빨리 받는 방법은 미국 시민권자와 결혼하는 것이라고
누가 귀띔해 주더군. 우선 급한 대로 뉴욕 한인 타운 한국 식당에서 웨이터를 하였지. 영어가 서툴러 한인 대상으로 하는 가게나 취직할 수 있었어. 식당에 자주 밥을 먹으러 오는
여자가 자꾸 만나자고 그러는 거야. 유학생이라고도 하고 교포라고도 하고 자꾸 말을 바꾸는 것이 수상했지만
하고 다니는 모양새는 꽤 근사했더랬지. 때밀이 남자와 공장에 다니는 여공이 서로 대학생이라고 거짓말을 하다
서로의 신분이 발각 나고 사랑에 빠진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어 본 기억이 나더군. 그녀는 최악이었어.
내가 바라던 시민권자도 그렇다고 영주권자도 유학생도 아닌 내가 그렇게 끔찍해 하는 술집에 다니는 여자였어.
그것도 그 당시엔 젊은 여자는 관광 비자도 잘 안 나와 캐나다 국경을 넘어 밀입국해온 대담하기까지 한 여자였지.
하긴 나도 한국에 처자가 딸린 호적상으론 총각이어도 유부남이지 않은가. 어찌 살아
보려 했지만 폴라는 구제불능이었어. 연년생으로 낳은 아들과 딸을 돌보는 건 뒷전이고 전화를 한번 붙잡으면
몇 시간이었고 술집에서 같이 일하던 친구들이 들이닥쳐 한바탕 술판을 벌이거나 씀씀이는 얼마나 헤픈지 내가 건축 막노동을 해서 벌어 다 준 돈을
어떻게 살림을 하는 건지 언제나 통장은 마이너스였어. 거기다 한 살, 두 살 된 애들을 두고 어디에 간 건지 잠에서 깬 준이가 아파트 밖으로 뛰어나가 우는 통에 경찰에 신고가 들어가 두 애들을 다 아동방임으로
아동보호국에 뺏길 뻔하고 그녀는 구치소에 들어가 보석금을 마련해 빼오기도 했다네. 우리 둘의 싸움은 나의
무서운 아버지와 엄마의 그것 재탕이었고 나도 어느새 너무 지쳐버렸어. 준이 동생이 아마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야. 어느 날 그날도 어느 때처럼 폴라와 난 큰 싸움을 하였고 차를 타러 나가는 엄마를 따라 나가는 둘째
딸애를 미처 보지 못하고 폴라는 자기가 자기가 낳은 딸을 자기 차로 치여 죽였는지도 모르고 밤새 술집에서 일하던 동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는
다음날 새벽에 집에 들어오다 아스팔트에 쓰러진 딸애의 시체를 본 것이었어. 나는 준이와 잠을 자다 밖에서
들려오는 폴라의 울음소리와 비명소리에 깨서는 보통 일이 아니다 라는 것을 직감했지.
폴라가 자기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알고는 한동안은 술도 끊고 얌전했고 난 몇 년 의무노동을 하면 영주권을 준다는 닭 공장 영주권을 따고 오겠다고 노스 캐롤라이나
시골로 떠났고 준은 폴라에게 남겨졌지. 딸애를 가슴에 묻고는 그 집에서 도피하고도 싶었고 한편으론 불법
체류자로 더 이상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준이는 미국서 태어나 시민권자여도 폴라와 난 둘 다 불법 체류자였으니.
어릴 적 엄마를 그리워하던 내가 생각나서 준이가 나보다 차라리 엄마랑 지내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어.
닭 공장에서의 일은 고됐고
난 한 손가락을 잃었지. 뉴욕 한국 식당에서 웨이츄리스를 하며 준이를 건사하겠다는 폴라는
전화 통화 한번 하기도 힘들었어.
난 어느덧 40살 생일을 노스 캐롤라이나 닭 공장에서 홀로 보내는 처량한 신세가 되어 있었지. 나온다던 영주권은
브로커가 중간에서 돈만 챙겨 도망가면서 기약 없이 지체만 되어갔고 그렇게 5년이 흘러 버렸어.
그 사이 한국에 있는 누나와 딸과 연락이 닿았다네. 이산가족도 아닌 것이 이십 년
만에 전화 통화를 하며 많이도 울었어. 누나는 이제 오십이었고 얼굴도 보지 못했던 딸애는 스무 살 대학생이라고
하더군. 강남의 미장원을 인수해 이젠 살만하다는 그 누나에게 나의 신세를 도저히 말 할 수 없었다네.
하와이의 엄마가 내게 거짓말을 했듯이 나는 부동산 중개업 리얼터를 한다고 둘러말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어 버렸어.
얼마 후 고대하던 영주권이 나와 서프라이즈로 뉴욕에 준이와 폴라에게 한달음에 달려갔지. 1년에 한 번씩은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때 내가 뉴욕으로 가서 폴라와 준을 봤지만 사춘기라서 나와 대면대면 하는 거겠지 하며 간만에
만난 폴라와의 언쟁으로 관심을 가지고 준과 깊은 대화를 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되었어. 나온다던 영주권을 가져
오라며 폴라는 내가 갈 때마다 소리를 질러 대는 바람에 나중에는 폴라에게 가고 싶지도 않아졌지만……. 그
착하던 준이는 이사 간 옆집의 Jack을 죽이겠다고 준 방에 가면 칼에 담배에 마약에 …….
총까지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토록 바라던 영주권이 나왔어도 이건 내가 바라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 아니었지.
아마도 폴라가 옆집 백인 남자 잭과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짐작만 할 뿐이었어. 폴라는 무슨 일인지 함구하고는 내가 영주권을 받았는데도 기뻐하기는커녕 준이를 맡기고는 엘에이로 떠나가 버렸지. 준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건지 마는 건지 하다가 졸업을 하고는 집을 나가버렸고 난 노스캐롤라이나 닭 공장 동기 형씨가 아틀란타가 집값도
싸고 살기 좋다고 해서 그 사람 하는 세탁소 허드렛일 도와주며 살고 있다네.
가끔씩 준이가 목돈을 보내주는
통에 제발 사람 해치는 일이나 하지 말라며 당부하는 게 아버지로서 마지막 하는 잔소리라며 준의 아버지는 그 긴 이야기를 끝냈다. 아마도 여태껏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기에 가슴에 한으로 남아 있다가 다시는 볼 기약 없는 보미였기에 말하기가 쉬웠던 걸까.
보미는 엘에이 사는 준의 어머니를 만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자문해 보았다. 준이가
그 잭이란 남자를 죽이려고 사라진 것일까. 준이 어머니와 그 잭이 준이 아버지가 없는 오년동안 바람을 피운
것인가.
하와이의 준이 할머니도 엘에이의
준이 엄마도 지금 보미 앞에 잘라진 둘째손가락 두 마디에도 아랑곳 않고 담배를 태우시는 준이 아버님도 준이의 럭셔리 아파트 렌트비를 대 줄 수는
없지 싶었다. 무슨 정신으로 어떻게 뉴욕까지 가게 됐는지 보미는 몰랐다.
이제 아틀란타 하면 떠오르는 건 정신을 쏙 빼놓던 공항과 줄담배를 들고 있던 몽당연필처럼 작아져 있던 손가락과 치과치료를
제 때 받지 못해 치아상태가 엉망이던 그분의 누렇게 변색된 치아였다. 보미는 준의 아버지에게 비틀즈를 좋아하셨지요
라고 묻지 못하고 돌아온 것을 후회하였다. 준의 아버지와 준이랑 들었던 존 레논의 이메진을 같이 들으며 커피라도
한잔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다. 보미는 준의 아파트에 가서 수첩 옆의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영어 필기체로 마구 갈겨쓴 노트에는 일기인지 보미에게 마지막으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어린 날에 대한 이야기인지 뒤죽박죽
엉망으로 생각나는 대로 술을 마시고선 휘갈겨 쓴 듯 싶었다.
어릴 적 기억나는 거라곤 엄마와
아빠가 서로 속아서 한 결혼이라며 나와 내 동생 May 땜에 빼도 박도 못하고 어쩌지 못하고 산다고 언성을 높여
싸움을 하던 거였다. 나와 내 동생은 이 세상에 나오지 말아야 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술을 좋아하는 엄마는 아빠의 멀끔한 외모에 반해 자기가 대시해서 쟁취했다며 자기가 자기 무덤을 판 거라고 고래고래 술 마시면 소리를
질러 댔고 술 마시는걸 한 번도 본 적 없고 우리에게 회초리 한번 안 드시는 순한 아버지는 언제나 묵묵히 일만 하다 엄마의 고약한 술버릇과 살림을
어떻게 하는 거냐고 한마디 하다 싸움이 시작되곤 하였다. 나에겐 메이 밖에 없었다. 그나마 엄마가 내게 메이를 선물로 주어 우리에게 함부로 하고 술 마시는 것도 용서하려 했었다. 가난했지만 메이가 있어 행복했고 틴이 되기 전까지 보호자 없이 함부로 돌아다니면 저번처럼 또 아동 보호국에서 우릴 데려 갈까봐 집안에서
메이와 소꿉놀이도 하고 전쟁놀이도 하였다. 엄마는 한국에선 우리나이에 놀이터에서 우리들 끼리 놀아도 되고
버스타고 혼자서도 다녔다고 하며 이놈의 미국 지긋지긋하다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곤 했다. 엄마는 아동보호국
감찰 대상이었기에 우리는 더욱 더 조심해야했지만 나는 메이와 집에서 노는 것이 답답하기보다 행복했다. 그러던
메이가 죽었다. 그것도 엄마가 죽였다. 엄마와 말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엄마가 미치도록 싫었다. 메이가 죽고 난 후 미안했던지 내게 잘 해주는 듯 하더니
아빠가 닭 공장으로 떠난 후 한국식당에서 일 한다고 했다. 후진 동네에서 엄마는 그래도 백인이라고 잭을 흑인보다
낫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내가 남자 아이라 잭이 내게 나쁜 짓을 할 거라고 상상을 못했던 건지 나를 방과 후 옆집 아저씨 잭에게 부탁했다.
겨우 두 자리 수 나이가 된 하나 남은 나까지 아동보호국에 뺏기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영어를 못해 온갖 전화와 메일들을 열 살 된 내게 떠맡기고는 내가 아침에 학교 갈 때는 언제나 술에 취해 자고 있었고 학교에서 돌아와
보면 텅 빈 집이었다. 큰 트럭이나 트레일러 운전을 하는 잭은 며칠씩 안 들어오거나 밤일을 하고는 낮에는
쉬는 등 불규칙한 스케줄을 가지고 있었지만 영어가 서투른 엄마와 멀리 닭 공장에 있는 아빠를 대신하여 나의 가디언이었다. 아내에게 이혼 당해 다달이 자녀 양육비를 보내 주어야 해서 이런 후진 동네로 이사 왔느니 어쩌니 지껄여대던 잭은 언뜻 보면 성격
호탕한 덩치 좋은 흔히 볼 수 있는 백인 아저씨였다.
가끔씩 엄마가 식당인지 술집인지
일을 끝내고는 새벽에 웬 남자를 데려와 술을 마시는 걸 화장실을 가다가 목격하곤 머리가 쭈삣 서 버렸다. 다시 살그머니 내방으로 돌아왔지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내가 자고 있다고 생각한 건지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건지 둘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싸우는 건지 낄낄 거리기도
하고 아프다고도 하고 도대체 가서 말려야 하는 건지 모른 척 하고 있어야 하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엄마 방 침대 스프링 소리가 끼익 끼익 리드미컬하게 반복적인 소리를 계속해서 내기 시작했고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인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빠가 보고 싶었고 메이가 보고 싶었다.
나는 점점 더 말수가 없는
수줍음 많은 가끔은 괴팍한 아이로 커가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말을 하고 싶지 않았고 온 세상에 나 혼자인 것 만
같았다. 메이가 피범벅이 되어 차갑게 죽어 버린 그날이 자꾸만 떠올랐고 엄마방의 고장 난 침대 스프링 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가끔씩 걸려 오는 아빠 전화에 아빠랑 살고 싶다고 말해 보려다가 그곳이 닭 공장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분홍빛 속살의 닭이 떠올라 아빠가 오실 때까지 조금만 참아 보자라고 나를 다독여보았다. 스쿨버스에서
내려 집에 오면 텅 빈 집에서 하루 종일 우두커니 있기도 하고 아빠가 읽으시던 한국 책도 읽어보았다. 아빠가
좋아하던 비틀즈와 존 레논의 음악을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고 또 들었다. 음악을 들으면 아빠가 왜 그들을
좋아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빠와의 교감을 하는 듯 하여 음악을 들을 때면 행복하였다. 끄적끄적 낙서도 해보고 메이에게 이야기를 해주듯 일기도 써보고 편지도 썼다 찢어 버렸다. 누가
문을 쿵쿵 두드린다. 잭이었다. 갑자기 자기 집으로 오란다.
내키지 않았지만 따라나섰다. 집안은 어두침침하게 커튼으로 블라인드로 다 가려져 있었고
칩스에 맥주 캔에 엉망으로 발 디딜 틈 없는 거실에는 커다란 텔레비전에 차마 눈 뜨고 못 보겠는 이상한 비디오가 틀어져 있었다. 나보고 동양에서 온 신비한 소녀 같다나 이상한 헛소리를 해대더니 내 옷을 심하게 찢어 벗기었다.
더 이상은 내 기억에서 지워
버리고 싶다. 잭에게 깔려 있던 내 몸뚱이를 무척이나 저주했던 불쌍했던 내
유년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다시 돌아간다면 모든 걸 되돌릴 수 있을까. 메이가 죽지도 않을 수 있고 나는 아빠를 따라 닭 공장이 있는 동네로 갔다면 엄마 침대의 스프링 소리도 듣지 않고 잭에게 폭행 또한
당하지 않았을까. 내 항문은 다 찢어져 치질 걸린 사람처럼 피가 쏟아졌지만 엄마는 이마저 눈치 채지 못했다.
술에 취해 잠들어 있거나 가끔씩 새벽마다 들리는 매번 바뀌는 남자 목소리와 까르르 넘어가는 엄마의 목소리가 전부였다.
세상에 나를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그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학교 선생님께 말해볼까
생각해 봤지만 엄두도 나지 않았고 수치스럽고 내 말을 믿어줄까 백인들이 다 한 통속일 것만 같았다.
몇 번인가의 자해이후로 엄마는
잭과 내 사이를 아는 듯 하기도 했지만 난 신경 쓰지 않았다. 나도 엄마 방에서 나는 침대 스프링 소리가 무얼 의미하는지 알
나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고등학교를 가면서부터 흑인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나를 잭에게서 지키려면 나도 뭔가를 준비해야만했다. 점점 마약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고 큰돈을
벌 수 있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그사이 아빠는 영주권을 땄다며 집으로 돌아왔고 잭은 어디론가 이사 가고
엄마도 엘에이로 떠나 버렸다. 나는 고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아빠와 마주치는 게 싫어 집을 나가버렸다.
보미는 여기까지 쓰여 있는
준의 일기장을 읽고는 조각조각 흩어진 퍼즐들을 얼기설기 어느 정도 끼워 맞출 수 있었다.
그가 잭의 행방을 찾아 잭을
죽이는 걸 성공한 건지 아니면 마약거래와 관련되어 위험에 처하게 되었는지 그 둘 중 하나인 것 같았다.
나를 사랑하기는 했던 걸까.
나를 죽은 메이의 환생이라
생각한 걸까. 내 몸에 손도 안대고 여동생처럼 머리만 쓰다듬으며 예뻐해 주던
것이 잭 때문이었을까?
오월과 유월 사이의 어느 날
오월과 유월 사이를 의심해본다.
보미는 연보라 라일락꽃의 진한
향기를 맡으며 맨해튼 빌딩 사이로 파랗게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디선가 존 레논의 이메진의
선율이 들리는 듯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