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문학 신인문학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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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문학 신인문학상 당선작
‘제20회 워싱턴문학 신인문학상’ 수필부문 장려상(송윤정)
추수감사절에 즈음하며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란 없다.
단지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이다.” – 셰익스피어
올 1월말
에 아프리카의 리소토Lesotho라는 나라에 출장을 가게 되었을 때 일이다. 나는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 공항에 앉아 호텔에서 나를 픽업하기로 한 사람을 기다리며, 내가
그동안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한 나라와 도시들을 세어 보았다. 적어도 서른두 나라와 오십여 도시들을 적어
내려가는 동안, 나는 당장 닥친 그 막막한 상황 앞에서 그동안 그 많은 여행을 별 탈 없이 해 온 것에 감사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토요일
오전 열 시에 DC를 출발하여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와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를 거쳐 리소토의 수도 마세루에
도착하여, 일요일 밤인 그즈음엔 이미 호텔 방에서 내일을 준비하고 있을 터였다. DC 공항에서 창구 직원이 출발이 좀 지연될 예정이라고 했을 때, 나는 아디스아바바에서 세 시간
이상의 환승 여유가 있었으므로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 지연이 두 시간을 넘어서자 나는 항공사 승무원에게
항로변경을 요청했지만, 그 직원은
“손님은
아디스아바바에서 환승 편을 놓치지 않을 겁니다. 만약 놓치게 되면 그곳에서 다른 항로를 찾아 줄 테니 염려하지
마십시요”
라며 완강하게 버티었다.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했을 때, 공항은
나처럼 환승 편을 놓친 사람들로 가득했고 단 두 명의 창구 직원이 있는 그곳에 장거리 비행에 초췌해진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섰다. 내 차례가 되자, 항공사 직원은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그 다음 날 같은 시간으로 예정된
비행기를 타고 떠날 것을 권유했다.
“그러면
월요일 오후 늦게나 마세루에 도착할 텐데, 제 프로젝트팀과 함께 저는 월요일 아침 9시부터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는 마세루에 월요일 아침
8시까지는 도착해야 한다구요.”
나는, 내 뒤로
줄지어 선 사람들이 빨리 마치라고 야유하는 소리를 들으며 완강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결국,
그 직원은 내게 그곳에서 탄자니아의 다레스 살렘을 거쳐 요하네스버그에 일요일 밤에 도착해 그 다음 날 아침
6시 마세루를 떠나 7시에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는 항로로 바꾸어 여러 장의 탑승권을
건네주었다. 내가 ‘나의 짐은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요하네스버그에서 찾을 수 있다’는 안도의
말과 함께.
그 길로 달려서 다레스 살렘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세 시간여 즘 지나 다레스 살렘에 도착하니, 그곳에서는 모든 환승객이
여권심사와 탑승권을 재발급받아야 한다며 좁은 창구 앞에 사람들을 모아 놓았다. 유니폼을 입은 두 명의 수속
담당자 앞에는 명확한 줄도 없이 사람들이 서로 자신의 여권과 탑승권을 먼저 건네기 위해 신경전을, 어떤 이들은
서로를 밀치며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두 담당자 중 한 명은 모든 이들의 여권과 탑승권을 거두어서 사라지고
또 다른 이는 모든 이들의 짐 티켓을 거두어 ‘기다리라’는 말만 남긴
채 사라졌다.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직장 동료들에게 나의 상황과 도착지연을 알리고자 Wifi가 잡히는 곳을 찾으려 애쓰며 몇 공항 직원들에게
묻자, 어떤 이는 내게 오히려 ‘Wifi가 뭐요?’라 되묻고 어떤 이는 ‘이 공항엔 Wifi가 없다’고 답했다. 그러는 중, 짐 티켓을 가지고 사라졌던 직원이
돌아와 티켓들을 나눠주며 내게 ‘당신 짐은 내가 못 찾았습니다.’고
퉁명스럽게 내뱉으며 표를 건네 주었다. 또 다른 직원은 여권과 새로 프린트된 탑승권을 가져와 건네주었다.
나는 속으로 ‘그래도
여권과 탑승권을 받았으니, 여기서 못 찾은 가방은 요하네스버그로 오겠지.’ 스스로를 위안하며 환승구를 향했다. 환승구를 지나자 뜻밖에도 비지니스 라운지가 있었고,
그곳에 들어서자 ‘Wifi’가 있다는 사인에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곳에서 팀원들에게 나의 상황과 도착 지연을 알리는 이메일을 보낸 후 요하네스버그로 떠나는 비행기로 향했다.
남아공 항공을 타고 다레스 살렘에서
요하네스버그로 오는 길은 에티오피아 항공을 타고 DC에서 다레스 살렘까지 온 길에 비하면 훨씬 쾌적했다. 좋은 영화들도 많았고. 그중에서 <중력
Gravity>라는 영화를 골라서 보았는데, 영화를 마칠 즈음 어느새 요하네스버그에
다다랐다.
공항 짐 찾는 벨트에 서서 짐들이
다 없어지는 동안 서 있었지만, 나의 짐은 보이질 않았다. 그곳에 서 있는 직원에게 묻자,
항공사 창구에 가서 분실물은 신고해야 한다며 자신은 도울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남아공 항공사 창구에 찾아가 이야기하니, 그곳 직원은 내 표들을 보며
“손님 출발지
항공편은 에티오피아 항공이었으니 그 항공사 책임이지, 저희 항공사에서는 기록을 추적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내일 아침 항공편은 아디스아바바에서 에티오피아 항공사
직원이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손님 티켓은 취소되어서 더이상 유효한 티켓이 아니고요, 목적지까지 가시려면 편도 항공표를 다시 구입하셔야 합니다.”
라며 청청벽력 같은 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더 자세한 상황이나 도움은 에티오피아 항공창구에 가서 알아보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 넓은 요하네스버그 공항에 어디에
에티오피아항공 창구가 있는지 몰라 안내 데스크를 찾아 갔다. ‘제이미’라는 이름표를 단 안내원은
“이디오피아
항공사는 오후 2시 하루에 단 한 번 비행일정이 있으므로 오후 1시부터
3시경까지만 열려 있습니다. 내일 오후가 되어야 그 직원을 만날 수 있으실 텐데요….”
라고 하였다.
나는 마치 내 자신이, 망망한
우주 공간에서 끊임없이 문제에 부딪히던 영화 <중력 Gravity> 속의 여주인공 같이 느껴졌다. 내가 마치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보였는지, 그 안내원은 자신이 더 도울 수 있는 일이 없는지 물었다. 나는 자초지종을 털어놓으며,
뜻하지 않게 그곳에서 하룻밤을 나의 짐도 없이 보내게 되었으며, 목적지로 가는 표도
이렇게 문제가 생겼노라고 하소연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공항 바로 앞에 있는 인터콘티넨탈
호텔은 광산협회 컨퍼런스로 자리가 없고 주변 호텔들도 터무니없이 비싸게 부르고 있으니, 자신이 너무 비싸지 않은 좋은 호텔에 전화해
픽업하러 오도록 해 주겠다고 하였다.
“내일 아침
마세루로 가는 표는 일단 돈을 주고 사시고, 나중에 항공사나 여행 에이전트가 있으시면 에이전트를 통해 따지도록
하시는 게 어떨까요? 제가 30분만 있으면 교대 업무가 끝나니,
그동안 남아공 항공사에 가셔서 내일 아침 표를 처리하시고 돌아오시면, 제가 호텔
직원이 있는 곳까지 모시고 갈게요”
라는 지혜로운 제안도 덧붙였다.
제이미에게 되돌아가니, 그녀는
호텔에서 픽업하러 오는 사람이 교통체증에 걸려 좀 오래 걸린다며 내게 의자에 앉아 기다리라고 권하였다. 밖은
캄캄하였고, 나의 전화기가 죽어 컴퓨터를 켜서 시간을 확인하니 9시가
넘어 있었다. 갑자기 배도 고프고, 나의 연락을 기다리고 염려하고 있을
가족들 생각과 함께 그리움이 밀려왔다.
제이미가 소개해 준 호텔은 호텔이라기보다는 B&B였지만, 그 다음 날 새벽 4시 반에 공항으로 떠나야
했으므로 그저 몇 시간 머무르기에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 8시경 드디어 목적지인 마세루에 다다랐다. 토요일 아침 8시경 집을 나섰으니, 36시간여 만에 목적지에 다다른 기쁨도 잠시- 나는 내 짐이 어느 곳에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분실센터에 가서 또다시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야
했다.
중앙은행에서 마중 나온 기사를 따라
나는 곧바로 중앙은행으로 가 팀원들과 합류했다. 일을 마친 후 옷을 몇 벌 사러 쇼핑을 갔으면 했지만, 그곳에서는 모든 가게가 오후 4시경이면 문을 닫는다고 하였다. 결국, 다음 날 아침 중앙은행에서 급한 일 몇 가지만 처리한 후에 나는 쇼핑을 하러 나가기로
합의 한 후, 그날 밤도 토요일 아침 집을 떠날 때 입고 나온 요가 팬츠에 회색 티셔츠를 입은 채로 지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중앙은행의
프로젝트 팀장이 웃음이 만연하여 들어서며,
“반가운
소식이 있습니다! 공항에서 연락이 왔는데, 짐을 찾았데요!
기사를 대기시켜 놓았으니 어서 찾으러 가 보세요!”
하는 게 아닌가. 공항에
달려가 분실센터에 들어서니, 어제 아침 내 분실신고를 받아 적었던 그 직원이 나를 보며 말하였다.
“정말 운
좋으시네요. 어제 당신 얘기를 들었을 때는 하도 복잡해서 당신 짐은 못 찾을 줄 알았는데….”
그녀가 내게 ‘운이 좋다’고 하자 지난 며칠간 겪은 일을 기억하며 ‘참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내 낡은, 그 오래된 빨간 가방을
보자 어찌나 반갑고 감사한지!
마세루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DC 공항에서 떠나기 전 지연되어 기다리는 동안 서점에서 샀던 책 <피플툴
People Tool>을 마저 읽는데 다음 구절이 나왔다.
“한 그룹
연수에서 저는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나 사물들을 적으라고 요청받았어요. 첫 번째, 두 번째…. 열 번쨰까지 적었죠. 그리고는 열 번쨰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상상해보라고 했어요. 내가 열 번째에서 시작해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상상하여 마지막으로 제일 소중한 이가 사라지는 것을 상상했을 땐 눈물을 쏟았답니다. 나뿐만 아니라 온 그룹이
울고 있었지요. 그리고는 그 연수강사는 하나둘씩 되돌아 오는 것을 상상해보라고 했어요. 열 번째에서 시작해 가장 소중한 첫 번째가 돌아왔을 땐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지요.”
추수감사절이 다가오고 있다. 모든
이들이 풍성한 추수를 해서 감사가 넘쳤으면 좋겠지만, 혹 추수가 적거나 아예 없는 이들도 그래도 그나마 가지고
있는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만으로도 풍성한 감사를 누릴 수 있는 추수감사절이 되었으면 한다.
2014년 11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