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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워싱턴문학 신인문학상 - 단편소설: 장려상

Author
Suan
Date
2013-12-03 10:46
Views
13537




단편소설:  장려상 – 서윤석






 




불꽃                                                




 




그는 지난 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던
탓인지 열 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 집 안이 썰렁하다. 아내가 떠난 후 거의 매일매일을 그는 술로
잠을 청하고 있다
. 작년부터는 걸려오는 전화도 없다. 무슨 잘못을 하는
것도 아닌데 주위의 사람들이 차츰 그를 상대하지 않으려고 한다
. 밤이면 혼자 있기도 조금 무섭다.  모두들 그를 무시 하려고들 한다. 섭섭한 일이지만 할 수 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영식은 밥을 덜어서 요기하고 머리맡에 두었던
아내가 담긴 유해 주머니를 허리에 동여매고 뒷문을 나섰다
.



그는 오래전부터 메니어스(Meniere)증후로
몸의 균형이 늘 불안정하다
. 오른쪽 청력도 거의 다 잃었지만 그래도 지팡이라도 짚고 걸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낮에는 문제가 없지만 어두어지거나 술이라도 한 잔 마시면 몸의 균형을 잡기가 힘들다.
그러나 항상 머리 속에서 울리는 매미 소리는 차츰 그냥 견딜만 하게 되었다. 그는
신문이나 텔레비전도 안 보는 사람이고 물론 인터넷도 사용을 못하는 콤맹이다
. 그래도 외출시에는 위치안내기(GPS)를 사용하고 스마트폰은 아니래도 안테나가 있는 핸드폰만은 사용한다. 젊은 시절부터 그는 항상
자신을 잘 생긴 교양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 이것을 보고 가까운 친구들은 그가 나르시스시즘(Narcissism)에 빠져있는 인물이라고 웃는다. 그러나 누가 무어라해도 그가 당당한 미남형인 것은 자타가 다
인정하는 분명한 사실이다
. 그래서 지금 나이에도 여성들한테 누구보다도 더 어필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한가지 단점이라 한다면 학창시절에는 물론 오래 전부터 과음으로 사고를 자주 치는 일이다. 공포에 떨면서 보냈던 월남참전시에는 술이 있어서 좋은 위로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 이후에도 마음의 고통이나 외로움이 있을 때면 술로서
위안을 받으려 한다
. 즉 술에 의지하려는 중독현상이다. 특히 밤이면
찾아오는 지독한 외로움을 술이 달래주며 잠도 잘 수 있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 그러다 보니 차츰 그의 생활에
문제가 생겼다
. 가끔 취중에 자신은 기억도 안 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자식들아 너 나한테 그래서는 안 되는데,…”하면서 저번에도 위로차 찾아온 친구들에게 소리를
쳤다는데 그 후 친구들은 섭섭했던지 모두들 발길을 끊었다
. “영식이 그 친구 요즈음 찾아가면 우리에게 이유도
안되는 일로 야단을 치니 우리가 무슨 죄인인가
.  왜 그를 찾아가겠어. 그 친구 또 술주정하는 것일거야하면서 차츰 그를 멀리한다.



그가 문앞에 나서려는데 지나가는
강아지가 꼬리를 흔든다
.
주인의 말에는 그 개가 혈액암에 걸렸다던데 아직도 살아서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다. 남은 시간동안 잘 먹이다가 너무 숨 쉬기가가 힘들어 하면 잠 재워주려고 한단다. 아침이면 밖의
공기가 서늘하다
. 두터운 잠바와 모자를 쓰고 호숫가를 거닐기 시작헸다. 출렁이는 물결이 물가에 부딪치고 가끔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이 보인다. 수 많이 퍼져있는 클로바에는
하얀 꽃이 피어있고 작은 벌들이 날아다닌다
. 행운을 가져다준다면서 아내와 같이 네 잎 클로바를 따다가 책갈피에
꽂아놓던 생각을 한다
.



작년에 콩밭이 있었던 바른편 언덕
넓은 땅에는 새로 심은 옥수수가 돋아나고 있다
. 한 여름에 높이 자라서 맺은 열매를 가을에 추수하면 또 한 해가 지나가는 것이다. 나이 탓일까? 한 해가 빨리 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아내가 떠난지가 벌써 삼 년도 더 지났다니멀리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주말도 아닌 아침 이 시간에는 은퇴한 사람들이거나 아주머니들이다.



오늘 좀 바람이 부니까 추울거야 여보. 이제 아프지 않겠지, 당신과 이렇게 같이 산보를 하니까 나는 더 바랄 것이 없구만.”



이렇게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오늘도 그는 산책을 한다.



대학에서 해부학을 가르치는 큰 딸
미쉘
, 근처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는 둘째 딸 조앤 그리고 센프란시스코에 사는 막내인 아들 데이비드 모두들 요즈음 아버지를 걱정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엄마가 눈에 보이고 엄마의 목소리도 들리는 사람처럼 가끔 아빠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가정의사의 말로는 한 일 년은 배우자를 잃고 흔히들 우울증으로 그럴 수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삼 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비정상적인 것이 틀림이 없다. 아이들은
의논 끝에 여행이라도 시켜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



 



그는 보스턴 로간 공항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마련해준
여행이다
.



짐 하나를 체크인 데스크에서 부치고 여권을 돌려받았다. 세큐리트 지점을 통과한 뒤 탑승게이트로 걸어갔다.
절름거리는 다리는 그런대로 별 지장이 없었다. 파리로 떠나는 스웨디시 여객기는 정시에
승객을 태웠다
.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이 파리 여행은 평소에 늘 아내와 같이 한번은 가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비행기 속에서는 프랑스 말과 영어로 안내방송을 하는데 의자들의 배열이 좀 특이했고 미국 내 비행기보다는 전혀 다른 기분을
느끼게 한다
.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프랑스 말 방송은 멋이 있다. 악센트와
음정들이 엔진 소리와 어울려 자장가처럼 흘러나온다
. 여덟 시간 반이나 되는 비행 중 두 번 주는 식사를 먹고
식사때면 권하는 레드와인도 몇 잔 했다
. 그는 창밖을 내다 본다.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내며 여객기는 날아가고 있다
. 하얗게 떠 있는 구름들은 아주 부드럽고 따뜻하게 보인다.
마치 솜이불이 깔려있는 넓은 운동장 같다. 구름동산은 비명소리도 울음소리도 없는
천국처럼 보인다
. 아침이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석양에는 묵례를 드리는 착한 어린이들이 줄을 서서 앉아 있는
것 같다
. 식사 후 밤이 와서 잠을 자고나니 먼동이 서서히 밝아 왔다. 얼마 후 비행기는 파리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에서 짐을 찾고 쉽게 입국수속을
마치고 그는 택시를 잡았다
.
운전기사는 필립핀 사람 같다. 여행사에서 지정한 호텔은 센(Seine)강가에서 그리 멀지않은 에펠탑이 한 블록만 걸으면 보이는 삼층 건물인 작은 호텔이었다. 달라를
유로로 바꿔왔더니 택시요금이 미화로 계산하면 육십 불이 나왔다
. 그래도 택시가 머세이데스 벤즈인데 이 만
마일은 더 달린 차였다
. 거리에는 승용차의 앞부분만 있는 것 같은 작은 차들이 많이 보이고 어디를 가나 많은
모터사이클이 달린다
.



호텔은 조용한 개인 집 같다. 영어를 알아듣는 데스크의
사무원이 무척 친절했다
. 정해준 방으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는 아주 작고 아담하다. 혼자서 가방 한 개를 싣고 탔는데 안에 빈 여백이 없을 정도로 좁다. 방에 들어가서 영식은
여장을 풀었다
. 샤워하는 방 천장은 비스듬이 기울어져서 있었고 좁았지만 작은 냉장고, 설합장등 필요한 것은 다 있다. 프랑스 말로 텔레비전도 나왔다. 짐을 정리하고 그는 거리에 나와서 걷기 시작했다. 개선문이 있는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니 동양사람들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 쇼핑하는 사람들이 상점을 드나들고 멀리 박물관 건물들이 보인다.‘역시 파리는 와 볼만한 곳이구나!’영식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센강가에는 행려인 같은 헌 옷을
입은 사람들이 긴 나무의자에 누워서 잠을 자는 것이 보인다
. 두 불록쯤 나와서 에펠탑이 올려다보이는 거리에 의자가 가지런히
놓인 식당이 보여서 그는 들어가서 입구의 의자에 앉았다
. 잠시 기다리니 웨이터가 나와서 자리를 옮겨 속으로
들어가 달라고 한다
. 그 자리는 예약된 곳이고 해가 서쪽으로 질 때면 너무 눈이 부셔서 안쪽이 더 좋겠다고
친절히 말한다
. 혼자서 
와인을 마시면서 담배를 물고 있는 동양여인이 눈에 띄인다.



거리에는 개를 끌고다니는 사람들도
많고 한창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 저녁식사 후 그는 숙소로 돌아왔다. 방에 도착하니 씨엔엔(CNN)
이 영어로 방송되지만 남은 채널들은 프랑스 말이다. 집에서도 그는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 사람이라 이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 저녁 아홉 시가 되어서 여행사의 담당자가 전화를 했다.
내일 아침 아홉 시에 밴이 호텔 앞에 도착하여 구룹 투어를 시작한다는 전갈이다, 그는 저녁 식사와 같이 마음껏 마신 와인에 취기를 느낀다.



소파에 기대어 누워서 눈을 잠시
감는다
. 멀리서 기차소리가 들린다. 아내와 같이 대륙을 달리는 기차를 타고 있다. 온 천지에 눈이 하얗게 덮였다. 추운 평야를 빠른 엔진 소리를 내며 기차는 신나게 달리고 있다.
창 밖에는 빈 밭이 보이고 낮은 언덕에는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아내가
옆에서 웃고 있다
. 무척 행복해 보이는 고운 얼굴이다. 둥둥소리를 내며
기차는 긴 다리를 건너간다
. 해가 저물고 하늘에는 별이 떠오르고 있다. 하늘의 별들도 빙빙 돌면서 움직이고 그 별빛은 맑고 깨끗하게 쏟아지고 있다. 피곤한 하루를
끝내고 자신도 모르게 그는 소파에 앉은 채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곤한 잠을 깨우는 전화소리에 그는
눈을 떴다
.



현지 시간으로 일곱 시다. 세수를 하고 간단히 필요한 물건을 챙겼다. 서둘러 아랫층 아침식사를
주는 식당으로 내려왔다
. 잘 차려진 컨틴넨탈 아침음식단이 구미를 돋군다. 가지런히 차려놓은 부페형의 음식 중에 오랜즈쥬스나 과일들이 참 신선하고 맛이 있다. 프랑스
빵이나 무화과 열매 말린 것 그리고 치즈들이 특이하다
. 커피를 잔이 비면 계속해서 와서 따라준다.
웨이터 흑인 할아버지가 참 친절하다. 그는 영어와 프랑스 말을 다 잘 한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약속대로 정문 앞에
어제 전화했던 여행사 안내원이 큰 밴
(Van)을 끌고 나타났다. 알고
보니 몇 군데 호텔에 숙박하고 있는 관강객들을 하나둘씩 태우고 파리관광을 시작하는 것이다
.



안녕히 주무셨어요? 저는 미스터 백입니다.”




네 한영식 입니다. , 벌써 여러분이 타셨군요



그가 탑승하고 나니 차는 떠난다. 차 속에는 네 명의 손님들이 타고 있다.



다음 숙소에서 세 분을 더 태우고 출발합니다. 오늘은 몽마르뜨 언덕을 가는 날입니다.”



두 불록을 돌아가니 왼편에 에펠탑(Tour Eiffel )이 보이고 큰 호텔이 나오는데 그 호텔 앞에서도 세 사람의 승객이 더 기다리고 있다. 늙은
부부와 중년 여인이 올라탔다
. 모두들 한국계 사람들이고 한국말로 다 통하는 사람들이다. 총 여덟인데 안내하는 미스터 백까지 합해서 아홉 사람이다. 화가들이 지난 수 백 년 많이들
살고 있었다는 이 몽마르뜨 언덕으로 가는 길은 복잡하다
. 출근 시간은 지났는데도 많은 차량들이 줄을 섰고
어디를 가나 초록신호등이 켜지면 모터사이클들이 줄을 지어 달려간다
. 그 소리가 요란하다. 차 속에 탄 여행객들은 조그마한 마이크로 자기 소개를 하기로 했다. 세 쌍의 부부가 자기소개를
마치고 있었고 그의 차례가 되었다
.



저는 삼 년 전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사는데….



이곳이 아내와 같이 평소에 한번 보고 싶었던 곳이라 찾아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말을 하고 창 밖만 계속 내다보고 있다.



남은 한 중년 여성이 자기소개를 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메릴랜드(Maryland)에서 왔습니다. 늘 파리가 보고 싶어서어린이 병원일을 맡은 사람인데 휴가를 내서 이렇게 오게 됬습니다.
즐거운 여행이 되시기 바랍니다.”



키가 작달막하지만 눈망울이 동그랗고 왼쪽 빰에 보조개가 들어간다. 브라운 색갈의 긴 머리에 반짝이는 핀을 꽂았는데 지성미가 넘치는
얼굴이다
. 동양사람에게는 드문 오똑한 코가 무척 매력적이다. 무엇보담도
웃을 때 살짝 보이는 하얀 가지런한 치아가 깨끗하다
. 왼쪽 가운데 손가락에 까만 진주 반지를 끼고 있다.
어려서 이민왔거나 1.5세쯤 되는지 목소리는 맑지만 우리나라 말이 조금 서투르다.
그는 그녀가 참 귀엽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딸같은 나이의 여자라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



몽마르뜨 언덕 아래 여러 상가를
지나자 일행은 밴에서 내렸다
.
노란 삼각 깃발을 든 미스터 백을 따라 언덕 위로 올려다 보이는 계단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언덕 위까지 오르락거리는 기동차가 있었지만 그룹 사람들은 운동 삼아 걷기로 하였다.



계단이 수십 개가 올려다 보이고
가끔 쉬는 공간이 있다
.
그는 늘 하던 정도의 운동인 것 같아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하늘은 푸르고 간혹
흰 구름이 떠 있었다
. 바람이 약하게 불어서 쌀쌀한 듯 했지만 얇은 덧옷 차림이면 아주 적당했다.
계단을 오르면서 조금씩 숨이 찼지만 그런대로 견딜만 했다. 함께 온 사람들이 모두들
60대 초 늙은 분인데도 잘 올라간다. 반쯤 올라왔을 때 한순간 영식은 깜박 오른편
발을 헛디디고 앞으로 넘어졌다
.



아이구나…” 별로 다친 곳은 없었지만 창피해 한다.



이 때 누군가가 옆에 와서 그를 일으켜준다



괜 찮으세요?”




!  이런,
내가 앞을 안 봤어요, 이제 조심해야겠네..”



그를 일으켜 준 사람은 바로 밴에 같이 탔었던 메릴랜드에서 온 중년 여인이다.



이제 더 내려가실 수도 없고 제가 저 위까지 도와드리겠어요. 제 어깨를 잡으세요.”




, 초면에 그래도 되겠어요? 미세스 아니
미스
?”



그냥 박 고은 이라고 불러주세요.” 



이 날 우연인지 필연인지 두 사람은 이렇게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그것은 마음 속으로 두 사람 다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



여행 중에 내내 음료수도 서로 나누어 먹었다.



여기 물 좀 드세요



제가 입을 댔습니다. 미스 박



괜찮아요이렇게 하면서 하루 이틀 가까워졌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쌍으로 왔으니 그들도 같이 온 사람처럼 보였다
.



몽마르뜨 언덕에는 사람들이 꽉 차 있었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서 줄을 서서 내부를 둘러보고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밖으로 빠져 나왔다.



미스터 백이 제일 늦게 문을 나오는 두 사람을 보더니




아니 저희는 두 분이 안 보여서 걱정했습니다.”




한 선생님을 좀 도와드려야 해서 좀 늦었습니다…”하며 그녀가 변명을 했다.



언덕을 바른 쪽으로 내려가는 길가에는
옛날부터 화가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 한 가페 앞에서 타고온 스쿠터를 옆에 세워놓고 검은 모자를 쓰고 십팔 세기의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자작시를
낭송한다
. 역시 프랑스 말은 부드럽고도 콧소리가 나는 아름다운 율동적인 언어이다. 한 편을 읽고 나면 청중들이 박수를 친다. 그의 얼굴 표정과 청중들의 반응으로 보아서 그 시들은
애절한 사랑의 노래처럼 들린다
. 그는 요즈음 세상에는 흔하지 않은 시를 쓰는 사람, 이곳 몽마르뜨 언덕의 가난한 시인이다.



 



그는 한 시간가량 70번 고속도로를 달려서
컬럼버스 공항에 도착하는 그녀를 맞았다
. 지난 파리 여행 후 그녀가 찾아온 것은 처음이다. 이처럼 그녀가 막상 찾아오니 쓸쓸했던 그의 가슴에 불꽃이 일어난다. 입구에서 나오는 그녀를
껴안는다
. 남들 보기에는 부녀지간 같은 포옹이다. 공항에 가까운 가야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아직 해가 있을 때 영식의 집에 도착하였다
. 그의 집에는 아내가 떠난지 벌써 삼 년 반이 넘었지만
아직도 가구며 실내 장식이 그대로 있다
. 가족사진들도 전처럼 걸려있다. 옷장에도 아내의 옷이 모두 남아있다. 사람들이 재활용으로 기부하라고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하루 이틀 넘기고 있었다
.



물론 고은은 아내의 흔적을 지우고 싶지 않은 그의 의중을 이해한다.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군요. 돌아가신 분의 모든 것이…”



미안 합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서
. 용서하시요.”



그녀는 살며시 웃으면서 그를 쳐다본다. 그가 손을 잡더니 밖으로 그녀를 끌고 나온다. 뜰에는 잘 가꾸어
놓은 정원에 모란이 한창 피어있다
. 한 철 꽃을 피우고 시들어버리는 이 모란은 아내가 가장 아끼던 화초였다.
삼 년 반 전 늦은 가을 꽃들이 다 져 버린 빈터를 바라보면서 아내는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정원을 지나가며 그녀가 놀란 눈을 뜨고 감탄한다.



정원가꾸을 잘 가꾸고 계시는군요



원래 꽃나무를 좋아하거든요. 뭐 이 일이 유일한 낙이지요그가 대답한다.



뒷뜰 정원은 산책길로 이어진다.



하늘이 흐려 오더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작은 우산을 펴 들고 두 사람은 이어지는 산책길로 걷는다.



보고 싶었어요. 어떻게 지내시는지도 궁굼하고요



나도 보고싶었오.”



그녀가 그의 팔장을 살짝 낀다. 따뜻한 체온이 두 사람 사이를 흐른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오랜만에 이루어진 이 좋은 느낌은 귀한 것이다. 모든 것을 떠나서
그녀는 이 순간만을 생각하기로 한다
.‘산 사람은 남은 시간들을 살아야 된다. 아니 그럴 권리가 있다. 성경에도 그렇게 쓰여 있지 않은가.’하면서.



그녀는 아버지같은 나이의 이 멋장이 남자가 처음에는 그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연민에서 시작된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에게 마력으로 점점 끌려가고 있는 자신을 보고 놀랐다.



산책길에는 다람쥐가 뛰어다니는데 암놈을 숫놈이 따라가는 것같이 소리를 쩩쩩거린다. 갈색 산토끼 새끼들도
깡충깡충 숲속으로 대여섯 마리가 들락거린다
. 호숫가를 떠나 집으로 되돌아왔을 때 하늘에는 구름이 옅어지고
구름 속으로 아름다운 무지개 하나가 떠올라 석양에 곱게 빛나고 있다
.



현관으로 서둘러 들어온 후 둘은
서로 포옹을 하였다
. 뜨거운 입맛춤이 그들을 침실로 이끌었다. 그녀는 파리에서 처음 나누었던 그 첫날처럼 모든 것을
그에게 마꼈다
.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이 되어가고 있는 것에 놀랐다. 그는 마음껏 그녀를 안았다. 아내가 떠난 후 거의 잃었던 모든 젊음이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 여인 앞에서 다시 육체적인 욕망이 되살아났다.



약제가 도왔는지 그들은 만족했다. 의사가 심장수술을 받아서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개의치 않았다. 덤으로 사는 하루하루가 무의미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면서 떼를 써서 의사의 처방을 받은 것이다.



그녀는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시계에 비치는 시간이 새벽 네 시다
. 희미한 윤각으로 보이는 영식의 얼굴을 보며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 이런 인연이 성령으로 맺어진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 이러한 사실 앞에 그녀는 감사한다, 처음에는 그에게 향한 연민 그런 것이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냥 행복한 이 순간만을 생각하기로 한다
.  



나이도 잊어버린 남녀의 뜨거운 밤이 계속되고 밖에서는 천둥이 또 울리기 시작한다. 번개가 번쩍거리며
어둠을 밝히더니 또다시 억수같은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한다
.  



 



걸려오는 고은의 전화가 하루하루의
그의 생활에 생기를 북돋아 준다
. 두세 주일마다 한번씩 그녀가 있는 곳을 비행기로 다녀오고 집에 돌아오면 이제 외롭지 않다.
그러나 지난번 그녀의 어머니가 하는 말이 그는 마음에 걸린다. 나이 칠십에 이십
세 년하의 여인을 어떻게 하자는 것일까
?  잘 살고있는 이 여인의 인생에 자신이 끼어드는 것 같아서 꼭 죄를 짓는 것 같이 느낀다. ‘사랑은 서로 할 수 있지만 결혼은 좀 그렇겠지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들아이는 아빠가 원하시면 자신은 좋다고 했지만
두 딸아이들의 눈초리가 매섭다
. 아빠의 외로움은 그 하나요 자신들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우선 엄마의 자리에 남이 끼어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눈치다. 엄마의 병을 미리 방지 못하고
발병 후에도 계속 과음으로 아내를 괴롭혔던 그를 원망하는 말들도 한다
. 의사인 아빠가 말로는 사랑한다면서
자신의 아내에게는 그리 무관심했으니 잘못 한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 그러나 그는 아이들이 너무 아빠의 외로움은
왜 몰라주는가 하며 원망을 한다
. 아이들에게 재산도 정리하고 양해를 구해보라고 하는 주위 사람의 의견도 있지만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 새 여인이 엄마의 자리에 들어서는 것 자체를 아이들이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그는 생각하게 된다
. 그냥 친구로서만 사귀라는 것 같다. 특히 삼십
대 중반인 결혼을 안 한 둘째 딸이 제일 눈치를 준다
. 그래서 그는 요즈음 다시 술과 친하고 있다.
그래야 잠이 온다. 아침에도 해장술을 한 잔 하면 편안하다. 성가대 대장까지 하던 수십 년 다니던 교회를 아내가 떠난 후 한번도 안 나간다니까 그녀가 성경의 구절을 설명하면서 모든 것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여 그는 다음 일요일부터는 교회에도 다시 나갈 생각을 한다
. 새로 임명된 구역장이라고
하는 강집사가 어제도 전화를 했다
.



그러나 그는 혼자서 또 술을 마시기를 시작한다. 와인을 한 병을 다 비우고나서 또 새 시바스리갈 양주병 마개를
땄다
. 그리고 계속 마시면서 희미한 등불 밑에서 톨스토이의 소설 애나카레니나를 들추기 시작한다. 며칠 째 읽어 보지만 무슨 이름이
이리도 복잡한지
하며 책장을 덮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남들보다 술을
자주 많이 마셨다
. 그래도 꺼떡없이 버티어서 야 술이 쎄구나하는 사람들에게
그를 돋보이게 했다
. 그러나 이런 일로 인해서 자신도 모르게 오랜 세월 서서히 알코올 중독이 된 것이다.
음주 후 다음 날에도 아침에 독한 술을 한 잔 하지 않으면 떨리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는 이런 것이 위험한 금단현상인 것을 안다. 환자를 다룰 때는 실수를 하면 안 되니까 힘든
일이었지만 이제는 은퇴를 했으니 누가 간섭하는 사람도 없다
.‘그래도 이만하면 잘 살았지하면서 술을 마신다.  생각해 보면 젊은 시절의 대부분의 그의 술친구들은 하나둘씩 간염, 혹은 간암이나 간 경화로
치료를 받고 있거나 이미 저세상 사람들이 되었다
. 담배까지 태운 친구들은 더 빨리 떠나갔다.
자신도 언젠가 곧 가야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녀를 대할 때 마다 결혼은
아니라고 못을 박는 이유도 여러가지이지만 이 것도 그 하나이다
. 그리고 정말 고민스러운 것은 아무리 해도
이십 세 연하의 여자를 상대하려니 요즈음은 힘이 너무 든다
. 머리회전도 빨라져야 하고 생활 템포도 고쳐야만
따라 갈 수 있다
. 솔찍히 말해서 늙은 몸으로 욕심을 너무 부리는 것 같다. 큰 죄를 그녀에게 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아내의 흔적과 모든 지난 추억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 곳을 떠나기도 싫은 것이다
. 그녀가 살고있는 복잡한 도시에 가서 무엇을 하겠는가.
그녀는 생활이 너무도 바쁜데 자신은 좁은 아파트에서 그녀가 없는 시간은 혼자서 집이나 지키란 말인가하면서 고민한다.
그에게는 답답하고 못 할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



내가 나쁜 놈이지 한 여자의 인생을 망치고 있다니.’취중에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잔 한잔을
기울리다 보니 자정이 지났다
. 오늘은 하루 종일 그녀한테서 자주 걸려오던 전화도 오지 않았다.
지난번 떠나기 전에 몹시 싸웠었는데 그가 무슨 큰 잘못을 했었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그가 잘 모르는 일이 생긴 것이다.



그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또 한 병의 양주를 다 마신 것이다.



머리가 어지러운 듯 시야가 흐려진
듯 그는 소파를 더듬는다
.
언제부터인가 모르지만 창가에 하얀 드레스를 입은 아내가 서 있다. 어두운 밖을 내다보고
있다
. 호숫가를 내다보는 그녀는 분명 하늘에서 내려온 고운 선녀의 모습이다. 달빛이 은빛 싱크에 비치고 풀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아내 곁으로 비틀거리며 가 섰다. 같이 밖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잘 보이지 않는 밤이다.



여보 당신 무엇을 보고 있어?  나를 돌아다 봐요. 어디 아픈 데는 없소?”



나 바나나가 먹고 싶은데요, 왜 나 옛날 미국에 오기 전에 서울 떠나기 전에 먹고 싶었던 바나나,
그 바나나가 아직도 먹고 싶어요.”



영식은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그의 손은 떨고 있었다. 한없이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일주일 전 그의 집에 불이 나서
모든 것이 다 타버렸다
.
아직도 그 화재의 원인에 대하여 당국과 보험회사에서 조사를 하는 중이지만 호숫가 외딴 오래된 집이라 지하실에서 냄새가
없는 가스가 누출되어 위로 올라가면서 불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고 한다
. 혼자서 그가 잠이 들었을 때 발생
하였으면 그런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한다
. 갑자기 솟아오르는 폭팔적인 불꽃은 멀리 밤하늘을 찔렀다.
차고에 있었던 그의 자동차에서 불이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몇 년 전에도 병원 주차장에서
엔진의 이상으로 그의 유럽제차에서 저절로 불이 난 일이 있었던 것처럼
. 불은 집 주위를 지나가는 송전선에도
인화가 되어 서북쪽 타운의 정전사태를 만들었다
. 수리하는데 이틀이나 걸렸다. 혹은 그가 혼자서 밤새도록 마셨을 알콜의 영향으로 불조심을 잘 못해서 화재가 일어났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가 자살을 했으리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거의 숫덩어리처럼 참혹하게 타버린 그의 시신을 소방대원이 발견하여 응급실을 거쳐 장의사로 옮겼다. 부검의사들의 시체
확인이 끝난 후 화장을 완료하였다
.



오늘은 그의 아내의 시신이 뿌려진
이 호숫가 숲속에 바이오 자루에 담긴 그의 유해를 수목장으로 묻어주는 날이다
. 친구 한 사람이 추도사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한영식 동문이 우리
곁을 떠난 것이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



오늘은 그의 귀한 육신의 흔적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날입니다.



이 세상에서 열심히 살다간 그를 기리기 위하여 이 자리에 우리는 모였습니다.



그는 특이한 인생철학과 많은 재능과 준수한 용모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사랑하던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내고 외로움을 달래며 슬픈 나날을 보냈던 그를 여러분들은 잘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뛰어난 두뇌와 활달한 성격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 그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명문교육과정을 끝마치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사십년 전 미국땅으로
건너와서 이곳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 전문의사과정을 끝내고 이 도시에서 은퇴 할 때까지 훌륭한 의사로서 명성을 날렸습니다
.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



대부분의 여러분들처럼 저도 그를 반세기 전 어린 학창시절에 처음 만났습니다. 늘 새로운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친구였습니다.
술과 음악을 늘 좋아하였던 그의 주변에는 많은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그를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들!



오늘 우리는 그의 희망대로 그의 육신의 흔적을 호숫가 이 숲속에 잠 재우려 합니다. 밤에는 별들과 동무하고
아침이면 이슬에 반짝이는 바위들처럼 그의 영혼은 이제 여기에 무거운 육신을 내려 놓을 것입니다
. 모든 육신은
결국 분해되어 자연으로 되돌아 갈 것입니다
. 그리고 그의 영혼은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자유로운 영혼은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가 오랫동안 사랑하던 여러분들!



그의 영혼은 그가 발자국을 남긴 모든 땅 위에, 연건동 대학로에,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전쟁터에
, 어마마마한 눈이 쌓였던 살을 에이는 차가운 바람이 불던 전방 고지에 그를 기다리던 가난한
환자들이 살던 전기도 수도도 없었던 무의촌에 그리고 그가 다정한 손길로 돌보아주던 아픈 환자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



그의 영혼은 슬픔에 잠긴 사랑하는
아드님과 따님들의 가슴속에도 그리고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



벗이여 당신의 무거운 육신이여, 이제 이곳 오하이오
호숫가 숲속에서 편안히 잠드소서
.



벗이여 당신의 아름다운 귀한 영혼이여,



이제는 이생과 저생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영원히 자유로워지소서.



2013 10  
친구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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