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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회 워싱턴문학 신인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
제 16회 『워싱턴문학 』 신인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 *************************************************** 아버지의 당부 -김 레지나
“아버지, 제 이름이 뭐예요” 온 집안에 울려 퍼지도록 목소리를 높여 묻지만 전화 저편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다. “아버지, 제가 누군지 아세요?” 또 한동안 침묵이 흐르다가 아버지 곁에 있던 오빠가 ‘아버지 딸’이라고 일러주길 몇 차례한 후에야 희미하고 젖어드는 목소리로 ‘따---알 ‘이라고 길고 처량하게 말씀하신다.
아버지의 그 당당하고 훈육적인 목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오랜세월 공직 생활를 하신 이유인지 아버진 항상 우리 자매들에게 교과서같은 삶을 살라고 강조 하셔서 우린 아버지 앞에선 ‘녜’하지만 뒤에선 요즘 세상 어찌 그렇게만 살겠냐고 투정을 부리곤 했다. 그런 삶을 보내신 아버지로 인하여 우린 어린 시절 여러번 불편을 겪었던 기억을 지니고 있는지라 더 불만스러워했다.
그런 아버지께서30여년 전 사랑의 열기에 온통 휩싸여 태평양을 한걸음에 넘어뛰려는 고명딸에게 하신 아버지의 당부는 확고하셨다. 한국인임을 잊지 말고, 시부모님을 잘 모시고, 아이들을 사람답게 키우라 하셨다.
모 든부모들이 결혼하여 떠나는 자녀들께 들려주시는 덕담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난 미국 남편 따라 조국를 떠나는지라 아버지의 당부가 한동안은 마음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듯이 바쁜 생활과 마음의 여유가 없이 지내는 날들이 계속되면서 자연히 아버지의 당부는 잊고 지내게 되었고 그런지 30여년이 지나 버렸다. 그 러다가 몇년 전부터 삶의 흔적이 하나 하나 아버지의 기억속에서 지워져가기 시작하고 아버지의 목소리에 교훈이 실려있지 않자 의식의 밑바닥에서 오늘의 나를 다져주는데 가장 큰 지표가 되었을게 틀림없는 아버지의 당부가 마음가득히 차오르며 이제야 지나온 시간을, 오늘을, 그리고 앞날을 가늠해보는 지혜가 생겼다.
한국인임을 잊지말라 하셨던 당부는 한국말 잘하고 한국 문화 좋아하는 미국 남편과 한국인의 피가 섞여있음을 자랑으로 여기는 아이들을 보면 ‘한국’이란 이름에 누를 끼치지는 않은 건 확실한 것 같다. 게다가 남편이나 아이들 모두가 ‘한국 음식 예찬론’을 만나는 친구들 모두에게 펼치니 이 또한 자랑스럽기만 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아들들이 우리말이 서툴러 정, 눈치, 맛과 멋등의 미묘함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한 점 이다.
시 부모님 공경하라는 말씀은 미국 시부모님이기 때문에 너무 쉽게 아버지의 당부가 이행된 듯 싶다. 일년동안 한집에 살면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시행착오가 있긴 했지만 시부모님 께서 한국을 다녀오신후론 모든게 순조롭고 한국 며느리를 항상 앞장 세우셨다. 결혼 직 후 아버지께서 시부모님께 보내신 편지도 우리네 정을 이해하시는데 한 몫을 단단히 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매달 시어머님께 용돈 보내드릴 때마다 친정 어머니 살아 생전에 모든걸 오빠들께 맡겨 버리고 용돈 한번 정기적으로 보내드리지 못한 게 가슴이 아린다.
아 이들을 사람답게 키우라는 말씀은 어디서 어떻게 정답을 얻을 줄 몰라 남편하고많이 의견을 달리했던 것 같다. 될 수 있는대로 이리 가라, 저리가라 손가락질 하려하지 않고 옆에서 같이, 뒤에서 조용히 힘찬 박수 보내주는 남편한테 많이 배웠다. 칭찬 받고 칭찬하는 게 익숙치 않아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젠 작은 일에도 최고의 찬사를 보낼 줄도 안다. 얼마 전 독일로 유학 떠나는 아들에게 ‘왜 엄마 곁을 떠나서 대서양 아이들 모두 제 자리 찿아 날고 있도록 이끌어 주는걸 사랍답게 키운거라 인정해 주신다면 이제야 정답에 근접은 한 것 같다.
아버지의 당부가 이렇듯 삶의 중심이 되었음을 어찌 이제야 깨닫게 되었는지 부끄러운 마음으로 아버지께 말씀드린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냐.” 라는 아버지의 애잔한 목소리가 나를 30 년 전의 아버지의 고명딸로 되돌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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