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6회 『워싱턴문학 』 신인문학상 소설부문 우수상 ◆ ****************************************************************
낙조
-박숙자
토요일 오후, 잠옷과 세면도구를 챙겨 친구 집으로 향한다. 12월인데도
봄 같이 화창하고 하늘은 마냥 푸르다.
한국에서 가져온 돈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중고
도요타를 샀는데 다행히 말썽이 없다. 들판을 가로질러
13번 도로를 달린다. 나의 삶도 이렇듯 순조로이 진행되었으면 좋으련만…….
나는 이정임, 한국에서 대학 입시학원
영어 교사로 일하다가 이곳에 왔다.
남편은 5년 전 세상을 떠났고 외동딸 지영은 36세로 아직 미혼이다.
우리 어머니는 사위가 간 뒤 시름시름 앓더니 돌아가셨고 그 후
아버지마저 저승으로 떠나셨다. 줄 끊어진 연(鳶) 같았던 나는 딸을 찾아
미국에 왔다.
미술사를 전공한 지영은 명문 펜실베니아 대학 박사학위를 갖고도 직장이 없다. 처음에는 대학에 자리를 구했으나 하늘의 별 따기라
이제는 미술관 안내원이라도 할 생각인 것 같다. 직장이 있어야 영주권이 나오는데 영주권 없이는 직장을 구하기 어렵다. 911 사태 이후 이민 강화 조치로 영주권 받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오죽 포원(抱冤)이 졌으면 딸 낳으면 ‘영주,’아들 낳으면 ‘시민’이라 이름 짓겠다 할까?
13번 도로 오른편에 허름한 임시 건물들이 띄엄띄엄 보인다. 동부 해안 지방인 이곳 델마바 반도에서 흔히 보는 양계장이다. 이곳은 미국 양계의 중심지인데, 이 주변의 농부들이 사료 배합, 항생제 투여 등 계약 조건에 맞게 사육해 정확한 시기에 대기업의 도계장(屠鷄場)으로 보낸다.
이곳 한인사회에서는 도계장을 흔히 '닭 공장'이라 한다. 나는 그 말에 익숙해지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남미계 이민자들은 물론 한인들이 영주권을 받기 위해 소위 닭 공장이 많은 이곳을 거쳐 갔다. 많을 때는
100가구가 넘었다고 하나, 911사태 이후 한인 수가 많이 줄었다.
외동딸이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여 나는 할 수 없이 이민을 결심하였다. 영주권 신청에는 직장이 있어야 된다고
하여 김창수 이민공사의 주선으로 닭 공장에 일자리를 얻었다. 2년 전에 수속비용 3,000만 원을 주었 는데,
된다 된다 하면서 질질 끌어오다가 지금 와서 앞으로는 영주권 수속을 대행해 줄 수 없다는 편지만 보내왔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절차가 어려워져 고객들의 불평이 많고 이민 공사들이 파산한다는 소문도 나돌아 걱정하고 있었다.
이제 내 영주권 수속은 어떻게 되며, 나같이 순해 빠진 인간이 망해가는
회사로부터 어떻게 돈을 받아내나?
친구 집이 가까워진다. 숭자는 한동네에서 자란 소꿉친구다.
골프장 옆에 살아 의사로 은퇴한 남편과 매일 골프 친단다. 친구는 공 치며 소일하는데 나는 허구한 날 닭이나 잡으며 세월을 보낸다. 그것도 시간 당 8불의 임금을 받으며. 그 돈으로는 비싼 생활비 때문에 겨우 입에 풀칠한다.
친구네 동네 들머리에 연립주택들이 꽉 들어차 있다. 지금도 여기저기 집 짓느라 뚝딱거린다. 주말에 남편이 자기
삼촌을 방문하러 가고 없는 사이에 여고 친구들을 부른다고 했다. 워싱턴 지역에서 오는 영주는 컴퓨터 회사 사장, 벌티모아 지역에서 오는 정혜는 약사다. 워싱턴은 서북쪽, 벌티모아는 동북쪽, 이곳에서
비슷한 거리이며, 자동차로 두어 시간이다. 미국에 오래 산 저희끼리 만나면 생활 감정이 잘 통할 텐데,
여기 온 지 2년밖에 안 되고 형편이 어려운 나를 왜 구태여 오라고 하나? 내가 가까이 사니까, 또 날 생각해서
오라는 것이겠지 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몇 구비 동네 길을 돌아
겨우 번지로 찾아 초인종을 누른다.
“아이고 가시나야, 어서 들어 온나. 그 곱던 얼굴이 왜 이 모양이 됐노? 살이 쏙 빠졌네. 니는 차리고 나서면 근사했는데.”
“니는 고생을 안 해서 여전하구나. 그래도 나이 든 티가 나네. 피부가
까칠하고.”
“나이에 장사 없다. 우리도 이제는 환갑 진갑 다 지났다. 여기 좀 앉아라.
가시나들 곧 올 끼다.”
“같이 저녁 준비하자.”나는 코트를 벗고 소매를 걷어붙인다.
싱크 옆에 도라지나물이 보여 소금 넣고 빡빡 문질러 씻고 갖은 양념으로 무치기 시작한다. 시금치도 데쳐서 무치고 냉장고를 열어 김치도
꺼내 썬다.
“척척 알아서 해주니 쉽네.”
“이거 다 닭 공장에서 단련된 솜씨다. 털 뽑아놓은 닭을 2초에 한 마리씩
빙빙 돌아가는 고리에 거는 게 내 일이야.”
“야야, 2초에 닭 한 마리씩 건다는 게 말이 쉽지.”
“그러니 손이 빨라야지. 고리에 걸면 자동으로 닭이 여덟 토막나고, 포장까지 돼 나와. 거기서 단련된 내가 무엇을 못하랴?”
익살을 부린다고 한 말인데 숭자의 얼굴이 심각하다. “니가 왜 그렇게 힘든 일을
해야 되는지 나는 알다가도 모리겠다.”
친구를 공연히 신경 쓰게 하기 싫어서 이민공사에서 온 편지는 얘기 않기로 한다. 숭자가 알면 수선이나 떨지 아무 도움이 안되니까.“얘, 걱정하지 마. 요새는 여자들한테 좀 쉬운 일을 시켜. 곧 딴 부서로 갈 거야.”
“딴 아이들은 집이 멀어 저녁때가 되어야 온다. 우리끼리 드라이브나 하면서 얘기 좀 하자.”
숭자의 벤츠는 내 똥차보다 과연 편하다. 오션시티 방향으로 달리는데 친구는 무슨 중요한 얘기나 할 것처럼 망설인다.
“무슨 이야기인데 그렇게 뜸을 들이실까?”
“정임아. 이 말 하기 전 많이 생각했다. 우리 그이가 자기 삼촌 만나러 갔다고 했지?
우리 시삼촌은 연세가 80인데, 워싱턴 근교 락빌에 혼자 살고 있으니까 우리 집에 자주 오셔. 노인이 장거리 운전을 못해서 우리 그이가 싣고 다닌다. 오늘 밤은 그 집에서 자고 내일 모시고 온다. 그런데 이 영감탱이가 올 때마다 착한
여자 소개해 달라고 조른다.”
“미쳤어.”
“웃기는 것은 시집 오고 싶어 하는 여자들이 많대. 그것도 60대 여성들이.”
“왜?”
“이런 숙맥! 그것도 몰라? 이분이 미국 시민이거든. 대학교수로 은퇴했고 먹을 것도 있어. 게다가 이분이 돌아가시면 배우자 혜택이 있거든. 방문 비자로 온 여자들이 그걸 노리고 관심을 보여. 너도 이런 분이 필요하잖아?”
“가시나, 농담을 해도 분수가 있지. 영주권 때문에 내가 매춘이라도 하라는 거야?” 나는 모욕감으로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매춘은 무슨 매춘! 니가 뭐 봄이냐? 가을이지. 가을도 한참 지났지. 가을 추, 매추야.”
나는 묵묵히 앞만 보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우리가 지금 가는 오션시티는 여름 휴양지야. 우리 아이들 클 때 자주 갔었는데 남북으로 기다란 섬이지. 겨울 바다를 바라보며 차나 마시고 기분을 내자. 응?”
그 러나 정작 찾아가니 겨울이라 피서객은 자취도 없고 가게는 전부 철시하여 차 한 잔 마실 곳도 없다. 우리는 할 수 없이 차를 돌려 본토
쪽으로 향한다.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기나긴 다리 위를 달리며 바라보는 저녁노을이 기가 막힌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구나.
친구도 같은 생각인가 보다. “정임아, 저 노을 좀 봐라. 죽여준다. 아!
낙조의 현란함이여!”
마음이 조금 풀어져 나도 한마디 한다. “우리 인생도 이제 낙조네.”
다리가 끝나는 곳에 차를 멈춘다. 반세기 넘도록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우리, 어깨동무하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서쪽 하늘, 그리고 바다에 반사되는 낙조를 넋 빠진 듯 바라본다.
다시 집 쪽으로 달리는데 바다가 끝나고 들판이다. 이젠 수평선이 아니라 지평선 위로 노을이 계속 붉게 탄다.
“정임아, 마음은 아직도 이팔청춘인데…….”
“육십이 넘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우리가 돌아온 지 반 시간도 안되어 영주가 도착한다. 밍크인지 뭔지 짧은 재킷을 입고 있는데
참으로 예쁘다. 옅은 회색이며, 얇고 가벼워
요새 입기에 꼭 알맞은 것 같다. 저 애는 어디서 저런 걸 샀나, 얼마를 주었을까?
내 검정 모직 코트는 세일에 40불 주고 샀는데, 오늘같은 날씨에는 너무 두껍다. 영주의 얼굴은 기름이 자르르 흐른다. 내외가 다 컴퓨터를 전공하여 같이 사업을 하다가
남편이 간암으로 죽자 영주가 회사를 맡은
후 사업이 더 잘된다고 들었다.
숭자가 반색을 한다."사장 오나?”
80세 노인 이야기로 나는
아직도 심란한데 영주를 보니 내 처지와 비교되어 더욱 주눅이 든다. 그러나 용기를 내 허세를 부린다.“오늘 우리 쌍 과부 만났네!”
“가시나 논다.”
영주가 제킷을 벗으며 내 말을 받는다. 빨간 카쉬미어 스웨터에 검정 실크 바지가 어울린다.
“과부가 빨간색이 웬 말인고?” 숭자의 말.
“지랄하네. 그럴수록 밝게 입고 명랑하게 살아야지. 쭈굴시고 있이만 누가 쳐다보기라도 하는 줄 아나? 니는 서방 있는 년이라 과부 사정 모린다.”
집주인 숭자는 영주를 데리고 응접실로 간다. 숭자는 피아노를
전공하여 손끝으로 물이나 튀기며 부엌일은 뒷전이다. 친구들을 불러 놓고도 준비해 놓은 반찬이 없다.
음식도 안 해놓고 드라이브하자던 그 배짱이 어이없다. 팔자는 길들이기
나름이라더니 오나가나 제 몸 하나는 편하구나. 나는
할 수 없이 냉장고를 뒤져 부추전 부치랴, 상 차리고 반찬 준비하랴,
부엌일은 슬며시 내 차지가 되어 버린다.
마지막으로 정혜가 도착하여 우리 넷은 식탁에 둘러앉는다. 정혜의 첫마디.“배고파 죽겠네.
나 온종일 약방에서 일했다. 이거 순 풀밭이네. 남의 살 좀 내놔라.”
그러고 보니 식탁에 고기가 없다. 나는 멸치볶음을 냉장고에서
찾아 내놓는다. “옜다, 남의 살 여기 있다.’
영주가 한 마디 한다. “시끄럽다, 가시나야. 나물이 몸에 좋다. 우리 언제 고기 묵고 자랐나? 금방 구운 부추전이 별미네. 끝내 준다.”
고기 있네 없네 하던 것은 공연한 소리이고 모두 걸신 든 것처럼 먹어댄다. 숙명여대 약대를 나온 정혜는 항상 표준말만 쓴다. “오늘 약방에서 일어난
일이야. 내가 일하는 곳은 양로원 노인분네 약만 취급하는 특수 약국이야. 그래서 치매, 혈압, 콜래스테롤,
당뇨 약 등, 노인 약만 취급한다. 그런데 난데없이 바이아그라 처방전이 들어왔어. 환자는 82세.”
“야야, 그 나이에도 그걸 하나?”하고
숭자가 심각하게 묻자, 모두들 배를 잡고 웃는다.
“양로원에는 할매들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할배들이 항상 불려다닌단다.”
“노인 약만 취급하는 느그 약방에도 그런 약 갖춰 두나?”
“과연 넌 사업가라 다르구나. 재고(在庫)에 관한 질문을 하네. 그 약 되게 비싸거든.
특별 주문해서 노인한테 보냈지. 그런데 그 놈의 약이 오늘 되돌아 온 거야. 어떻게 되었느냐고 전화했더니 할배가 어제 갑자기 죽었대. 의사한테 졸라서 겨우 처방을 받아놓고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저녁 식사가 끝나자 정혜가 설거지하겠다고 자원한다. 약방에서 온종일 일하여 고단해 보이건만
숭자는 두말하지 않고 맡긴다. 저녁준비를 나 혼자 도맡아 했는데 설거지까지 할 수는 없지.
정혜를 생각하면 찜찜하지만 내 몸도 생각해야지.
모두 거실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 영주가 탁자 위에 다리를 길게 뻗으며 하는 말.“신문에 김창수 이민공사 얘기가 났더라.”
이곳 한인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났으니 친구들은 이야기 삼아 떠들고 싶겠지만 나는 피하고 싶은 화제다.
숭자가 아는 체 한다."몇 년 전에 이곳 한국 신문에 났더라. 소위 3D이라는 직종 있잖아. Difficult, Dirty,
Dangerous, 어렵고, 더럽고, 위험해 아무도 안 하려는 닭 공장에서 노동하는 한국인들 90퍼센트 이상이 화이트칼라
출신이었대.”
영주의 말. “야, 그 사람들은 그래도 초기에 그런 걸 겪고 영주권을 땄으니 그래도 괜찮아. 문제는 911사태 후 심사가 까다로워져 요새 어정쩡하게 걸린 사람들이다.”
듣다못해 내가 한마디 한다.“야, 가시나들아, 시끄럽다. 내가 그렇게 어정쩡하게 걸렸다. 너그들 백 번 떠들어도 나한테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설거지를 하며 듣고만 있던 정혜가 일을 끝내고 손을 닦으며 거실로 와 화제를 바꿔준다. “얘들아, 치매 예방법이 50가지나 있는데
가르쳐 줄까?”
8시도 되기전에 나는 잠이 쏟아진다. 매일 꼭두새벽에 일어나 일하러 가야 하므로 초저녁에는 세상없어도 자야 한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숭자가 내 어깨를 툭툭 친다.“야야, 정임아,
자러 가거라.”
“비몽사몽이네.”
숭자에게 끌려 저희 내외의 커다란 침대로 가서 벌렁 드러 눕는다. 내가 자리를 비키면 닭 공장 얘기로 돌아가 저희끼리 깨가 쏟아지겠지.
새벽에 깨어 보니 숭자가 내 옆에 자고 영주와 정혜는 카펫 깔린 방바닥에 이불을 하나 깔고 또 하나는 덮고 곤히 잠들어 있다. 옷 입은 채로 잠이 들었던
나는 살그머니 거실로 나온다. 탁자 위에는 땅콩 부스러기, 빈 포도주병 또 소주병까지 있어 꽤 어지럽다. 새벽 4시라 바깥은
아직 칠흑인데 뭘하며 시간을 보낼까? 집 안을 둘러보다가 현관 쪽 서재로 가서 불을 켠다.
‘냇트 터너의 고백’이란 책이 눈에 띈다. 영문과
동창이 미국서 보내줘 감명 깊게 읽은 책이다. 숭자의 영어 실력은 내가 안다. 남편은 의사지만 소설 읽기 좋아한다더니 그의 것인가 봐.
1831년, 그러니까 노예들을 해방한 ‘남북 전쟁’보다 3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그린 실화소설이다. 백인 작가 윌리엄 스타이론이 노예의 입장이 되어 주인공 냇트 터너의 의식세계를 그린 일인칭 소설이다. 그는 어릴 때 집안 심부름을 하며
주인의 총애를 받아 그 당시 노예로서는 드물게 읽기와 쓰기를 배웠고 성경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는 농장이 경영난에 빠지자 딴 노예들과 함께 다른 농장으로
팔렸다. 그 후 또 주인이 바뀌어 배고픔을 참아가며 뙤약볕 아래서 혹사를 당했다.
한 번 읽은 이야기인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나도 모르게 주인공 냇트 터너와 나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고 있었다. 닭 공장에서
자동 포장기의 노예가 되어 분초를 다투며 남미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작업해야 하는 나,
뙤약볕 아래 일하는 대신 나는 형광등 불빛 아래, 기계 소음 속에서 일한다.
게다가 그 주인공과 나는 머리에 먹물이 들어 고뇌가 많은 것까지 비슷하다.
딴 노예들이 혹사를 당해도 배고픔만 해결해주면 순종하는 동안 주인공은 이를 악물고 참으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다. 마지막 주인은 약속한 햇수만 채우면 노예 신세에서 해방시켜 주마고 했다. 그러나 주인이
빚에 몰리자 냇트 터너는 또 다시 노예 상인에게 팔리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딴 노예들을 선동해 주인과 그 가족, 또 이웃 농장 주인 등 백인 17명을 죽였다. 그일로 더 나은
세상에 살기는 커녕 32세의 한창 나이에 처형 당했다. 그가 주인에게서 배반 당한 사실은 내가 3,000만 원을 떼이고 이년을 닭공장에서 허송한 것과 비슷하다.
창 밖이 밝아 온다. 책을 덮고 머리를 쉴 겸 반코트 차림으로
조용히 집을 나와 희부연 여명 속에 집 뒤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골프 코스가 내려다보이는 산책로를 따라 끝없이 걸어가다가
숲과 연못 위 나무 의자에 앉는다.
몸은 아픈 데가 없는데 가슴이 왜 이토록 답답한가? 젊었을 때는 아침에 깨면 걱정할 것이 없었다. 남편은 부지런하고 착해 생활 걱정이 없었다. 지영이는 공부 잘했으며 성격이 괴팍했지만 크게 속 썩이는 일이 없었다. 게다가 부모님이 옆에 계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위장이 안 좋아 제산제를 자주 복용하던 남편이 위암 진단을 받았다. 그가 암으로
죽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암이란 딴 사람들이나
앓는 병이라 생각했었다. 유행가 가사에 ‘영원을 태우리…….’하더니 영원이 어디 있냐?
자식 위주로 살고 자식 위주로 인생을 계획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나락에서 헤매는 듯한 내 혼란의 원인은
지영이다. 몇 번 남자를 사귀었는데 처음 둘은 한국 아이, 그 다음에는 백인, 내가 아는
것만도 세 번이다. 실패할 때마다 상처는 여자가 더 큰 법, 이제 36세인데 나이가 든 티가 나고 그 예쁜 모습도 사라졌다. 허구한 날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꼴을 안 보려고 친구 집에 왔는데 나는 왜 그 애 생각을 떨치지 못하나? 깨어 있는 동안 내 의식 밑바닥에는 항상 그 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아무도 없는 골프장을 내려다보다가 “엄마!”하고 소리 지른다.“엄마! 아부지! 여보, 나 어떻게 해?”
미국이 기회의 땅이라고? 기회 좋아하시네. 이게 뭐야? 이 나이에 이게 뭐야? 계속 목청이 터지게 소리 지른다. 그리고 엉엉 울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렇게 큰 공간에서 내 감정을 발산할 기회가 없었다. 그것은 크나큰
사치였다. 더구나 최근에 지영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나한테 온 후로 딸 시집 사느라 큰 소리 한번 못했다. 오늘 이 순간이 내게는 유일한
기회다. 나는 배에 힘을 주며 목청이 터지게 일갈한다.“그래, 소리 한번 질러보자!”
드디어 정신을 가다듬고 눈물을 닦으며 손목시계를 보니 8시 반, 친구들 아침 먹을 시간이다. 할 수 없이 숭자네 집 쪽으로 향한다. 소나무 사잇길을 따라 골프장 못을 몇 개 지나 하염없이
잠에 취한 사람처럼 걸어간다. 이제 저만큼 동네가 보인다. 지금쯤 모두 깨어 있겠지. 그 애 집이 가까워 진다. 거실 창문 커틴이 환히 열려 있고 친구들이 잠옷 입은 채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인다.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한적한 오솔길이고 이른 아침이라 커틴을 열어 놓은 모양이다.
베란다로 다가서는데 큰 유리문을 통해 숭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 시삼촌이 오늘 우리 집에 온다. 나만 보면 착한 여자 소개해 달라고 조르네. 이 할배가 자기 나이는 생각지도 않고 젊은 여자만 찾는다. 너그들 좋은 생각 없나?”
망할 가시나, 또 그 소리. 나는 혀를 찬다.
“정임이 한테 소개해 주라마.” 영주의 말에 모두 깔깔 웃는다.
친구들에게서 받는 모욕과 패배감으로 나는 담벼락에 기대어 털썩 주저앉는다.
“영주야, 너도 과부 아냐? 생각 있어?” 정혜의 목소리.
“내가 뭐 답답해서 꼬랑네나는 할배 양말 빨라 카겟노? 착한 여자 소개해 달라고 하는 것 보니, 밥술이라도 끓여 줄 사람을 구하는 모양인데, 나는 귀찮다. 7년 연하 남자
만나 집안일이나 시키고 나한테 잘해주겠다면
모릴까. 팔십노인 데려다 양로원 차릴 생각 꿈에도 없다.”
“점입가경이네. 얼굴이야 반반하지만, 너도 60줄이다. 7년 연하 남자가 돈 보고 오지, 니 보고 오겠나?”
“솔직히 말해서 젊고 늙고 간에 다 귀찮다. 남편 병구완해봐서 아는데, 죽는 게 예삿일이 아이더라. 남편 죽는 거 한 번 보지, 두 번 볼일은 아이다. 나는 이제 늙을 준비, 또 죽을 준비를 해야지. 인제 와서 다른 인연 맺을 생각 추호도 없다.”
“정임이 이 가시나는 도대체 어디 가서 아직 안 오노?
할 수 없다. 야들아,
아침 먹자.” 숭자
목소리다.
얼마 동안이나 담벼락에 기대고 앉았을까? 엉덩이가 축축하게 젖어 슬며시 일어선다. 지금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친구들
앞에 불쑥 나타날 수 없어 뒤쪽 유리문을 통해 들어가려던 애초의 생각을 버리고 집 앞으로 간다. 핸드백이랑
내 물건을 갖고 나왔더라면 지금 당장 차 몰고 떠나버리련만. 그러나 어쩌랴? 하는 수 없이 앞문으로 가서 초인종을 누른다.
“너 흉보고 있는데 오네.” 정혜가 문을 열면서 하는 말.
“나 같은 여자, 흉볼 게 뭐가 있다고.”
아침부터 밥 먹을 모양인지 콩나물 삶는 냄새에 된장찌개 끓는 냄새까지 요란하다. 거실에 들어서니 숭자가 나를 반긴다. “정임아, 니 어디 갔다 인제 오노? 니가 없으니까 우리 약쟁이가 풋고추 빡빡하게
썰어 넣고 빡빡장 끓이고 있다. 보리밥하고 같이 묵으면 둘이 묵다가 하나 죽어도 모린다.”
“그래?”하고 얼버무리지만,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나를 그 노인에게 견주며
재미삼아 지껄인 것이 괘씸하다. 그런데 풋고추 썰어 넣고 끓이는 그 된장 냄새가 나의 위를 자극하여 걷잡을 수 없이 배가 고프다. 마음이 착잡했던 것은 뒤로하고 육체의 욕구가 먼저다.
모두 둘러앉아 된장에 보리밥 비벼 맛있게 먹는다. 나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들과 같이 앉아 빡빡장을 먹는다. 이렇게 맛있는 것은 처음이다.
“너희 밥해 먹이기 쉽네.
돈도 안 들고.”집주인의 말.
“늙은 년들이 게걸스럽게도 먹어댄다. 그 재미밖에 없는 모양인지.” 영주가 하는 소리.
“시장이 반찬이다.”정혜의 말.
나도 한마디 해준다. “좋은 친구도 반찬이고,”
섭섭함을 품고 있으면 나 자신을 끊임없이 갉아먹으니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잊어버리자.
오후에는 집 먼 친구들이 먼저 떠난다. 나는 가까이 사니까
좀 더 있다가 가라고 숭자가 붙잡는다.
“가시나, 붙잡는 데는 뭐가 있네. 고사리만 볶아 주고 갈게.”
“저녁 묵고 가라.”
“싫다.”
고사리나물 맛을 보며 숭자가 하는 말. “니가 한 음식은 어째 이렇게도
맛있노? 너는 맘이 넓어서 해주고 또 해주고, 너 가진 거 다 주고. 이 세상에 너 같은 사람만 살았으면 좋겠다.”
“비행기 태우지 마라. 돈은 줄 거 없다. 한국서 가져온 돈 곶감 빼먹듯 한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 시삼촌 어떠노?”
“또 그 소리!”
“그분 심성이 괜찮고 니가 필요한 거 다 갖추고 있다. 그분이 필요한 건 너 같은 사람이다. 오겠다는 사람 있어도 한 치 사람 속을 몰라 용단을 못 내리더라. 막말로 그분이 돌아가신다 해도 배우자 혜택이 있을끼다.”
“시끄럽다. 니가 뚜쟁이냐? 경우를 바꿔 생각해 봐라. 니는 기분이 좋겠나? 아니면 너의 짐 덩이 나한테 맡기겠다는 심산이냐?”
숭자는 대답하지 않고 무채만 썬다. 나는 그것을 받아 볶아서 뜨물을 붓고 소금 간을 맞춘다. 이제 집에 가야 한다. 내일 아침 일찍 일하러 갈 준비도 해야 하고 또 지영이가 뭘 하고 있는지 봐야 하고. 국이 끓는데 문소리가 난다.
숭자가 쫓아 나가더니, “아주버님 오십니까?” 어쩌고저쩌고 하고 있다.
이눔의 가시나. 고의로 시간을 끌었구나. 자리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숭자 남편이 들어온다. 얼굴이 불그레하고 체격이 좋다.
호남형인데 나를 처형이라고 부른다.“아이고, 처형 와 계시네요.”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능청을 떤다. 뒤따라 들어 오는 노인은 회색 양복에 빨간 줄무늬 넥타이를 맸다. 마른 편이다. 그 나이에 이직도 머리가 검다. 두 사람이 일찍 들이닥치는 바람에 금방 떠나 버릴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그들과 같이 이른 저녁을 먹는다. 나는 왜 이렇게 맺고 끊는 데 없이 사람이 물러
터졌나? 내가 생각해도 화가 난다. 식탁은 조촐하지만
맛깔스럽다. 베란다에서 가스불로 구운 고등어, 새하얀 뭇국과 나물. 노인이 가져온 청주를 내 잔에 가득 따라 준다.
“이렇게 맛있는 뭇국은 처음 먹어. 고사리나물도 기가 막히네. 이게 바로 천상의 맛이야. 이런 음식은 돈 주고도 못 사먹어.”
노인이 어쩌고저쩌고하고 있다. 정성스레 만든 음식이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저러랴. 불쌍한 생각이 들어 얼굴을 쳐다보다가 그의 눈과 마주친다. 그 선한
얼굴, 아버지가 생각난다.
“어째서 아주버님은 정임이 만든 것만 갖고 그러십니까?”
“누가 뭘 만들었는지 내가 알아야지.”
어둡기 전에 떠난다는 핑계로 저녁 숟갈 놓자마자 나선다. 숭자는 나를 더 붙잡지 못한다. 노인은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다. 13 번 도로를 달리는데 내 신세가 처량하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하는 현제명의 노래가 있었지. 오늘도 들판에 해가 진다. 아니, 저녁노을로 들이 활활 타고 있다. 양계장마저도 어두운 들판에 가을 추수하여 쌓아 놓은 낟가리같이 보여 정취를 더한다. 어제 숭자가 낙조의
현란함이여!”라고 하더니. 남은 인생 현란하게는 못 살망정
지영이를 위해 또 나 자신을 위해 의미 있게 살고 싶다.
낡고 좁은 아파트에 돌아오니, 딸은 거실 소파에 누워 있다.
어제 내가 떠날 때도 누워 있었는데. 어둑한 이 시간에 저녁을 먹었는지 아니면 점심을 늦게 먹었는지 싱크에 접시가 쌓여 있다.
이건 틀림없이 마음에 병이 든 거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책임감이
강하던 우리 지영이,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추방당할 판이니 전들 얼마나 괴로울까?
오늘은 목요일, 온종일 닭 공장에서 정신없이 일하여
진이 빠져 거실 소파에 털썩 몸을 던진다. 지영이가
구직 때문인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 텔레비전 켜는 것도 삼간다.
소파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가 전화 소리에 잠이 깨니, 숭자의 전화다. “정임아,
부탁이다. 우리 시삼촌이 너한테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하면서 한 번 더 만나 보고
싶단다. 장거리 운전을 못 하니 니가 한번 그분한테
가줄래? 락빌에 사는데 여기서 아마 두어 시간 걸릴
거야.”
“내가 미쳤냐?
왜 그 먼 곳을 가냐?”
“거절해도 좋으니 한 번만 더 만나보고 결정해라. 나를 생각해서라도, 응? 누부 좋고 매부 좋고. 안 그래?”
숭자의 애원에 마음이 약해진다. 처음에는 그 애가 괘씸하고
어쩌고 했지만, 사실은 우리 사정이 절박하다. 그 애도 양쪽 사정을 참작하여 말 꺼낸 것이 아닌가? 영주권만 아니었으면 한마디로 거절했겠지만, 그것은 귀중한
조건이다. 추운 닭 공장에서 형광등 아래 온종일 단순작업을 반복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언제 끝이 날 것이라는 기약이 있었을 때는 견딜 수 있었으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숭자네 집에 다녀오고
나서 지난 며칠간 곰곰이 생각했다. 한 번 더
만나서 그분의 조건을 다시 알아보고 결정해도 손해 볼 것 없지 않은가? 결국, 만날 것을 승낙한다.
잠시 후 노인이 들뜬 목소리로 전화하여 토요일 11시 반 락빌에 있는 삼우정에서 만나자고 한다.
토요일 아침, 오늘도 날씨가 따뜻하다. 하늘은
잉크를 풀어놓은 듯 푸르다.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떠나는 기분으로 마음을 비우고 운전대를 잡는다.
어젯밤 락빌로 가는 길을 지도로 꼼꼼히 익혀 두었다. 그곳에 가자면 서쪽으로
50번 도로로 가다가 체사픽 만(灣)을 건너는 긴 다리를 건너게 된다.
집을 떠난 지 한 시간 쯤, 나는 어느덧 그 높디높은 체사픽 다리 위에 와 있다.
끝없이 푸른 바다가 가슴이 떨리도록 좋은가 하면 또 까마득히 아래로 내려다보여 오금이 저리도록 무섭다. 나는 원래 높은 데 올라가는 것을 두려워했고, 깊은 물도 무서워했다. 그런 내가 다리 한가운데에서 앞으로 나가자니 부들부들 떨리고,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다. 더군다나 지금부터는 내리막길이라 더욱 무서워 쩔쩔매고 있다. 뒤차들이 할 수 없이 옆 차선으로 지나가 준다.
싫으나 좋으나 삶을 계속해야 하는 또 한시도 마음 놓을 수 없는 나의 미국 생활이 지금 이 순간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녀가 언제 편안히 살 날이
올는지? 노인의 제안을 그만 받아 버려? 그분이 도와주어서
지영이 독립해서 자기 삶을 찾을 수 있을까? 걱정한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야. 죽으면 걱정할 일도 없지. 운전에 집중하자. 나는 조금씩 앞으로 엉금엉금 기듯이 전진한다.
간신히 락빌에 도착하여 삼우정을 찾아 주차한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뷔페 음식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노인이 미리 와 안쪽에서 손을 흔든다.
그가 일어서서 나를 맞는데 보니 오늘은 노란 넥타이를 매고 고동색 양복을 입고 있다.
인사를 하고 맞은편에 앉으니 노인이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바싹 마르고 까칠한 손으로 내 앞에 놓는다. 명함에는 영어로
김준식 박사라고 쓰여 있다.
“뭘 드시겠습니까?”
창문 쪽을 향해 앉은 그분의 얼굴을 보니 이마와 볼에 검버섯이 보인다. 연세보다 정정하기는 해도 나이는
못 속이나 보다.
메뉴를 보니 뷔페가 1인 당 10불 가량, 이 정도는 노인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 같다.“뷔페로 할게요.”
“그렇게 해요.
갑시다.”
노인이 앞장을 서서 음식 차려 놓은 곳으로 간다. 뒤를
따라가며 보니 머릿밑에 새하얗게 흰머리가 자라고 있다. 젊은 여자를 원한다더니 염색한 모양이지. 우리는 호박죽과 음식 접시를 들고 자리에 앉는다.
“두 분 모녀의 사정을 자세히 들었어요. 얼마나 힘드세요. 한국서 영어를 가르쳤다던데 말이 쉽지 닭 공장 노동이 좀 어려워요?
우리 사이의 일을 떠나서라도 내가 도울 수만 있다면 도와드리고 싶어요. 또 따님 취직도 여기저기 알아볼게요.”
“감사합니다. 부끄럽습니다.”
“뭘요. 나도 처음 미국 와서 힘들었어요. 우리 시대에 유학 온 사람들은 접시닦이부터 시작했지요.
나는 충청도 공주에서 자랐습니다. 20대에 미국 와서 뉴욕서 공부했지요.
2년 전에 상처했고, 뉴욕에는 아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애도 이제 쉰다섯 살입니다. 내가 사는 모양도
볼 겸 우리 집에 잠시 들를까요?”
결정하기 전에 알 건 알아야 하고 볼 것은 봐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며 “네. 그렇게 하지요.”하고 선선히 대답한다.
“이곳 지리를 모르시니, 일단 내 차로 같이 갔다가 여기에 다시 모셔다 드리지요. 여기서 가까워요.”
“그게 좋겠네요.”
점심 후 그의 베이지색 렉서스 차를 타고 어느 한적한 중산층 주택가로 들어선다. 이곳은 내가 사는 구질구질한 아파트
촌과는 다르다. 이런 곳이 바로 미국인가 보지. 동네 안에
들어서니 집 모양이나 벽돌 색깔이 옆집과 조화를 이루고 겨울 잔디가 새파랗다.
“정원 가꾸기를 좋아해서 아직 노인 아파트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게 건강에 좋지요.”
노인이 흰 벽돌로 된 단층 집 앞에 주차하고 나를 안으로 안내한다.
집안은 소박하나 집 뒤 경치가 그만이다. 거실 햇볕 바른 창문을 통해
숲이 보이고 개울이 흐른다. 소나무가 드문드문 겨울
나목 사이에 섞여 있다. 앞에서 보면 단층 집인데 뒤쪽 지대가 낮아, 큼직한 창문을 통해 햇볕이 잘 드는 아래층이 또 있다.
‘우리 지영이가 독립할 때까지 조용하고 햇볕 잘 드는 저 아래층에 기거할 수 있겠네.’
내가 창문 곁에 서서 아래층을 유심히 관찰하는데 노인이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꾹 참으며 가만히 내버려둔다. 이것이 바로 동상이몽인가? 노인이 다시 내 귀를 만지고 내 목을 가만히 쓰다듬는다. 나의 목선이 아름답다고
죽은 남편이 말했는데…….
나는 치매 끼가 있던 아버지를 생각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를 1년 모시는 동안 일하는 아줌마를 귀찮게 하고 유방을 만지려 하던 생각이 난다. 얼마나 징그럽고 힘들었을까? 그 아줌마의 인내심을 두고두고 고맙게 생각했는데 지금 내 처지가 그 아줌마와 같다. 우리 아버지가 맑은
정신으로 지금의 나를 보았더라면 그 이상의 비극이 없겠지. 부모님이 안 계시니 차라리 내 처신이 자유스럽다.
눈물이 핑 돈다.
이분은 따뜻한 사람의 체온이 그리운 게다. 인간에 대한 사랑은 어떠냐? 내가 베푼 따뜻함으로 노인이 행복해지고 또 내 딸이 혜택을 입어 원하는 대로 직장을 구할 수 있다면 무엇을 못하랴?
지영을 위해 볕 바른 아래층 방을 유심히 관찰한다. ‘기회의 땅’이라고 하더니 이것도 기회인가? 이건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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