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맨해튼 쎈트럴 파크의 동쪽 끝에서 서너 곹목 떨어진 95가의 한 고층 아파트의 어느 방에 골동품이
하나 있다. 지난여름 의대에 다니는 우리 둘째 아들이 2년간의 학교공부를 마치고 3학년이 되면서 병원실습
학습에 들어갔기 때문에 학교 기숙사에서 맨하튼에 있는 학교 소유의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가구가
딸린 방이 이니라, 이사를 하기 전에 이것저것 필요한 것이 많다더니 막상 짐을 챙기자니 있어야 한다던 것
중에서 거의 다 빼고 나니 몇 가지 안되었다. 티 테이블과 책장 하나가 제일 부피가 나갈 뿐 나머지는 자질
구레한 부엌 생활필수품 정도라 의아해 하면서 큰 차를 빌리려다 취소하고 2대의 승용차에 짐을 가득 채우고
뉴욕을 향해 떠났다. 허드슨 강을 경계로 강 건너는 뉴욕, 강 이편은 뉴저지 주인데 마침 강 건너기 전에 가구
도매상이 있어 거기서 침대 하나를 사서 승용차 지붕 위에 밧줄로 묶어서 싣고 가서 아파트에 도착하였다.
짐을 다 들여놓고 한숨 돌리자 아들이 이것저것 가리키면서 졸업하고 나가는 학생들의 세일에서 사왔다며
“이 책상은 30불, 의자는 5불, 소파베드는 그냥 준 것, 램프 스탠드 2개에 10불” 등등 제법 쓸만한 것들을 사서
친구들의 도움으로 모두 옮겨다 놓은 상태였다. 그때서야 왜 짐이 줄었는지 짐작이 갔다. 두 부자는 열심히
침대를 조립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옷장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옷장 위에는 TV와 스테레오를 올려 놓았
는데 얼른 보아도 여간 고풍스러운 게 아니다. “얘, 이 옷장은 어떻게 된거니?” 하고 내가 묻자 “그건 친구가
(아마 선배를 칭하는 것 같다) 그냥 준거요” 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나는 옷장을 만져 보면서 자세히
관찰하였다. 손때가 많이 묻은 견고한 나무로 만든 것이 서랍 고리도 진기하고 품위(?)가 있어 보인다. “얘,
이것 골동품 같다”고 내가 말해도 부자는 별 신경 안 쓰고 웃기만 한다. 한쪽에서 침대 조립을 하는 동안 나는
면밀히 이 옷장의 진가를 평가 받을 증거수집(?)에 착수하였다.
우선 서랍을 열어보니 옛날 신문지에 기름을 먹여 바닥에 발랐다. 애석하게도 신문의 이름은 없고 주로 광고
면으로 가구점, 복덕방, 의상실 등의 광고가 대부분이고 여자들의 옷 모양은 모두 고전의상이고 연대는 1875년
일자다. 뚜렷한 다른 무엇이 더 없을까 하여 한자씩 자세히 훑어보니 무슨 음악회가 알렉산드리아, 버지니아
에서 열릴 것이라면서 (미래형) 아무 날 1875년 이라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요즘엔 서랍바닥을 바르지도 않지
만 1875년에 발행한 신문을 지금까지 보관했다가 사용했을 리 만무하다. 서랍 안의 오른쪽 중앙에 영… 아무
개란 인장도 찍혀있다. 이 정도라면 골동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할 것 같다. 일이 다 끝나자 남편도 그
옷장을 자세히 보더니 “골동품 같기도 하다”고 애매하게 한마디 한다. 거울은 아치형인데 요즘 스타일이 아니
면서 나무의 결을 무지개처럼 맞추려 애 쓴 것 같았다. “애야, 이것 잘 간수해라, 흠집 내지 말고, 내가 집에 있
는 옷장 가지고 와서 이것과 바꾸어 갈 거다. TV밑에 수건이라도 깔고 다치지 않게 조심해라. 누가 아니 아주
비싼 귀중품인지?” 내가 이렇게 말하니까 “O.K. 그럼 내 친구도 좀 주어야지 나 그냥 주었으니까” 이렇게 어눌
한 한국말로 아들이 대답한다. “농담이지, 네 친구는 바보라서 그렇게 좋은 것을 거저 주었겠니?” 하고 그냥
얼버무렸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이의 생각이 건전하고 순수하며 나보다 훨씬 양심적이었기 때문이다.
이튿날 그로서리며 구석구석 손볼것 다 봐주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떠나기 전, 나의 비상금 중에서
백 불을 남편 몰래 슬그머니 아들 손에 쥐어주었다. 다시 한번 그 보물을 잘 보관하란 당부와 함께. 그 후 일주
일 내내 나의 생각은 아들의 방에 있는 그 옷장에 온 장신이 팔려 있었다. 다음날 아들의 전화를 받으며 항상
나의 서두가 그랬듯이 “별 일 없니?” 하였지만 이번의 의미는 너에게 아무 일 없느냐가 아니라 “나의 골동품
”에 이상이 없느냐는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 그것이 개나 고양이라면 차라리 떳떳하게 이름을 부르며 “개도
잘 있니?” 할 수도 있으련만! 이렇게 사행심이 많은 사람인줄은 몰랐다고 아들이 실망할 것 같아 엄마라는
긍지를 가지고 혀끝에 맴도는 “골동품”이 안녕하냐는 말은 차마 못했다.
그날부터 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혹 옷장을 준 아이의 부모가 “그게 어떤 것이라고 남을 주었느냐, 당장
찾아오라”고 야단을 하여 다시 와서 달라면 이 순진한 녀석이 돈 주고 산 것도 아니니 아무 말도 못하고 덥석
내주지나 않을지? 내일이라도 당장 가서 가지고 오고 싶지만 남편은 분명 나를 정신 나간 여자로 취급 할
테니 말도 못하고 나의 애간장만 태울 뿐이었다. 그 후 밤마다 나는 그 옷장이 만들어진 날부터 지금까지 얽힌
유래와 아들의 손에 들어오기까지의 신비한 역사와 비밀을 여러 갈래로 내 상상력을 총 동원하여 머릿속에
몇 편의 샬록 홈스 (영국의 추리 소설가 코난 데일의 소설에 나오는 탐정 이름)에 버금가는 그럴 사 한 추리
소설 을 섰는지 모른다. 어쩌면 1880년대쯤에 대대로 부유한 의사의 가문의 한 학생이 졸업을 하면서 어느
후배에게 거저 주면서 “네가 졸업할 때는 너도 후배에게 거저 주어라”하여서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120여 년
동안 한 아파트 안에서 1층에서 20층까지 온 방을 누비고 다니며 요긴하게 쓰여졌을지도 모른다. 흔히 미국
사람들은 남이 필요할 때 도와주고는 사례를 하려면 사양하면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얘기를 인용하여 “내가
네게 한 대로 다음에 너도 남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하니까.
그런데 그 “골동품”이 이제 우리 손에 들어온 연고로 곧 유서 깊은 이 아파트를 떠나야 할 운명에 쳐해 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니 내가 너무 비정한 사람같이 생각된다. 오랜 세월 동안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
다니면서 온갖 사람들에게 있었던 사연들을 속속들이 알고 간직하고 있는 이 옷장. 무한한 꿈과 미래를 향한
원대한 포부를 가슴에 품고 면학에의 열정을 불태운 젊은이들. 그들 속에는 사랑과 낭만이 있었을 것이요,
고독과 싸우는 불면의 밤과 때론 좌절과 절망으로 몸부림치는 뼈아픔 등 이런 인생의 모든 애환조차도 감내
하며 점차로 성숙해가는 한 인간의 과정들을 말없이 묵묵히 함께 겪으며 지켜보지 않았던가!
일주일 동안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면서 내 멋대로 추측하고 나 혼자 감정을 매긴 이 “가상의 골동품”에
내 온 정신을 집중했던 것을 돌아보면서,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는 성경 구절을 여러 번 들었지
만 듣는다는 것, 느낀다는 것 과 체험 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르다는 것을 실감해 보았다. 나는 이번의 이 작은
경험을 통하여 나의 공상, 망상이 “어느 한 여름 밤의 꿈”이 될 수도 있으려니 생각하면서 한 동안 우리 아들의
방에서 그 애의 필수품으로 봉사할 그 옷장을 고맙게 여긴다.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가능성이 매우 희박
하지만, 왜냐하면 인간이란 예측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내 마음의 성실 속에도 위선이 있고, 고상한 척 하면서도
천박함이 더 우세하니까 2년 후에 아들이 졸업할 때, 나의 사심을 버리고 “아들아, 지금까지 공짜로 얻어 잘
사용한 너의 귀중한 ‘골동품’을 필요로 하는 다른 후배에게 거저 주어라.”라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려본다.
◆ 장려상 ◆ -------------------------------------------------------------------------
아기 개똥지바퀴새(로빈) /은임 튜더
며칠 전부터 간혹 흐리고 잿빛에 간간히 비를 뿌리며 겨울이 오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던 하늘이 드디어
어젯밤부터 제법 굵직한 빗방울 소리를 내며 밤새 지붕을 두드리더니 아침까지도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부엌에 나가 언제나처럼 창 밖을 보니 밤사이에 바람이 많이 불었었는지 부엌 창 문 앞까지 길게
뻗어있던 옆집 나뭇가지가 반쪽이 부러져 막혔던 시야를 열어준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
가지 끝에 있던 로빈집은……?!” 부엌 옆에 난 문을 열고 옆 마당으로 나가보니 부러진 가지와 나뭇잎
밑에 작고 앙상한 나뭇가지와 마른 풀들 그리고 개털 같은 것들이 뭉쳐있는 알고 보지 않으면 작은
나무뭉치로 밖에 안 보이는 새집이 반은 비에 젖고 반은 나뭇잎에 가려 땅 위에 뒹굴고 있었다. 다행히
도 날이 추워지며 새들이 다 떠나 다행이지 싶으며 안도하면서도 내년에는 로빈들이 다시 돌아오면
집이 없어 어떠나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론 “다른 곳에 집을 지을꺼야. 아니 다른 곳에 집을 지어야
돼. 작년에 이 나뭇가지 끝에 아슬아슬하게 새집을 지어놔서 그 사고가 났으니 지들도 머리가 있으면
다음엔 좀 더 안전한 곳에 둥지를 마련하겠지”라고 혼자 말을 해댄다.
작년 가을 이맘때 쯤 어젯밤처럼 바람이 몹시 불고 비가 오며 겨울을 재촉하던 어느 날 그날도 여느
날처럼 낮 시간이라 그릇을 씻으며 바깥을 보고 있는데 나뭇잎들이 바람결에 나부끼고 떨어지며 무언
가 작은 검은 물체가 나뭇잎과 같이 그러나 훨씬 빠르게 떨어지며 작은 소리가 턱하고 들린다. 마침
남편과 딸아이도 집에 있던 주말이라 모두 부엌 옆문으로 나가 무엇이 떨어졌나 두리번거리며 찾아도
쟂빛 땅 색깔과 땅에 뒹구는 여러 가지색들의 낙엽때문에 쉽게 찾지를 못하고 있는데 딸아이가 “엄마,
아빠, 여기에요. 아기 새가 여기 있어요. 그런데 죽었나 봐요. 꼼짝을 안 해요. 아! 불쌍해서 어쩌지.”하고
난리가 났다. 그런데 우리 머리 위에서도 갑자기 위험하다고 새들이 짹짹 지지배배 가까이 다가오지는
못하고 이 가지에서 저가지로 옮겨 다니며 아기 새에게 경고를 주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남편이
가까이 가 보더니 로빈(개똥지바퀴새)이란다. 옆집 나뭇가지 끝에 바싹 닿게 새 둥지를 지어놓아 바람
이 불 때 아기 새가 떨어진 것이었다. 남편이 “죽지는 않았고 놀란 것 같으니 거기에 그냥 두고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한다. 한 5분 정도를 창문너머로 계속 지켜보아도 꼼짝도 않더니 아주 조금씩 몸을 구
르다시피 해 옆으로 가더니 한 뼘도 못가 다시 죽은 듯이 거기에 꼼짝 않고 몇 분을 그렇게 있는다. 남
편이 다시 나가 새를 두 손으로 들고 들어오며 “새가 아직 너무 어려 날갯짓을 못하는 것 같으니 우리
가 기력을 차릴 때까지 집에서 키워야 할 것 같아. 주변이 조금 더 어두어지면 여우나 고양이가 나다니
니 잡혀 먹히기 십상이거든.” 그 말에 딸애는 환호성을 지르고 나는 어디에 아기 새를 두어야 하나 고민
하다 속이 깊은 바구니에 부드러운 헝겊을 깔고 작은 물그릇과 잘게 다진 과자 부스러기를 주는데 아기
새는 건드리지도 않는다. 작은 새모이가 있어 그걸 줘봐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시간은 가는데 창 밖에
서는 어미 새인지 구슬프게 짹짹거리고 새를 길러본 경험이 한번도 없던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음식을 아기 새에게 먹여보려고 애를 쓰는데 그날 저녁 내내 아기 새는 고개 한번 안 들고 웅크리고 있
었다.
날이 밝아 다음날 아침부터 창 밖에서는 어미 새, 아빠 새가 짹짹 지지배배 쉬지를 않고 울어대고 아기
새는 먹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무심코 손가락 끝에 물을 묻혀 아기 새 머리
위에 똑 떨어뜨리니 갑자기 앙증맞은 노란 부리를 활짝 벌리며 허겁지겁 받아 마신다. 너무 기뻐 계속해
물을 떨어뜨리니 밤새 목이 많이 말랐는지 한참을 받아 마시고서 다시 조용히 웅크리고 잠을 잔다. 조금
있다 부드러운 바나나를 작게 이겨 손가락 끝에 묻혀주니 또 그 귀여운 노란 부리를 벌려 받아먹고 나서
더 달라고 부리를 몇 번이나 열어 물도 주고 바나나도 주었더니 바구니 근처에만 가도 부리를 벌리며
배가 고프다고 보챈다. 딸애와 남편이 집에 돌아와 있었던 얘기를 했더니 자기들도 해보겠다며 손가락
에 물을 묻혀 떨어뜨리는데 부리를 굳게 다물고 있다 내가 물을 떨어뜨리면 목을 길게 빼고 부리를 연다.
모두 우스워 한참을 웃다 다시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집에서 동물들과 가장 관계과 소원한(?) 내가
갑자기 개똥지바퀴새의 엄마가 되버린 것이었다.
모두들 학교에 가고 직장에 간 사이 내가 처음 줬던 음식을 먹으며 아마 나를 엄마 새로 생각했었나 보
다. 그 다음부터는 먹이만 주는 것이 아니라 깃털도 쓰담어 주고 이야기도하며 점점 정이 들어가고 있
었지만 처음에 쇼크 상태만 지나면 돌려 보내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새장도 없이 바구니에 계속 키우고
있었다. 외출을 해 야할 때는 바구니위에 그물같이 생긴 망을 씌우고 다녀왔지만 하루가 다르게 자라
면서 그 바구니가 비좁다고 나오려고 해 낮에 내가 집에 있을 때는 바구니에서 나와 제법 점잖게 내 손
가락 위에 앉아 있거나 손위에서 한참 재롱을 피어 갑자기 내가 동물들과 대화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
이 있나 생각될 정도로 나를 따르고 친해지고 있었다.
한 오일이 그렇게 지났는데 창 밖에선 여전히 엄마 새인듯한 새가 매일 짹짹 울어대고 아기 새는 아직
도 날갯짓은 하지 않고 간신히 뜀박질밖에 하질 못하니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일주일째가 된 날 부터
그동안 잿빛이던 깃털들이 배쪽으로 윤기도는 갈색으로 바뀌고 이제 종종 걸음 치던 수준을 넘어 온
방을 깡총거리며 예상할 수 없는 곳에 음식을 먹었다는 표시를 하고 다니고 가을은 점점 깊어 모든 새
들이 다 남쪽으로 떠나기 전에 날을 수 있는 연습도 하고 훈련도 해야 한다고 남편이 얘기해 그동안 들
은 정 때문에 가슴이 아팠지만 어차피 내가 키우는 것보다는 제 엄마한테 가는게 좋을 거라고 섭섭한
마음을 달래며 아기 새를 처음 떨어졌던 곳에 놔 두었더니 처음 나가본 밖이라 그런지 몇 번 어슬렁
거리는데 내 자식을 밖에 처음 내놓을 때의 마음만큼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마음인 것은 확실했다.
독립할 수 있는 것이 대견하면서도 한편 불안하고 허전한 마음. 내가 새에게 이렇게 가까운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역시 신기했다.
그렇게 몇번 어슬렁거리더니 내가 손을 벌리자 당연하게 손에 와 앉으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다시 집으로 데려 왔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더 추워지기 전에 나는 연습을 해 먼길을 떠나게 해줘야
겠기에 다음날도 뒷마당에 내놓았더니 이번에는 뒤뚱거리고 몇번 파닥거리더니 얕은 가지에 가서 앉
는다.
염려가 되어 다시 데려오려고 가는데 언제 소문을 들었는지 한 열 마리쯤 되는 개똥쥐바퀴새들이 뒷마
당에 내려 앉아 열심히 벌레들을 물고 아기 새도 뒤뚱거리는 듯 하더니 그들과 같이 부리로 땅속을 파기
시작한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쉽게 적응하는 것을 보며 안심이 되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조금 섭섭해하
고 있는데 놀랍게도 한 두 번 파닥 거리더니 꽤 높은 곳에 있는 가지로 힘차게 날아가 앉는다. 그리곤
오후 내내 혹시나 돌아오려나 고개를 돌려 찾아도 아기 새는 보이지 않고 이제 다른 모든 개똥쥐바퀴새
들처럼 갈색 깃털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 한 어느 새가 그 아기 새인지 구별할
수도 없었다. “애가 떠나라면 멋있게 인사라도 한번 더 하고 가지 어쩜 그렇게 간단히 맺은 정을 끊니?!”
하며 쫑알거렸지만 진심으로 훈련 덜 받은 날갯짓으로 무사히 남쪽 나라로 떠났기를 기원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일주일 동안 확실히 나는 개똥쥐바퀴새의 엄마가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