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워싱턴문학 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우수상]
그녀, 안개 걷힌 길을 걸어가다
-백남숙-
푸른 요양원의 김영우에게 전화가 온 것은 오전업무를 막 끝내려는 참이었다.
“여보세요. 정성수님 보호자 되시는 정경희씨이신지요?”
정성수라는 아버지의 이름에, 자신이 아버지의 보호자라는 상황에 잠시 당황스러운 정경희는,
“네, 그런데요.” 라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디지털시계는 12: 05 Tues 라고 쓰여 있었다. 언제부터 였을까, 전화를 받을 때면
그녀는 습관 처럼 먼저 시계를 보았다.
“저, 푸른 요양원의
김영우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군요. 지난 번에 오셨을 때 정교수님과
체스를
두었던….”
“아, 예….”
자욱한 안개로 세상이 우유빛으로 보이던
지난 달 토요일, 정경희는
창가에 서서 커피를 양손으로
감싸쥐고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노을이 지고 어둠이 찾아오는 시간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한다는걸 들은 적이 있다. 어둠 속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는 짐승이 내가 키우는 개인지,
나를 해치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대라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한다. 정경희는
안개가 낀
날은 개와 늑대의 시간보다도 더 절망스럽다고 생각하며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한 두시간 후,
이
안개가 걷히면 세상은 언제나 처럼 제 자리에 있을 것이다. 건물도,
나무도, 주차되어 있는 차들도…. 그러나 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보이지 않는 그 순간이 더 불안하고 두려운 시간이다. 볼 수가
없어서 결국 손을 내어 더듬어
보지만 아무 것도 잡히지 않을 때 사람이 느끼는 극도의 피곤과
초조를 그녀는 알고 있다. 남편과 함께 했던
14년간, 정경희는 안개 속을 걷는 느낌으로 살았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마음으로 오랜 시간을 갈등하다가 3년전 그의 곁을 떠났지만 여전히
그녀는 안개 속에 있었다.
혼자 사는 중년의 여자에게 휴일은 안식과
여유보다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더 먼저 찾아온다는
것을, 혼자가 된 후에야 그녀는 뼈저리게 실감했다. 누군가를 위하여 식사를
준비하는 일도, 잠에서
깨어나 얼굴을 마주할 사람도 없이, 혼자 일어나서
자신 만의 커피를 끓여 손에 들고 창가에서
서성이는 휴일도 이제 그녀의 일상이 되었다….
안개 속에서 희미하게 빨간 벽돌 건물과
나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얼마나 이렇게 서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현실로 돌아와 시계를
보았다. 10시 35분…. 어떡할까. 다음주가 남편의
생일이다.
이제 무덤덤해질 때도 되었는데 그녀는 아직도 남편을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저려온다.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냥 날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타이르면서도, 그와 같이 살던 집을 나온 후에도 그녀는 매년,
단 한번도 그의 손에 전해진 적이 없는 선물을 준비했다.
이제 그만하자, 라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그녀는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서서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불경기라는 말은 누군가가 심심해서 퍼뜨린 유언비어 쯤으로 여겨질
만큼 백화점은 사람들로 북적 였다. 그냥 돌아갈까 망설이다가 그녀는 비교적 손님이 적은 남성복코너를 골라 들어갔다.
남편에게 어떤 옷이 어울렸었나? 어떤 색깔이 그의 얼굴을 환하게 보이게 했었나?
라는 생각이 미치자 가슴
끝이 예리한 바늘로 찔린 것처럼 아려왔다. 공허한 눈길로,
소극적인 몸짓으로 그녀는 법적으로는 남편이지만 내 남자가 아닌 사람에게 어울릴만한 옷을 골랐다. 매장 안에 은은하게 흐르는 귀에 익은 음악을 들으며 정경희는 이 감정적인 외출을 후회했다.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안으로 입술을
깨물면서 매장을 나오려는 순간, 입구 안쪽에 걸려진
밤색과 오렌지색, 초록색이 가로 줄로 어울러진
가디건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걸 집어들고, 다른 마음으로 꽉 차버려서
가슴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아버지에게 드릴 선물로 사서는 그 길로 아버지가 계시는 요양원엘 갔었다.
요양원의 휴게실에는 초점없는 눈으로TV를 보고
있는 노인과 창가에 앉아 졸고 있는 노인과 손수건 으로 열심히 테이블 닦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노인과 그러한 노인들을 구경하듯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노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올 때마다 보게 되는, 늘
같은 광경인데도 정경희는
처음볼 때와 같은 무게의 아픔을 느꼈다.
아버지는 따스한 햇살이 드는 창을 등지고
앉아서 멍한 눈빛으로 체스판을 바라 보고 있었다. 맞은 편에는 듬직한 체격의 삼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부드러운 눈길로 아버지에게
“교수님 차례인데, 안하시면
제가 또 할 겁니다.”라며 장난스런 미소를 지어 보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2주전의 일이었고, 그 김영우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라도?...”
“아니. 아,
예 좀…. 그게 저,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례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구….”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서론이 긴 것일까, 답답함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며 정 경희는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저, 바쁘실
줄은 알지만, 한번 요양원에 방문해 주실 수는 없는지요? 전화상으로는
말씀 드리기가 좀….”
정경희는 순간 망설였다.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버지에 관한 말하기 곤란한 어떤 일을
들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
“여보세요?”
“네…. 저,
급한 일이 아니라면, 다음 주말에 가면 안될까요?”
“아, 네.
그렇게 하십시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일단 시간은 번 셈이지만 그렇다고 그
날이 오지 않거나, 김영우가 전화로 하기 곤란한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또 무슨 일일까….
지난 여름 밤엔 무단 외출을 하여 이틀
만에 경찰에 보호되었던 아버지였다. 당직하던 직원이 잠깐
화장실 간 틈에 아버지는 잠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고, 아버지의 외출을 알아차린 직원은
총책임자인 김영우와 요양원 원장, 관할 경찰서에 연락을 했다.
전화를 받고 뛰어온 김영우는 세
시간이나 주변을 찾아 헤맸지만 아버지는 그 날 돌아오지 않았다…. 근처 슈퍼마켙 주인은 아홉시쯤
노인에게 과자 한봉지와 우유를 팔았지만 특별히 이상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고,
어떤
할아버지가 버스정류장에 앉아 무언가를 먹고 있다는걸 보았다는 고등학생의 증언은 다음날 오후 에야 들을 수 있었다.
이틀 후 경찰서에서 아버지를 만난 정경희는 아버지의 슬리퍼가 짝짝이었던걸 보았지만 아무도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알아 차리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초췌한
얼굴이었지만 그녀를 보자 해맑게 웃어 보였었고 그 웃음은
그녀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분노를
느끼게 했다. 아버지의 모습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아버지는 자신의 멋있던 과거를 과연 조금이라도 기억하고 있을까,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을까, 아예 아무런 생각도 없는 것일까,
사고하는 기능은 멈추고 그저
습관처럼 일어나서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고 그리고 숨 쉬고 있는
것일까….
정경희가 알고 있는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연구하고,
논문을 쓰고, 학생들에게 경영학을
가르치고, 그리고 시간을 쪼개어 여행을 떠나는, 지적이면서 또한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지방의 작은 산사에서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구석구석 돌아 다녔다. 사진을 위한 여행인지, 여행의 기록으로 남은 것이 사진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들을 들여다볼 때의 아버지의 눈빛은 깊고도 온화했었다. 몰입해 있던
아버지의 표정….
작은 새, 푸른 하늘,
시골 버스정류장의 푯말, 줄에 매달려 있는 빨래들, 이렇다 할 특징도, 운치도
느껴지지 않는 그저 평범한 길, 지나가는 사람의 뒷모습, 길가에 핀 풀꽃, 노을이 지고
있는 붉은
하늘, 아무도 앉아 있지 않는 텅빈 벤치….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의 그러한 사진들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파리까지 갔는데 에펠탑 사진은 한장도 없었던 것,
달력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길을
기대했던 그녀가 본 사진 속의 길이 대문만 열면 되는 집 앞 골목과 별로 다르지
않았을 때의
실망감…. 표정을 알 수 없는 사람의 뒷모습, 비어 있는
벤치의 사진을 보며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었다.
그녀의 결혼이 결정되자 아버지는 자신이
아끼던 그 앨범들을 내어주며 언젠가 필요할 때가 있을 거라며, 그땐 이 사진들 속에서 인생의 해답을 찾기를 바란다 했었다.
결혼 후, 그녀는
아버지의 그 말뜻을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과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것….
남편과 갈등하던 시기에 그녀는 사람의 얼굴보다 뒷모습이 때론 더 많은 표정을 가지고
있고,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음을 알았다. 아버지는 마음으로 봐야만 보이는 그것을 찾기 위해
그렇게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으셨던 것이다. 눈으로 보는 것은 순간이지만 마음으로 보기 위해서는 더 주의를
기우려야 하고, 자세히 보아야하고, 공을 드려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가
그녀에게
남기고자한 메시지였던 것처럼 생각되었다.
아버지는 과연 그러한 사진들 속에서
무엇을 찾아 내셨을까, 무엇을 찾고 싶어 하셨을까….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아버지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을까….
남편과 살던 집을 나온 후, 그녀는
아버지의 앨범을 보는 횟수가 잦아졌다.
어떤 때는 엄숙한 의식처럼 굳은 얼굴로, 때론 편한 친구와 통화를 하듯 앨범의 사진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 시간들은 그녀에게 안식과 위로를
주었지만, 한편으론 현실로부터의 도피, 관계로부터의 차단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채로 그녀는
사진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버지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엄마가 폐암으로 돌아가신 후였다. 매년 정기진단을 받으며
자신은 물론 식구들의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셨던 엄마는 폐암 진단을 받고,
4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2년전,
결핵으로 6개월간 약을 복용하고 완쾌되었다는 의사의 말을 믿었는데,
암은 이미 그 때에도 엄마의 몸 속에 있었던 것이다. 엄마 자신보다 더 절망한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그렇게 이성을 잃고 비틀거리던 모습을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결핵으로 오진을 했던 의사를
고소해야 한다는 말이 아버지의 입을 통해서 나온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런 식으로 벌어진 일에 대한 처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암세포는 이미 뇌까지 전이되어
있었다. 수술을
하면2~3년, 그냥 두면 6개월이라는
의사의 말에 아버지와 그녀, 그리고 엄마는 의견은 엇갈렸다
당사자인 엄마는 수술을 거부했다. 자신의
죽을 날을 미리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도 커다란
축복이라는 말까지 할 정도로 엄마는 침착했고, 이성적이었다.
반면, 아버지는 단하루라도 더 살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하자고 했다.
이렇게 서둘러 보낼 수는 없다며, 조금만이라도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준다면,
지금까지 같이 했던 시간보다 앞으로 함께 할 짧은 시간동안 당신에 대해서 더 알고 싶고, 사랑하고 싶다며 엄마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원했다. 정경희는 기본적으로 엄마의 의견과
같았다.
수술을 했을 경우, 엄마가 겪어야 할 육체적 고통과 그로 인한 정서적인 불안,
갈등 등을
세 사람이 지치지 않고 슬기롭게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아버지는 엄마를 설득하기 위해 때로는 큰 소리를 내기도 하면서, 우울한 얼굴로 며칠을 보냈다. 그 때의 아버지의 얼굴은 그녀가 본,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고뇌에 찬 남자의 것이었다. 아버지가
엄마를 그렇게 사랑했었나,
그건 정경희에게 엄마의 병보다도 더 놀라운 사실이었으며, 그러한
사랑을 받고 있는
엄마가 여자로서 부럽다는 생각까지 은근히 들었었다. 그런 며칠이
긴 어둠처럼 지난 후, 엄마는 아버지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그것은
한 남자의 사랑 고백에 대한 여인의 수줍은 대답처럼도 보여졌다.
뇌수술은 성공적이었다고 의사는 이야기했다. 하지만
엄마의 몸에 있는 암이 전부 제거된 것은
아니었기에, 수술 후에도 엄마는 여러가지 치료를 병행해야 했다.
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갔고, 머리카락이 빠졌고, 하얗던 피부색은 검게 변해갔다. 어떤 날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어떤 밤에는 고열로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애써 웃어 보였지만, 그 미소는 몰라 보게 늘어버린
주름을 더 두드러지게 하여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렇게
세 사람은 그 해 늦가을에서
겨울을 맞이했고, 유난히 눈이 많고 추웠던 1월 말에 엄마는 조용히 떠났다. 수술을 하고 세 달만이 었다…. 그들 곁을 떠나기 일주일 전만 해도 엄마는 자신의 삶에 매우 의욕적이었다. 봄이 되면
꽃구경을
가고 싶다고도 했고, 조금만 기운이 회복되면 창이 넓은 찻집에서 향긋한 헤이즐넛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도 했다….
엄마는 그녀의 일상이었던 작은 유희들을 죽음을 앞두고 커다란 소망으로
간직한 채, 이루지 못하고 떠나갔다.
엄마의 혈압이 내려가고, 혈중산소량이
떨어지던 날 밤, 의사가 아버지와 그녀에게 오늘 밤이
고비라고 하던 그 밤, 엄마의 입에 산소 마스크가 씌워졌던 그 밤, 아버지가 엄마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던 그 밤….
그 밤은 아버지와 그녀에게 세상에서 가장 길었고, 또 세상에서 가장 짧기도 했던
밤이었다.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밤이었고, 한편 영원히 잊고 싶은 밤이었다….
낮 12시 28분, 의사가
폐렴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진단을 내린 후, 아버지는 엄마의 귀에 대고 애틋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했다. 사람의 감각 중에서 마지막으로 기능이 멈춘다는 청각, 그래서 사망 후에도 들을 수 있다는 말을 어느 책에서 발견한
아버지는 그 사실이 마치 신이 자신에게 주신 큰 축복이며,
최고의 선물이라도 되는 듯 엄마의 손을 잡고 여보,
내 말 들리지?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여보,
사랑해. 당신과 함께 했던 시간이 나에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어….
라는 말을 경건하고 애절한
얼굴로, 이제 막 사랑에 눈을 뜬 소년의 얼굴로 속삭였다.
정경희는 두 사람의 엄숙한 증인이라도
된 듯한 느낌으로 그 자리를 지키면서 엄마는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한 남자의 여자로
사랑을 받으며 살다가, 마지막 가는 길에 그 남자의 고백을 다시금
듣게 되는 일은 여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그만큼 성실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엄마의 죽음 후, 정경희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컴퓨터와 여행 가방 하나만을 가지고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왔다. 아버지는 그럴 필요없다며
반대했지만 슬픔에 빠진 아버지를 혼자서 둘 수는 없었다.
고독과 실의에 빠져 지낼 아버지의 모습이 영상처럼
그녀의 머리에서 그려졌기 때문이다.
두사람은 엄마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뼈저리게 실감하면서 하루 하루를 지냈다. 생활의
질서는 무너졌고 모든 것이 불완전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힘들었던건 추위였다, 공복이었다…. 엄마가 없는 집은 한여름도 겨울보다 추웠고, 먹어도 먹어도 여전히 허기가 졌다.
두 사람이 엄마가 없는 집에 익숙해질
무렵 아버지와 그녀는 거의 부딪히는 일도 없이 한 집에서
지냈다. 일부러 피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그것은 아물지 않은 상처를 건드는 일이었다. 아마
그러한 이유 때문에 그녀가 아버지의 변화를 늦게 발견한 것인지도
몰랐다.
어느 날, 냉장고
안에서 빈 컵을 보았다.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서 그냥 넘어갔다. 은행의
비밀번호를 몰라서 돈을 인출할 수 없었던 일도 있었다. 충격 때문이려니,
엄마가 해왔던 일이었기 때문이려니 했다. 어떤 날은 화장실에서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다.
그려러니 했다. 좁은 공간에서
완전히 혼자가 되고 싶었던 때가 그녀에게도 있었으니까.
밖에서 하루종일 서성이시던 날도 있었다. 엄마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싶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엄마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지 않을 뿐이려거니 생각했다….
어느 일요일,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별로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저 주변을 산책 하는
것이리라 여겼었다. 세시간 후
경찰서에서 온 전화를 받고서야 그녀는 아버지의 병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식당에서 계산을 하지 않고
그냥 나가려는 아버지를 주인은 음식값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 보다도 아버지의 모습과 행동이 이상해 보여서 일단 말을 걸어 잡아두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주인의 설명에 의하면 아버지는 두사람 분의 식사를 주문했다 한다. 음식이 나가고 한참
지났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고, 아버지 역시 앞에 놓인 음식을 먹을 생각일랑
처음부터 없었다는듯, 그저 슬픈 눈빛으로 앞자리를 바라보고 있더라고 했다. 그러다가 뭐라고 혼자말을 하기도 하고 때론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웃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미
식사 시간이 지난 한가한 식당에서의 아버지의 모습은 주인과 종업원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주인이 다가가서 기다리시는 분의 음식은 오시면 다시 해드릴 테니 먼저 드시라고 말을 걸자,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소리로 화를 내면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신경과 전문의가 내린 아버지의 병명은
노인성치매였다. 의사는
그녀를 비난처럼 따가운 눈길로
한번 쳐다보더니, 동정처럼 축축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고 했다.
알츠하이머…. 아버지는
기억을 잃어가고 있었다.
엄마의 죽음으로 표면화된 아버지의 병.. 아버지에게
엄마는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이었고, 어쩜
엄마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아버지는 스스로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선택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 버렸는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버지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고, 화를 내는
일이 점점 잦아졌다. 고민 끝에 정경희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고, 아버지의
상태를 설명했다. 그는 지금 이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은 아버지를 안전하게 돌보아 줄 수 있는 곳에 맡기는 것이라며
아버지에게 맞는 요양원을 찾아보겠 다고 했다. 맡긴다는 표현이 정경희의 감정을 건드렸지만 사실이었기에 남편에게
부탁한다며 전화를 끊었었고, 그리고 남편이 찾아낸 곳이 푸른요양원이었다.
푸른요양원을 견학하기 위해 그들은 별거
후 처음 만났다. 남편은
건강해 보였고, 그녀가 없어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삶에 충실해 보였고, 그리고 행복해 보였다…. 그가 건강하길 바랬고, 그의
삶에
충실하길 바랬고, 또한 행복하길 바랬었다. 그랬으면서도 막상 그의
그런 모습은 그녀에게 아픔으로 다가왔다.
남편에겐 여자가 있었다. 결혼하고
얼마되지 않아 그 사실을 알았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다.
남편이 사실을 인정해 버리면 그 다음은 자신이
묵인해야 할 차례라는 생각에 괴롭지만 모르는
척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야위어 갔고 말이 없어져 갔다.
그들에게 아이가 없었던건 그녀가 그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고, 자기 감정의
표현이었다. 그렇게 십여년을 살았다….
남편은 그녀의 이혼 요구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녀라면
그럴 수 있으리라고 살아오면서
본능적으로 느꼈다. 아내가 한번도 여자의 이야기를 추궁하거나 물어오지 않았지만
그녀가 사실을
알고 있다는걸 은연 중에 느낄 수 있었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내와 더불어 사는 삶에 만족했고, 그녀와 죽을 때까지 함께 하고 싶었다.
여자는 그에게 휴식이었다. 지치고 힘들 때
찾던 도피처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습관이었을 뿐이었다…. 아내가 둥지라면 여자는 종달새였다.
아내는 엄숙했지만 여자는 밝았다. 아내는 이성적인 사람이었고 여자는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아내는 필요한 사람이었고 여자는 놓기 싫은 사람이었다. 살아가면서 그는 아내가 한번이라도
추궁해 주기를 바랬었다. 악을 쓰며 흐트러지기 바랬었다. 그러나 아내는
흐트러지는 대신 동굴
속으로 들어갔고, 야위어 갔고, 침묵을 선택했던
것이다. 아내가 우울증 약과 함께 피임약을 복용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었다. 새벽에 소리없이 침대에서 빠져 나가 혼자 소파에 앉아서
몇시간이고 그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 역시 새벽녁의 아내의
가출, 그녀가 거르지 않고 먹는 약들에 대해서
모르는 척하며 지내왔다. 그렇게 그들은 단절되어
갔고, 말 한마디하지
않고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악을 쓰며 달려들지 않는 아내가 원망스 러웠고, 여자와의 관계를 정리하지 않는 남편을 증오하면서 그들은 살았었다.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을 때 그는 이유를
묻는 대신 매달리는 마음으로 별거를 제안했다. 아내는 그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많은 불면의 밤을 보내며 준비를 했지만 그는 현실의 심각함을 차단했고
애써
외면했다. 이제 그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아내와 헤어질 마음은
없었고 여전히 아내를 사랑했다…. 아내가 떠나기로 한 날, 그는 집에
들어가는 대신 밤새워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 곳은 아내가 있어서 내 집이었다. 그 집을 지키지 못한 자신이 미웠고 한번도 정면으로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던 아내가 또 미웠다. 그렇게 그들의 별거가 시작되었다.
정경희는 남편과 살던 집에서 나와 아버지가
논문을 쓰기 위해 마련했던 도심의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그 날부터 그 곳이 그녀의 사무실 겸 집이 되었다. 일관계로 잠깐
방문하는 사람을 제외하곤
그녀가 사람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남편과 가끔 전화를 했지만 만나지는 않았었다.
남편은
자신에게 독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약하고 용기없는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일을 마친 밤엔 잠들기 위해서 술을 마셨다. 남편과 함께 했던 시간동안 마시지 않았던 술을
혼자
지내면서 피임약 대신 마셨다. 창가에 서서 혼잡한 거리의 풍경을 내려다 보며 술 한 모금 삼킬
때마다
슬픔도 함께 넘어가는 것처럼 목과 눈이 따끔거렸다. 단단하게 차단된 창 밖의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고 발걸음은
분주해 보였다. 거대한 도시의 풍경은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그냥
그대로 남편 곁에 머물걸 그랬나, 돌아갈
곳이 있다는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까…. 하는 후회가 잠시 드는 것도 그 시간이었다.
망가져가는 자신의 모습이 가여워서 공원에 나갔던 적도
있었다. 파란 호수엔 오리
배가 떠있고 열심히 발을 구르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기만 해 보였다.
하긴 그렇게 찬란한 햇빛 아래서 배를
타는 사람들이 우울할 리가 없다. 우울한 사람들은 조금 더
어두운 곳, 후미진 곳을 찾을 것이다. 물 위에는 어미의 뒤를 따라 열심히 헤엄을 치며 어디론가 가고 있는
오리새끼들의 모습도 보였다. 가족…. 짐승에게도 가족이 있고,
그들은 하나를 이루어 행동한다.
사람의 가족은 신뢰가 무너지면서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하다가 각자 마음의 문을 잠그고 흩어지는 데, 삶 자체에 목적을 둔 저 짐승의 가족이 왜 이다지도 자신보다
더 인간다워 보이는지,왜 이리도
부러운지…. 그날 후로 그녀는 공원에
나가지 않았다.
남편이 아버지를 위해서 찾아놓았다는
요양원은 고급 주택가에 있었다. 어느나라 대사의 관사였다는 그 곳에는 아버지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노인들이 8명 입소해 있었고 싸지 않은 비용 때문인지 흐린 눈빛을 한 노인들의 모습에선 귀품이 흐르고 있었다. 정경희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언덕 위에
자리잡은 이층 주택에는 정원이 있었고,
요양원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하여 그
곳이 아버지의 새로운 집이
되었던 것이다.
요양원의 김영우에게 가기로 한 날 아침, 정경희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김영우가 전화로 하기
곤란한 말을 혼자서 들을 용기가 없었고, 그리고 밖엔 비가 오고 있었다. 내리는 비는 사람을 감상에 젖게 했다. 촛불을 켜놓고 커피를 마시자 왠지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고 목소리도 듣고 싶었던
것이다.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그 사실은 그녀에게 다시 아픔으로 다가왔지만 마음을 추스리며 외출 준비를 했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그녀가 요양원으로 향하기 위해서 차에 시동을 걸고 윈도우 와이퍼를 작동시켰을 때 였다.
“여보세요, 전화했었어?” 비줄기는 굵어져 윈도우 와이퍼를 가장 빠르게 작동하지 않으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응, 아버지에게
일이 좀 있나 봐. 요양원에서 와 달래….” 괜찮으면 같이 가달라는
말을 삼키며
정 경희는 시계를 보았다.
“… 이렇게
비가 오는데 운전 괜찮겠어? 몇시까지 가야 하는데?”남편의 목소리에는
그녀에 대한
염려와 사랑이 담겨 있었다.
“시간은 정하지 않았어. 지금 갈려구
시동걸었어.”
“그럼 집에 들어가 있어. 내가 지금
그쪽으로 갈게. 가서 전화할 테니까 그때 나와.”
그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남편은 전화를
끊었다.
그들이 요양원에 도착한 것은 오후 두시였다. 여전히
비줄기는 굵었고 바람까지 불고 있었다.
김 영우는 두사람을 사무실로 안내했다.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날씨가
좋지 않은데 여기까지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 김영우는
두 사람에게 사무적인 인사를 했지만 그의 선해 보이는
얼굴 때문인지 전혀 사무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강점일 것이라고 정경희는 고개를 숙여 답례하면서
생각했다.
김영우는 커피 메이커에서 이제 막 내린듯한
커피를 따라 그 들 앞에 놓았다. 커피향기와 비소리와
비줄기는 제각기 다른 감각을 자극하며 완전히 하나로 어우러져 정경희에게 남편을 처음
만났던
날을 회상하게 만들었다. 그 날도 비가 왔었고 젊었던 두 사람은 찻집에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앞에 있는 남자의 시선이 부끄러워 찻잔만 매만지던 젊었던 자신의 모습…. 흘끗 남편의
얼굴을
보았다. 평범한 중년의 남자, 법적으로 남편인 남자,
사랑했던 남자, 자신을 아프게 한 남자….
“저, 오늘 이렇게
오시라고 한건요….” 김영우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말을 꺼냈다.
정경희는 김영우의 눈을 쳐다보며 현실로 돌아왔다.
“규칙상 가족분께 알려드려야 하기 때문에….” 전화로
하기 곤란한 말은 만나서도 곤란한 법일까,
김영우는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말입구에서 맴돌았다.
“괜찮으니까 편하게 말씀하세요.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죠?” 정경희의 차분하면서도 강한
어조에 김영우는 얼굴을 붉혔다. 남편의 눈길이 느껴졌다.
“예, 사실,
전에 다른 분께도 있었던 일인데요,” 전화로 들었던 말이었다. 그는 흔한 일은 아니지만 전례가 전혀 없었던건 아니라고 했었다.
“아버님께서 이 곳에 계시는 분하고…. 지난
주 월요일 밤에, 휴게실에서…. ” 김영우의 얼굴이 또
붉어졌다.
“사랑을 나누다가… 저희 직원
눈에 발견되어서…. 저, 뭐, 이런 일로 강제 퇴소,라거나 하는 일은 없으니, 그 점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규칙상 가족분들께 알려야 하기 때문에,
상대쪽 가족에게는
이미 알렸습니다…. 이렇게 일부러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김영우는 정말 말하기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그러나 강제 퇴소라는 단어와 안심이라는 말에
힘을 주며 사건을 설명했다.
김영우는 사랑을 나눈다는 표현을 했지만
정경희가 알고 있는 아버지는 엄마만을 사랑하고 엄마와만 사랑을 나누는 분이었다. 그래서 사랑이라고 그가 말했을 때 그녀는, 섹스를 했나요? 라고 되물었다. 김영우의 얼굴이 더 붉어지는걸
보았고, 그녀 역시 부끄럽게만 생각되어 입에 댄 적이 없던 그
단어를 지금 자신이 일말의 주저도 없이 사용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두 사람의 사랑을 지키는 일은
그녀에게 지금까지의, 익숙했던 언어의 옷을 벗어 던지는 것보다 그만큼 더 중요했다.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을
뿐, 그들이 일구어 놓은 사랑의 업적과 엄마와 함께 함으로써 찬란하게 빛났던 그의
역사가 사라지는건 아니었다.
만약 하루에 단 몇 초 만이라도 기억이 돌아온다면, 아버지는 분명히 그 때 엄마와
만나고 있을 것이다….
정경희와 남편은 사무실을 나와 서로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아버지의 방이 있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세상엔 여전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던 아버지는 그녀와 남편을
한동안 멀뚱멀뚱 올려다 보다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 다시 눈을 뜨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왜, 왔어?”라며, 작지만 화가 난 어투로 물었다. 기억이 돌아온
것일까, 최근엔 그녀도 알아보지
못하던 아버지였다.
“아버님 뵐려고 왔습니다. 지내시긴
괜찮으세요?”그녀 대신 남편이 대답했다.
“여보, 어디 갔다,
이제야, 온거야? ”아버지는 애틋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버지에게는
그녀가 엄마였고, 그래서 저렇게 애틋한 눈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경희는 눈머리를 가운데 손가락으로 세게 눌렀다.
옆에 서 있던 남편이 슬그머니 그녀의
손을 잡았고, 그리고 힘을 주었다. 따뜻했다….
이 비가 멈추고 해가 나면 어디선가
무지개가 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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