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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화

Author
문학
Date
2019-05-28 13:49
Views
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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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화 

문정영 




한낮에 아이가 사비연필로 그리는 밑그림 속으로 

나는 거미가 되어 기어 들어갔다 

금새 흰도화지에는 

네거티브필름 같은 윤곽이 드러나고 

나는 오래된 거미줄 위에서 뼈 뿐인 

이파리 사이를 오가며 흔들거렸다 

곧은 어깨를 펴고 

꽃을 받쳐든 둥근 줄기에도 

내 몸의 허무가 닿았다 

깨진 화분의 사금파리에서 

뿜어 올라오는 한 줄기 빛에 

다른 세상을 생각하던 눈이 감겼다 

갈색보리잠자리가 

내 입 속에서 날개치고 있었다 


엑스레이에 찍힌 검은 꽃대의 

금간 갈비뼈, 누군가 애초에 

줄기가 부러진 나무를 그린 것일까 

4절지 도화지 속에 뿌리 내린 

삶을 재생시키는 꽃화분 하나 

나는 그 동안 부러진 나무의 그림자를 

거미줄로 감싸고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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