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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음부에서

Author
mimi
Date
2016-12-23 18:56
Views
8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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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음부에서

- 예버덩 문학관에서*

 

이경림

 

 


여기 말들의 호젓한 쉼터가 있구나

지친 말은 쉬어가고 잉태한 말은 몸을 풀어도 좋겠다

 

세간에는 지금, 속도에 취한 말들이 금속성의 울음을 울고 있다

소음에 놀라 길길이 뛰며 기형의 말을 낳는 말도 있다

풀 한 포기 흙 한 줌 없는 아스팔트에서 말들은 아예 발바닥이 없어졌다

시작도 끝도 없는 그 검은 벨트에 서면 누구라도 비명을 지르며 뛰지 않으리

 

그래, 여기서는 종일 숲으로 난 오솔길을 걷던 전생을 어슬렁거려도 좋겠다

이름 모를 풀벌레와 연애하고 사랑하고

꿈처럼 포동한 말 한 필 낳아도 좋겠다

 

유구히 떨어져 내리는 목련 한 잎이

어디서 시작된 누구의 말인지 곰곰 들여다보는 일도 괜찮겠다

오늘 처음 만난 말오줌나무처럼 뒤뚱뒤뚱

허공으로 달아나 보는 일도 괜찮겠다

 

후미진 것들은 얼마나 가득한가

후미진 것들은 얼마나 환한가

문득 돌아보는 일도 괜찮겠다

 

후미진 창턱

후미진 돌멩이

후미진 날의 노을은 얼마나 찬란한가

몸 기울여 보는 일도 괜찮겠다

 

그때, 만 리 밖에서 누가 램프의 심지를 돋우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날들을 슬몃 보여주기도 하리

그러면 당신은 공연이 가슴이 쿵쿵거려

 

자귀꽃은 왜 털투성이인가

밤꽃은 왜 비린내가 나는가

묻고 물으며 심심한 버덩길을 걸어 오르리

 

어느 길에서는 이마가 훤하고 입술이 진홍빛인

말 한 필 낳기도 하리

순간, 숲의 한쪽이 화르륵 날아오르고

천지는 텅 비리

막 태어난 울음이 노래처럼 지나가리

모르는 갈피들이 펄렁펄렁 넘어가리

 

혹 7월에 눈이 내리더라도 놀라지 말자

사실 이곳은 시간의 밖

한 꽃의 회음부

 

 

* 강원도 횡성에 있는 마을 이름




 

- 『아시아』, 2015년 가을호

- 2016 제1회 윤동주 서시 문학상 수상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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