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문학자료실

워싱턴 문학

오늘의 시

평론과 해설

문학 강좌

세계의 명시

우리말 바루지기

워싱턴 문학 신인문학상 당선작

귀뚜라미 다비식

Author
mimi
Date
2016-11-22 23:58
Views
8087


d.gif



 귀뚜라미 다비식

 

 함기석

 

 

   입이 탄다

  눈이 타고 귀가 타고 심장이 탄다

  화장은 몸이라는 미궁의 천체, 그 아름다운 지도를 태워

  하늘로 재를 돌려보내는 기산(奇算)이다

 

  불 속에서 귀뚜라미 울음이 한 채 한 채 타고 있다

  그것은 우주 저편 먼 얼음의 별에서 울려오는

  히페리온의 아픈 잠

  다비의 담 뒤꼍에서 어린 귀뚜라미들 울고

  말과 침묵 사이에서

 

  나는 본다

  죽은 귀뚜라미 얼굴에서

  끝끝내 타지 않고 나를 보는 두 개의 검은 눈동자

  거기에 거꾸로 착상되어 떠오르는

  삼천대천세계를

 

  전생과 내생 사이로 불길하게 흐르는 불

  하늘과 대지 사이로 빗물에 섞여 흘러가는

  죽은 자들의 피와 뼛가루

  검은 납덩어리 같은 죽인 자들의 웃음소리

  이 모든 것의 함수(f)와 역함수((f-¹)의 가혹한 존재조건들

 

  귀뚜라미 몸이 타고 있다

  오늘도 역사책은 흙먼지 휘말리는 트로이 성벽에

  찌그러진 투구와 함께 헥트로의 머리처럼 나뒹구는데

  한 장의 마른 낙엽 위에서

  죽은 귀뚜라미 덮은 11월의 하늘과 땅이 한 몸이 되어

  창백한 백지처럼 불타고 있다

   

  연기는 죽은 자들이 땅에 누워 하늘로 흘리는

  기체의 눈물이자 원한의 흰 피

  시간은 지상의 인간을 상수 C로 소거시키는 기이한 대수방정식

  귀뚜라미 타는 몸에서 불붙은 새들이 날아오르고

  검은 주판알들이 계속 튕겨나간다

 

  입이 탄다

  우리의 손발이 얼굴이 타고 몸통이 타고

  재의 치마 속에서 금빛 실들이 나와 햇빛과 몸을 엮는다

  누가 돌리는 걸까

  저 아름답고 아픈 가을볕 속의 황금물레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