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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덩굴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Author
mimi
Date
2009-04-03 09:33
Views
13186
담쟁이 덩굴



조원





두 손이 바들거려요 그렇다고 허공을 잡을 수 없잖아요

누치를 끌어올리는 그물처럼 우리도 서로를 엮어 보아요

뼈가 없는 것들은 무엇이든 잡아야 일어선다는데

사흘 밤낮 찬바람에 찧어낸 풀실로 맨 몸을 친친 감아요

그나마 담벼락이, 그나마 나무가, 그나마 바위가, 그나마 꽃이

그나마 비빌 언덕이니 얼마나 좋아요 당신과 내가 맞잡은 풀실이

나무의 움막을 짜고 벽의 이불을 짜고 꽃의 치마를 짜다

먼저랄 것 없이 바늘 코를 놓을 수도 있겠지요

올실 풀려나간 구멍으로 쫓아 들던 날실이 숯덩이만한 매듭을 짓거나

이리저리 흔들리며 벌레 먹힌 이력을 서로에게 남기거나

바람이 먼지를 엎질러 숭숭 뜯기고 얼룩지기도 하겠지만

그래요, 혼자서는 팽팽할 수 없어 엉켜 사는 거예요

찢긴 구멍으로 달빛이 빠져나가도 우리 신경 쓰지 말아요

반듯하게 깎아놓은 계단도, 숨 고를 의자도 없는

매일 한 타래씩 올을 풀어 벽을 타고 오르는 일이

쉽지만은 않겠지요 오르다 보면 담벼락 어딘가에

평지 하나 있을지 모르잖아요. 혹여, 허공을 붙잡고 사는

마법이 생길지 누가 알겠어요



따박따박 날갯짓하는 나비 한 마리 등에 앉았네요

자, 손을 잡고 조심조심 올라가요

한참을 휘감다 돌아설 그때도 곁에 있을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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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격조 높은 사랑 고백 그윽한 울림




따로 예심을 거치지 않고 심사위원 세 사람이 응모 작품 전체를 나누어 읽었다. 생각과 말의 균형이 일그러져 있거나,
유행을 추수하고 있거나, 겉멋에 치우쳐 있거나, 지나치게 수다스러운 작품들을 제외하고 일차적으로 서른 명 남짓을 추렸다. 이를
다섯 명으로 줄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서진 씨의 '물의 씨앗'은 어조가 활달하고 상상력의 전개가 볼 만했으나 관념을 구체화하는 데 미흡했다. 이와 반대로
이규 씨의 '해바라기 노란 열쇠'는 시가 대상의 구체적 형상화라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아버지의 부재와 관련해서 독자를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최정아 씨의 '그의 우화(羽化)'는 재기 넘치는 상상력과 감각으로 일상을 성찰하는 시인데, 그 상상력이
크게 확대되지 않아 아쉬웠다.


김승원 씨의 '다시, 봉천고개'와 조원 씨의 '담쟁이 넝쿨'은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능숙하게 끌고 가면서 일상적인
소재를 적절한 이미지와 결합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다만 김 씨의 작품은 일부 상투적인 표현을 노출하고 있어 아깝지만 뒤로
제쳐두기로 했다.


당선작 '담쟁이 넝쿨'은 담쟁이 넝쿨이라는 시적 대상에다 건강하고 격조 높은 사랑의 고백을 매우 탁월한 기법을 이용해
얹어놓았다. 이 시가 발산하는 그윽한 울림을 우리 모두의 것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함께 응모한 '시루 속 콩나물'의
대담한 상상력도 이 시인을 믿음직스럽게 만들었다. 축하드린다.  



<심사:김종해, 강은교, 안도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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