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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론

Author
mimi
Date
2016-04-24 15:38
Views
8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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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론

구석본

 

수목원을 거닐다 나무에 걸려 있는 명패를 보았다. 굵은 고딕체로 개옻나무라 쓰여 있고 그 밑 작은 글씨로 ‘추억은 약이 되나 독성이 있다’ 고 쓰여 있다. ‘추억이 약이 된다’ 멋진 나무야,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니 ‘수액은 약이 되나 독성이 있다’였다.

그러나 그날 이후 나는 그 명패를 ‘추억은 약이 되나 독성이 있다’로 읽기로 했다.

 

햇살이 영혼을 쪼아대던 봄날, 신경의 올마다 통증이 꽃처럼 피어오르면 약 대신 추억의 봉지를 뜯었다. 밀봉된 봉지에서 처음 나온 것은 시간의 몸, 시신(時身)이었다. 시신은 백지처럼 건조했다. 피와 살의 냄새조차 증발해버렸다. 그 안에 사랑과 꿈과 그리움들이 바싹 말라 부스러져 있었다. 그들의 근친상간으로 잉태한 언어들이 발화하지 못한 채 흑백사진으로 인화되어 있다.

약이 되는 것은 스스로 죽은 것들이다. 죽어서 바싹 마른 것들이다. 살아있는 것에서 독성을 느끼는 봄날이다.

 

약을 마신다. 정성껏 달인 추억을 마시면 온 몸으로 번지던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나의 영혼이 조금씩 말라간다. 언젠가 완벽하게 증발하면 나 또한 누군가의 추억이 될 것이다.

 

봄날, 추억처럼 어두워져 가는 산길을 홀로 접어들어 가고 있는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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