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먼자 (KIMEUNJA)/ 김은자
공항에서 잃어버린 두개의 이민가방이 도착한 것은
미국에 도착하고 육개월 후, 동네 간이 우체국
찌그러진 깡통 이민 가방이 내 발 앞에 놓였을 때
이름표에는 이름이 반쯤 지워져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KIMEUNJA 귀.먼.자.로 불렀다 운명같은 해독 이후 나는
귀머거리가 되었다 모국어가 목마른 날이면 먹먹해진
귀를 홀로 만지며 대숲을 뒹구는 사람들 틈 속에서
지퍼를 열면 붉은 울음이 빗방울처럼 매달려 있었다
이민 올 때 엄마가 사준 꽃무늬 원피스는 아직도
한쪽 팔이 꺾인 채 옷장 한켠 박제처럼 걸려 있다
귀머거리의 속성은 엷게 떨다 눈을 잠가 버리는 것
겨울에 떠나 여름에 도착한 개화를 모르는 그리움
깊숙이 손을 넣으면 이민 올 때 언니가 사준 벙어리
장갑이 딸려 나온다 귀가 멀면 입도 멀어지는 법
이국異國은 명치뼈 아래께 느껴지는 통증 같은 것
흰 편지에 봉인된 얼굴들을 넣고 돌아서는 색색色色의
사람들 발음 틀린 소통이 오래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