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조도花鳥圖
- 박남희
꽃은 날개 없이 날아다니는 새이고
새는 날개로 춤추는 꽃이다
네가 나를 사랑했다면 너는 새이고 꽃이다
꽃을 품은 새는 향기로 날아서 천년을 산다
내가 너를 생각할 때마다
길가에 핀 작은 꽃잎들이 흔들리고
그 위에 앉았던 새는
천년을 날아서 너에게로 간다
너는 나에게 새의 울음소리를 내는 꽃이다
내가 너에게 날개를 이야기 했을 때
너는 꽃으로 붉게 울었다
그 때 꽃대가 흔들리고 새가 날아왔다
나는 지금 꿈꾸듯 한 필의 붓으로 너에게 간다
나의 몸짓이 농담濃淡이 없어 백묘법으로 너를 말하고
때로는 윤곽을 보여주지 않는 몰골법으로 너를 그려도
붓의 뒤에 숨은 나의 말은 여전히 한 편의 화조도여서
잠시 새가 꽃을 떠나거나 꽃이 새를 버리는 일이
영원한 이별이 아님을 나는 안다
너를 그릴 때 너는 내게 영원한 날개이고 꽃이지만
네가 울 때 내 몸은 너와 함께 흔들려
네 윤곽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너를 달래듯
구륵법으로 네 윤곽을 먼저 그린다
그리고 비로소 그 안에 너를 색칠할 수 있다
네가 꽃의 향기와 날개의 몸짓으로 내게 온 것을
한 편의 그림으로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만
내가 붓이 되어 너를 꿈꿀 때 내 몸은 여전히 황홀한 춤이다
*백묘법白描法은 동양화에서, 농담이 없이 먹의 선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말하고, 몰골법沒骨法은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먹이나 채색으로 직접 그리는 기법을 말하며, 구륵법鉤勒法은 윤곽을 필선으로 먼저 그린 다음에 그 안을 색칠하는 화법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