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외계인을 기다리며
양해열
끽해야 20광년 저기 저, 천칭자리
한 방울 글썽이며 저 별이 나를 보네
공평한 저울에 앉은
글리제 581g*!
낮에 본 영화처럼 비행접시 잡아타고
마땅한 저곳으로 나는 꼭 날아가리
숨 쉬는 별빛에 홀려
길을 잃고 헤매리
녹색 피 심장이 부푼 꿈속의 ET 만나
새큼한 나무 그늘에서 달큼한 잠을 자고
정의의 아스트라에아,
손을 잡고 깨어나리
비정규직 딱지 떼고 휘파람 불어보리
낮꿈의 전송속도로 밧줄 늘어뜨리고
떠돌이
지구별 사람들
하나둘씩 부르리
*생명체가 존재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춘‘또 다른지구’가 골디락스존 (GoldilocksZone)에서 최근에 발견되었다.
<동아일보>
눈뜨는 화석
천마총에서
황외순
소나무에 등 기댄 채 몸 풀 날 기다리는
천마총 저린 발목에 수지침을 꽂는 봄비
맥 짚어 가던 바람이 불현듯 멈춰선다
벗어 둔 금빛 욕망 순하게 엎드리고
허기 쪼던 저 청설모 숨을 죽인 한 순간에
낡삭은 풍경을 열고 돋아나는 연둣빛 혀
고여 있는 시간이라도 물꼬 틀면 다시 흐르나
몇 겁 생을 건너와 말을 거는 화석 앞에
누긋한 갈기 일으켜 귀잠 걷는 말간 햇살
<매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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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브라토 김석이 호수 위에 떠 있는 백조의 발밑으로 수없이 저어대는 물갈퀴의 움직임 점선이 모여서 긋는 밑줄이 떠받치는 힘 차선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바퀴들 꿈틀거리는 지면을 가속으로 쫙쫙 펴는 평평한 길 아래 있는 주름들의 안간힘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의 손가락들 소리의 맹점 찾아 이리저리 누를 때 닫혔던 물꼬를 틀며 길을 여는 강물소리 부딪쳐야 파문으로 밀려오는 그림자 짓눌려야 짓물러야 풀어지는 소리 가닥 발끝에 온힘을 모아 중심을 잡고 있다 |
<불교신문>
암자에 홀로 앉아
박 상 주
날 좀 때려주오
천년고찰 범종 치듯
안으로
다져놓은
전탑(塼塔)언어 청태(靑苔)눈물
빈 골짜
다 쏟아 붓고
나비 되어 가련다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시조]
애기똥풀 자전거 /박성규
색 바랜 무단폐기물 이름표 목에 걸고
벽돌담 모퉁이서 늙어가는 자전거 하나
끝 모를 노숙의 시간 발 묶인 채 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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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윤문영 |
뒤틀리고 찢긴 등판 빗물이 들이치고
거리 누빈 이력만큼 체인에 감긴 아픔
이따금 바람이 와서 금간 생을 되돌린다
아무도 눈 주지 않는 길 아닌 길 위에서
금이 간 보도블록에 제 살을 밀어 넣을 때
산 번지 골목 어귀를 밝혀주는 애기똥풀
먼지만 쌓여가는 녹슨 어깨 다독이며
은륜의 바퀴살을 날개처럼 활짝 펼 듯
페달을 밟고 선 풀꽃, 직립의 깃을 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