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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 이야기/이정자

Author
mimi
Date
2012-04-23 19:09
Views
11010

 

                                          


나의 작품 이야기 / 이정자



스스로 얘기할 만큼 뚜렷한 저의 작품세계가 있는 건 아니고요 그저 시가 좋아서

끄적이다 보니까  어렴풋이 형성된 나의 모습이 아닌가싶습니다.

아래 시가 초기에 쓰여진 저의 작품입니다.


 

  내 속에 사는 시

 

시가 좋아서 머리맡에는 늘 시집을 쌓아놓고 읽다 잠이 드는데 간혹 끝간 데 없이 초라하고 티끌만큼이나 작아지는 내 모습에 뒤척이다 놓아 버리자 다짐도 해 보지만 심장의 박동처럼 내 안에 뛰는 시

 

 
허기져 펼친 원고지 위엔 눈, 코, 입도 없이 빙산에서 녹아내린 얼음 덩어리로

작은 섬 하나에도 닿지 못하고 스스로 외로운 섬이
되어 둥둥 깊은 바다 위를

떠다니다가 배신당한 설움인 듯 고개떨군 패잔병인 듯 적막한 내 방안은 캄캄한

파도에 침몰하고 돌아누워
눈감으면 다시 내안에 뛰는 시    

                              

                             

 
시를 쓰기시작한지 한 5년 정도 되었을 때 쓴 작품인데  이맘 때 저의 시에 대한

열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내 생활이 많이 편안해 졌고 시간도 많아 졌는데 시는 더 안 쓰여 지는걸 보면 시간이 많다고 시를 더 잘

쓰고 더
많이 쓰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흔히들 시인들은 먼 산보고 헛소리하고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나 한다고

하는데 적어도 그건 시를 위해 모인 우리들의 얘기는 아니지요

 
밤새 끙끙 거리며 쓴 시를 아침에 일어나 소리 내어 읽어보면 금방 쥐구멍에

숨어 버리고 싶어 던져 버렸다가는 또 다시 꺼내들기를
반복하는, 때론 혼자

가슴 떨리는 희열을 맛보기도하는, 이런 것들이 시를 붙들고 있는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꼭 집어 저의 시세계 운운 하기는 미흡하지만 그런대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저는 조금 이 시대에 다른 시인들이 가지지 못한 경험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경험이 저에게 시를 쓰는 바탕이 되기도 하는데

아래 작품을 읽으며 얘기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목화밭에서

 

그해 여름

무덥던 한나절

어머니 치마폭 잡고

등 너머 목화밭에 가서

당신은                                                                   

솜사탕처럼 피어있는 목화를 따셨지요

어린 나는  

다디단 다래를 따먹었고요

             

개울 옆 푸섶에선

푸드득 산 꿩이 날고

산허리 질러와 땀방울 훔쳐가던

솔바람

       

어머니-

목화송이 벙글은  

액자 속 그림 같은 정원에 앉아

꿈꾸듯 눈을 감습니다 

     

석 새* 베에 열두 새 솜씨라며 간곡히 이르시던

그 말씀

왜 이리 사무쳐 오는지요

                       

*  피륙의 날을 세는 단위

               


   

  바로 이런 특별한 추억입니다.

저는 아주 산골벽촌에서 태어나 십리를 걸어 초등학교를 다녔고 그 이후 대학을 졸업 할 때까지 쭉 자취와 하숙을 하며 방학 때면 고향으로 내려가 특히 60년대의 보릿고개와 피폐한 농촌의 뼈아픈 현실을 보며 성장했습니다.

  그 시절 시골 아낙들이 다 그러 하듯 제 어머니 역시 낮이면 논과 밭일을 하시고 밤이면 호롱불 아래서 길쌈하시는 농투성이 아낙 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파 돌아서 눈물  흘리면서도 마치 그 모든 환경이 어머니 탓 인양 패악을 부리곤 하였지요.

  그러던 그곳이 지금은 너무 그리워 달려가 안기고 싶은 제 시의 바탕이며 제 시의 곳간이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위의 시는 내가 7-8살 때였던 것 같은데 한 폭의 수채화로 펼쳐놓은 그 등 너머 목화밭에서 목화를 따며 일러주시던 어머니의 말씀입니다. 지금도 가끔  그곳으로 달려가 그날의 어머니를 만납니다.

 “석 새 베에 열두 새 솜씨”

  주를 달기는 했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될 겁니다.

그 시절 농촌 풍토를 알고 있는 저로서는 우리전통문화인 길쌈하는 모습을 시로 말하는 마지막 증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또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최근에 "석새베에열두새솜씨"에 대한 얘기를좀구체적으로썼습니다.                                          

 


석 새 베에 열두 새 솜씨

 

나는 표절시인

그녀의 생을 우려, 그녀가 하던 비유와 은유로 시를 쓰는

 

나를 데리고 목화를 따면서

“이거 보래 참 폭신하고 햐얗재, 이건 열두 새 베가 될끼다“

그리고

끝물에 딴 목화는 북덕실로 뽑아 석 새 베로 짜여 진다며

“석 새* 베에 열두 새 솜씬 기라 ...”

 

봉창으로 스민 새벽빛 같던

그 말씀

불현듯 내 눈을 밝혀

   

땀 밴 이마에 흰 수건 동여매고

내 등에 짊어진 북덕무명 석 새 베로

세밀한 눈썰미, 간절한 손끝으로 마름질하여

깨끼로 옷을 짓듯  

나의 삶을 지을게요

 

그 날

당신께로 들면

열두 새 솜씨로 옷 한 벌 지어 입고

내 딸이 왔노라고, 열두 새로 왔노라고

애타시던 그 얼굴이 목화송이 같겠네요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그 말을 왜 어린 나에게 하셨는지 어찌하여 그때 들었던 그 말씀이 지금도 내 귀에서 환청으로 들리는지....

제 어머니는 겨우 삐뚤삐뚤 한글을 쓸 정도였는데

볼품없는 석 새 베를 가지고도 솜씨 좋게 바느질을 하면 맵시 있는 옷이 지어진다는 뜻으로 하신 비유 같기도 합니다.

  저는 또 이 시대를 밟고 가야할 나 자신의 삶으로 형상화하여 위의 시를 지었습니다.

‘ 어떤 어려움도 내 것으로 끌어안고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 하라는,

제게 주셨던 어머니의 교훈으로 새기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뿌리는 한국이고 거기서 내렸던 뿌리를 옮겨 접붙여진 사람들이며

이곳에 살기위해 바동거렸던 몸부림, 고향 떠난 설움, 낯섬과 그리움 그래도 이겨야 하는 현실, 반드시 이루리라는 의지, 희망

그런 마음으로 아래 시를 썼습니다.

 



눈먼 무지개숭어의 독백

                -LOST SEA*

그 때

내 비늘은 영롱한 무지갯빛이었고

명경 같은 눈망울 굴리며

굽이치는 강줄기 휘돌아

더 넓은 바다에 닿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내 운명은 장난처럼

깜깜한 동굴 속 호수에 갇혀

점점 눈이 멀고

영혼마저 가둔 오랜 시간

간절히

푸른 강물 너른 바다

내 안으로 불러들이며

어둠을 헤치며 헤엄쳤습니다

 

비로소

어렴풋이 열리는

그 강물 소리

강기슭 나르는 새들의 노랫소리

서서히 밀려가는 어둠 사이로

출렁이기 시작하는 저,

파도 소리

             


* lost sea ; 테네시주에 있는 지하 동굴 속 호수 암반 사이에서 흘러내린 물이 호수를

            만들고 있는데 흘러가는 물길을 찾지  못해 붙여진 이름이며 그 안에 사는

            무지개 숭어는 눈이 멀었다고 함

 


  어쩌면 우리는 모두 제한된 시간과 공간 안에 갇혀 저 눈먼 숭어처럼

눈이 멀어가며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래도 닿아야할 너른 바다를 꿈꾸며 주어진 현실을 헤쳐 나가야 되겠다는 결의 같은 마음으로 지은 시 입니다.

 

  아무리 살아도 언제나 낯선 땅 그렇다고 후회만 있는 땅 또한 아닌,

이제는 그런대로 뿌리내린 이곳으로 눈과 귀를 돌려 코리안 아메리칸의 긍지를 가지고 우리들의 눈에 비친 미국인, 미국사회, 또 다양한
인종. 지구촌문화들을 접하고 이해하며 시를 통하여 형상화하는 작품을 써 보고 싶은데 저는 이미 한국에서 뼈가 굵어져서 온 터이라
참으로 어려운 것임을 절감합니다.

앞으로 젊고 역량 있는 신인들이 많이 들어와 이런 부분들을 개척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 간절합니다.

 

  눈만 들면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환경, 이른 봄 빈 가지에 앉아 사랑에 취해 있는 새들의 모습이 너무 예뻐 지은  밝고 경쾌한 아래 시를 읽으며 제 얘기를 끝내겠습니다.

 

 

봄비 한줌

 

삐죽삐죽

벌어진 주둥이 다물지 못하는 조것들 좀 봐

부풀은 땅속의

애벌레들,

새싹들이여

아무리 몸 달아도 아직은 빈

나뭇가지에 바싹 몸 부치고 주둥이 맞대고 앉아

속살거리며, 속닥거리며

날개야 젖어라

젖어도 좋아 봄비인걸 뭐

어머나!

간지럽게 조것들 하는 짓 좀 봐 

                   

             

   


 

- 3월의 글 사랑방에서 / 이정자 -

                                         (3월 24일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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