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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예찬/윤학재
막걸리 예찬 -윤학재-
고산 윤선도는 외로운 귀양사리에서 자연을 벗으로 오우가五友歌를 노래했다.
“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더하여 무엇하리“
* 물은 맑고 깨끗하게 끝없이 흐르니 좋아하고 / * 돌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니 믿음직스러워 좋고 / * 소나무는 눈 비를 가리지 않고 항상 푸르니 좋아하고 / * 대나무는 청렴 결백하게 사철 푸르니 좋고 / * 달은 하늘에서 만물을 비치면서도 말이 없어 좋다고 했다.
세상 사는 동안 만나고 떠나는 인연은 많지만, 노년의 그림자 길에 진정한 벗으로 남는 친구는 몇이나 될까? 고독을 사랑하며 외롭게 살아가는 나에게 슬며시 찾아온 벗이 하나 있다. 말도 없고 미소도 없고 똑똑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고 거만하지도 않고 격식도 없는 텁텁하고 편안한 벗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사람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며 바람도 향기도 아닌 ‘막걸리’라는 친구다. 나는 그 이름이 좋다. 순, 진짜, 원조, 같은 자기 높임이 없어서 좋다. 순두부, 진짜 고추 가루, 원조 설렁탕, 이 아니고, ‘막’이라는 성과 ‘걸리’라는 이름이 좋다. 순 걸리, 진짜 걸리 가 아니고 ‘막걸러 낸 술’ 이라는 풀 뿌리 이름이 좋다.
학생시절 처음 나온 “도라지 위스키 시음장” 에 드나들면서 위스키를 홀짝홀짝 마시던 시절부터 시작한 술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진로소주가 주왕님 자리를 차지했다. 당시 12시 정오 뉴스 직전에 나오는 “진로 한잔 하고 카아아~♬하면 진로파라다이스” 라는 광고방송으로 두꺼비 진로 소주는 술의 대명사가 됐다. 나는 그때부터 미국으로 이민 오던 40살까지 두꺼비가 친구였으니 내가 마신 소주는 얼마나 될까? 만일 미국에 오지 않고 계속 두꺼비 친구로 살았다면, 오래 전에 집 떠나 산에서 자고 있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워싱턴에 와서 즐겨 마셨던 술은, 한국의 공무원 월급쟁이로는 근처도 못 가는 ‘죠니워커’, 박 대통령이 좋아했다는 ‘씨바스 리걸’을 날마다 비후스택을 안주로 마실 수 있었으니 이민살이가 성공살이로 느껴졌다. 이렇게 수십 년을 마셨으니 뱃속에 창자가 얇아지고 속이 쓰리더니 급기야는 “못살겠다 갈아보자” 혁명 구호가 일어났다. 의사의 경고처분으로 양주나 소주는 진열장에 장식품이 되었고 막걸리를 酒님으로 모셨다. 다행이 지금 나오는 막걸리는 모두가 쌀 막걸리로 맛도 좋고 소화작용에도 좋은 보약 술이 되었다.
막걸리는 우리 조상님들이 즐겨 마시던 전통 민속주다. 막걸리는 배고프던 시절에 술이면서 배를 채워주는 밥이기도 했다. 논두렁이나 밭에서 새참으로 마시는 농주 막걸리는 삶의 기쁨이고 흙 냄새 구수한 情이었다.
조선시대 재상 정인지가 막걸리는 생김새가 아이들 키우는 젖과 같으며, 막걸리는 노인들의 젖줄이기도 하다고 했다. 조정에 이 판서라는 사람은 약주나 소주를 마다하고 막걸리만 좋아했다, 아들이 아버지는 왜 좋은 술을 마다하시고 막걸리만 좋아하십니까 하니, 아들에게 소 쓸개 3개를 구해 오라 했다, 한 쓸개주머니에는 소주를 담고, 다른 쓸개에는 약주를, 그리고 또 다른 쓸개주머니에는 막걸리를 담아 처마 밑에 매어 두었다가 며칠 후에 쓸개주머니를 모두 열어보니, 소주 담은 쓸개주머니는 구멍이 송송 나 있고 약주 담은 쓸개는 벽이 상해서 얇아져 있는데, 막걸리 담은 쓸개주머니는 벽이 이전보다 오히려 두꺼워져 있었다. 이렇게 막걸리를 마신 정인지, 이 판서, 문호 서거정 같은 사람들은 막걸리 덕에 무병장수 했다는 것이다.
막걸리에는 五德三反 오덕삼반 의 철학이 있다. 五德은 * 막걸리는 취하되 인사불성으로 취하지 않음이고 / * 새참에 마시면 요기가 되어 힘을 주고 / * 외로움과 허전함을 씻어주고 용기를 주며 / * 어려움이 있을 때 막걸리 한잔으로 만사가 풀리고 / * 관가나 향촌에 다툼이 있을 때 바가지 막걸리를 돌려 마시면 감정이 풀리고 평화가 온다. 三反은 * 일 하지 않고 막걸리를 마시면 속이 끓고 트름만 나며 숙취를 부르니 일 하라는 정신을 가르침이요 / * 강화도령에서 임금이 된 철종이 궁 안에 美酒미주를 마다하고 토방에 오지항아리 막걸리를 마셨던 것처럼 서민 지향적이고 반 귀족적이며 / * 軍, 官, 民이 참여하는 행사나 제사 때에 合心酒합심주로 막걸리를 돌려 마셨으니 평등지향적이고, 반 계급적으로 막걸리는 三反主義삼반주의 民俗酒민속주 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한국인 성질답게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하자고 양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폭탄주가 유행하더니 요즘에는 쌀 막걸리가 많이 생산되어 널리 보급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 민속주요, 한국사람 정이 흐르는 민족주요, 몸에도 좋은 보약주인 막걸리를 마시면서 국민모두가 막걸리 철학이 있는 민족이 되었으면 좋겠다. 막걸리 자랑을 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한석봉의 풍류 시조가 생각난다. “ 짚방석 내지 말아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불 혀지 마라 어제 진 달 돋아온다 아이야 박주산챌 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