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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 볼/박 현숙
샐러드 볼 (Salad Bowl)
박 현숙
다양한 문화 배경을 가진 여러 나라 민족이 이민 와 하나의 연방국가를 이룬 미국에서 인종차별이란
말은 언제나 민감한 반응을 일으킨다.
오래 전에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처음 도착 했을 때만 해도 이 사회를 커다란 용광로 (melting pot)라고
불렀었다. 우리 식구 들은 물론이거니와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생소한 언어와 문화에 대한 기대와 설렘,
그리고 불안감도 함께 지니고 이민생활을 시작한다고 할 것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며 부르기 쉬운
영어 이름을 만드는 것도 새로운 문화에 익숙해지기 위해 부단한 노력중의 하나 일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거대한 미국을 tossed salad 혹은 mixed salad bowl이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모든 재료를 녹여서 하나의 형체로 만드는 용광로와는 달리 샐러드는 푸른 야채는 야채대로, 붉은
토마토는 토마토대로, 동그란 오이는 동그란 대로 모든 재료가 한 그릇에서 섞이면서 맛을 내지만 그
특유의 맛과 모양은 잃지 않는 것이다. 마치 여러 재료를 밥 위에 얹어 비벼먹는 비빔밥에 콩나물 맛,
도라지 맛, 고사리 맛을 따로 맛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민자에 대한 인식과 정서가 바꿔진 것이다.
그 나라 고유의 전통을 지키면서 다양한 문화사회로 조화를 이루어 나가도록 이민자들을 격려한다고 할까.
용광로라는 말로 미국에 들어서는 순간 개개인의 나라 배경과 사고를 거부하듯 위압감을 주던 때와 달리
이제는 이민자의 문화를 좀 더 존중하고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진다.
얼마 전 동네의 중학교에서 학생들의 인종 차별 사건에 접했다. 뉴스에는 백인 학생들이 N 으로 시작하는
말로 흑인 학생들을 여러 번 반복하여 불렀다고 했다.
흑인을 negro 라고 하는 것은 피부 색깔을 표현 하는 구어 (old English) 로써, 지금은 African American
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nigger 이라고 하는 것은 노예 라는 비하의 뜻이 담겨 있기에 극히 삼가야 할
인종 차별의 단어이다.
워싱턴 근교의 대부분의 학교들은 이민 온 자녀들이 많이 섞여있는데, 이 학교는 소수민이 유난히 적은
곳이다. 처음에는 그저 좋은 학교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우리 아이들을 입학시켰다. 그러나 큰아이가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를 졸업할 쯤에는 과연 무엇이 더 중요 한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혹시 인종차별을 받지는 않는지 가끔은 염려도 되었다. 이민 온 자녀들과 함께 한 학교에서 공부하면 오
히려 다양한 문화를 손쉽게 접할 수 있고, 시야도 좀 더 넓혀질 수 있겠다는 것을 뒤늦게 깨닳은 것이다.
그래서 소수민족이 많이 있는 곳, 나아가 한국 학생들이 많이 있는 곳에 있게 하고 싶은 잠재의식이 지
난번에 아들의 대학교 결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 같다.
문득 어려서 학교에 다닐 때 보았던 어느 화교 여학생이 생각났다. 같은 반의 학생이건만 항상 먼 곳에서
따로 떨어져 서 있던 그 모습,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았던 그 아이의 외톨이 모습이 지금에 와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인종차별이라고 미처 생각도 못 하였고, 그 아이가 받았을
마음의 상처에도 무감각 하였고 무심하였다.
5000년 단일 민족의 긍지 뒤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의 배타적인 민족성을 생각하다 과연 우리가
단일민족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그 많은 외세의 침략과 쟁벌로 인하여 알게 모
르게 인근 나라 민족과 혼합되어 왔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지금은 우리 조국이 발전하여 단순
근로자로부터 고급 인력에 이르기까지 많은 제 3국인들이 한국을 선망하여 들어와 살고 있다.
그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에 힘겨워하고 부당한 대우와 더러는 착취까지 당하는 가슴 아픈 기사를
읽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그런데 바로 이곳 중학생들이 아프리카에서 온 외교관의 자녀들에게 이런 일을 행 한 것이다. 학교에서는
곧 학부모교사회 (PTA) 가 열리고 교장 선생님의 편지가 각 가정에 보내졌다. 계속 그 사건을 주시하던
나는 그 편지내용을 간추린 기사에 크게 동감하였다. 그는 근본적인 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하며, 자녀들이 이 일을 바르게 생각 할 수 있도록 부모들이 자녀들과 대화를 나누도록 권유했다.
가정에서 부모가 인종 차별의 언어를 스스럼없이 하면 자녀들 역시 아무 여과 없이 그것을 받아들여
거리낌 없이 사용 하는 것 이다. 얼마나 귀중한 우리 자녀들인가. 이 자녀들 때문에 미국에 이민 왔고,
이 자녀들 때문에 일 년 열두 달, 하루 열두 시간씩 방탄유리 안에서 두려움을 극복하고, 한 여름 세탁소의
찌는 더위도 참아 낼 수 있는 것이다. 내 자녀들이 몸도 생각도 건강하고 반듯하게 자라 이 미국 사회에서
자기 위치를 갖고 살기를 누구나 소원할 것이다. 내 민족이 어느 민족보다 높은 것은 아니다. 내 민족을
비하할 것은 더 더욱 아니다. 피부의 색깔로 내 마음이 굴절되지 않고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마음의
눈이 떠지며 새삼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위의 친척, 동창 그리고 친구들의 가정 중에 적지 않은 숫자의 사위, 며느리가 백인과 흑인은 물론이요,
중국인, 월남인, 남미인도 늘고 있다. 각 나라의 문화와 고유전통이 잘 이어진다면 결국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지 않겠는가.
주간 워싱턴 수필 연재 (2006년 11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