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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 그대로/수필문학회

Author
mimi
Date
2010-07-27 04:56
Views
4923
 



모습 그대로 /최원현




 


어렸을 적에 나는 제사 상에 올리기 위해 밤을 치시는 어른들을 보았다.
모양 나게 깎여진 밤을 보고 나도 그렇게 깎아 보려고 무던히 애를 썼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어리다고는 해도 내가 깎은 밤은 할아버지께서 깎아 놓으신 밤에는 견줄 수도 없을 만큼 삐뚤고 볼품도 없었다.
더구나 서툰 솜씨다 보니 살을 깎아버려 남겨진 밤톨은 처음의 반도 되게 줄어 있곤 했다. 그러나 불혹의 나이를 지나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많을 없는 지점에 있으면서도 할아버지처럼 맵시나게 밤을 깎을 자신이 없다

 

그뿐인가 나는 그림도 그린다. 보고 그리는 그림뿐 아니라 어느 곳의 간단한 약도를 그리라 해도 제대로 그려 내지 못한다. 그리는 , 만드는 것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운동이나 노래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없다. 그런
'
'이고 보니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크게 잘하는 어디 있겠는가.



그런가 하면 끈기도 없고 금방 싫증을 내곤하는 나의 성격은 무엇 하나 진득하게 끝을 맺는 없다.
시작은 비교적 하면서도 이내 도중 하차를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방향을 바꿔 버린다.
그것이 나요, 나의 모습이다. 그런 내가 글을 쓴다니 어찌 글이라고 제대로 되겠는가. 하지만 이것만은 그렇게 호락호락 지고 싶지 않으니 모를 일이다.




글을 쓰는데도 어떤 이는 쓰면서 앓고,
어떤 이는 미리 앓고 나야 글이 써진다는데 나는 그런 것도 없다.  펜을 잡으면 날이고 줄의 글도 쓰지 못하다가 어느 불현듯 쓰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나면 단숨에 짧은 쯤은 끝내 놓는다.
그런 다음 그것을 없는 두었다가 한참 시간이 지난 다시 글을 꺼내어 읽어보고는 넣고, 보태고,
고치기를 하여 이름을 붙이고 출생 신고를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 대개 초고에서 크게 가감되거나 수정되는 것이 별로 없다. 문장과 문맥이 이상한 부분만을 바로 잡을 처음 글을 별로 고치지 않는다. 상이 잡혀 바로 나간 그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번도 고놈 아주 생겼구나 하고 마음에 들어 적은 별로 없다.
아쉬움이고, 부끄러울 뿐이고,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서 내게 보내지는 작품집들을 받으면 작품들을 생각하며 특별한 애정을 갖게 되고,
그러면서 다시 나의 부족함을 확인하고,
어엿하게 가꾸고 키워 시집 장가 잘도 보내지는 ,
권의 책들에 한껏 찬사와 부러움을 보낸다.
그렇기에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내게 보내지는 책들은 읽어보고 축하와 고마움의 글을 보낸다.
대개 곧바로 보내지만 하나 까딱하기 싫은 병이 도지면 마음의 환절기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숙제를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들의 고통,
아픔, 기다림의 산고에 얼마나 위로나 격려가 되어 있겠는가마는 나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더욱 빚진 마음이 되는 같기 때문이다.


 
창작! 나는 창작이란 말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이 과연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주제를 생각할 내게서 무엇이 나온다는 자체가 마치 분만실의 산모 같은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시 손가락이 하나 있거나 모자라지 않을까, 눈과 귀는 있어야 곳에 제대로 있는가 하는 식의 그런 염려와 불안이 아무리 크더라도 예쁜 아이를 낳고 싶다는 어머니의 본능적 소망을 억제할 없듯 작품의 분만도 그러했다.


그렇게 태어난 나의 작품이 비록 맘에 들지 않더라도 나는 그것조차 사랑한다.
다행히 이런 나의 글을 읽고도 좋았다고 말해 주는 이가 있으면 자식 이쁜 줄만 아는 팔푼이 부모가 되어 마냥 좋아도 한다.
그러나 누가 그렇지 못하다고 해도 나는 나의 작품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대신 나는 독자에게 빚을 것임을 가슴에 새겨 둔다.



작품에 대하여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독자에겐 감사하고 싶다. 감출 것도 숨길 것도 없는 모습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 스스럼없이 보여 주는 것이 나로서는 독자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시냇물에 떠가는 작은 종이배.


감동이란 크고 웅장한 것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리라.
삶에 따라서 자라온 환경이나 사람의 성격에 따라 전해지는 감동의 폭이나 울림이나 높낮이도 제각기 다를 있듯 나의 경우도 작고 하찮은 것에서 오히려 곧잘 흥분하고 감동하곤 한다. 그러면서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혀를 차며 비통해 하거나분해하는 것에선 오히려 담담해져서 주위의 눈치를 살펴야 때도 있다.


 
그러나 나의 성격을 대범하지 못하고 소심하다고들 얘기하는가 하면,
사실은 흐트러짐 투성이요,
실수 투성인데도 절대적으로 깔끔하기를 원하는 완벽주의자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어쩌면 그것은 어느 하나 채우지 못하는 부족함이기에 나는 완전한 것에 배고파했고,
허기를 채우고 싶은 욕심으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그렇게 비쳐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런 나의 성격과 생각들이 내면을 채우고 있는 속에서 나의 수필은 태어난다.



남들처럼 돋보이는 청자나 백자의 우아함보다는 질항아리,
뚝배기처럼 부담 없이 편하게 사용되는 그릇과 같은 수필.
된장, 간장 항아리가 되기도 하고,
쓰다가 금이라도 가면 때엔 철사띠로 허리를 동이고 마른 곡식 담는 통이 되던 어린 날의 질항아리들.
그리고 불길을 떠나와도 한참을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된장찌개 뚝배기의 투박한 정겨움처럼 나의 수필은 요즘 보단 옛것에,
서구적인 보단 우리의 쪽에 마음을 둔다.


 


그래서 나의 수필은 주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내용도,
세계적인 견문에서 오는 경이로움이나 새로움도 수필 속에선 찾기 힘들다. 하지만 나는 수필을 도란도란, 들릴락 말락, 둘이서만 얘기하는 것처럼,
아니 그보다는 '빨리 안자고 하느냐' 호통 속에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가 밤을 숨죽여 킥킥대며 즐거웠던, 어쩌다 친구와 함께 자던 어린 날의 밤처럼, 아무 것도 아닌 같으면서도 너무나도 소중하여 가슴과 가슴으로 따스하고 끈끈하게 이어지는 정의 물줄기가 끊이지 않고 잘잘 흘러내리는 그런 가슴의 이야기라 하고 싶다.


 


낮은 목소리로 읽어 가다 보면 그냥 따스함이 온몸에 배이는 그런 수필,
그래서 나의 수필 작업은 그렇게 목소리 낮추기로부터 시작하여 새벽 이슬처럼 투명한 색깔로 살아나길 원한다. 그러면서 내밀한곳으로부터 솟아오른 고요와 은은한 정의 빛살이 창호지 문의 작은 구멍을 통과하듯 그런 작은 감동을주는 정의 수필이고 싶다.



정적인 수필이란 아무리 많은 내용이나 새로운 지식을 끌어온다 해도 사람의 가슴속에 스며들고 젖어드는 것이 아니고는 수필일 없다는 나의 고집스러운 생각은 잘못된 것일까.




누가 수필을 여기(餘記) 했던가.
수필은 어느 장르의 글보다도 심혼이 깃든 글이 아닌가. 거울에 비쳐진 모습보다도 밝은 달밤 맑은 물에 비친 모습처럼 눈부시지 않으면서도 운치와 정이 배인 ,
수필은 결국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되 속에 비치는 모습처럼 은은하게 보여주는 것이요, 나름의 고집스러움을 지켜 그러한 나의 모습을 통해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아주 작게나마 따스함을 주고자 하는 마음의 선물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나의 수필 작업은 내게도 읽는 이에게도 기쁨이 되는 것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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