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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화된 수필문학의 미래/윤재천 (수필가. 전 한국수필학회장)

Author
mimi
Date
2013-12-16 07:51
Views
30779



운문화된 수필문학의 미래 
-아포리즘 수필시대 개막의 필요성-

 



 히포크라테스는 자신의 관심분야인 의술업(醫術業)에 충실하기 위해 연구와 임상 과정에서 획득된 

지식과 지혜, 검증된 사실과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검증된 질병의 증세나 진단법, 치료법을 비롯해 

치유 가능성이 높은 약품과 의료인으로서 견지해야 할 자세와 심오한 진리가 남긴 명구(名句), 또는

잊고 싶지 않은 사례를 기록했던 노트에 ‘아포리즘’이라고 써놓았던 것이 지금은 보통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지금은 다이제스트(digest) - 압축하여 표현하거나 내용을 요약해 놓은 것이 유행처럼 되어 있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우리사회에 자주 사용된다.



그 진가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다가능화로 인한 영향이 분위기를 선도하고 있어 단구(短句)나 짧은 문장에 대중의 관심이 몰리며 그에 따른 파괴력이 상상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엔 말과 글, 언어 자체가 사상이나 지성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인식되던 고전주의로 인해 설명을 통한 설득이 사회를 지배하던 때도 있었고, 

한때는 미적 표출의 용도로 이것이 상품화되어 - 특히 불란서가 낭만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그들의 문화가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20세기 중후반부터 '시화동근(詩書同根)' - 시와 그림은 한 뿌리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게 되면서

언어에 대한 대중의 통념은 이전과 다르게 인식되어 마치 수도승의 화두(話頭)와 같은 것이 대중을 계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것은 뜻을 진지하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레이스(race)를 펼치게 될 대상을 긴장시키기도 하였다.

이 것은 순간 행동으로 표출하게 하는 '총성(錢聲)'으로 집중화된 관심을 터뜨리게 하는 폭죽과 다르지 않다. 이런 사회적 실상이 우리사회에 형성되어 유행처럼 된 것은 사람의 지적 능력이나 자존심이 강해짐으로써 남의 간섭이나 일방적 지시에 순종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는 계층이 팽창된 데서 비롯된다.

현대인은 전통적인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하고 문명적인 것에는 비판적이며 미래에 대해선 반(反) 

유토피아적인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언어가 지닌 3가지 성격으로 사상성과 음악성, 

회화성(繪畵性) 중 시대에 따라 어느 것을 중요시했느냐 하는 현상이다.

어느 경우든 '추세'를 무시하면 존속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것을 부정하기 이전에 관심을 가지고 

동화되기 위한 노력이 우선이고, 그 속에서 장점을 발견하기 위한 자세를 견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수필'은 형식에 의존하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 전이된 느낌이나 체험을 기록한 

산문형식의 예술문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어느 다른 갈래의 글보다 작가의 개성과 인간성이 두드러진 

것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필요 이상의 엄숙함보다는 상황을 발전시키는 유머나 위트가 그 진가를 

발휘할 때 명쾌한 글이 된다.

수필은 '산문적 성격의 글'에서 '운문적 성격의 글'로 체질개선을 했을 때 더욱 사랑받을 수 있는 장르다.

‘산문’은 흔히 율격(律格)과 같은 외형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기술하는 글로 알려졌고, ‘운문’은 

언어의 배열에 일정한 규율과 운율이 있는 글로 인식되고 있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 동맹국이 패망해

우리가 광복을 맞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습과제를 간행하면서 한자(漢字)의 표피적 해석에 

불과한 것을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재고하지 않은 채 그대로 사용한 연유이다.

지금은 시대가 조급하게 변하고 있다.
이 제부터라도 전자는 이해를 위한 설명이나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주장이 강하게 녹아 있는 것을 의미하고, 후자는 일방적 목적성이 아닌 다양한 견해가 자연스럽게 관념을 변화시키는 글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성원의 의식이 경직되어 오늘의 정치판처럼 답답한 말씨름만 계속하는 추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아포리즘이라는 화두(話頭)가 창조의 초석이 되기를 희망한다. ‘아포리즘 수필시대’ 개막에 왜곡된 

사실이 개변(改變)되지 않게 되면 독자를 의식하게 되어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쏟아놓는 웅변(雄辯)이 주도하는 시대에서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는 현실에 감금될 수밖에 없다.

변화의 조짐이 구체화되어 그 세계가 속히 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언어’는 승화된 가치를 창출하고 이런 노력이 일반화될 때 긍정적인 효과가 사회와 각 분야로 파급된다. 

이때 모든 영역과 계층이 그 위세에 매료되어 인류의 역사를 지속해서 발전시킬 토대가 형성된다.

인간의 지헤가 진보하고 철학과 에술이 일반대중에게까지 보급되기 위해선 말과 글이 진리에 접근하여 샘물과 같이 신선해져야 하는데, 이것은 오직 새로운 ‘운문화(韻文化)’된 수필이 문학의 전면에 나설 때만이 가능하다.


사상의 주입이나 상대의 청각기관을 자극함으로써 일체화를 강요하는 소리는 적극적으로 제3자를

자신에게 귀속시키기 위한 통제적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일방적 집중의 한 방법이다.

그 러나 선문답(I禪問答)과 같은 말이나 글은 수용자의 판단에 의해 그 가치나 품위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소통의 민주적인 힘을 보유한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언어를 그림에 비유한 것은 침묵으로 



그림을 바다에 비유할 경우, 그것은 광란의 현장을 절제미를 통해 그린 것일 수도 있고 잔잔하게 흔들리는

물살만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 그림은 침묵으로 감상자를 상대하므로 내적 

동요는 있어도 그것을 직접 표출하는 조급함은 보이지 않게 된다.

이런 점에서 ‘아포리즘’이라는 화두로 신조나 원리를 함축적으로 표현하여 그 가치를 고양하는 수필시대의 개막선언은, 수필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이르기까지 그 진입의 필요성이 시급하다.

오 늘의 현실과 같이 소란하고 혼란한 현실에선 회오리바람처럼 제자리걸음만 계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 진중한 태도로 획득된 진리를 몇 가지 어휘로 축약해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심중에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메시지를 주게 되고 계층 사이의 갈등을 무마시켜 불필요한 동요를 잠재울 수 있게 되어 

난세를 극복하는 길이 된다.

이제 ‘아포리즘 수필시대’의 개막은 지체할 일이 아니다. 길이 있는데도 에돌아가는 것은 ‘방황’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딜레마 속에서도 수필문학의 미래를 염려하며 아방가르드적 글쓰기와 

수필이론의 아포리즘으로 도전하며 개척해 나가야만 한다.
(※ 2012년 3월 21일 ‘문학의집·서울’ 특강 내용)



■ 윤재천
수필가. 한국수필학회장

[《현대수필》2012년 여름호(권두 에세이)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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