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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내 삶의 내부적 외침이며 아울러 체험이다

Author
mimi
Date
2012-11-01 15:09
Views
17081

 

        


                 수필은 내 삶의 내부적 외침이며 아울러 체험이다 

                                           -신 용 철/수필가-


 

1.복바쳐 오를 만큼 쓰고 싶을 때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데 대한 이야기는 더욱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실 나는 글 쓰는 방법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배우거나 연구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동안 나름대로 적지 않은
글을 써왔다. 그것은 전공의 의무적인 글을 제외하고 수필류의 글은 그저 쓰고 싶어서 썼다고 말 할 수 있을 뿐이다.


래서 쓰고 싶다는 것은 우선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유명한 역사가이며 천재적인 문인이었던
사마천(司馬遷, 134-84, BC)은 그의 유명한 역사책인 [사기(史記)]를 ‘분노가 치밀어 쓴 글(發憤의 小作)’이라고 했다.
그 말은 자기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분노를 글로 쓴 것이란 뜻이기도 하다. 한편 16세기 중국의 이탁오(李卓吾,
1527-1602)라는 독특한 자유사상가는 ‘이른 바 작품을 쓴다는 것은 그의 흥(興)이 감(感)에서 나오고, 의욕을 억누를 수
없거나, 정(情)이 너무 격해서 말이 부드러워 질 수 없는 상황’ 에서 가능하다고 했다.

‘예
술을 하려는 사람들은 그것을 하지 않고는 죽어도 못 배길 마음속의 강렬한 욕구가 있을 때, 그의 작업을 시작하라!’는 오규스트
로댕의 경구를 나는 기억하고 있다. 이들 모두의 공통적인 견해는 좋은 글이란 예술은 작가가 마음속에서 쓰지 않고는 못 배길
마음속의 강렬한 일어날 때 쓰라는 것이다. 문학이나 수필에 대한 제대로의 수업을 받지 못한 채로 그나마 글을 써 왔다. 

 

2.수필로서의 역사, 역사로서의 수필

그래서 다른 말로 하면 어렸을 때 내 주변의 환경에 접하면서 울분과 분노로 나의 글쓰기는 시작되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으로서
반도의 허리 잘린 38선의 근처에서 나는 자랐다. 전쟁으로 다니던 중학교를 중단해야했고, 아버님을 불행하게 사별해야 했다. 이미
그때 나는 북한의 인민군과 중공군을 비롯하여 세계 10여 개국 이상 군대를 체험하면서 자랐다. 그러므로 나의 글쓰기는 결국 내
마음속 분노의 표출이었다.


리는 살아가면서 일어나고 접하는 많은 현상들로부터 여러 가지 느낌을 얻는다. 또 다른 한편 세상사에 대한 내 마음속의 비판이라는
에너지의 분출로 글을 쓰기도 한다. 그 어느 것이건 나의 쓰기에는 모두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인간이 살아 온 수천 년 간의
역사라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바뀌고 활약한 파노라마에 대한 글에 더 매력을 느낀다. 결국 역사학도의 길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수필을 역사처럼, 역사를 수필처럼’ 쓰고 싶다.


리는 살아가는 동안 일어나는 많은 현상들을 눈으로 보면서 느낌(情)이 일어나 글을 쓰게 된다. 또 한편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마음속으로부터 분출하는 비판적 에너지가 쌓여 글을 쓰기도 한다. 그 어느 것이건 나에게는 모두 쓰고 싶은 대상이 된다.
하지만 나에게는 현상에 대한 느낌보다는 아무래도 일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보다 강했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수천 년 간의
시간 속에서 활동한 많은 사람들과 그때 일어났던 일들을 접하는 역사학도이기 때문이다. 
 


3.수필의 주제는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다.

수필을 쓰기 위한 주제는 특별한 곳이나 대단한 사건에서만 찾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비록 하치않은 일이나 현상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며 집중하느냐가 중요하다. 같은 물체를 놓고서도 사진작가에 의해 전혀 다른 사진이 나올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 몸살가기를 앓으면서 그의 느낌을 ‘병적 쾌감’으로 유명한 수필을 썼던 해방 후의 유명한 수필작가 김진섭(金晉燮)을 생각해
본다. 어느 여름날 저녁, 타고 가는 마지막 기차 안에서 잡힐듯 하면서도 안 잡히고 자기를 괴롭히는 모기를 ‘동승자(同乘者,
Fellow Traveller)' 란 주제로 멋진 수필을 쓴 것을 기억한다.


일 매일의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며 살아가는 중에 우리는 다양한 글의 주제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기억하거나 또는 기록하면서,
나는 우선 그 주제들로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지를 고민한다. 주제를 정하면 우선 어떤 방향으로 어떤 내용의 글을 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학술논문과 달라서 하나하나 고증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나의 독서량이나 일반적 지식 및 표현의 방법 등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의 느낌이나
서술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감을 줄 수 있는가가 항상 두렵다. 그리고 그리 많지 않은 문자의 배열이 이처럼 어려운가를 뼈저리게
실감한다.


리고 어설프게나마 글이 다 쓰여지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도록 잊어버리고 싶어진다. 대학의 강의를 시작할 때, 그 주제와 내용에
대하여 최선을 다 하지만, 끝나는 시간이면 항상 부족하다는 허탈감을 느끼는 것과 같다. 그러나 강의는 다시 계속되어야 하듯이
잊었던 원고를 다시 읽으며 잘못된 곳이나 부족한 곳을 찾아낸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 그 원고를 다시 보며 정리하게 된다.
 


4. 생각하며 쓰고, 다시 고치며 삶의 지혜와 감동을 담아라.

사실 그때에도 주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내용과의 일치도 점검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역사를 쓰는 습관, 즉 고증과
평가 같은 학문적 방향에 가까워지려는 유혹을 받는다. 이것이 아마도 내가 극복해야 할 어렵고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역사학도로서 나는 역사를 수필처럼 써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것은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서도 좋고, 수필의 역사성을 위해서도
좋다.


날 중국인들이 말한 대로 문장에 진리(道)를 실어야(文以載道)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읽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삶에 필요한
지혜와 감동을 주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순수하며 때 묻지 않은 어린 아이의 마음(童心)’을 글 쓰는데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생각한 16세기 중국의 이탁오를 생각한다. ‘정치건 문학이건 동심을 얻지 못하면 모두 불가능하다’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아직 매우 중요하다. 세상에서 대인이며 큰 문인이라고 뽐내는 사람들로서 ‘아직도 동심을 잃지 않았노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느냐는 그의 예리한 비판이 나에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고 싶다는 생각이 내게 계속되는 한, 그리고 내가 사는 한, 살아가는 상징으로서 나는 글을 쓸 것이다. 비록 내 마음에서 엮어지는
글들이 어떤 것이 될 수 있을 지는 그저 내 능력의 한계 안에 있을 수밖에 없지만, 생활의 지혜, 삶의 의지들을 소박하게 그러나
정성스럽게 담도록 노력할 것이다.


리의 세상에는 부조리도 많고, 무엇인가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길 분노의 느낌들 역시 나의 수필 주제가 될 것이다. 수많은
예술작품들이 사실 이러한 분격함이 에너지가 된 적이 많다. 공격이나 보복이 아닌 올바른 기술과 화합 및 예술화의 길이 문학의
사명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넓은 세상의 많은 일들에서 공통적으로 얻어지는 합의처럼, 반대로 하나의 사실로서 세상을 넓게 보는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시야를 통해 내 삶과 삶의 애환들을 계속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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