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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2011 부산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2011 부산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돌보지 않으면 혼자 살아가기 힘든 '업보' 같은 형 냉면 면발만큼이나 질긴 형과의 인연이 서럽다-
냉면 / 류영택
망치질 소리가 들려온다. 바깥에서 형이 두드리는 소리다. 걱정이 된 모양이다. 일을 하다말고 서둘러 답신을 보낸다. 탕 탕 탕.
정화조차량 탱크 용접일은 긴장의 연속이다. 안과 밖, 형이 두드리는 망치질은 동생이 무사한지 안부를 묻는 것이고. 내가 두드리는 망치질은 망을 보다말고 어디 가지나 않았을까, 형을 붙들어 두려는 마음에서다.
돌보지 않으면 혼자 살아가기 힘든 '업보' 같은 형 냉면 면발만큼이나 질긴 형과의 인연이 서럽다
형과 처음 손발을 맞춘 것은 우리 집 뒤주를 터는 일이었다. 라면을 사먹기 위해서였다. 긴긴 겨울밤, 꽁보리밥으로 배를 채워서 그런지 몇 번 방귀를 뀌고 나면 이내 배가 고파왔다.
아무리 우리 것이라고 해도 도둑질은 도둑질이었다. 겁이 났다. 뒤주에 들어가려다 말고 형과 신호를 정했다. 누가 나타나면 두 번, 지나가고 나면 한 번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자루에 곡식을 퍼 담으며 연방 망 잘보고 있느냐고 물었다. "뭐 그리 겁이 많아!" 짜증 섞인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시작한 곡식 도둑질은 이듬해 봄까지 이어졌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형과 붙어산다. 집을 나설 때면 형과 내가 먹을 도시락을 싸들고 가게로 간다.
의
밖에서 망을 보고 있는 형도 다를 게 없다.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으니 오히려 더 불안해한다. 동생이 질식한 것은 아닐까. 탱크 안이 잠시만 조용하다 싶으면 작은 망치로 철판을 두드린다.
통풍구로 고개를 내밀자 형은 넋을 놓은 채 앉아있다. 손에 들고 있던 망치마저 떨어뜨린 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오죽 졸리면 저럴까. 백번 이해가 되면서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덕지덕지 기름이 낀 차체에 용접불똥이 옮겨 붙어 통 속에서 로스구이가 될 뻔했었던 게 어제 일 같은데 천하태평, 어쩌면 저렇게 배짱 편하게 졸고 있을까.' 온갖 한탄을 속으로 삭힌다.
"형, 뭐해!"
고함을 치자 형은 허둥지둥 망치를 움켜잡는다.
작업이 끝나가자 형에 대한 미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아무리 화가 나도 형을 불평하지 말았어야 했다. 비록 속으로 한 말이지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작업 끝날 시간에 맞춰 음식을 주문한다. 형은 곱빼기 나는 보통. 살얼음이 낀 육수를 벌컥 마시고 내려놓는 형의 냉면그릇에 넓적하게 썰어놓은 한 점 돼지수육을 올려놓는다.
"동생 너나 먹지."
"동생, 이 집 냉면 맛 진짜 끝내준다."
'이 집 냉면 맛 끝내준다.' 울컥 복받쳐 오르는 설움을 벌컥 냉면 육수로 가라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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