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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에 다가가기 /안도현

Author
janeyoon61
Date
2011-02-25 21:40
Views
14401

 


쓰기에 다가가기.
6


-
‘무엇’을 쓰려고 하지 말 것-


(안도현의 시와 연애하는 법 중에서)


 


무엇을 쓸 것인가?


글을 쓰려면 집중적인 몰입의 자세가 그 어떤
것보다 우선이다
.


무엇을 쓸 것인지,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하는 일은 글을 구상하는 순간부터 퇴고를 완료할 때까지 따라다닌다.


도대체 무엇을 쓸 것인가?


 


첫째,
단 한번이라도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써라.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
책을 읽어서 알게 된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경험에 속한다. 하지만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본 직접적인 경험만큼 생생하지는 않다
. 남의 입을 통해 빠져나온 말을 받아 적다 보면 사실을 과장하거나
축소할 우려가 있고
, 책으로 얻는 지식과 지혜를 말로 옮겨 적다 보면 현학이나 지적 허영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


 


시인 김용택은 “내가 알고 있는 것만큼만 시를
쓴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 이 말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의
다른 표현이면서
, ‘너희들이 모르는 것을 내가 아니까, 나는 그것을
쓰겠다’는 그만의 독특한 창작 비결이기도 하다
. 그는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적었더니 시가 되더라”는
말도 했다
. 이때의 ‘어머니의 말씀’은 바로 어머니와 함께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이라는 의미다.


 


둘째,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써라. 시인 이정록의 말을 잠시 경청해 보자.


 


“간혹 쓸 것이 없어서 못 쓰겠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있다
. 그러면 나는 그에게 간곡하게 말한다. 당신이 지금 전화를
하는 곳에서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있는 것을 말해 보라고 한다
. 그걸 쓰라고 한다. 곁에 있는 것부터 마음속에 데리고 살라고 한다. 단언컨대, 좋은 시는 자신의 울타리 안 문지방 너머에 있지 않다. 문지방에 켜켜이 쌓인 식구들의 손때와
그 손때에 가려진 나이테며 옹이를 읽지 못한다면 어찌 문밖 사람들의 애환과 세상의 한숨을 그려낼 수 있겠는가
.


 


이런 생각을 그는 ‘문지방 삼천리’라는 말로
기발하게 압축했다
. 삼천리는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다 둘러보지 못한다. 애써 둘러볼 필요도 없다. 문지방 안에 삼천리가 다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시를 찾지 못하는 당신을 위해 한마디 더 귀띔한다. “오래 들여다보면 모두 시가 된다.” 역시 이정록의 어록이다. 기억해 두자.


 


어떤 시를 읽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 좋은 시를 쓰려면 당신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장 젊은 우리나라 시인의 시부터 읽어라.
젊은 시인의 시는 교과서요, 늙은 시인의 시는 참고서다. 우리나라 시인의 시는 한 끼의 밥이지만, 외국 시인들의 시는 건강보조식품이다.
제발 릴케와 보들레르와 엘리어트를 읽었다고 거들먹거리지 말라. 두보와 이백을 앞세우지
말라
. 볼썽사납다. 그들 대가의 시집은 두고두고 천천히,
읽어라.


 


셋째,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써라. 높은 곳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쓰지 말고,
낮은 곳에서 돌아앉아 우는 것에 대해 써라. 시는 절대로 ‘초월한 자의 향기’가
아니다
. ‘고귀한 사랑’이 아니다. ‘인간과 자연의 합일’이 아니다.
‘고행을 이겨낸 구도자의 경지’가 아니다. 시는 초월하지 못한 인간의 발가락에서
나는 냄새고
, 지저분한 사랑이며, 인간과 자연의 불화이며,
한 시간 아르바이트하면서 어렵게 번 돈 3천원이다.


 


시를 쓰려거든 두꺼운 문학이론서를 독파하지 말라.
창작보다 고매한 철학적 사유로 무장하는 게 우선이라고 여기지 말라. 이론이나 세계관이
시를 낳는 게 아니다
. 당신의 시가 당신의 이론과 세계관을 형성한다고 믿어라. “사유가 먼저 있고, 그 도달한 사유에 맞춰 거꾸로 체험을 구성할 경우 작품은 파탄을 면치
못한다
. 사유로부터 경험이 도출되는 것은 마치 몸에 옷을 맞추지 않고 옷에 몸을 맞춘 것처럼 어색하다.
몸에 옷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규범이듯, 경험에 사유가 뒤쫓아 가 그 경험을
완전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예술적 창조의 원리이다
.(김상욱의
<다시 쓰는 문학에세이>)


 


넷째,
화려한 것이 아니라 하찮은 것을 써라. 나의 경험 중에 행복했던 시간들이 남에게도
반드시 행복한 시간으로 전이되는 것은 아니다
. 나의 행복과 충족은 남의 불행과 결핍의 증거임을 잊지 말라.
장미와 백합의 우아한 향기에 취하지 말고, 저 들판의 민들레와 제비꽃의 무취에 취하라.
금메달을 목에 건 승리자의 영광보다는 꼴찌로 들어오는 선수의 실패를 경배하라. 성형수술
한 처녀의 얼굴을 경멸하고 주근깨로 뒤덮인 소녀의 얼굴을 사랑하는 법을 익혀라
.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졸시 <애기똥풀>)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소재를 택해 쓰느냐는
게 아니다
. 그 어떤 소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적 경험은 나의 경험의 일부를 말하는 게 아니라 나의 경험 중에 나만의 시각으로 바라본 적이 있는 것을 우리는 시적 경험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모든 시인은 경험한 것에 대하여 쓴다. 하지만 경험한 것을
곧이곧대로 쓰지는 않는다
. 이것저것 여러 가지 일을 해 본다고 많은 시적 경험이 쌓이는 것은 아니다.
바쁘게 한 세상을 살아왔다고 그 수많은 경험들이 글쓰기로 이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소재를 해석하는 능력, 즉 상상력의 도움 없이 어떤 소재에 매달리는 것은 소재주의의 늪에 빠질
위험이 있으니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
.


 


‘무엇’을 쓰려고 집착하지 말라.
시에서 소재주의는 시단의 특정한 경향을 답습하거나 이미 규범화한 유파의 문법을 비판 없이 추종할 때, 그리고 글쓰기의 목적의식이 지나치게 앞설 때 생겨난다. 초보자의 경우에는 시가 생겨나는 지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곧잘 소재주의에 빠진다
. 그러므로 ‘무엇’을 쓰려고 1시간을 끙끙댈 게 아니라 단 10분이라도 ‘어떻게’ 풍경과 사물을 바라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아이칭(艾靑)의 생각도 우리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당신이 무엇을 쓰는가에 있지 않고
, 당신이 어떻게 쓸 것이며, 어떻게
이 세계를 볼 것이며
, 어떠한 각도에서 세계를 볼 것이며, 당신이 어떠한
태도로 이 세계를 포용할 것인가에 있다
.


 


여기 시의 소재로서 한 알의 사과가 있다.
당신에게 이 한 알의 사과에 대해 시를 쓰라는 과제가 떨어졌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은 적어도 다음에 제시하는 열 가지 정도의 행동을 수행하거나 사유를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시의 첫 줄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1) 사과를 오래 바라보는 일


2) 사과의 그림자를 관찰하는 일


3) 사과를 담은 접시를 함께 바라보는 일


4) 사과를 이리저리 만져보고 뒤집어보는


5) 사과를 한입 베어 물어보는 일


6) 사과에 스민 햇볕을 상상하는 일


7) 사과를 기르고 딴 사람과 과수원을 생각하는


8) 사과가 내 앞에 오기까지의 길을 되짚어
보는 일


9) 사과를 비롯한 모든 열매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10) 사과를 완전하게 잊어버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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