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작, 상투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삶 또는 대상에 대한 피상적 인식은 자연히 상투적인 표현으로 이어지게 된다. '내 마음 호수에 돌을 던질 때마다~', 이런 구절 역시 그렇다. 마음을 호수에 비유하는 표현, 그 호수에 돌을 던진다는 표현 등은 너무 흔하게 쓰여온 표현이며, 따라서 전혀 새로운 느낌을 주지 못한다.
눈부신 밤거리 달빛 한 가닥 들어설 틈도 없다.
휘황한 불빛 속엔 검은 하늘 향해 벌린 하얀 살뿐이다.
아무 것이든 빨아들이는 불가사리 식욕
붉은 웃음은 잿빛 거리를 휘돌아 하늘에 퍼지고 현란히 부서지는 물결 속에 검은 세계는 찬란히 부상한다.
달이 떨어져 나무에 걸려 있다. - 「밤거리」
이 시에 나오는 '붉은 웃음' '잿빛 거리' '검은 세계' '하얀 살' 등의 표현은 각각의 색깔이 갖고 있는 고정적인 이미지를 상투적으로 답습하면서 쓰고 있다. 밤거리의 풍경을 그리고 있지만, 어딘가 답답하다. 답답한 풍경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잘 잡히지 않는다.
키스를 하고 돌아서자 밤이 깊었다 지구 위의 모든 입술들은 잠이 들었다 적막한 나의 키스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정호승 시인의 「키스에 대한 책임」이라는 시이다. 입맞춤을 하고 돌아서는 깊은 밤, 너는 눈물을 흘리는데 나의 키스, 나의 사랑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적막해지는 심정을 '적막해지는 나의 키스'라고 표현했다. 신선하지 않는가. 첫 키스의 느낌을 각자 한 번 시로 표현해 보자.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첫 키스의 느낌을 수식하는 말을 만들어 보자고 하면 '황홀한' '달콤한' '갑작스런' '아련한' '부끄러운' '잊지 못 할' '지워버리고 싶은' '감미로운' '떨리던' 등등의 말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표현들 중에 참신한 표현은 무엇일까. 잘 찾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용운 시인은 어떻게 표현했는가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는가. 지금부터 70여 년 전 그런 참신한 말로 표현했다. '날카로운'이란 형용사는 키스라는 말이 주는 느낌과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말이다. 광물질적인 속성, 금속성 이런 이미지를 주는 말이다. 그러나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말이 결합하면서 '갑작스런' '충격적인' '강하게 다가온' '찌르듯이 내게 온' 이 모든 느낌이 함께 들어 있는 다양한 의미 공간을 열어 놓은 것이다. 이런 신선한 언어의 만남을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낯설게 하기'라고 한다. 다음의 시를 보자 세
상의 모든 아내들은 한 꽃에 꽃잎 같은 가족을 둘러 앉혀 놓고 지글지글 고깃근이라도 구울 때 소위 오르가슴이란 걸 느낀다는데
노릇노릇 구워지는 삼겹살 그것은 마치 중생대의 지층처럼 슬픔과 기쁨의 갖가지 화석을 층층히 켜켜로 머금고 낯뜨거운 오르가슴에
몸부림친다 그 환상적인 미각을 한 점 뜨겁게 음미할 새도 없이 식구들은 배불리 식사를 끝내고 삼겹살을 구워 먹은 뒤 폐허 같은
밥상은 .......... 헐거운 행주질 한 번으로도 절대 깨끗해지질 않는다 하얀 손등에 사막의 수맥 같은 파란 심줄을 세우고
힘주어 밥상을 닦는 아내의 마음속엔 수레국화 꽃다발 사방으로 흩어지고 - 「돼지」 중에서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의 모습을 무어라고 표현하고 있는가. '한 꽃에 꽃잎 같은 가족', 그렇게 표현했다. 비유가 신선하다. 돼지고기의 삼겹살을 보며 떠올린 '중생대의 지층' 그리고 '층층히 켜켜로 머금은 슬픔과 기쁨의 갖가지 화석', 이런 비유들은 이 시를 쓴 사람만이 본 독특하고 새로운 시적 발견이다. 지글지글 구워지는 돼지고기와 오르가슴을 연상시킨 비유에 이르기까지 이 시는 전혀 상투적인 데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시가 새로운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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